2016년 2월 19일 금요일




    나는 이런 일이 내 곁에서 일어났거나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확언하지는 못한다. 명백한 사실은 내가 그런 일을 본 적이 없다는 것뿐이다. 그걸 근거 삼아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고 못 박을 수는 없다. 더군다나 자신도 모르게 뭔가를 조금씩 잊다가 머릿속에서 아주 지워버리기도 하고, 평생 기억해내지 못한 어느 장면이 최후의 순간에 떠오른다고도 하니, 사람의 일은 모를 일이다. 보르헤스의 단편 「또 다른 죽음(La otra muerte)」은 망각에 대한 이야기다. 한 남자에 대한 두 개의 기억, 그 중 하나가 사라지면서 그 남자는 단 하나의 기억 속에 남게 된다.


    보르헤스는 과연 그 과정을 어떻게 기술했을까? 그를 따라가면서도 나는 기억이 지워지진 않았는지 누차 확인해야만 했다. 근래 읽은 가장 매력적인 이야기다. 수일에 걸쳐 새벽마다 고쳐 읽었고, 나는 미궁에서 겨우 빠져나왔다. 아리아드네를 불러 책을 덮는 일은, 하지만 결코 쉽지 않았다고 토로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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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안개 속에서 사라질 것이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이방인처럼. 인간의 섬이 되어 바다의 꿈으로부터 멀어질 것이다. 존재의 과잉을 실은 한 척의 배가 되어, 모든 사물의 표면을 항해할 것이다.”(페르난두 페소아, 배수아 옮김,『불안의 서』, 168쪽)


    하지만 모든 것이 처음부터 안개처럼 보였던 것은 아니다. 착각이라 할지라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우리는 오히려 어떤 특정한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자신감으로 일단 사물과 사건, 혹은 대상의 표면에 붙어서 한동안 그 의미를 빨아먹고 산다. 그것이 표면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게 되는 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바로 그 순간부터 하나가 아닌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진다. ‘모름’이라는 기이한 현상은 자신이 비춰진 거울 앞에서 눈 가리지 않는 자만이 경험할 수 있다. 우리는 무수한 앎 속에 사는 것이 아니라, 실은 무수한 망각 속에 산다. 그걸 추적하는 일은 대단히 어려울 수밖에 없다.


    보르헤스는 미스터리 같은 한 편의 짧은 이야기에서 그 일을 해내려고 시도한다. 그의 추적을 에피소드 별로 따라가자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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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 가논에게서 한 장의 편지가 온다. 보르헤스의 부탁이었던 모양인데, 랄프 왈도 에머슨의 시 「과거」의 스페인어 번역본을 보내주겠다는 내용이 우선 실려 있었고, (이게 실로 중요한 내용인데) 뻬드로 다미안이 폐울혈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뒤를 이었다. 1904년 지방 호족인 아빠리시오 사라비아의 혁명군에 참여해 마소예르 전투에서 활약했다던 이 노인은 극심한 가슴 통증과 가빠지는 숨을 어찌하지 못해 죽은 것이었다. 참전 이듬해 엔뜨레 리오스의 시골로 송환되어 막일꾼으로 수 십 년을 산 그였다. 보르헤스도 1942년 그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무지하기 그지없는 매우 과묵한 사람”(보르헤스, 황병하 옮김,『알렙』, 102쪽)으로 기억되는 남자. 보르헤스는 그를 기억할 수 있는 한 장의 사진마저 잃어버리며, 나중에 가서는 뻬드로를 기억해내려고 하다가 엉뚱하게도 이탈리아의 한 오페라 가수의 얼굴을 떠올리기도 한다.


    마소예르 전투에 관한 환상적인 이야기로 작품을 구상 중이었던 보르헤스는 에미르 모네갈의 주선으로 디오니시오 따바레스 대령을 만날 수 있었다. 이 대령이 기억하는 뻬드로 다미안은 전쟁에서 겁을 먹은 남자였다. 그렇다면 그가 “매우 과묵한” 사람이었던 건 겸손한 성품 때문이 아니라 전쟁에서 겁쟁이였던 자신을 끝끝내 부끄러워했기 때문이었으리라. 하지만 이야기는 아주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고 만다.


