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5일 토요일
Ⅰ
몇 달 전, 나는 글쓰기 내규를 만들었다. 그 내규란 다음과 같다.
첫째, 불특정한 집단에 여성과 남성이 섞여 있다고 가정해야 한다면 ‘그녀/그(들)’이라는 혼합 인칭을 사용해야 한다. 이를 ‘그/그녀(들)’이라고 표기해서는 안 된다.
둘째, 양성을 동시에 언급해야 하는 구절에서는 반드시 여성이 남성보다 앞자리에 위치해야 한다.
셋째, ‘여성예술가’, ‘여성작가’, ‘여배우’ 등의 단어는 지양하되, ‘남성예술가’, ‘남성작가’, ‘남배우’ 등의 단어를 하나의 글 안에 병기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사용할 수 있다.
위 내규는 모든 글쓰기에서 실천하도록 강제한다. 단, 부모(父母), 자녀(子女), 남녀(男女)와 같이 이미 굳어져서 순서를 바꾸면 어색한 단어들은 소통을 위해 표준어법을 그대로 지켜 사용한다. 글의 성격 상 순서의 해체를 강행해야 할 경우에는 대괄호 속에 단어를 집어넣어 그 인위성을 밝힌다.
글은 생각의 수를 놓는 것이다. 생각이 항상 글에 앞선다. 그래서 글쓰기에 실천적 내규를 두면 생각이 글로 나오지 않게 되며, 오랜 시간이 흐르면 그 내규가 생각에 스며들어 하나의 생각 습관이 된다. 그런 취지에서 실천하는 것이다.
나는 남자다. (이런 표현이 가당하다면) ‘남자처럼’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여성을 예술의 뮤즈로 보는 시각에 별다른 저항 없이 살아온 지도 이십여 년이 훌쩍 넘어버렸다. 동서고금과 현대의 사상을 배우려고만 했지, 그 안에 들어 있는 차별의 시각, 무시의 시각, 혹은 (그녀/그들조차 도무지 생각하지 못한 경우도 있으므로) 논외의 시각이 무엇인지 그 정체를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 게 있는지도 몰랐으니까.
그래도 대학을 다녔으니, 굳이 푸코를 통해서가 아니더라도 ‘담론의 함정’이란 건 들어봤다. 맞은편의 담론도 들어서 되도록 객관화시키는, 돌이켜보면 말도 안 되는 조정을 권유받았다. 솔직히 나는 그런 걸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존재는 하는 것인지 전혀 모르겠다. 여하튼 그런 ‘대학(大學)적 사고’에서도 여성과 남성의 추를 저울에 올리는 일은 거의 하지 않았다. 나는 전혀 훈련이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문학을 전공하고, 인문학으로 생각하고, 예술에서 눈을 얻었다. 나 같은 남자는 전적으로 아름다움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나의 20대였다. 그러나 어떤 계기였는지 도통 자세히 기억나진 않지만 (시대의 분위기였을 수도 있고, 동생의 권유였을 수도 있고, 아니면 진리를 갈구하는 여린 마음이 반드시 들러야 하는 관문 때문이었을 수도 있는데) 나는 추하고 일그러진 20세기 중반의 페미니즘 계열 작품들을 다시 찾아보게 됐다.
나의 옛 미술 블로그를 찾아주시던 분들과 함께 온라인 카페를 만들어 그곳에 ‘여성현대미술가’ 100인의 프로필과 작품을 짤막하게 연재하던 시절이 있었다. ‘카페지기’인 나의 입장에서는 그동안의 미술 공부처럼 솔직히 순전한 호기심에 한 일이었다. 그리고 호기심이라는 것이 대체로 그러했듯이, 금방 시들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야 그녀들의 파격이 궁금해진 것이다.
예전과는 달리 요 몇 년 사이 내가 조우하게 되는 것들, 즉 새로운 것들은 대체로 충격적인 외양이나 내용을 갖고 있다. 왜 사라 루카스는 오징어 다리처럼 생긴 여성의 하반신 봉제 인형을 의자에 걸쳐 놓은 것일까?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투명한 플라스틱 집게에 파묻혀 있는데, 왜 그런 가학을 감행한 것일까? 로나 심슨은 하얀 가운을 입은, 양손을 등 뒤로 돌린 여성 흑인의 뒷모습을 그려놓고 왜 <Guarded Condition>이라는 문구를 작품에 그려놓은 것일까? 신디 셔먼과 프리다 칼로는 또 어떠한가?
