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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에도 계급이 있는가 - 유전자 정치와 영국의 우생학 ㅣ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123
염운옥 지음 / 책세상 / 200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2016년 2월 26일 금요일
“기나긴 평화가 이어지고 있으며, 질병이 창궐하는 일은 좀처럼 없다. 허나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사람들로 북적인다. 게을러빠진 자들이 수천이나 되는데, 이 나라는 손쓸 길을 못 찾는다. 난국을 막지도 못하고, 대안을 찾지도 못한다. 어쨌든 우리 국민에게는 참으로 짐스러울 따름이다.”(Throughe our longe peace and seldome sickness... wee are growen more populous than ever heretofore;... many thousandes of idle persons are within this realme, which, havinge no way to be sett on worke, be either mutinous and seeke alteration in the state, or at leaste very burdensome to the commonwealthe.)
영국 지리학의 상징인 리처드 해클루트가 남긴 글이다. 검색하다가 알게 된 것을 번역해 이곳에 옮겨봤다. 원문을 보면 알겠지만, 당시는 16세기였다. 거리가 대체 얼마나 군중들로 인산인해였기에 이 노학자는 경멸조의 글을 썼던 것일까. 심지어 잉여(surplus) 인구를 다른 곳으로 보내버려야 한다고까지 말한 사람이다. 리처드는 인구가 줄어들길 바랐을 것이다. 그런 그가 세상을 떠난 2년 후인 1618년, 영국은 스웨덴, 프랑스, 덴마크 등과 함께 프로테스탄트 제후동맹 편에 서서 신성 로마 제국과 싸웠다. 종교전쟁의 명목으로 시작해 패권전쟁으로 비화되며 무려 30년 동안 벌어진, 그래서 이름도 ‘30년’인 이 전쟁으로 영국 인구는 급격히 줄었다. 아니, 유럽 인구 자체가 현저히 줄었다. 리처드의 유령은 웃었을까? 알 수 없다. 다만 유럽은 또다시 인구 급감의 공포에 시달려야만 했다.
하지만 권력이 인구를 조절해야 한다는 생각은 리처드만의 것은 아니다. 연원을 따지려면 우리는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설교까지 들어야만 한다. 맬서스 이후 드디어 ‘인구’라는 거대한 집단을 직시하게 된 사람들은, 기계문명의 발전과는 상관없이 (아니, 오히려 역으로) 갈수록 피폐해지는 사회 속에서 국가가 타개의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기에 불을 붙인 것이 우생학(優生學)이다. ‘우생’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소스라치게 놀라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우리 사회에는 이미 ‘루저’, ‘금수저’, ‘우월’ 등의 단어가 매체를 거쳐 급속도로 퍼져 있다. 들여다봐야 할 학문이라 생각했다. 우생학 비판의 첫 걸음을 위해 나는 한 주 간 염운옥의『생명에도 계급이 있는가』를 곱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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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는 ‘유전자 정치와 영국의 우생학’이다. 그렇다. 우생학, Eugenics는 영국에서 태어났다. 진화론을 생산해낸 나라가 영국이었기 때문이다. 갈라파고스 제도를 다녀온 후 (그 전에도 그랬지만) 불안증 탓에 외출하는 일이 거의 없었던 찰스 다윈 대신 진화론을 설파한 사람이 토머스 헉슬리였다. 토머스의 ‘과학적 자연주의’는 우생학 개념을 도입한 프랜시스 골턴의 주장과도 상통한다. 과학이 신앙을 대신하고 국가의 복지에 봉사해야 한다는 생각. 여기서 프랜시스의 우생학이 시작됐다. 1883년 출간된 『Inquiries into Human Faculty and Its Development』에는 “정신과 육체의 양면에 있어 차세대 인류의 질을 높이거나 낮추는 작용 요인에 대해 연구하고 이를 사회 통제 아래 두는 것을 목표로 하는 과학”이라는 우생학의 정의가 실려 있다.