    다시 한 번 대령을 찾은 보르헤스는 그때 마침 대령의 집에 있던 후안 아마로 박사를 만났다. 그도 뻬드로 다미안에 대한 기억을 지닌 남자. 그러나 그의 기억은 대령의 것과 정반대다. 뻬드로는 1904년 마소예르 전투에서 용감히 선봉에 섰다가 총탄을 맞고 말에서 떨어진 뒤 발굽에 치여 죽었다. 아니, 발굽에 치이기도 전에 이미 목숨이 끊어진 상태였다. 그러자 대령도 그 이야기를 듣다가 어리둥절해하며 자신의 기억이 가물가물함을 시인했다. 단편에 등장하는 첫 번째 망각의 시작이다. 한동안 궁금증에 목이 탔을 보르헤스에게 4월의 어느 날 대령의 편지가 날아온다. 아마로 박사가 증언했던 뻬드로 다미안을 그가 기억해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로써 대령의 망각은 완성됐다. 보르헤스는 직접 찾아 나설 수밖에 없었다. 두 명의 뻬드로 다미안, 그 미스터리. 그러나 헛수고였다. 뻬드로가 오랜 세월 일했던 괄레과이추의 한 목장을 들를 일이 있었던 그는 다미안의 임종을 지킨 목장지기 디에고 아바로아를 찾으려고 했으나, 그는 이미 죽어 있었다. 뒤에서 알아보겠지만 이는 죽음을 가장한 세 번째 망각이었다. 기억을 가진 자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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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르헤스는 두 가지 추측을 한다. 우선 첫 번째 추측으로 두 뻬드로 다미안을 상정하는 것이다. 1946년 경 죽은 겁쟁이 뻬드로 다미안과 1904년 마소예르에서 죽은 뻬드로 다미안. 하지만 이런 추측은 추측이라고 할 것도 못 되는 것이, 왜 대령이 둘 중 한 명의 뻬드로를 망각한 것인지 도무지 알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두 번째 추측은 보르헤스의 여자 친구인 울리케 폰 쿨만의 것으로, 다분히 환상적이다. 1904년 마소예르 전투에서 전사한 다미안이 신에게 간청했더니 신이 과거의 영상을 바꿔줬다. (신조차 과거 자체를 바꾸지는 못하는 것이, 보르헤스가 밝혔던 것처럼 무수히 많은 사건들을 교정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나비효과’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겠다.) 신의 도움으로 뻬드로는 그림자처럼 고향으로 돌아가 엔뜨레 리오스에서 조용히 농장 일을 하며 죽음을 기다렸다.


    울리케의 이야기에서 보르헤스는 하나의 상상에 이르게 된다. 두 가지 역사적 사실에서 도움을 받는다. 하나는 단테의 『신곡』 천국편 제 21편의 124~125행의 구절(Poca vita mortal m'era rimasa / quando fui chiesto e tratto a quel cappello)이며, 다른 하나는 ‘삐에르 다미아니’라는 11세기 신학자의 주장이다. “한 번 일어났던 일을 없었던 걸로 만들 수 있다.”(보르헤스의 책, 110쪽)고 주장한 삐에르 다미아니는 『신곡』 천국편에서 단테와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를 한 ‘피에트로 다미아노’이다. 저 구절에 앞선 121행부터 피에트로는 자신이 현세와는 달리 성모의 궁전에서는 ‘원죄를 갖고 있는 피에트로(e Pietro Peccator)’라 불릴 뿐이라고 단테에게 토로한다. 물론 이 구절을 떠올린 보르헤스가 전쟁에서 남자답지 못하게 겁을 먹는 행동을 피에트로의 ‘원죄’에 빗댔을 리는 없다. 그가 단테의 시구에서 본 건 바로 ‘두 명의 사람’이라는 콘셉트였을 것이다.