무언가를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이를 ‘추를 통한 직시’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녀들은 내게 무언가를 직시하도록 하고 있었다. 움베르토 에코가 『추의 역사』에서 한 모든 말에 동의할 수는 없겠지만, 마지막에 가서 그가 한 말, “우리에게 추를 인간적 비극으로 이해하도록 권유”(움베르토 에코, 오숙은 옮김, 『추의 역사』, 436~437쪽)하는 작품들이 있다는 주장에는 이견을 달 수 없다. 그녀들은 어떤 “인간적 비극”을 보여주려고 했던 것일까?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거나, 예술이 그토록 사모하던 아름다운 여성이 아닌 뭉개지고 일그러진 얼굴, 혹은 신체를 드러내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작업. 그녀들에게서 대체 어떤 비극을 볼 수 있는 것일까?
우리는 그것이 바로 <성차별에 대한 저항>임을 어렵지 않게 안다. 알 수 있다. 저항이다. 나는 이따금 대중들이 현대미술이 어렵다며 투정을 부리는 모습을 오프/온라인 여기저기서 본다. 쉬운 걸 추구하기로 굳게 마음먹은 그녀/그들에게는 들리지 않을 외침이지만, 어렵거나 불편하지 않으면 현대예술은 고전예술에서 떨어져 나온 20세기 ‘조상’들의 기치에서 한참을 벗어나게 된다! 요컨대 그건 ‘저항하는 예술’이다. 우리에게 충격을 주며, 그 충격이 세상을 직시하도록 한다. 우리가 1차적으로 반응할 뿐이다. 즉, 문제는 많은 이들이 (겉으로는 발을 빼거나 싫어하는 척하면서) 충격을 두려워한다는 것에 있다. 사실 ‘낯섦’ 자체를 길들일 수는 없다. 본성이다. 하지만 다행이도 우리의 곁에는 그 ‘낯섦’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조언해주는 현명한 사람들이 있다.
Ⅱ
점점 글의 온도를 높이겠다. 이런 말을 하지 않으면 화들짝 놀라 금세 도망가는 이들도 있으니. 사실 이 글을 쓰게 된 것도 아래의 이유 때문이다. 전말을 밝혀본다.
아침에 일어나 온라인으로 신문 기사 하나를 읽었다. 옐로우 페이퍼들을 걸러내느라 쉽게 지치곤 하는 내 눈에 ‘페미니스트’라는 단어가 들어왔다.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예비한 기사. 분당 조회 수를 쏠쏠히 올릴 수 있는 내용들로 가득했다. 단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새롭거나 신선한 내용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페미니스트다’ 선언운동, 여성 혐오 발언과 사과, 근래 화두에 오른 페미니즘 관련 도서들, ‘스타파워’로 페미니즘의 선봉에 선 할리우드 배우들…… 그래도 기사를 자세히 보면, 우리 사회에 저항의 움직임이 지속되길 앙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안 좋은 세태들은 대부분 우리의 것이고 (단 하나 예외로 『페미니즘의 도전』의 저자이자 한국 페미니즘 운동의 상징인 정희진이 언급되었을 뿐) 잘 팔리는 페미니즘 도서의 8할은 외국도서의 번역본들인 까닭이다. 여성단체 회원과 후원금, 고민상담의 증가 정도만이 최근 분위기에서 이어지는 순방향 피드백이다.
기사의 댓글을 읽었다. 나는 온라인의 정서가 오프라인의 정서와 크게 다를 거라고 생각하지 않으므로. (다르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기만은, 자신은 온라인에 뛰어들어도 ‘저들’과 전혀 다른 오프라인적 인간이라는 믿음을 고수하는 것이다.) 오프라인은 그저 숨기고 사는, 가면의 무대일 뿐이다. 우리는 누구든 폭탄이 될 수 있다. 제발 아렌트를 기억하자. ‘촉발(觸發)’의 계기와 순간이 현실의 우리에게 드물 뿐이다. 자만하지 말자. 현인의 말을 듣자.
여하튼 댓글들을 읽어보니 가관이었다. 우리 사회는 지나치게 이분법을 존숭한다. 여기서 ‘이분법’이라 함은 ‘몇 등분하는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그저 나누고 마는 그런 행동을 일컫는다. 이에 대한 존숭은 가상의 맞은편을 무시한다. 가장 나쁜 경우 상대방이나 집단을 인간 이하로 보도록 우리의 눈을 변질시킨다. 동패, 편, 혹은 끼리를 나누는 못된 병폐 역시 여전히 실하고 튼튼하다. 정치의 선동이 널리 효과를 본다. 우리는 정치 후진국이나 사상 후진국의 멍에를 쓰고 있다. 그런 문화는 세상을, 삶을,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람을 참 쉽게 가르고 본다. 쉽게 가른 뒤, 감정으로 본다. 판단은 뒷전이다.