바야흐로 19세기 말. 저물어가는 대영제국은 Pax Britanica의 명성을 잃어가는 중이라며 우울한 망상에 빠져 있었다. 언론에서는 연일 ‘인종퇴화’를 떠들어댔고, 이러다가 제국에 하층 계급들만 넘쳐날 수도 있겠다는 걱정스런 분위기가 이 골목 저 골목으로 퍼져나갔다. 프랜시스는 ‘부적격자’라 명명된 이들이 늘어나는 건 찰스 다윈의 자연선택이 아닌 문명화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다윈도 이러한 ‘역선택’의 문제를 알고 있긴 했다. 이를 Survival of the Unfit이라 한다.) 이어지는 주장은 안 봐도 뻔하다. 인간의 형질을 개량하여 ‘천재의 세상’을 만들자. 찰스는 이런 유토피아적 망상을 비판했지만, 인간 유전자 조작과 우월, 천재 생산 등을 꿈꾸는 자들은 오늘날에도 많다. 최근 중국에서는 과학계의 두뇌들이 모여 천재 유전자를 찾고 있다.
영국이 당시 개방적 신분사회였다는 것을 생각해보자. 각 사회 계층의 유전적 소질을 향상시킨다. 그 중 능력을 지닌 타고난 형질의 사람들이 전문가 엘리트 집단으로, 즉 상위 계층으로 진입한다. 다분히 매력적인 생각이다. 우생학에 심취한 이들은 실제로 “전문가 엘리트 집단에 의한 과두제 지배”(염운옥, 『생명에도 계급이 있는가』, 42쪽)를 꿈꿨다. 반면 라마르크주의, 즉 용불용설을 주장하는 이들은 환경개혁을 통해 형질개선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사회개혁운동가들이 그 선상에 있었다. 사회진화론자로 명성을 떨친 허버트 스펜서가 공리주의 편에서 도덕을 외친 건 당연했다. 넓게 보자면, 우생학의 맞은편에는 환경론이 있었다. 그러나 정작 개념의 창시자인 프랜시스 본인은 환경론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우생학을 ‘부정적 우생학(negative eugenics)’의 방향으로 끌고 간 것은 프랜시스의 개념을 이어받은 개혁적 후발 주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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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운옥은 우생학의 세 갈래를 살펴본다. 그 첫 번째가 긍정적 우생학이다. 지원과 장려를 통해 인구의 질적 개선을 이룩한다는 취지에서 ‘긍정적’이라는 단어가 붙었다. 당시 영국은 인구퇴화론(반멜서스주의)의 영향으로 인종쇠퇴를 “인종의 자살”이라는 선정적인 문구로 표현했었다. 제국주의 국가들은 인구를 무기로 활용했다. 대영제국도 국력의 감소를 두려워했다. 실제 통계에서도 출산율 감소가 나타났다. 각계 인사들이 사회의 개혁을 주장하며 다양한 논리들을 설파했다. 점진적 사회주의의 초석으로 평가받는 페이비언주의 진영에는 조지 버나드 쇼, H.G. 웰스, 버트런드 러셀, 존 케인즈 등 후대가 기억하는 명사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여성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 모성수당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출산과 육아로 여성이 노동을 할 수 없으면 국가가 원조해줘야 한다. ‘헨리 하벤’이라는 사람은 독일이 출산 후 6주 간 75%의 임금을 지불하니 영국은 8주 간 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영국 독립노동당은 자녀의 생활비까지도 지급해야 한다고 했다.
여성참정권 운동으로 유명한 엘리노어 래스본, 메리 스톡스 등 페미니즘의 선구적 여성들은 가족수당협회를 설립해 여성의 특수성을 주장했다. 여성의 출산과 육아는 “사회와 국가에 대한 서비스”(염운옥의 책, 73쪽)라는 것이었다. 훗날 이들은 모자(母子)를 포함한 가족수당을 제안했다. 당시 정부는 ‘평균가족’이라는 개념을 적용해 최저생활임금을 지급하고 있었는데, 가족수당협회가 보기에 이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제도였다. 이 선구적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한 가족수당은 가족을 부양하는 남성의 임금을 보조하는 가족임금과는 다르다. 아내와 자녀에게 직접 수당을 지급하면 남성에게서 ‘부양’이라는 책무를 제거할 수 있고, 그로 인해 남성과 여성의 임금이 같아질 수 있다. 상당히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엘리노어의 노력으로 영국 우생협회는 가족수당협회와 손을 잡았다.
