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8일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영웅이 필요한 것 같다. 지금이야 천하를 호령하는 무력과 용기의 소유자, 예컨대 중국의 관우나 고대 그리스의 페르세우스 같은 용사들이 필요치 않지만 (그러나 격투 프로그램에 열광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용사들이 필요할 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전체의 노력이 아닌 비범한 한 사람의 노력으로 사회의 병폐가 말끔히 해소되길 바라기도 한다. 물론 안타깝게도, 옛날보다 훨씬 복잡해진 사회를 깔끔하게 정리해줄 수 있는 사람이 등장할 가능성은 거의 없을 뿐더러, 솔직히 말해서 우리는 정확히 어떤 '대의' 같은 걸 쉽게 바라지도 않는다. 자기 자신에게 편하면 그것이 곧 대의인 것이다. 그리고 우릴 편하게 해주는 것은 영웅이라기보다는 돈과 제도인 경우가 허다하다.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고전의 영웅들을 읽으며 스스로의 막연한 희망을 어루만져 주는 까닭.


    그러나 영웅의 모험담이 거짓이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미노스 2세와 파시파에, 다이달로스와 파시파에, 미노타우로스와 테세우스, 다이달로스와 이카로스, 그리고 테세우스와 아리아드네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크레타 미궁의 이야기는 고대 그리스신화에서 매우 유명한 이야기 중 하나이다. 전말은 이렇다.


    미노스 2세가 왕위쟁탈전 중에 포세이돈에게 자신의 신성한 징표를 내어달라고 빌었더니 바다에서 흰 황소 한 마리가 나왔다. 원래 고대 그리스신화의 신은 뭘 주면 자신도 뭘 받아야 했다. 그런데 미노스 2세는 그 황소를 포세이돈에게 되돌려주지 않고 엉뚱한 동물을 바쳤다가 기이한 변고를 당했다. 『세계의 모든 신화』의 저자 케네스 데이비스의 표현처럼 이후의 이야기는 좀 변태적이다. 미노스 2세의 왕비인 파시파에가 그 황소와 사랑에 빠진 것. 그러나 황소와 직접 관계를 맺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기발한 아이디어가 필요했는데, 바로 이때 거만하면서도 솜씨 좋은 장인인 다이달로스가 등장해 그녀에게 암소 모양의 기구를 만들어줬다. 파시파에는 마치 트로이의 목마 속에 탄 용사처럼 황소에게 다가가 임신을 하는데 성공, 결국 우리에게 반인반우의 괴물로 유명한 미노타우로스를 낳는다. (그러나 신화의 다른 이야기에 따르면 그 모습이 파시파에의 남편 미노스 2세와 비슷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미노스 2세는 미노타우로스를 미궁에 가두고자 했고, 여기서 또 한 번 다이달로스가 등장한다. 이번에는 아들 이카로스와 함께 왔다. 둘은 미궁을 만든다. 여기에 갇혀 있는 미노타우로스에게 아테네 사람들은 일곱 명의 남자와 일곱 명의 여자를 제물로 바쳐야 했다. 미노스 왕의 아들을 죽인 응징의 대가였다. 이때 출동한 영웅이 테세우스이다. 그와 사랑에 빠진 여인이 아리아드네. 그리고 아리아드네에게 실타래의 묘수를 알려준 이는 다름 아닌 다이달로스. 이야기는 이렇게 꼬여버린다. 테세우스가 들어가서 미노타우로스를 죽였다. 그러나 그는 아테네 항구에 도착하기 전에 흰 깃발을 보여 자신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알려줘야 하는 걸 깜빡한 채, 검은 깃발을 그대로 달고 있었고 그걸 본 왕은 아들이 죽은 줄 알고 바다에 투신했다. 미노스 2세는 다이달로스가 아리아드네를 도와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게 한 장본인임을 알아차리고는 이카로스와 함께 미궁에 가둔다. 둘은 새의 깃털을 모아 밀랍으로 엮어 날개를 만든다. 이후 어떻게 됐는지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이 흥미로운 신화의 정점에 선 인물은 아무래도 테세우스일 것이다. 이 이야기는 아테네의 민주주의 시조로 흔히 상징되는 테세우스가 어떻게 왕이 되었고, 어떤 성장과정을 거쳤는지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 중 한 단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르헤스는 이 이야기의 정점에 미노타우로스를 세웠다. 그리고 미노타우로스의 입을 빌려 테세우스의 영웅담에 대한 모든 이야기는 거짓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보르헤스의 단편 「아스테리온의 집」이 위력을 갖는 결정적인 이유이다. 지금까지 (나에게는 매우 치명적인 매력을 줬던) 「엠마 순스」를 비롯한 보르헤스의 여러 단편들을 읽어 왔지만 그 중 몇 편의 실망스러운 단편을 제외하고서라도 「아스테리온의 집」은 단연 최고의 단편 중 하나였다. 발상의 전환도 독특했지만 내가 주목할 수밖에 없었던 이 소설의 특징은 아스테리온, 즉 미노타우로스가 말해주는 영웅담의 이면, 다른 시점의 힘이었다. ('Asterion'은 원래 크레타의 왕을 일컫는다. 하지만 현대의 그리스신화 연구에 결정적인 공헌을 세웠다고 평가받는 헝가리의 카로이 케레니(Károly Kerény)는 'Asterion'이 미노타우로스를 일컫기도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워낙 짧은 뿐더러 별 내용도 없기 때문에 오히려 보르헤스는 미노타우로스의 독백과도 같은 서술을 치밀하게 옮기는데 굉장한 노력을 쏟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미노타우로스가 반박하는 사실들은 「아스테리온의 집」이 순수한 픽션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우리가 신화의 사실을 완전히 오해하고 있었던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그가 반박하는 첫 번째 사실은 자신의 성격에 대한 것이다. 보통 '미노타우로스'하면 아무래도 머리가 황소이기 때문에 폭력적이고 잔인하고 우둔할 것으로 상상하기 쉽지만 소설 속의 미노타우로스는 자신이 "오만하고, 혹은 자폐적이고, 혹은 실성했다고 수군거리는" 사람들이 잘못됐다고 주장한다. 두 번째 반박은 상당한 충격을 준다. 그는 미궁에만 있지 않고 어느 날 오후 거리에 나갔다가 돌아오기도 했는데, 돌아온 이유는 "손바닥처럼 편편한 천민들의 얼굴들이 내게 가했던 공포"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괴물이 사람들에게 공포를 느꼈다는 식의 술회에서는 편견이 불러 일으키는 엄청난 무게의 고독이 느껴지는데, 그 깊이나 중량을 우리가 상상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괴물이?"라는 오해 섞인 충격을 느끼게 된다. 아마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대목에서 약간의 연민도 느끼게 될 것이다. 세 번째 반박은 신화의 사실에 대한 것으로 미노타우로스의 어머니는 여왕(파시파에)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노타우로스는 어떻게 태어나게 된 것일까? 이 질문은 보르헤스가 답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미노타우로스'라는 존재의 의미는 신화적 의미에서 한참 벗어날 수가 있다. 네 번째 반박은 다소 재밌기까지 한데, 제물이 되기 위해 신전을 찾은 일곱 남자와 일곱 여자들을 잡아 먹거나 죽인 것은 자신이 아니라, 그들이 알아서 공포에 질려 그 자리에 픽픽 쓰러졌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나는 그들이 누가 누구인지를 모른다."라고도 했다. 마지막 반박은 테세우스 본인의 입으로 서술된다. 성공적인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에게 이렇게 말했다. "정말 믿을 수가 있겠어, 아리아드네? 미노타우로스는 전혀 자신을 방어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어."