그자들도 가명의 힘을 빌렸을 테니, 그 가명과 함께 댓글들을 통째로 옮겨본다. 모두 상당수의 ‘좋아요’를 얻은 것들이다.
rnrj**** : 권리와 의무도 평등으로...여군 징병제 찬성합니다
shak**** : 여자가 집해와라 여자가 돈벌어와라. 남자인 내가 혼수해오고 요리 설거지 빨래 청소 육아까지 독박으로 다 해주고 조신하게 가정살림 맡을께.
line**** : 네 여자들이 집사고 남잔들이 혼수하는세상이 오길바랄께요
siyo**** : 주로 여자가 바깥일하고 남자는 집안일하는 사회였으면 좋겠다. 여자는 사회에서 자기 능력에따라 평가받고 남자들은 능력있는 여자에게 선택받기위해 여자들에게 얼마나 매력있는가로 가치를 평가받는 사회. 여기서 여자들이 요즘 남자들 너무 편하게 산다며 역차별이라고 빼액대기만 하면 딱 지금 사회의 성별 반전판인데 ㅋㅋ
띄어쓰기나 맞춤법 모르는 건 둘째 치자. 폰으로 황급히 댓글을 달기도 할 테니. 그런 건 너그럽게 봐주자. 그런데 저 즉각적이면서도 질 낮은 감정의 대응은 앞서 말한 것처럼 ‘좋아요’ 부문의 상위에 올라 있다. 여성 차별의 사고에 젖어 있는 남성들이 유독 이 기사에 기다렸다는 듯, 먹잇감이 찾아오기라도 한 것처럼 적극적으로 달려들었다는 뜻이다. 우리 사회에 한해 특히 이 차별은 현실적인 의무(국가가 준 의무)에서 무한의 양분을 얻는다. 기나긴 역사를 거치며 남성 권력이 설정한 전쟁과 대립의 역사에 오늘날의 여성들이 동참해야 한다는 논리다.
저들은 역사 공부를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한 것일까? 같은 ‘수컷’으로서, 나는 창피보다는 수치를, 그리고 치욕을 느낀다. 그들은 스베틀라나의 글을 읽으면 뭐라 생각할까? 노벨문학상이 그녀의 이름을 영예로이 해준 까닭을, 그들은 알기는 할까?
“우리는 전쟁에 대한 모든 것을 ‘남자의 목소리’를 통해 알았다. 우리는 모두 ‘남자’가 이해하는 전쟁, ‘남자’가 느끼는 전쟁에 사로잡혀 있다. ‘남자’들의 언어로 쓰인 전쟁. 여자들은 침묵한다. 나를 제외한 그 누구도 할머니의 이야기를 묻지 않았다. 나의 엄마 이야기도. 심지어 전쟁터에 나갔던 여자들조차 알려들지 않았다. 우연히 전쟁 이야기가 시작되더라도, 그건 ‘남자’들의 전쟁 이야기이지, ‘여자’들의 전쟁은 아니다.”(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박은정 옮김,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17쪽)
군복무를 흡족할 만한 추억으로, 전쟁을 영화와 게임 속에서 웅장한 영상과 음향으로 기억하는,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부장의 권리와 피해를 앞뒤로 훈장처럼 달고 사는 이 시대의 수많은 ‘수컷’들에게 위 댓글과 같은 차별적 발언의 함정에 빠질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아니라고? 솔직해지자. 나 역시 한때 여성들 역시 군복무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군대 가기 전까지는. 저 바다 건너의 이스라엘을 예로 들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여성의 목소리’를 동아줄 삼아 저 더러운 함정에서 빠져나오는 구원을 누릴 수 있었다. 정신의 목숨을 살려줬으니, 평생 고개 숙여 감사해야 할 일이다.
말 나온 김에 함정 하나를 더 살펴보자. 가끔 TV 채널을 돌리다보면, 30~50대를 겨냥해서 남녀차별의 상황을 거의 여과 없이 내보내는 원색적인 프로그램들을 만난다. 저급한 ‘떼 토크’의 포맷을 빌린 이 프로그램에서 방청객들은 시나리오대로 공감의 감탄사나 웃음을 연발한다. 아카데미에서 방송을 배우고 나니 그 모습이 더욱 가증스럽다. 숫자에 연연하며, 바쁘게 돌아가는 현장의 숨 막힘 속에서 ‘대중 공감’이라는 권위에 천착하는 분야. 아무 의미 없어도 재밌으면 된다. 그걸 저들이 쓰는 방송용어로, 즉 일본어로 뭐라고 하는데, 나는 그런 말을 쓰지 않기로 했으니 굳이 밝혀놓진 않겠다.
저들이 하는 대화를 자세히 들어보면, 여성과 남성의 편에서 오고 가는 공방이, 그리고 그 구도가 온라인의 것과 꼭 닮았다. 시청률을 올리려면 어쩔 수 없다는, TV 관계자들이 하는 그런 핑계는 수십 년 간 이어져 오고 있으니 이제 지겨울 법도 하다. 그건 양호한 편이라고 해보자. 하지만 저 토크의 디지털 공간에서는 우리의 사상적 질, 인간 권리, 이런 것들의 상향을 도모할 만한 대화나 논의, 심지어는 반론조차 도무지 찾아볼 수 없다.
