뭄바이에서 테러가 터졌다. 수 많은 사상자를 낸 테러의 다음 목적지로 델리가 지목되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델리 입국 칠일 전이었다. 당시 첫 배낭 여행에 대한 기대반 두려움반으로 '인도방랑기' 라는 다음 카페에 가입해 여행 정보를 얻고 있었다. 인도는 남미와 더불어 배낭 여행 최악의 난이도로 쌍벽을 이루고 있었는데 대부분의 여행자가 여성인 인도 여행의 특성상 청일점이었던 난 일정과 루트가 비슷한 많은 이들에게 동행을 요청 받아 놓은 상태였다. 그들 모두가 여행을 취소했다. 미안함을 표시하는 그들의 쪽지가 왠지 명복을 빌어주는 쪽지 같았다. 하루 정도 고민했다. 배낭 여행을 위해 회사를 퇴사하고 잡은 일정이었다. 테러에 대한 두려움보다 그냥 내가 부정당해 버린다는 기분에 화가 났다. 그냥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왠지 어줍잖은 비장함도 가슴 한 켠에 자리한 듯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했다.
여행 전날 카페 글을 확인하다 도움 요청글 하나를 보았다. 델리에 있는 '서울 식당'에서 급하게 핸드캐리를 요청한 사항이었다. 댓가는 하루 숙박과 아침밥 제공이었다. 출국하는 날 공항에서 식당 여주인을 만나니 고추장 등속이 담긴 라면 박스 하나를 넘겨줬다. 뒤돌아서던 그녀는 내 짐을 힐끗 보더니 배낭은 들고 타고 고추장 박스 하나를 더 전달해 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했다. 번잡함을 싫어하던 내 성격이 배낭에도 고스란히 반영된 것인데 보부상 개나리 봇짐 정도의 짐을 메고 있었다. 더구나 배낭 유명 브랜드인 columbia는 침낭이 배낭 위에 묶이는 구조인데 반하여 국산 travel mate는 침낭이 배낭 아래에 메여지는 구조였다. 그리하여 이 개나리 봇짐처럼 아래로 푹 꺼진 배낭에 고추장 박스 두 개를 들고 인생 첫 배낭 여행을 떠나게 된 것이다. 이 복장은 델리 공항에서 검문을 자주 당하는 원인이 되었다. 아마 전도연 주연의 <집으로 가는 길>이 먼저 상영되었다면 이 제안을 분명 거절했을 것이다.

<국산 travel mate는 침낭이 배낭 아래에 메여지는 구조이다. 저 보부상 스타일에 양 손에 고추장이 든 라면 상자를 들고 테러가 예고된 델리에 도착했다>
홍콩을 경유한 비행기가 델리 공항에 도착한 것은 자정이 지나서였다. 내세관이 남다른 인도인들은 테러 위협에도 아랑곳없이 북적북적 하였다. 여행자는 남녀 두 쌍이 팀을 이룬 서양인 한 팀만 보였다. 여행 베테랑으로 보이는 그들을 따라가면 공항을 빠져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에 그들 뒤를 따랐는데 입국 심사에서 발이 묶이고 말았다. 주소지 불명. 그러니까 델리에서 머물 숙박 업소도 없이 들어온 것이다. 출장만 다니고 여행이 처음이니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이었다. 어디로 가느냐는 그들의 물음에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주소는 '서울 레스토랑'이었다. 심지어 여행자 거리 '빠하르간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엉성한 영어의 추궁과 답변이 지리하게 이어졌다. 나의 막무가내와 부탁에도 불구하고 폭탄 테러 위협으로 강화된 심사에 그들도 만만히 물러나지 않았다. 그렇게 뜻하지 않게 '서울 레스토랑'이 공항에 무료 광고를 때리고 있을 즈음 나타난 상사인 듯한 관리가 나타났다. 그가 귀찮은 듯 간단한 질문만으로 이 상황을 끝내준 것은 자정 두 시가 훌쩍 지난 시간이었다.
심사대를 지나니 테러 지목에 난리난 공항의 상황이 더 절실하게 다가왔다. 꽁무니를 쫓던 서양 여행자는 물론 인도인들조차 모두 사라지고 나 혼자 덩그러니 넓은 공항에 버려졌다. 다음 비행기조차 입국하는 기색이 없었다. 황토색 군복에 총을 든 군인들이 공항 곳곳을 물샐 틈 없이 경계하고 있었고 폭탄 탐지견들이 꼬리를 흔들면 재기발랄하게 오가고 있었다. 고추장 두 박스를 들고 개나리 봇짐을 멘 모습은 지나가는 군인들의 의심의 눈초리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폭탄 탐지견들도 고추장 냄새를 처음 맡아본 것일까. 폭탄을 탐지해야 할 탐지견들이 관심을 보였다. 박스를 열어 볼 것을 요청하는 군인들에게 고추장을 보이며 korean red pepper sauce 라고 친절히 설명해도 잠시후 또 다른 군인들이 검문하는 식으로 몇 번을 반복했다. 무안함을 감추기 위해 very spicy 라고 친절하게 덧붙여 주기도 했다.