    이런 상상에 이른 보르헤스는 단편의 말미에서 드디어 자신의 생각을 밝힌다. 1904년 마소예르에서 겁쟁이 뻬드로 다미안이 죽었다. 시골로 송환된 것이 아니라 따바레스 대령이 기억한 것처럼 겁쟁이의 모습으로 참전했다가 (따바레스 대령이 결국 잊어버린 것이 바로 이 부분인데) 죽었다. 하지만 뻬드로는 수치심을 만회하고자 신에게 삶을 바쳤고, 울리케의 이야기처럼 엔뜨로 리오스로 돌아갔다. “만일 운명이 나를 다른 전쟁으로 데려가면 그에 값하는 행동을 보여줄 것이다.”(보르헤스의 책, 111쪽) 이런 결심으로 임종까지 조용히 살았다. 그리고 임종과 함께 전쟁터로 돌아가서 장렬하고도 용감하게 전사한다. 그리하여 아마로 박사의 기억을 따바레스 대령이 마침내 떠올린 것처럼, 뻬드로는 1904년 마소예르 전투에서 용감하게 죽은 이로 기억된 것이다. 후자가 보르헤스가 말하는 두 번째 역사, 즉 실제이며, 뻬드로가 1946년 경 가논의 편지에서처럼 엔뜨레 리오스에서 폐울혈로 죽은 것은 사라져버린 첫 번째 역사인 것이다.


    그렇다면 첫 번째 역사의 말살은 어떻게 진행된 것인가? 즉, 신의 장난 같은 이 환상적인 일은 도대체 어떤 과정을 거쳐 성립될 수 있었는가? 우선 단편에서 언급된 것처럼 보르헤스는 대령이 아마로 박사의 기억을 듣고는 가물가물하는 모습을 본다. 그리고 박사의 기억을 떠올렸다는 대령의 편지를 받는다. 이것이 첫 번째 망각이다. 그리고 두 번째 망각은 자신에게 뻬드로 다미안의 부고를 전한 가논 그 자신에게서 일어난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유명한 서점인 미첼에서 보르헤스는 그와 다시 만나게 되는데, 가논은 (편지에서와는 달리) 자신은 에머슨의 영시를 스페인어로 굳이 번역할 필요를 못 느끼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보다 더 충격적인 말이 이어진다. 보르헤스가 묻자, 가논은 뻬드로 다미안이 누구냐고 반문한다. 두 번째 망각이다. 보르헤스는 이렇게 주변 인물들이 둘 중 한 명의 뻬드로를 잊기 시작했다는 걸 분명히 확인했다. 그리고 목장지기인 디에고 아바로아를 찾지만 그는 이미 죽어 있다. 문제는 그가 언제 죽었는지 단편에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편의상 이걸 ‘세 번째 망각’이라 불러보자. 뻬드로 다미안 주변 인물들의 망각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면서 보르헤스를 제외한 그 누구도 자신이 망각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망각의 망각이다. 이로써 신은 두 번째 역사를 완성했다.



*    *    *



    하지만? 하지만 보르헤스가 남아 있는데? 그는 망각한 이들을 추적하여 드디어 신의 비밀을 풀어냈다. 그리고 이 단편을 남겼으니 어쩌면 신조차도 망각의 힘으로 그를 정복하지 못한 셈이다. 신이 보르헤스를 무시하지 않았다면 그도 진즉에 따바레스 대령처럼 한 가지 기억을 잊어버리거나, 가논처럼 아예 ‘뻬드로’라는 이름 자체를 잊어버리거나, 혹은 최악의 경우 디에고 아바로아처럼 죽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보르헤스는 무사한 듯하다. 망각이 하나의 전투이고 하나의 칼날이라면, 그는 기적적으로 아무런 상처 없이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돌아온 영예로운 군인이 된 것이다. 기억하는 자. 하지만 과연 그럴까?