나도 안다. 그냥 보고 듣고 공감하고 웃으면 끝인 프로그램임을. 더 이상의 기능을 기대할 수 없음을. 그러나 어쩌랴. 그런 영상과 음향과 공감 속에 사는 사람들에게 그 프로그램은 ‘고착화’의 수단이다. 또한 그 영향이란 차별을 극복하려는 이론과 실천보다 훨씬 자극적이고 재밌어서 다수의 대중에게 잘 먹힌다. (Oren님께서 나의 한 졸문에 달아주신) 쇼펜하우어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것은 ‘공범들의 요란한 소동’이다.
“대중은 한편으로는 언제나 새로운 것을 붙잡으려 하고, 또 한편으로는 자기들과 동질인 불합리한 것과 범속한 것에 기울어지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다.” 쇼펜하우어의 말이다. 대중은 생산보다는 향유하려는 수준에 머문다. 단순한 재단(裁斷)과 적대화의 술수는 비단 정치의 것만은 아니다. 우리 곁에는 두뇌가 잘 돌아가는 이들이 많으며, 우리의 즉각적인 감정과 반응은 그녀/그들의 돈줄이 된다. 이걸 모르고 지갑을 여는 어른은 없겠지.
Ⅲ
내가 ‘들어보자’고 한 현인의 말이란 참으로 많아서, 어디서나 맞을 수 있는 비, 혹은 맛 좋은 열매들을 지천으로 맺는 과수의 동산을 떠올릴 수 있을 지경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차별의 척박한 땅에서 살아간다. 우리의 모습은 실로 그러한데, 열매를 먹지도 않고도 이렇게나 많은 배변을 하는 걸 보면 참 신기하다. 나는 궁금하다. 왜 질 좋은 양분을 갈구하며 사는 이들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가? 그 중에서 또 실천하는 이들의 수는 왜 그만큼이나 적을 수밖에 없는가? 왜 개인은 대중으로 살길 포기하지 않는 것인가?
나의 질문은 ‘실생활’이라는 단어의 실체가 갖는 무시무시한 위력에 대한 넋두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나도 그 함정에 빠져 사니까. 살고 있으니 벗어날 수가 없다! 다만 함정에서 산다는 것 정도는 알고 싶었다. 여태 현인의 말을 좇은 건, 순전히 그 때문이다. 아래에서 그 말들을 만나기 전에 잠깐 어딜 들렀다 가야 할 것 같다. 인위적 장치, joker, 그리고 역사의 도박장을. 일부는 내가 급구한 말이고, 또 일부는 어떤 철학자의 말이다. 그냥 쉽게 말하자면, 과학과 제도를 이야기해보자는 것이다.
차별은 차등에서 왔다. 결과를 놓고 보면 그렇게 된다. 인간은 차등적 존재다. (어폐가 있긴 하다. 자연에는 ‘등급’이라는 단어가 없다. 자연이 아는 단어가 하나 있다면 그건 ‘적응’ 밖에 없을 것이다.) 평등은 자연에 없는 단어다. 얼마 전 읽은 『생명에도 계급이 있는가』에서 우생학을 들여다봤다. 그 이론이 차별 의식으로 옮아가는 정치의 역사는 마땅히 비판하고 싶지만, 우생학의 근거는 부정할 수가 없다. 육체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모든 인간에게 부여된 선천의 한계다. 노력을 강조하는 감동적인 설교들이 있지만 그건 ‘마음의 벽’을 허물라는 가르침이다. 과학적이진 않다. 인간은 차등의 성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철저한 생물적 존재. 다시 말하지만 (홉스의 ‘자연 상태’에 대해서는 분명 할 말이 많겠으나, 굳이 개념만 살짝 빌려 쓰자면) ’자연 상태의 인간’은 차등적이다.
하지만 한 인간에게 있어 어떤 불가능함은 타인의 도움을 받아 가능함으로 바뀌기도 한다. 우리는 다 그렇게 산다. 봉사, 거래, 선물 등 인간이 구상한 제도의 구원성 덕분에 대부분의 것들이 일상에서는 가능하다. 그런데 아주 오래 전부터 우리의 선조들이 이기심을 발휘하여 ‘도움을 주는 주체’의 권위를 주장했기 때문에, 자연의 차등이 인간의 사회에서는 ‘계급’이라는 값으로 변했다. 그 계급 우월의 거의 모든 수혜자가 바로 남성이었다. 하지만 그건 집단을 이끄는 폭력적 카리스마와 전쟁이 반복되는 인간사의 인위적 결과였다.
