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 정신의 요람

 

탕기 님께서는 '번역 공부'까지도 일부러 따로 하시는군요. 정말 놀랍습니다. 그런데 탕기 님의 이 글을 읽어내려가다가 거의 막바지에 이르러 마주치게 된  '시 번역은 차마 손을 댈 수가 없었다'는 대목을 접하고 나서야 마침내(?) 안타까운 마음과 더불어 제게도 약간이나마 '덧붙일 말들'이 몇몇 떠오르는 걸 느낍니다. 굳이 제목을 붙이자면 '평범한 시인들의 소동' 정도가 약간이나마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싶습니다. 어쩌면 시는 '번역' 뿐만 아니라 애시당초에  '창작' 부터가 지난한 일임에 틀림없는 듯싶고, 특히나 범속한 사람들에게는 '접근 금지' 팻말부터 먼저 제대로 확인해 보고 나서 발을 내디뎌야 하는 몹시도 특수한 영역일지 모르겠다 싶은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제가 덧붙일 댓글은 사실상 거의 '인용'일 뿐이어서, 예전에 미리 갈무리해 둔 내용을 이렇게 '먼댓글 형식'으로 덧붙여 봅니다.)

 

 * * *

 

평범한 시인들의 소동

 

* 당연한 일이지만, 나는 어떠한 경우에도 위대하고 참다운 시인만을 언급하고 있으며, 특히 오늘날 독일에서 대단히 증가하고 있는 평범한 시인이나 엉터리 시인이나 우화작가 등 어리석은 무리들은 문제삼고 있지 않다. 이러한 무리들의 귀에는 사방에서 쉴 새 없이 다음과 같이 외쳐 주어야 한다.

 

사람도 신도 서점의 기둥도
시인이 평범하게 되는 것은 허락하지 않는다.

Mediocribus esse poétis

Non homines, non Di, non concessere columnae                  ────호라티우스, 《시론》

이 평범한 시인들의 소동이 자기들과 타인의 시간과 종이를 얼마나 망쳐 놓으며, 또 그 영향이 얼마나 해로운가 하는 것은 신중히 고려해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대중은 한편으로는 언제나 새로운 것을 붙잡으려 하고, 또 한편으로는 자기들과 동질인 불합리한 것과 범속한 것에 기울어지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평범한 작가들의 작품은 대중을 참다운 걸작에서 멀어지게 하고, 그러한 작품들로 대중의 교양을 억제한다. 따라서 천재의 좋은 영향을 정면으로 방해하고,좋은 취미를 점점 해쳐서 시대의 진로에 역행한다. 그러므로 비평이나 풍자를 할 때는 용서나 동정을 하지 말고, 평범한 시인들에게 혹평을 가해서, 그들이 졸작을 쓰기보다는 좋은 작품을 읽는 데에 여가를 이용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천재적인 재능이 없는 시인들의 졸렬한 작품은 온화한 시신인 아폴론까지도 마르시아스의 껍질을 벗기게 할 정도로 격노하게 한다. 나는 평범한 시가 관용을 요구하는 것이 어디에 근거를 둔 것인지 알 수 없다.

 

 -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제3권,  <51. 시에 대하여>

 

 * * *

 

졸렬한 시인보다 더 자신을 가진 자는 없다

 

나는 무척이나 시가를 좋아한다. 남의 작품은 어지간히 알아본다. 그러나 사실 내가 시가를 써 보려면 어린아이 장난이 되어 버려, 스스로 참을 수 없게 된다. 사람은 다른 데서는 아무 데서라도 어리석은 수작을 할 수 있지만 시가에서는 못한다.

 

신들도 인간도

작품을 붙이는 기둥도

시인들의 평범함은 용서되지 않는다.                                  (호라티우스)

 

우리 출판사 사옥 앞에 이 격언이 붙어 있어서, 그 많은 사이비 시인들이 작품을 들여놓지 못하게 하면 얼마나 좋을까!

 

진실로 졸렬한 시인보다 더 자신을 가진 자는 없다.    (마르티알리스)

 

어째서 우리에게는 이런 사람들이 없는가? 선대(先代) 디오니시우스는 자기 재주 중에도 시짓는 것을 가장 자랑삼았다. 올림픽 경기 때에 그는 화려하기가 다른 어느 것보다도 더한 수레들을 가지고 제왕답게 금박을 하고 수를 놓은 천막에 깃발을 날리며, 시인들과 음악가들을 시켜서 자기 시를 제출케 하였다. 그의 시가 낭독될 때에 처음에는 그 운율이 우아하고 탁월한 데서 민중들의 주의를 끌었다. 그러나 다음에 이 작품의 변변찬은 내용을 감식하게 되자, 그들은 처음에는 경멸하다가 점점 그 판단이 명확해지자, 금세 화를 내며 달려나가 그 깃발을 모두 쓰러뜨리고 찢어 내팽개쳤다. 수레도 역시 경기에서 아무런 성적을 올리지 못했고, 부하들을 실어왔던 배는 시칠리아로 귀환하지 못하고 폭풍우에 밀려서 타렌토의 해안에 가서 부서졌다. 민중들은 이것이 확실히 신들이 그들과 같이 이 못된 시에 분개한 탓이라고 생각하였다. 더욱이 난파에서 겨우 살아난 뱃사람까지도 이 민중들의 의견에 가담하였다.

