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오기 전에

- 백 창우 -


얘야, 겨울이 오기 전에 우리
몇 장의 편지를 쓰자
찬물에 머리를 감고
겨울을 나는 법을 이야기 하자
가난한 시인의 새벽노래 하나쯤 떠올리고
눅눅한 가슴에 꽃씨를 심자
얘야, 우린 너무
나쁜 습관처럼 살아왔어
아무리 빨리 달려가도
길은 끝나지 않는데
늘 채워지는 것 만큼 불쌍한 일이 어디 있어
이제 숨을 좀 돌리고
다시 생각해 보자
큰 것만을 그리느라
소중한 작은 것들을 잃어온 건 아닌지
길은 길과 이어져 서로 만나고
작은 것들의 바로 곁에 큰 것이 서 있는데
우린 바보같이 먼데만 바라봤어
사람 하나를 만나는 일이 바로
온 세상을 만나는 일인데
조그만 나무 한 그루가
온 우주를 떠받치고 있는데
우린 참 멍청했어
술잔에 흐르는 맑은 도랑에 대해
왜 이젠 아무도 말하지 않는거지

마주 앉을 시간마저 없었는걸
그래
얘야, 오늘은 우리
그리운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자
겨울이 오기 전에
==============================================================================

사람 하나 만나는 일이 바로 온 세상을 만나는 일임을 그 푸르른 녹음을 떨구고 11월의 앙상한 가지로 남고서야 알았다. 올 겨울은 가까이 있어 소중한줄 몰랐던 이들에게 가슴속으로 한줄의 편지를 띄워보내며 맞이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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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ika 2004-11-23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오늘 아침 찬물에 머리 감았습니다. (보일러 고장으로..ㅠ.ㅠ)

어제는 편지도 썼습니다. ^^

잉크냄새 2004-11-23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이카님! 겨울 준비 끝~~~~~~~~~

진주 2004-11-23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 이런 큰일 났네요. 난 저런 준비도 없이 벌써 겨울을 맞아 버렸는걸요. 벌써 내복입었사와요 ㅠㅠ 추위도 많이 타는데다 새벽엔 무지무지 춥거든요.(그래도 낮엔 안 입어요^^;)

잉크냄새 2004-11-23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내복!!! 저에게 있어 내복입는 날은 청춘의 마지막 날이라 생각합니다.^^

솔직히 군대에서는 얼어죽지 않을라고 입었지만 아직 일반 날씨는 견딜만합니다. ^^ v

파란여우 2004-11-23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에게는 내복과 따듯한 코트와 부츠와 장갑, 그리고 저금통장에 약간의 돈이 있으면 겨울 준비 끝! 입니다. 겨울엔 그래서 따듯하기만 하면 부조건 감사하고 행복이라 여긴다지요. 찬물에 머리 감지만 않아도 고마운 일이지요..뭐.

미네르바 2004-11-23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겨울이 오기 전에 편지를 써야겠어요. 찬물로 머리 감는 것은 힘들테고...

눅눅한 가슴에 꽃씨도 심고(대신 겨울 화초를 사왔어요), 가난한 시인의 새벽 노래도 불러 봐야하고... 갑자기 마음이 바빠지네요. 겨울 준비는 이렇게 하는 거였군요. 전 내복입고, 따뜻한 코트에 부츠, 장갑만 있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chika 2004-11-24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학교다닐때 잠시 냉방에서 지냈었는데요, 전기장판 켜놓고 스탠드도 머리맡에 둬 켜놓고.. 책을 열댓권 쌓아놓고 이불 뒤집어쓰는 것이 겨울준비 끝이었답니다. 추워서 손이 곱으면서도, 옷 껴입고 이불속에서 쌓아놓은 책 한권씩 읽어나갔던 그때가 참 행복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잉크냄새 2004-11-24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두들 행복한 겨울나기가 되시길 바랍니다.
 
참 다사로운 어머니께
마루오카 마을 엮음, 노미영 옮김 / 마고북스 / 2003년 1월
평점 :
절판


엄마의 투박한 손가락 맛이 우러나는 우엉 조림.
씹지 않고 그냥 삼킨다.
- 쓰루타 히로코 - 여, 21세

목이 메입니다. 쓰루타씨는 밥상 한 구석에 자리한 우엉 조림을 집어 먹으며 문득 엄마를 떠올리나 봅니다. 아마 멀리 떨어져 홀로 차린 밥상인가 봅니다. 아직 엄마만큼의 맛은 나지 않지만 그래도 엄마의 손가락 맛이 언뜻 느껴져 차마 씹지 못하고 울먹이나 봅니다. 우엉 조림보다 커진 그리움이 자꾸 커지나 봅니다. 엄마의 기억이 사라질까 차마 씹지 못하고 더욱 커진 그리움을 눈물 욱욱 삼키며 같이 삼킵니다.