반면 폭력적이지 않은 카리스마가 민중에게 깨달음을 설파하고 다닐 때마다 찾아온 시련과 죽음에 대해 한 번 생각해보라. 또한 그 깨달음이 폭력적 카리스마와 결부되어 지금의 종교 행태를 이루고 있음을 생각해봐야 한다. 남성이 ‘여성적’이라고 부른 거의 모든 것은 울타리 안에 갇혀 있었고, 여성의 역할과 생각, 그리고 기능은 그 제한된 환경 속에서 한 발자국도 쉽게 밖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뒤에 인용할 메리 울스턴크레프트도 그렇게 봤다. 일보 전진을 달성한 여성, 혹은 ‘여성적 개체’는 집단의 승인을 받지 못하고 단칼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왜냐하면 ‘그녀’들은 다수에게 대단히 낯선 존재였기 때문이다.
차등이 존재한다. 그것이 자연이다. 하지만 인간 제도 안에서 차등이 차별로 변질된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니라 인위적인 결과였다. 위대한 철학자 중에도 그 인위성을 무시한 이들은 수없이 많다. 문학적으로 비유해보자면, 그 인위성이란 것은 한 번 달콤한 맛을 본 자들이 대대손손 성찬을 영위하고자 만든 하나의 식탁인 것이다. 고착화된 의례. 수 천 년 간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그런 현상들이 있었고, 때때로 그런 현상들은 인류 보편의 것으로 취급되었으므로 차별은 공인되었다. 사사키 아타루 식대로 표현하자면, 그건 분명 ‘역사의 도박장’에서 써온 카드였다. 그 카드는 여전히 유효하다. 생각해보건대, 카드의 대부분은 대체로 joker 정도의 위력을 지녔던 것 같다.
차별을 극복하려는 후손인 우리에게 있어 조상의 대부분은 차별의 공범이다. 도박의 무대에서 joker를 쥐어봤거나, joker를 가진 자들을 동경한 이들이다. 가정에서든, 그보다 더 넓은 공간에서든. 아니면 여성이든 남성이든. 상당수가 타성의 사생아들이었다. 하지만 도무지 그녀/그들을 체포할 수가 없다. 이미 세상에 없으니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는, 허무맹랑한 농담 따윈 하지 않겠다.
그보다는 한 발 더 나아간다. 우리의 정신이 과연 공범의 심리에서 감정의 굴레를 벗어버릴 수 있겠냐는 질문 앞에 우리를 나체로 세워두자. 다시 말해, 훨씬 더 인위적인 장치를 개발하고 그 장치의 시퀀스 안에 우리를 “위치시킬 수 있는가”를 물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 도발적 테제에 감응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었는가? 또 우리 중에는?
우리 이전에 살았던 소수의 선각자들은 계급 차별의 억압에서 대중들을 해방시켰다. 가진 자와 있는 자들은 흠칫 했겠지만, 결국 별로 상관하진 않았다. 역사의 게임에서 활용할 만한 카드가 그녀/그들이 지닌 권력과 재산의 수만큼이나 무궁무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의 사회에서 누가 주인이냐는 의식의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불특정 다수의 대중이 일정의 승리를 거뒀다. 속된 말로 ‘꿀릴’ 경우에는 민주의 감정에 호소하여 굉장한 수의 대중을 소집해 분명한 행동을 취할 수 있게 됐다. 즉, 제도가 보장하거나 대중이 만들어낼 수 있는 안전장치들이 예전보다 훨씬 많아졌다는 뜻이다. (규모의 문제를 생각해보자면 사실상 민주에는 완성이 없으므로) 불완전한 모양새이긴 하나, 우리나라의 선배들이 바로 그 증인들이다.
하지만 이런 안전장치로도 도무지 극복하지 못한 억압들이 있었고, 차별 철폐의 목소리가 나온 지 어언 3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역사의 도박장에서는 joker 카드를 내밀며 절대적 위협을 가하는 이들을, 즉 ‘갑질’하는 이들을 찾아볼 수 있다. 우리가 혐오하고 증오해야 하는 이들은 외양이 그렇게 생긴 이들이 아니라, 바로 저자들이다.
내가 여기서 ‘300여 년’이라고 한 건 아무래도 18세기의 선구적인 작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여성 권리의 옹호(원제 : A Vindication of the Rights of Woman)』를 고려했기 때문이며, 그보다 훨씬 앞선 주장과 실천들이 있었음을 그 표현에 덧대어 굳이 밝혀두어야겠다. 하지만 우리가 읽어야 하는 시대의 문제작들이 대체로 유럽 계몽주의의 발아와 함께 등장했다는 역사의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그와 더불어 유럽을 휩쓴 자유와 평등의 이념 속에 여성이 쉽게 동참할 수 없었다는 사실 역시 곱씹어야 한다. 여성은 거의 철저한 의미로서의 타자, 즉 l'autre personne였던 것이다.
