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7.13


    땅콩문고에 전화를 걸었다. “사장님, 혹시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재고 있나요?” 집이 일산이라 방문 구매하겠다고 했다. “네, 지금 오시면 있습니다.” 오후 세 시 반. 구름이 옅은 그늘을 깔아놓은 틈을 타 클릿슈즈를 신고 나갔다. 페달에 걸리는 슈즈 소리가 경쾌했다. 습기 가득 머금은 날이라 땀으로 샤워를 했지만 로드바이크는 가벼웠다. ‘어떻게 생긴 서점일까? 책 포장은 예쁘게 해주셨을까?’ 설레면 힘이 나는가보다.


    땀범벅이 되어 실례가 아닐까 했는데, 친절하고 단아하신 주인께서 곱게 포장해놓은 책을 내어주셨다. 이 책이 이렇게까지 폭발적인 인기를 끌 것이라고 기대하진 않으셨다고 하셔서 “요즘 트윗에서도 이 책 이야기만 하더라고요.”라고 맞장구를 쳤다. 온라인 구매 대기자가 연락이 없어, 딱 한 권 남아 있던 이 소중한 재고는 나의 품에 들어왔다.





    돌아오는 길. 꼬리를 문 생각이 내 옆을 나란히 달렸다. 지금 내가 등에 맨 가방 속 한 권의 책은 무슨 의미일까. 나는 지금 어떤 의미를 가지고 가는 중일까.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며 일산의 일상을 봤다. 중학생들이 하교 중이다. 재활센터 앞에서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과 눈이 마주쳤다. 양손 가득 무거운 장보따리를 든 채 집으로 향하시는 아주머니께서 신호를 기다리는 나를 바라보셨다. 일상이다. 자연스럽게 얽매여 있는 일상이다. 자연스러움은 무섭다. 무서우니 쉽게 반항하지 못한다.


    그러나 트윗은 지금 용광로다. 동생이 말했다. “오빠는 어디 가서 페미니스트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어.” 그래서 권유대로 4월부터 트윗을 시작했다. 그리고 5월 17일에 강남역에서 비극이 일어났다. 강남역으로 가는 동생이 대신 포스트잇을 붙여주겠다고 해서 나는 한참을 생각했다. 고인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다가 나는 그저 미안해할 수밖에 없음을 알았다. 나는 남자다. 용광로에 들어가 하나둘 해체된 나는 더 이상 글을 쓰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경청하고, 읽고, 공감하는 일이 우선이었다. 아니, 그것만이 중요할지도 모른다.


    정희진,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이라영, 김현경, 코델리아 파인, 마사 누스바움을 사서 서문을 읽었다. 미술, 철학, 종교를 지나가며 지난 십 수 년 간 이어왔던 지적 여정이 어떤 의미였는지 반문했다. 용기를 냈다. 결국 나는 쪼그라지고 초라해졌다. 나는 슬펐으나, 새롭게 바뀔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가졌다. 놓아야 할 것, 버려야 할 것, 포기해야 할 것은 아직도 수없이 많다.


    내가 가진 것들 중 상대를 불편하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이 있다면 나는 “그건 내게 소중했던 것이다.”라는 환상을 지워버려야 한다. 그리고 그 상대는 여성과 LGBT, 사회에서 분명히 ‘약자’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객체 대우를 받는 사람들이다. 내가 트윗을 놓을 수 없는 이유, 그곳에서 (분노의 형태로, 때론 설득의 형태로) 언급되는 이슈들에 매일 집중하는 이유는 나의 환상을 포기하고 싶기 때문이다. 대신 상대의 고통을 바라본다. “고통은 변형되어야 하되 잊혀져서는 안 되고, 부정되어야 하되 지워져서는 안 된다.” (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 36쪽) 트윗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지성과 공인들에게 쓴소리와 지적을 아끼지 않는 여성들에게, 나는 매일 배운다. 고통을 잊거나 지우지 않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사람의 인식은 언제나 더 넓고 깊어질 수 있다고 믿기에, 먼 미래를 본다. 그 날이 희망적이려면 나부터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이 시대는 분명 바뀌고 있다. 편견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것을 명백한 ‘편견’이라 부른다.


    기만하지 않는 자만이 살아남는다. 용기 없는 자는 추억 속으로 죽어갈 뿐이다. 진짜 죽진 않는다. 언젠가는 죽겠지만, 그냥 그렇게 사는 사람으로 남는다. 나는 그러기 싫다. 책을 읽어왔고, 사람을 생각했고, 역사를 들여다봤고, 가끔은 어설프게나마 진리를 추구하기도 했던 충실한 독자로서 그럴 순 없다. 오늘 내가 등에 짊어지고 온 한 권의 책은 그런 것이었다. 내게 용기를 준 동생에 대한 보답으로는 부족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뭔가를 덤으로 얻는 걸 참 못하는) 나는 사장님께 "이거 책갈피인가요?"하고 여쭤봤다. 사장님은 그걸 내게 흔쾌히 내어주셨고, 나는 그 친절을 동생에게 건네줬다. 내가 받은 과분한 것들에게 배신하지 않는 삶을 살길 바란다. 용기만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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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6-07-13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림이 있는 글이네요. 어쩐지 감동적입니다....ㅠ

탕기 2016-07-18 20:10   좋아요 1 | URL
페미니즘 독서 중입니다. 동생에게 빚진 바가 많군요.

오거서 2016-07-14 0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감동적입니다!

탕기 2016-07-18 20:11   좋아요 1 | URL
이 각오처럼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五車書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