어머니,
그 때처럼 맞으러 와 주세요.
숲속을 헤매다가 길을 잃었습니다.
- 마루야마 루코 - 여, 43세

학창시절의 늦은 귀가길, 마을 어귀 가로등 밑에는 항상 어머니의 그림자가 어른거립니다. 주머니속에서 따뜻해진 손을 꺼내어 자식의 언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이제는 집을 떠나 생활하는 훌쩍 자라버린 자식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시곤 합니다. 강렬하지는 않지만 어떠한 비바람에도 은은한 빛을 잃지 않는 어머니는 생의 등대입니다. 마루야마씨는 빛이 보이지 않는 삶의 고단함속에서 어머니가 사무치게 그리운가 봅니다.

일본의 마루오카라는 읍 정도 크기의 마을에서는 매년 편지글 대회를 개최합니다. 제1회 대회에서 어머님을 대상으로 한 짧은 글 공모에 당선된 글들을 모은 책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머니에 대한 감정은 동일한것 같습니다. 글을 쓴 이의 나이를 유심히 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린시절의 동심어린 시선, 사춘기의 방황, 타지에서의 외로운 생활, 부모로서 첫발을 내민 시기의 동질감, 그리고 이제는 어머니의 죽음보다 오래산 이들의 사무친 그리움이 담겨있습니다. 처음에는 한페이지당 몇줄로 마무리지은 책의 편집이 다소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 그 어색했던 공간이 어머니에 대한 회상만으로도 부족합니다. 복효근 시인의 시 한편으로 글맺음합니다.

< 어머니에 대한 고백>     - 복 효 근 -

때 절은 몸뻬 바지가 부끄러워
아줌마라고 부를 뻔했던 그 어머니가
뼈 속 절절히 아름다웠다고 느낀 것은
내가 내 딸에게
아저씨라고 불리워지지 않을까 두려워질 무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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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04-11-20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삶의 켠켠이에서 어머니의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저녁 귀가길의 가로등 불빛이, 때론 우엉조림에서. 구석구석 사랑으로 흔적을 남겨 주셨는데 말입니다.....(그나저나 우엉조림을 안 씹고 삼키면 체할텐데..걱정^__^;;)

미네르바 2004-11-21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마라는 말

...........................................

잉크냄새 2004-11-21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삶의 곳곳에 어머니의 흔적이 남겨져있다는 것을 나이를 하나하나 먹어갈수록 느끼게 됩니다. 엄마라는 말, 나이가 들어도 어머니보다는 엄마라는 말이 더 정겹네요.^^

icaru 2004-11-22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효근의 시...!

좋습니다!
 

  

얼마전 나의 주민등록증에 나온 사진을 우연히 보게 된 분과 통화를 한 적이 있다. 그분과의 통화가 끝난후 나조차도 주민등록증상의 모습이 궁금하여 살펴보니 99년도의 사진이다. 플라스틱으로의 주민등록증 갱신이 있었던 그해 관청에서 찍은 사진이다. 한손에 주민등록증을 들고 겨울앞에 서니 5년이란 세월의 주름이 느껴졌다. 사진과 거울을 번갈아보며 한참을 피식거리며 웃었다.

사실 자신의 주민등록증을 볼일은 별로 없는것 같다. 경찰에게 신분증 제출을 요구받기 전에야 지갑속에서 묵묵히 눌러앉아 있어야 할 운명인게다. 나조차도 잊고 살았던 그해의 나의 모습에서 현재의 나를 언뜻 떠올렸을 그분을 생각했다.  멀리 떨어져 있건만 거짓말을 한 기분이었다. 아마도 눈가에 슬슬 자리잡기한 잔주름과  탱탱함을 잃어버린 피부를 추가해야할것 같다.