<다음날 찾아간 델리 여행자 거리 빠하르간지는 공항만큼 어수선했다>
공항 전체는 중동에서 축구 중계를 할 때 들리던 부부젤라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 혼란을 더욱 가중시켰다. 입국장으로 나와도 군인 외에 사람들이 하나도 없다. 안전을 위해 공항 자체를 통제한 모양이었다. 공항에서 나오려고 유리창으로 다가서다 움찔 놀라 뒷걸음질 치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공항 유리창에 수 많은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약간 검은톤의 피부에 사기처럼 불투명한 백색의 눈동자를 가진 인도 사람들. 그들이 유리창에 일렬로 늘어서 양손으로 손가리개를 하고 일제히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마 평소처럼 많은 여행자를 예상하고 곳곳에서 몰려든 호객꾼들이 영업에 실패하고 마지막 남은 먹잇감으로 날 찜해두고 있는 것 같았다. 사리 입은 여인, 터번 두른 아저씨, 붉은 색 점을 찍은 사두...그 수많은 안광은 내 영혼을 집중적으로 구타해 바닥에서 감히 일어날 엄두도 내지 못하게 하였다. '아, 출국 비행기표 끊어야겠다'는 생각이 입국 한 시간 만에 들었다. 문득 그가 떠올랐다. '류시화씨, 당신이 말한 인도, 이건 아니잖아.'
시인을 잘근잘근 씹고 출국 비행기표를 고민하며 한참을 보내니 가출했던 영혼이 다시 돌아왔다. 서울 식당에서 픽업 나오기로 한 것이 그제서야 생각났다. 입국장은 출입이 통제되어 있는 상태였으니 아마도 공항 밖에 있지 않을까 창문으로 다가가니 다시 호객꾼들이 손가리개를 하며 창문으로 몰려들었다. 심호흡을 하고 용기를 내어 군인이 경계를 서고 있던 출입문으로 이동하여 상반신만 내놓은채 소리쳤다. "서울 레스토랑, 서울 레스토랑~~~" 무상 광고의 메아리가 길게 울려퍼질 때쯤 불을 피워 놓은 드럼통 근처에서 한기를 녹이던 한 청년이 서울 식당이 적힌 A4 용지를 흔들며 인도인 특유의 천진난만한 웃음기를 머금고 등장했다. "당신, 픽업하려 나와서 이렇게 하고 있으면 무슨 수로 찾아, 최소한 종이는 들고 있어야지" 라고 소리치고 싶었으나 너무 반갑고 영어가 짧아 "땡큐, 렛츠 고"라고 짧게 말하며 공항을 탈출했다. 공항을 벗어나며 뒤돌아보니 공항은 여전히 부부젤라 소리로 가득했고 그들은 아쉬운 눈길을 돌려 다시 유리창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루프탑에서 바라보며 과연 인도 여행을 할 수 있을까 이틀 고민했다. 델리 여행자 거리가 이 정도면....>
다행히 델리에 테러는 발생하지 않았다. 군인들은 어떤 테러의 징후도 발견하지 못했으나 korean red pepper sauce가 very spicy하다는 사실은 알아냈다고 한다. 테러에 대하여 두려움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나 테러는 두려움보다는 끊어질 듯 팽팽한 긴장감과 생뚱맞은 호기심이 더 적절했다. 내가 실제 마주한 공포는 막연한 테러보다는 유리창에 붙어 있던 사람들이 내뿜던 안광이었다. 피부색과 완벽히 대비되던 그들의 불투명한 백색 눈동자에서 뿜어져 나오던 안광은 그 이후로도 델리 기차역에서 절정을 맞이했다. 테러로 여행자 발길이 끊긴 기차역에서 CCTV 돌아가듯 얼굴을 180도 돌리며 따라오던 무표정한 백색의 불투명한 눈동자들. 기차역을 한가로이 거닐던 소의 눈망울마저 나를 따라오는 듯 했다. 세렝케티 초원에 남겨진 초식동물이 된 기분이었다. 그 두려움이 사라지기까지 이틀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아무튼 델리 도착 후 이틀을 더 고민했으나 출국 비행기표는 결국 끊지 않았다. 그리고 인생 최고의 여행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