메리의 글을 읽어보면 오늘날의 그리스도교는 가톨릭이든 프로테스탄트든 어떤 해당 종파든 상관없이 여성의 ‘창조설’에 대한 확답을 내려야 한다. (정말 그럴 수 있을까?) 거리를 지나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보자. “여자가 남자의 갈비뼈에서 나왔다는 이야기를 믿으세요?” 나를 이상하게 보리라. 道를 설파하려고 다니는 사람인가? 기가 세다며 어디 가서 좀 풀지 않겠냐고 손을 잡아끌 사람처럼 쳐다보리라. 그런 반응이 반갑다. 사람들은 좀처럼 저런 창조 설화를 믿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리스도교의 영향력은 굉장하며, 놀랍게도 그 신자들 중 대부분은 여전히 여성 사제와 여성 교황을 배출하지 못하는 그 보수성에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는다. 별로 문제될 것이 없다는 태도다. 하지만 메리의 시대에 그 문제는 더 절박했다.
그녀는 거대한 싸움을 했다. 아니, 그건 싸움이라기보다는 정말이지 도박에 가까웠다. 훗날 니체가 사상과 종교를 무너뜨렸을 때보다도 더 고독했다. 니체는 어쨌든 남자였으니까. 굉장히 많이 아는 남자. 나는 그를 존경하기에, 젊었을 때의 그가 프란치스카(어머니)와 엘리자베트(여동생)를 ‘천민’이라고 부르며 신랄하게 비하했었다는 일화를 굳이 언급하고 싶진 않다. 마음으로는. 그러나 어쩌랴. 그것이 사실인데. 하지만 우리는 다시 돌아가 메리의 말을 들어보자. 왜 그녀는 고독할 수밖에 없었을까?
“여성이 단순히 남성을 기쁘게 하고 남성에게 복종하기 위해 창조되었다고 가정할 경우, 결론은 오로지, 그녀가 자신을 남성에게 적합하게 만들고자 다른 모든 고려 사항을 희생해야 한다는 것뿐이다. (중략) 전체적으로 볼 때, 인생의 목적이 이처럼 저열한 토대에 근거한 현실의 원칙들에 의해서 전도되었다는 것을 내 생각처럼 증명할 수 있다면, 여성이 남성을 위해서 창조되었다는 것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메리 울스턴크래프트, 문수현 옮김, 『여성 권리의 옹호』, 74쪽)
메리는 이 발언에 이어 당시 여성을 억누르고 있는 거대한 담론에 대한 저항심과 공포를 동시에 드러낸다. “종교적이지 못하다거나, 혹은 심지어 무신론적이라는 비난”(메리의 책, 같은 쪽)이 뒤따를 걸 아주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참고로 메리가 요목조목 거세게 비판하고 있는 대상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권장도서의 철학자로 흔히 언급되는 장 자크 루소다. (페미니즘을 두고 너무 요목조목 꼬치꼬치 캐묻는다고 불평하는 이들이 간혹 있다. 타성을 비판하려면 요목조목 꼬치꼬치 캐물어야 한다는 걸 모르는, 유치한 수준의 불평일 뿐이다. 그런 불평은 생각에 가해지는 것이 아니라, 대체로 이미지에 가해지는 것이기에 맹목적이다. 편승하기에도 쉽다. 이런 것들에 속지 말자.)