처음 주민등록증을 만든 것은 고등학교 때이다. 처음이라는 기대감과 왠지 모를 두려움에 안절부절하면서도 사진사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미소를 짓는 학생의 사진이었다. 두번째로 갱신한것은 군대제대 이후이다. 주민등록증 뒷면에 병역필을 찍기 위해 재발급받을 당시의 사진은 반공방첩(?)으로 중무장한 스포츠머리의 아직 군기가 시들지 않은 청년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99년, 그냥 무덤덤한 표정의 사내가 덩그러니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다. 

히딩크는 오대영의 오명에서 벗어나서 대한민국 국민의 엔돌핀을 극대화한 공로로 기쁠 희씨의 원조가 되는데 1년의 시간이 걸렸다.  무덤덤한 표정이후의 5년, 나에게 도대체 무슨일이 일어난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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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ika 2004-11-18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님 글 읽고 제 주민등록증을 꺼내 봅니다.

2000년에 만들었는데, 사진은 97년 사진을 썼답니다.

짝짝이 눈에, 넘치는 살, 네모난 얼굴... 저 사진 찍을때 상황이 참 암울했는데....

그나저나 주소변경도 한번 안하고, 참 오랫동안 이집에 살았군요..

stella.K 2004-11-18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사진 정말 재밌네요. 제 주민등록증 사진도 만만치 않습니다. ㅋㅋ. 전 처음 주민등록증 만들라고 했을 때 만감이 교차가 되던데...좋기도 했지만 이제 더 이상 어린 아이로만 살 수 없다는 뭔가를 건넌 느낌. 어렸을 땐 어른이 되지 못해 안달냈지만, 확실히 어른이 된다는 건 거추장스러운 게 더 많은 것 같아요.

파란여우 2004-11-18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님하고 비슷한 소재의 페이퍼를 올렸군요....아이, 좋아라^^. 전 그래도 제임스 딘 보다는 님이 훨씬 잘 생겼을것 같아요^^

잉크냄새 2004-11-18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서재지인들 다들 모여서 민증 한번 까봤으면 하는 생각이 드네요.^^ 아, 그리고 제임스 딘 하니까 생각나는데 학교다닐때 학생증 코팅 밑으로 칼집내서 그 당시 잘나가던 주윤발, 유덕화, 장국영, 제임스 딘 등등의 사진을 넣고 다니던 시절이 떠오르네요.^^

hanicare 2004-11-19 0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은 거짓말도 잘하지만 냉혹하도록 정직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건, 일년이상이 지난 사진을 볼 때입니다.

진주 2004-11-19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에 라이카님과 저는 정반대로 제 주소란은 그득 넘치려고 하는군요^^

주소란이 모자라면 다시 갱신하게 되는 건가요?

다시 갱신할 때는 예쁘게 나온 사진을 올려야겠어요.

지금 사진은 아플때 찍어서 유령같아 보여요. 눈밑이 거무스레하고 창백한......

잉크냄새 2004-11-19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니케어님 반갑습니다. 일년이상이 지난 사진을 한번더 보아야할것 같군요. 찬미님, 전 딱 한번 주소지가 바뀐걸로 적혀있네요. 예쁘게 나온 사진도 좋지만 젊을때의 사진이 더 좋지 않나요.^^

stella.K 2004-11-19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파란 여우님 뭡니까? 제임스 딘 보다는 님이 훨씬 잘 생겼을것 같다더니, 잉크님 사진 봤다는 거 다 뻥이지 않습니까? 미워욧! >.<;;

ceylontea 2004-11-19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저도 제 주민증을 봤어요... 사진이 뭉개져 있더군요... ㅠ.ㅜ

그 주민증 만들 때보다 더 예전 사진을 사용해서... 젊었던 나의 모습... 그 시절이 그리워요... 머.. 지금도 좋아요.. 그 시절이 그리운건.. 날씬했던(?) 나의 몸과 건강이랍니다.. ^^

잉크냄새 2004-11-19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 그거 보세요.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

실론티님 / 저도 그 시절이 그리운건 빵빵했던(?) 몸과 건강이랍니다.^^

미네르바 2004-11-19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강렬하게... 심하게^^ 잉크냄새님의 주민등록증 사진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특히 반공방첩으로 중무장한 스포츠 머리의 새파란 청년의 사진을...^^ 그리고 제 주민등록증과 운전면허증도 봐야겠어요. 그런데, 하니케어님 글처럼 정말 사진은 냉혹하도록 거짓말을 못하더군요. 특히나 증명사진은... 그래서 증명사진 같은 것은 찍기 싫지요.