    미노타우로스는 영웅이 최종적으로 격파해야 할 '대적 상대'에서 평범한 존재로 강등되었다. 이로써 그에게서 공포를 느끼는 사람들은 확인되지 않은 대상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광기로 승화시킨 무지몽매한 무리로 전락했으며, 테세우스의 영웅담은 결과를 빼놓는다면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하게 됐다. 그렇다면 미노타우로스는 괴물이 아닌 어떤 존재였을까? 그는 그의 설명대로 '유일무이'한 존재였기 때문에 어떤 소통도 필요가 없었고, "철학자들처럼 나는 글이라는 장치를 통해 전달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유일무이함은 고독의 원천이 되었을 것이다. 왜 미노타우로스가 저녁 무렵 거리에 나왔을까? 왜 그는 글을 배우지 않은 것을 가끔 후회할까? 왜 그에게는 밤과 낮이 지나치게 길게 느껴지는 것일까? 혼자, 즉 유일무이한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그는 소일거리를 '발달'시켰다. 그러나 독자들은 미노타우로스가 자신의 소일거리를 설명하는 여러 줄을 읽으며 씁쓸함을 느끼게 된다. 대부분이 육체적인 놀이이다. 그것은 아마 별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말 그대로 소일거리이므로. 하지만 그가 또 한 명의 미노타우로스를 상상해서 그에게 자신의 미궁을 소개해주는 대목은 그가 분명 누군가와의 관계를 몹시 바라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사실 암시가 아니라, 대놓고 드러낸다고 거칠게 표현해도 무방하리라. 그가 얼마나 갇혀 있는 존재인지는 14를 '무한'이라고 이해한다는 부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일곱 남자와 일곱 여자는 그에게 '모든 수'가 되었다. 그것은 돌고 도는 숫자이다.


    하지만 그에게도 드디어 구원의 빛이 찾아온 것 같았다. 미노타우로스의 미궁에 들어선 한 '제물'이 그를 보자마자 픽 쓰러지는 순간 미노타우로스를 구원할 누군가가 올 것이라는 예언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미노타우로스에게 그렇게 들린 '예언'일 수도 있겠다. 당연히 그 예언은 어떤 영웅이 와서 그를 끝장낼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미노타우로스는 일생일대 최대의 실수이자 마지막 실수, 그리고 마지막 바람을 하게 됐다. '구원자를 반갑게 맞이하자.' 그렇게 해서 그는 테세우스를 보고 희망을 가졌고, 테세우스의 일격에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은 채 영웅담에서 희생된 괴물 중 하나로 기록되게 되었다. 테세우스를 맞이하기 전에 미노타우로스는 이렇게 자문했다. "그는 황소일까, 아니면 인간일까? 혹은 인간의 얼굴을 가진 황소일까? 아니면 나처럼 황소의 얼굴을 가진 인간일까?" 미궁에서 탈출하고 싶었던,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싶었던 괴물의 무기력한 죽음을 그리며 보르헤스가 우리에게 하고자 하는 말의 실체를 파악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씁쓸함의 정체, 「엠마 순스」에서보다도 더 강력하게 느껴진 쓴맛의 정체는 쉽게 알아낼 수가 없었다. 미노타우로스가 또 다른 미노타우로스를 상상하며 대화를 나누다가 껄껄 웃어보이는 장면과 그의 웃음소리를, 나는 머릿속에서 도무지 지울 수가 없다.


    내 마음 속의 무언가가 괴물의 모습을 하고 있고, 내가 그를 죽이러 미궁으로 들어가는 테세우스라면, 그리고 이미 「아스테리온의 집」을 읽은 상황이라면, 나는 과연 괴물을 죽일 수 있을까? 나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이러한 질문이 공포에 대한 무지한 광기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것은 분명히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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