그러나 만약 메리가 쇼펜하우어와 동시대를 살았거나 그보다 후대의 사람이었다면, 나는 저 비난의 화살이 당연 이 위대한 철학자에게 돌아갔으리라 감히 생각해본다. 권기철 교수가 옮긴 쇼펜하우어의 『세상을 보는 방법』은 니체에게 향할 나의 정신을 예비할 요량으로 매일 펼쳐보며 곱씹는 책. 아무래도 나는 이 철학자를 “위대하다.”는 말 이외로는 표현할 길이 없음을 잘 안다. 하지만 메리의 눈으로 쇼펜하우어의 글을 읽으면 격렬한 불꽃이 일며 날카로운 폭발음을 내는 한 지점이 있다. 예컨대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여성이 선천적으로 남성에게 복종하도록 되어 있다는 것은 비록 어떤 여성이 부자연스러운 위치에서 독립해 있어도(참조 : 이건 귀부인을 두고 하는 말이다. 쇼펜하우어는 '귀부인'이라는 위치는 쓸모 없는 것으로 봤다.) 한 남성에게 의지하여 지도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을 보더라도 분명히 알 수 있다. 요컨대 여성에게는 주인이 필요하다. 젊어서 그 주인은 남성 애인이 되고, 늙으면 그 주인은 고해 신부가 된다.”(아르투르 쇼펜하우어, 권기철 옮김, 『세상을 보는 방법』, 164쪽)
이건 쇼펜하우어가 어리석어서 (아니, 적어도 메리가 생각한 면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분명 어리석다고 할 수 있다. 쇼펜하우어는 메리보다 후대 사람이다.) 한 말이 아니라, 남성 담론이 지배적이었던 계몽주의의 우산 아래에서 그가 태어나 교육을 받고 사고를 펼쳤기 때문에 한 말이다. 위대한 철학자도 담론 앞에서는 타성적일 수밖에 없는, 그리하여 밝혀지는 담론의 절대성. ‘이들은 알지 않았을까?’ 이런 의문을 가져보지만 워낙 글을 잘 쓰고 거대한 논리와 생각의 틀을 지닌 철학자들이라, 그들이 그걸 숨겼다 할지라도 우리로서는 도무지 알아낼 방법이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런 위대함조차도 그들이 차별의 함정에서 빠져나올 때 쓸 만한 동아줄이 되어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에 이르면 18세기에 저런 말을 할 수 있었던 메리의 정신은 “굉장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할 어떤 존경의 대상이 된다. 그걸 ‘대상화’하고 마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어떤 행동으로 옮겨가야 한다. 이것이 우리에게 대단히 버거운 과제가 되고 말이지만, 적어도 메리는 우리가 함정에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시대를 일갈한다.
나는 메리가 이 시대로 살아 돌아온다면 차별을 극복하려는 이들에게 얼마나 많은 열변과 응원을 토하고 다닐지, 그런 상상을 해본다. 그녀의 시대보다 나아진 것들은 얼마든지 있다. 겉으로 보면 제도로 다듬어진 면도 많고, 가정에서 실제로 차별을 없애려고 노력하거나 이성(異性)을 항상 존중하려는 정직하고도 의로운 이들이 있다.
하지만 만연해 있는 의식의 수준은 여전히 적대적이다. 차별을 가운데 두고 공방을 벌이는 이들 사이도 적대적이며, 자기 자신을 ‘갑’의 지위에 올려놓는 (굳이 표현하자면) pseudo-갑들이 ‘갑’의 담론에 의지해 살아간다. 다 자기가 옳다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건 자신에게 익숙한 것을 지지한다는 뜻에 지나지 않는 수준이지만. 타성에 젖은 우리에게 훨씬 인위적일 수밖에 없는 ‘평등’이라는 장치가 차별보다 훨씬 더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 분명한데도, 낯섦을 멀리하려는 우리는 익숙한 차별 속에서 그냥 살아간다. 불특정한 대중으로 남는다. 목소리는 있는데, 듣는 이들은 별로 없다.
목소리 이야기가 나왔으니, 솔직히 묻고 싶다. ‘#나는 페미니스트이다.’ 선언운동이, 그것이 과연 그녀/그들에게 강력한 테제로 언제까지 남을 수 있는가? 아니, 이건 무시의 발언이 아니다. 그런 운동을 SNS 선에서라도 실천한 이들은 그나마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훨씬 자각이 있는 이들일 것이다. 언제까지나 응원할 일이다. 또한 나는 ‘저것도 하나의 대중 행동에서 그칠 것이다’라는 의구심을 정말이지 물리고 싶다.
하지만 불안하다. ‘페미니즘’, ‘페미니스트’ 등의 단어가 이미 혐오의 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이 괴상한 우리 사회에서, 저 선언은 그저 하나의 저항, 반대에 대한 타격, 혹은 저항의 공감 정도에 그쳐버리는 건 아닐까? 선언의 문제는 그 이후에 있다. 지그문트 바우만이 즐겨 쓰는 회한의 표현처럼, 그것은 다리 아래로 또 하루의 강물이 흘러가버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 건 아닐까? 그러기엔 온갖 오욕과 비난을 감수하며 시대의 가치를 설파하고, 그리하여 물에 곱디고운 종이배 하나를 띄워놓은 이들의 노력과 역사가 너무나도 아깝고 또 아까운 것이다.
오전에 읽은 기사의 댓글에서, 나는 그 종이배를 쉽게 찢어버리는 이들의 폭력적인 손길을 느꼈다. 인간 가치와 정신에 대한 반달리즘이라고 할까? 아니, 반달리즘이라고 하자. 그렇게밖에 부를 수가 없다.