잉크냄새 2004-11-20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 그때 사진 보시면 경찰서에 신고하실겁니다. ^^

stella.K 2004-11-20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싫어욧. 그래도 사진 보여주세요. 제임스 딘이 더 잘 생겼는지, 님이 더 잘 생겼는지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싶어욧!!!!!!!
 
 전출처 : stella.K > 感性事典 2 [이외수 글모음 그리고 ....]

感性事典 2 [이외수 글모음 그리고 ....]   
달팽이 한여름의 고독한 여행자. 그러나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집을 한번도 떠나 본 적이 없는 여행자. 눈보라 겨울이 깊어지면 바람의 함성을 타고 수 천만 마리의 백색 나비 떼가 어지럽게 난무하며 마을에 출몰한다. 눈보라다. 때로는 길이 막히고 통신이 두절된다. 시간도 깊어지고 그리움도 깊어진다. 진눈깨비 저물어 가는 겨울 풍경 속으로 쏟아지는 비창이다. 세월의 통곡이다. 목메이는 그리움이다. 쓰라린 아픔이다. 부질없는 사랑이다. 회한의 눈물이다. 시린 뼈의 신음이다.
사랑 반드시 마음 안에서만 자란다. 마음 안에서만 발아하고 마음 안에서만 꽃을 피운다. 사랑은 언제나 달디단 열매로만 결실되지는 않는다. 사랑에 거추장스러운 욕망의 덩굴식물들이 기생해서 성장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나를 비우고 너를 채우려 할 때 샘물처럼 고여든다. 그 샘물이 마음 안에 푸르른 숲을 만든다. 푸르른 낙원을 만든다. 온 천지를 둘러보아도 사랑의 반대말이 없으며 온 우주를 살펴보아도 아름다움의 반대말이 없는 낙원을 만든다. 사랑은 바로 행복 그 자체이다. 구름 때로는 하늘을 떠도는 풍류도인이다. 허연 수염을 나부끼며 세상을 물끄러미 내려다 보고 있다. 때로는 슬픈 영혼의 덩어리다. 암회색으로 온 하늘을 지우고 깊은 우울 속에 빠져 있다. 때로는 범람하는 비탄의 강이다. 하늘 전체를 통곡 속에 잠기게 한다. 온 세상을 적시는 눈물로 소멸한다.
가을 영혼마저 허기진 시인의 일기장 갈피로 제일 먼저 가을이 온다. 고난의 세월 끝에 열매들이 익고 근심의 세월 끝에 곡식들이 익는다. 바람이 시리고 하늘이 청명해진다. 사랑은 가도 설레임은 남아 코스모스 무더기로 사태지는 언덕길. 낙엽이 진다. 세월도 진다. 더러는 소리 죽여 비도 내린다. 수은주가 떨어지고 외로움이 깊어진다. 제비들이 집을 비우고 국화꽃이 시든다. 국화꽃이 시들면 가을이 문을 닫는다. 허기진 시인의 일기장 갈피로 무서리가 내린다. 가을이 끝난다. 가을이 끝나도 외로움은 남는다.
낙엽 수확의 가을이 끝나면 나무들은 잎을 떨구어 자신들의 시린 발목을 덮는다. 바람이 불면 세월의 편린처럼 흩날리는 갈색 엽신들. 모든 사연들은 망각의 땅에 묻히고 모든 기억들은 허무의 공간 속에 흩어져 버린다. 나무들은 인고의 겨울 속에 나신으로 버려진다. 낙엽은 퇴락한 꿈의 조각들로 썩어가지만 봄이 되면 다시금 푸르른 숲이 된다. 숲의 영혼을 덮어주는 이불이 된다.
들국화 기러기 울음소리가 하늘을 청명하게 비우고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달빛을 눈부시게 만들면 바람에 실어보낸 그리움의 언어들은 그리움의 언어들끼리 모여 달빛에 반짝이는 詩가 된다. 아무리 멀리 있어도 안타까운 사랑도 아무리 벽이 높아 닿지 못할 사랑도 가을 들녘에 모여 꽃이 된다. 바람이 전하는 한 소절의 속삭임에도 물결같이 설레이며 흔들리는 꽃이 된다. 이름하여 들국화다. . . . ................
출처:본효아줌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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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4-11-16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외수의 감성사전 몇가지 더

방랑 - 외로운 목숨 하나 데리고 낯선 마을 낯선 들판을 호롤 헤매다 미움을 버리고 증오를 버리는 일이다. 오직 사랑과 그리움만을 간직하는 일이다.