 

그의 죽음을 예언한 신탁도 역시 어느 면에서 백성들에게 찬동하는 것 같았다. 그 신탁에는 디오니시우스가 자기보다 우수한 자들에게서 승리를 거두었을 때에, 그의 종말이 다가올 것이라고 실려 있었다. 이것을 그는 자기보다 우세하던 카르타고 인들이라고 해석하였다. 그리고 그들과 싸움을 하게 되었을 때에 그는 이 예언의 뜻에 거스르지 않으려고 여러 번 승리할 기회를 저버리며 조절해 갔다. 그러나 그는 잘못 해석했다. 왜냐하면 신은 그가 아테네에서 자기보다 우수한 비극 시인들에 경쟁해서 《레네이아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작품을 상연시키고, 매수행위(買受行爲)와 부정으로 승리를 거두는 때를 그 시기로 정해 놓았기 때문이었다. 이 승리 뒤에 그는 갑자기 죽었다. 얼마간은 그가 이때 느낀 과도한 기쁨 때문이었다.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제2권, <17. 교만에 대하여> 중에서

 

 ** *

 

범용한 시인들에 관하여

그러나 범용한 시인들에 관하여 말하자면, 인간도 신도 서점(書店)의 진열창도 그들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즐거운 향연에 듣기 싫은 음악을 연주하거나, 진한 향유가 나오거나, 사르디니아산(産) 꿀을 친 양귀비 종자가 나오면 기분이 상하게 됩니다. 그런 것들 없이도 향연을 베풀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원래 영혼에 쾌감을 주기 위하여 만들어진 시도 정상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심연 속으로 굴러 떨어지고 맙니다. 격검(擊劍)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은 연병장에서 무기에 손대지 않으며, 구기나 원반 던지기나 굴렁쇠 놀이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은 관중에게 웃음거리가 되지 않기 위하여 뒤로 물러섭니다. 그런데도 시를 쓸 줄 모르는 사람은 이에 조금도 구애받지 않고 용감하게 시를 씁니다. 하긴 왜 못 쓰겠습니까? 그는 완전한 자유민일 뿐 아니라 재산상으로도 기사 등급에 속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품행에 있어서도 나무랄 데 없는 사람으로 간주되니 말입니다.

 

 -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호라티우스/詩學> 중에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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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나쁜 시인이기 때문에...

 

호메로스는 어떻게 모든 시인들보다 훨씬 더 구체적으로 묘사할 수 있었을까? 그가 그만큼 더 많이 관조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나쁜 시인이기 때문에 시에 관해 그토록 추상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미적 현상은 단순하다. 단지 지속적으로 살아 있는 유희를 바라보고 항상 정령의 무리들에 둘러싸여 살 수 있는 능력을 가져보라. 그러면 시인이 될 것이다. 단지 스스로 변신하여 다른 사람의 몸과 영혼으로 말하려는 충동을 느껴보라. 그러면 극작가가 될 것이다.

 

- 니체, 『비극의 탄생·반시대적 고찰』, 『음악의 정신으로부터의 비극의 탄생』, 8장

 

  * * *

 

시는 아름다운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시는 아름다운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시는 물론 감미로워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사람의 얼굴은 웃는 자와 더불어 웃고, 우는 자와 더불어 우는 법입니다. 그대가 나를 울리고자 한다면 먼저 그대 자신이 고통을 느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텔레포스여 그리고 펠레우스여, 그대의 불행이 나를 감동시킬 것입니다. 그대가 남이 시키는 말만 서투르게 늘어놓는다면 나는 하품과 웃음을 참지 못할 것입니다. 비장한 말은 슬픈 얼굴에 어울리고, 위협적인 말은 성난 얼굴에 어울립니다. 그리고 변덕스런 말은 익살스런 얼굴에 어울리고, 진지한 말은 엄숙한 얼굴에 어울립니다. 자연은 그때그때의 경험에 따라 우리의 마음을 조율하는 것입니다. 자연은 즐겁게 해주기도 하고, 격동시키키도 하며, 무거운 근심으로 의기소침하게 하기도 하고, 불안으로 마음 조이게도 합니다. 그런 연후에 영혼의 감동을 바깥으로 표출시키는데 이때 혀가 그 통역 노릇을 합니다. 그러나 이때 화자의 말이 그의 체험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관중석에 앉아 있는 모든 로마 인들은 교양의 유무를 막론하고 폭소를 터뜨릴 것입니다.