Ⅳ
“한국 사회를 성(젠더)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실천하는 것은, 단지 ‘여성 문제’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구체적 일상, 개인들 사이의 관계의 민주화 없이, ‘정치’ 개혁이나 역사의 진보가 가능하겠는가? 일상의 정치학의 핵심은 성별 관계, 즉 젠더이다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분리에 저항하는 여성주의는 개인의 성장과 사회의 민주주의를 대립시키지 않은 사유 방식이다. 나의 변태는 곧 사회의 변화이다. 사회와 나는 연속선상의 한 몸인데, 어느 지점에서 그 몸을 자를 수 있단 말인가?”(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 290~291쪽)
나는 저 분홍색 겉표지의 책을 덮으면서, 나의 이런 졸문도 미미하나 하나의 실천이 될 수 있겠다는 위안을 얻었다. 그녀의 말마따나 푸코는 자신이 또 다른 지점으로 나아간다고 믿었기에, 흔히 철학에서 말하곤 하는 ‘전회(轉回)’한다고 믿었기에 그토록 많은 글들을 남겼다. 사사키의 책에서 그 이로를 따라가면서 나 역시 푸코가 겪은 여러 차례의 전회들을 직접 추적할 수 있었다. 실천은 전회를 낳는다. 이것이 진리다. 정희진은 그런 실천이 자신에게는 가당치 않음을 겸손하게 밝혔지만, 나는 그녀가 그 누구보다도 글로써 여성주의를 수호하고 실천하는, 이 사회와 사투를 벌이는 인물임을 안다.
그리고 나는 기대한다. 역사도 전회하지 않을까? 남성이 자의적으로 세워놓은 가치가 무너지지 않을까? 그런 날에는 joker 카드는 쓸모가 없어질 테니, 결국 역사의 도박장은 사라지고 우리에게는 어떤 일원(一元)의 공간이 펼쳐질 것이다. 너무 허무맹랑한가? 지나친 판티지인가? 지금의 상황에서는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공간이다. 그건 인정하다. 그러나 메리에게도 그런 ‘상상불가’의 공간이 있었고, 그녀는 엄연히 그 공간을 갈구하며 외쳤다. 그 후 오랜 시간이 지났다. 달성된 것들이 있다. 역사를 바로 보면 그것이 불가능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시간이 필요한 일이 있다. 완성되지 않을 일도 있다. 인간의 선천적 불가능이 존재하듯, 우리는 인위의 장을 만들어 봉사와 거래와 선물과, 그런 제도들을 통해 가능의 장을 마련할 수 있다. 그전까지는 메리가 말한 정의로움을 좇을 수밖에 없다. 대단한 수준의 일갈이자 비꼼이다.
“지성을 갖춘 남성들이여, 정의로우라! 그리고 당신들이 먹이는 말이나 당나귀들의 잔꾀와 여성들의 실수를 엄격하게 구분하지 말라. 그리고 당신들이 이성의 권리를 부정한 여성에게 무지의 특권을 허용하라. 그렇지 않으면 당신들은 자연이 지성을 부여하지 않은 곳에서 미덕을 기대했던 이집트의 십장들보다 더 나쁜 사람일 것이다!”(메리의 책, 195쪽)
나는 남자다. ‘#나는 페미니스트이다.’라는 SNS적 선언에는 나 자신이 너무 창피하여 차마 동참하진 못하지만, 현명한 여성들이 차별의 타성에 젖어 무지에 빠진 남성(과 여성들)을 깨우치려고 쓴 글과 그 역사를 들여다본다. 머리로는 이론을 읽고 배우며, 가슴으로는 모든 타인에 대한 존중에 정성을 들인다. 그리고 이 사회의 정의를 기대한다. 아직 멀다. 더 가야 한다. 대부분의 것들이 기대치에 한참 못 미치는 채로 그냥 향유된다.
우리의 몫으로 남겨진 것들에 대해서는 그 의무를 다해야 한다. 메리를 둘러싼 채 그녀를 방관했던 무수한 이들을 우리는 쉽게 비판할 수 있겠지만, 우리의 후손이 우리에게 그런 잣대를 들이대지 말라는 법은 없다. 되도록 그런 역사의 반복을 피할 수 있길 바랄 뿐이다. 나는 페미니스트일까? 아닐 것이다. 하지만 존중의 가치를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에게 그 운동은 무수한 잔향을 남긴다. 메아리가 오래도록 퍼졌으면 한다. 적어도 자신을 ‘독자’라고 부르는 모든 그녀/그들이 하나의 의무와 그리하여 찾아오는 더 넓고 자유로워지는 권리를 생각하게 할 수 있도록.
p.s 여기까지 먼 이로를 따라오신 분들을 위해 이 졸문에 나온 책들과 더불어 열두 권의 양서들을 링크로 달아둔다. 이 외에도 많은 책들을 찾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온도가 높은 글들에 호응할 수 있는가의 여부는 순전히 독자의 역량에 달려 있다. 여기까지 오신 분들은 그 점에서 모두 훌륭하다. 따라서 여타의 추천은 별도로 해드리지 않는다. 나보다 더 많은 양서들을 읽으신 분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