불행 - 행복이라는 이름의 나무 밑에 드리워져 있는 그 나무만한 크기의 그늘이다. 인간이 불행한 이유는 그 그늘까지를 나무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편지 - 오늘날은 고독의 터널 속에 갇힌 사람들의 생존여부를 알리는 통지서로 널리 애용된다.

아! 에디터로 쓰기를 하니까 되네요.^^


2004-11-16 23: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Laika 2004-11-17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움을 버리고 증오를 버리는 일" - 저 그거 하고 싶네요...^^
 
인간 실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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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번의 자살 시도끝에 39살의 생을 마감한 다자이 오사무의 자전적 소설이라 할수 있다. 일본에서 자살은 죽음의 미학이라고 일컬어지기도 한다. 다자이 오사무뿐 아니라 < 설국 > 의 가와바타 야쓰나리의 자살은 일본사회에 자신의 생을 스스로 완결지은 성숙된 인격의 자주적 모습으로 비춰졌다고 한다. 늘 죽어있어야 무도를 완성할수 있다는 일본의 무사도와 맥락을 같이하는 일본문화의 한 단면을 보는듯 하다.

부유한 집안의 아들인 주인공 요조는 어려서부터 남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두렵고 타인과의 관계에 공포를 느껴 스스로를 자신안에 숨기며 거짓된 익살로 살아간다. 어느날 자신의 익살이 꾸며진 것임이 들통났을때 그는 더욱 자신의 내부로 침잠하며 익살의 강도를 더해간다. 성인이 되어서도 철저한 자기부정의 삶을 살아가며 처절한 분노앞에서도 분노할줄 모르고 생의 난관앞에 자살이라는 도피처만을 생각한다. 그가 결정적으로 자기파괴에 직면하게 되는 것은 순수와 신뢰의 모습만으로 남아있길 바라던 요시코가 능욕을 당하는 장면을 지켜보고 나서부터이다. " 무구한 신뢰감은 죄의 원천인가요?" 를 되뇌이며 술과 약에 빠져들어 결국 생의 전환점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 무구한 신뢰감은 죄의 원천인가요?" 다자이 오사무의 삶을 집약한 한 구절일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표현하고자 한 주인공 요조가 과연 무구한 신뢰감을 입에 담을 자격이 있는지에 의문이 든다. 자신의 생의 빛으로 여긴 요시코가 능욕당하는 모습을 보며 공포에 떨고 술과 약에 찌들어 고통의 무게를 고스란히 요시코에게 떠넘긴 그에게 어떠한 자격도 없다. 차라리 칼을 빼어들고 능욕한 자에게로 달려갔다면 오히려 그의 고뇌를 이해해줄수도 있을것이다. 차라리 요시코가 그렇게 절규했다면 이해할 것이다. 그가 단 한번이라도 꿈이라던지 희망이라는 것에 매달려 보았는가. 없다. 그에게서 느낀 것은 연민이 아니라 분노이다. 어쩌면 그의 모습에 녹아있는 치졸하고 비겁한 우리의 모습이 언뜻 보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순진, 무구, 신뢰. 요조가 그토록 처절하게 부르짖었던 이상이다. 그러나 단 한번도 꿈의 끝자락을 잡아보려고 하지 않는 이에게 그런 이상은 허무할수 밖에 없다. 요조, 나에게 그는 비겁하고 옹졸한 사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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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2004-11-15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자이 오사무, 미시마 유키오, 가와바타 야스나리... 그들이 자살했다는 이유만으로 열광했던 20대가 생각납니다. 지금, 다시 읽으라하면 역시 님처럼 신랄할까요.

잉크냄새 2004-11-16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글을 읽고보니 거꾸로 제가 20대에 이 책을 읽었다면 어떤 느낌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파란여우 2004-11-16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료하면서도 관점을 잘 잡으신 리뷰입니다. 어떻게 하면 님처럼 명징하게 쓸 수 있을까요?

잉크냄새 2004-11-16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처럼 리뷰를 잘쓰시는 분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전 한없이 부끄러워집니다.

icaru 2005-06-12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뒤늦게... 잘 읽고 갑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