시대의 화두는 두 개였다. 양육과 본성. 우생협회는 당연 후자였다. 하지만 우생협회의 여성 인사들이 우생학의 취지와 모자 복지를 함께 가져가려고 노력한 덕분에 양육과 본성의 조화를 역설하는 이들이 하나 둘 목소리를 높였다. 당시 양육과 관련된 영국 최대의 행사는 National Baby Week였다. 포스터를 찾아봤다. 아테나를 연상케 하는 어머니가 낫을 든 해골을 오른팔로 막고 있고, 그 앞에는 두 아이가 몸을 움츠린 채 겁에 질려 있다. 포스터의 문구는 Save The Babies다. 또 다른 삽화에는 유아의 사망 원인들이 열거되어 있다. 위에서 아래로 보자면, 가난(Poverty), 무관심(Ignorance), 알코올 중독(Drink), 불결(Dirt), 그리고 질병(Disease) 순이다. 우생학 관련자들이 모자 복지 확충에 왜 손을 들어줬는지 이제 이해가 된다. National Baby Week와 같은 전시회나 무료 교육, 검진 등에 참여하는, 즉 복지 서비스를 이용하려는 어머니는 다른 어머니들보다 상대적으로 우수하며, 따라서 그 자녀도 우수 개체일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우생학자들은 하층 계급에서도 우수한 자를 찾을 수 있다고 봤다.
물론 강경파들은 달랐다. 찰스 다윈의 넷째 아들인 래너드 다윈은 우생협회장을 18년 간 지낸 거물이었는데, 중간 계급의 돈으로 하층 계급의 출산율을 올리는 건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나지 않는다는 유전의 법칙을 명심해야 한다.”(염운옥의 책, 87쪽)는 것이 래너드의 입장이었다. 우생교육협회도 신여성들의 출산과 양육을 장려하려는 모성기금을 운영했었지만, 이는 다분히 차별적 접근이어서 설득력은 점점 떨어졌다. 연이은 인구 감소도 강경파의 위축에 한 몫 거들었다. 어떻게 해서든 인구를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개혁적 인물들이 가입했다. UNESCO의 초대 사무총장을 지낸 줄리언 헉슬리는 강경론자들과는 달리 일단 모든 인간에게 균등한 기회를 주고 유전 여부를 판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균등한 기회를 가족수당이 마련해줄 수 있을 거란 뜻이다.
1930년대 말이 되자, 정부는 가족수당 정책으로 빈곤을 해결하고 저임금을 유지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앞서 페미니스트들이 높이 들었던 남녀평등의 깃발은 정부의 손에 없었다. 대신 열등처우에만 집중했다. 처우제한 원칙, 즉 빈민 구제를 받은 이들이 일반노동자보다 나아지면 안 된다는 1834년 영국 구빈법의 입장을 고수한 것이다. 긍정적 우생학의 개혁적 주장은 정부 정책에 고스란히 스며들 수가 없었다. 사실상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우생학은 “이런 방식으로 오늘날 복지 서비스의 근간이 되는 모성 보호와 모자 복지, 출산 장려 정책을 지탱하는 담론 속에 얽혀 들어갔다.”(염운옥의 책, 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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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생학’이라는 단어를 들여다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부정적 우생학’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단종법(斷種法), 즉 장애를 지닌 이의 생식 능력을 박탈하는 법은, 듣는 순간 소름이 돋는다. 결과부터 말하겠는데, 영국 우생협회의 단종법 제정 노력은 허사로 돌아갔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이는 참으로 다행인 일이다. 이 개념이 대륙으로 건너가 나치즘과 만나 부정적 우생학의 ‘꽃’이 폈다. 나치는 신체장애, 동성애자, 정신질환자, 공산주의자, 로만/집시,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유대인 등을 ‘육신이 나약한 자’로 규정, 혹독한 노동과 인체 실험, 고문의 늪에 빠뜨렸다. 나치가 세운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이들의 신체 한계를 측정하는 비인간적인 실험이 연일 계속됐다.