 

 -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호라티우스/詩學> 중에서 

 

 * * *

 

시인들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플라톤

플라톤은 시와 예술에 관해 따로 책을 쓴 적이 없고 주로 『이온 Ion』과 『파이드로스 Phaidros』와 『국가』에서 자신의 예술관을 피력하고 있다. 시와 예술에 대한 그의 태도는 복잡하다. 먼저 나온 두 대화편에서 그는 시인들을 칭찬하고 있으나 『국가』에서는 매우 위험한 자들이라며 가차없이 자신의 '이상국가'에서 추방하고 있다. 시인들에 대한 그의 칭찬은 모호하고 유보적인 반면 비판은 타협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래서 니체는 플라톤을 '유럽이 낳은 예술의 가장 강력한 적'이라고 불렀다.

 

 -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플라톤/詩論> '해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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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기 2016-02-24 23: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범속한 시인들에게 혹평을 아끼지 않는` 독자 축에 들겠군요.
기회가 된다면 언제든 혹평을 하겠으나, 나이가 어려 예의 상 이렇게 서재에 숨어 지냅니다.

부모님께서 수 십 년 동안 국어교사를 하셨기에
가끔 시인 등단한 제자분들께서 감사의 뜻으로 시집 한 권씩을 보내주곤 합니다.
저도 창작의 문외한은 아니라... 시집을 읽으며 참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죠. 심지어 교수를 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한 현대문학 교수의 지적대로, 등단의 방법은 무수합니다.
문학상은 `다음 수상자`가 대체로 그 해에 이미 정해지기 마련이고요.
우리나라의 문인 수가 공식 협회에 등록된 것만 하더라도 만 명은 넘는다고 하죠?
교수는 지난 문학사의 반 세기를 놓고 `정지용` 외에는 남을 만한 시인이 없다고까지 역설하더군요.

문단의 벽은 낮아지고, 독자의 수준은 떨어지며, 그리하여 기억될 만한 가치 없는 것들이 회자됩니다.
저는 이런 출판과 독서의 문화를 곱씹을 때마다 현기증이 납니다.

모든 건 독자의 몫일까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독자에게 실천의 몫이 남은 건 분명합니다.
저도 Oren님 말씀처럼 문학은 특수한 영역이라 생각합니다. 방법은 물론이고 작가의 자질에 있어서도요.

많은 공감할 수 있는 인용문들입니다. 이면지에 몇 줄 적어 훔쳐가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p.s 여담이지만, Oren님의 인용 실천을 보고 있으면 문헌학에 매달렸던 젊은 시절의 니체가 떠오릅니다. 그 실천의 방법을 저도 배워봐야겠습니다.^^

oren 2016-02-25 12:31   좋아요 0 | URL
탕기 님께서 남겨주신 댓글을 읽어보니 어느 정도 짐작은 갑니다만, 제가 그 쪽 분야에 대해서는 아는 게 너무나도 없어서 뭐라 댓글을 달기조차 어렵군요. 시인들이나 시 작품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고요.(제 고향에도 집안 어르신 가운데 한 분이 오래 전에 이름난 시인으로 활동하셨던 덕분에, 그 분의 시비뿐만 아니라 시문학공원까지 두루 마련되어 있는 형편인데도, 저는 어쨌든 `시`나 `문학` 쪽으로는 거의 한발짝도 내밀어본 기억이 없답니다.) 아무튼 유익한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드려요^^

아, 참, `젊은 시절의 니체`를 말씀해 주셨는데, 어쨌든 그 철학자의 글은 읽으면 읽을수록 `그 누구도 생각해 내지 못한 놀라운 발상`과 경이로울 정도로 다채로우면서도 격동을 불러 일으키는 힘찬 문장들 때문에 더욱 매료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는 `사상`으로 보나 `문장`으로 보나 초인(超人)다운 기질을 타고난 듯해요. 숱한 인류의 걸출한 인물들을 순식간에 납작하게 구겨서 간단히 쓰레기통에 휙~ 집어 던지고야 마는 거인을 연상시킨다고나 할까요? 결국 인류를 왜소하게 만드는 데 앞장서 왔을 뿐인 온갖 엉터리 `인물과 사상들`에 대해 가차없이 통쾌한 주먹을 날리는 그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과연 언제, 누구로부터 그런 우렁찬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거라고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싶은 아찔한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비로그인 2016-02-24 23: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 눈 호강을 하네요. 탕기님의 댓글까지 평론가 수준의 경지까지 보여주시니 ... ;^^

oren 2016-02-25 12:29   좋아요 0 | URL
시인 님께서 몸소 여기까지 찾아오셔서 댓글을 남겨주시니 제가 조금은 머쓱해지기도 합니다. 아무튼 시를 쓸 수 있는 재능은 오랜 세월 동안에도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만 겨우 허용된 매우 특별한 능력이었던 만큼, 시인 님께서도 앞으로 훌륭한 시들을 많이 써주시길 부탁드립니다.^^

yamoo 2016-02-26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오렌 님은 고전 인용의 달인이십니다! 정말 적재 적소에 환상적으로 어울리는 고전의 인용! 배인화시인 님처럼 항상 눈호강 합니다~^^

oren 2016-02-26 14:27   좋아요 0 | URL
제가 인용하는 대목들이 늘 적재적소이기만 하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생뚱맞거나 뜬금없을 때도 결코 적지 않을 테지요.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