    보르헤스가 무사하다는 생각을 뒤집어버릴 의심은 “나는 내가 과연 줄기차게 진실을 기록했는가에 대한 확신이 서질 않는다.”(보르헤스의 책, 112쪽)라는 구절에서 시작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은 단편의 저 앞에서부터 이미 시작됐다. 나도 그걸 여느 독자들처럼 단편을 다 읽고 나서야, 심지어 나흘에 걸쳐 여러 번 읽고 나서야 알게 됐지만, 신의 비밀은 보르헤스가 무심코 흘려버려서 나중에는 아예 착각하고만 한 가지 행동에서 그 위력을 드러냈다. 그가 사진을 잃어버렸다는 사실 말이다. 보르헤스는 그를 본 적이 있다. 심지어 그가 어떤 분위기의 사람인지도 기억한다. 하지만 그의 얼굴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이탈리아의 유명 오페라 가수의 얼굴로 착각해버리기도 한다. 대령에게서 발견된 망각의 조짐이, 마소예르 전투를 소재로 한 환상적인 이야기를 쓰려고 했던, 그리하여 한 노인의 기이한 죽음을 추적했던 보르헤스 자신에게서도 발견된 것이다.


    우리는 그의 이야기를 믿을 수 있을까? 이상하다. 그가 울리케의 도움을 받았다가 갑자기 떠올린 단테의 시구에는 피에트로 다미아노(삐에르 다미아니)의 말이 실려 있었다. 우연의 일치일까? 보르헤스가 추적했던 한 노인의 이름은 ‘뻬드로 다미안’이다. 피에트로 다미아노를 스페인어로 바꾸면 그 이름이 된다. 그러자 보르헤스는 뒤늦게 토로한다. “뻬드로 다미안은 뻬드로 다미안으로 불리지 않았는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든다. 그리고 내가 그 이름으로 그를 기억하고 있는 것은 나중에 가서 삐에르 다미아니의 논거가 그의 얘기를 구상케 해주었다고 믿기 위해서 그러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보르헤스의 책, 112쪽)


    이 구절의 비밀에 대해서는 우리가 알 길이 없다. 그가 가논의 편지를 받아 정말 뻬드로를 추적하여 이런 글을 쓰게 된 것인지, 아니면 혼자 도서관에, 혹은 미첼과 같은 유명한 대도시의 서점에 틀어박혀 단테를 읽다가 피에트로 다미아노의 말에서부터 이 소설을 구상하기 시작한 것인지, 보르헤스조차도 모른다.


    애당초 이 소설이 시작하기 전부터 보르헤스는 헷갈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또 다른 죽음」은 신이 만든 세 번째 역사를 말한다. 나는 이 사실이 무서웠다. (정확히 말하자면 보르헤스의 상상력에 혀를 내둘렀다고 해야 한다.) 이 세 번째 역사는 말살 당한 첫 번째 역사와는, 그리고 소설에서는 사실이라고 언급됐다가 뒤늦게 아닐 수도 있다고 철회된 두 번째 역사와는 또 다른 차원에 있다. 바로 소설 자체의 성립 여부다. 아, 이건 신의 장난일까? 이 소설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은 우리가 다른 차원, 즉 다른 역사를 계속 상정하는 일뿐이다. 이런 놀이에서 우리가 신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신을 죽이는 건, 애당초 이 놀이의 룰에 없기 때문이다.





p.s 인명 표기 오타가 있다. 처음에는 목장지기의 이름을 ‘아바르꼬’라고 잘못 음역했다가 나중에 ‘아바로아’라고 제대로 표기한 것, ‘따바레스’ 대령을 뒤에 가서는 ‘따발레스’ 대령이라고 쓴 것이 있다. 원문과 대비하여 그 음역의 오타를 밝혀놓는다.


① 108쪽 디에고 아바르꼬 → 디에고 아바로아

원문 : Quise interrogar al puestero Diego Abaroa, que lo vio morir; éste había fallecido antes del invierno.


② 112쪽 디오니시오 따발레스 대령 → 디오니시오 따바레스 대령

원문 : En el coronel Dionisio Tabares se cumplieron las diversas etapas: al principio recordó que Damián obró como un cobarde; luego, lo olvidó totalmente; luego, recordó su impetuosa muer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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