영국 국민들은 섹슈얼리티와 결혼 등 사적인 문제를 공론화하는 걸 꺼렸다. 다소 보수적이라 할 수 있는 개인주의적 성향 덕분에 대중은 우생학의 주장에서 멀어졌다. 하지만 우생협회의 선전 능력은 탁월했고, 10명 중 4명이나 되는 많은 여성 회원들이 박람회, 강연회, 영화 제작 등에 앞장섰다. 아이러니다. 여성의 인권을 주장하는 페미니즘과 우월한 인류를 탄생시키려는 우생학이 제휴했다. 따라서 염운옥은 이렇게 말한다. “우생학의 역사를 인신에 해를 가하는 ‘악’으로, 여성의 몸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획득하려는 산아 제한 운동을 ‘선’으로 그리는 이분법적 역사 서술은 가능하지 않다.”(염운옥의 책, 96쪽)
우생협회의 단종법이 여성들의 지지를 받은 이유는 장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영국 사회에 뿌리내렸기 때문이다. 1930년대에는 여성협동조합 길드에서도 피임 보급을 주장했다. 지금 이를 논해보자면, 첨예한 윤리의 칼날을 피해갈 길은 없을 것이다. 장애를 가진 아이를 낳고 싶지 않은 여성의 심리. 우리는 개인의 선택(피임)에 대해 비난할 권리를 가지고 있는가? “여성들은 단종법을 지지함으로써 자신의 ‘낳지 않을 권리’를 남녀 장애인의 ‘낳을 권리’를 부정하면서 주장한 셈이었다.”(염운옥의 책, 125쪽) 장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지금도 여전하다. 하지만 당시의 영국보다는 대중의 편견이 여러 방향으로 교정되고 있다는 걸 쓰라린 마음으로 복기해봐야 한다.
다시 말하거니와 단종법은 실패했다. 허버트 스펜서를 위시한 환경론의 영향이 컸다. 유전만으로는 모든 걸 설명할 수 없다는 생각이 있었다. 의사들의 직업윤리도 향상됐다. 강제 단종의 실시를 두고 비난 여론이 있었다. 그런 말을 한 인물은 의회에서 난타를 당했다. 노동당과 운동 진영에서는 계급 차별이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자발성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계층에게 단종은 강제와 같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영국은 특이하게도 계급 사회이지만 의회 민주주의가 전체를 지탱하고 있었다. 우생협회는 자발적 단종으로 선회했다. 그러나 영국 국민들은 단종 자체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고, 영국은 단종을 통한 전체주의 노선을 걷지 않을 수 있었다. 대신 온건윤리에 우생학 운동이 흡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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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우생학은 ‘예방적 우생학’이다. ‘예방’이라는 단어에서 이미 눈치 챘겠지만, 이 우생학은 질병, 특히 성병과 싸운다. 그녀/그들은 성병을 “인종의 독”이라 불렀다. 『생명에도 계급이 있는가』에는 당시 런던 인구의 10%가 매독에 걸렸을 거라는 주장이 담겨 있다. 그만큼 심각한 문제였다는 뜻이다. 그러자 우생학자들은 성병의 위험성을 부각시키면서 섹슈얼리티의 국가 차원 통제를 강력히 주장했다. 반면 페미니스트들은 성병의 전염을 남성의 부도덕을 규탄할 기회로 삼아 과장된 전략을 사용했다. “Vote for Women and Chastity for Men!” 당시 페미니스트들의 문구였다. 1890년대 이후 급감하던 출산율을 상쇄시키려면 어떻게든 국가가 성병을 관리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앞서 든 성병의 예로 매독을 언급했었는데, 그 위력은 상당했다.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에 이런 구절이 있어 번역해봤다. “유럽이 처음으로 매독을 명확하게 기록한 1495년, 매독 환자들은 머리에서 무릎까지 온통 고름으로 뒤덮였고, 얼굴에서는 살점이 떨어졌으며, 수개월 안에 목숨을 잃었다.”(제레드 다이아몬드, 필자 번역, 『Guns, Germs, and Steel』, 210쪽)
예방적 우생학은 부모의 책임의식을 강조했다. 강경파들이야 자연선택의 법칙이라며 “죽을 만한 사람들은 죽어도 된다.”는 입장이었지만 칼렙 살리비로 대변되는 예방적 우생학 진영은 국가의 개입을 촉구했다. 여론도 그쪽 편이었던 모양이다. 정부는 여론에 밀려 국가 차원의 조사를 했고, 무료 진료소과 특효약 개발이 효과를 보면서 매독 감염자 수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시빌 네빌 롤프’라는 우생주의자는 혼외아 중에도 적격인 경우가 있을 수 있으니 법의 보호를 받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생학에서 새로운 도덕이 탄생했던 것이다.
예방적 우생학은 엄밀히 말해 정통 우생학이 아니었다. 비과학적이라는 비난을 쏟아낸 측도 우생협회였으니. 하지만 오히려 이런 온건한 분위기 덕분에 가톨릭교회의 공감을 살 수 있었으며, 유전과 환경 양쪽 모두를 고려하는 태도로 여성들의 지지로 받았다. 앞서 말한 칼렙 살리비는 여성 참정을 지지하고 (아서 코난 도일, 버트런드 러셀 등과 함께) 이혼 허용 사유 확대를 주장하기도 했다. 이런 예방적 우생학의 최대 목표는 이렇다. “태아에게 있어서 외부 환경을 구성하는 모체를 매독 감염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은 환경 요인을 배제하지 않는 ‘예방적 우생학’이 대처해야 할 중요한 과제가 되는 것이다.”(염운옥의 책, 156~156쪽)
성병 관리와 함께 우생주의가 목표로 삼은 것은 바로 성교육과 결혼 전 건강진단 계획 의무화다. 우생협회는 가정에서보다는 학교에서 성교육을, 그것도 전문가들의 통제 하에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소년에게 우생학 원리를 교육시키려고 했던 것이다. 협회 측에서 보면 대단히 답답했겠지만 영국 정부의 입장 표명은 늘 소극적이었다. 결혼 전 건강진단 계획 의무화도 실패로 돌아갔다. 염운옥은 이 제도를 부정적 우생학이 아닌 건전한 일부일처제 문화 정착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지만, 당시 사람들은 우생협회의 법 제정에 냉담하게 반응했다. 협회도 목소리를 많이 낮춘 편이었다. 원래 강제적으로 하자고 했다가 반박을 받자 자발적 검사를 권장한다고 입장을 바꿨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론은 우생협회가 사회 불안을 조성할 뿐이라고 되받아쳤다. 물론 이는 우생학에 대한 촌철살인이었다. “우생학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의 표현이었다.”(염운옥의 책, 1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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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우생학을 정리해보면 이렇다. 우생학 운동은 여성들의 활약으로 모성주의 페미니즘과 결합했다. 양육환경을 중요하게 생각한 그녀들은 우생학 쪽에 서있었지만 프랜시스 골턴처럼 환경론 역시 무시할 수 없다고 느꼈다. 이 점이 오히려 우생학 논리를 무너뜨리는 모양새가 됐으나, 여성들의 적극적인 대외 활동으로 우생학은 대중들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었다. 모성수당, 가족수당 등의 긍정적 우생학 개혁 논의들은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로 수포로 돌아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사회복지제도 논의의 한 축이 되었고, 열등을 강제로 지워버리려는 부정적 우생학의 단종법은 영국 특유의 개인주의와 환경론, 노동당 진영의 반발에 밀려 실패로 돌아갔다.
하지만 우생학 운동은 그치지 않았다. 이후 교육과 결혼제도에 개입한 우생학은 우생(優生)의 논리를 후대에게 그대로 전해줬다. 1970년대에는 ‘자유방임주의’ 우생학이 등장해 개인이 선택적으로 중절할 수 있다는 시대 분위기가 조성됐고, 1990년대에는 맞춤아기의 등장이 예견됐다. 이제 우생은 개인적 자발로 옮겨왔다. 여기서 질문해본다. 이 윤리적 난제는 개인의 선택에 맡겨야 하는 것일까? 염운옥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 인류에게 주어진 가치를 상기시킨다. 생명 평등의 수호.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이쪽의 편에 설 것이다. 가장 본질에 가까운 도덕과 윤리의 가치는 쉽게 훼손되지 않는다. 우리는 “그 기술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를 기술자들에게 끊임없이 되묻는다. 다행이다. 하지만 개인의 형편과 행복추구권 등을 고려하면 장애아를 낳았거나 출산을 두려워하는 부모에게, 특히 “키우기 싫다.”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양육을 강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비난은 받겠지만, 우생이 이미 개인적 자발의 단계로 옮겨온 오늘날 윤리적 난제에 대한 확답은 요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