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이토록 눈부시고 황홀한 - 삶이 끝나는 순간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레이먼드 무디 지음, 배효진 옮김 / 서스테인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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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사와 사후 체험 후 다시 살아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런 경험이 그들에게 다시 주어진 인생에서 얼마나 소중한 계기가 되었는지를 이야기한다. 종교의 발생 원인이 일정 부분 죽음에 대한, 엄밀히 말하면 사후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한다면, 죽음 이후에도 또 다른 무언가가 존재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소멸이 아닌 다른 존재로의 이행일 수 있음을 직접 경험한 것 만으로도 삶은 충만할지도 모른다. 내가 이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직접 임사 체험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대학교 일 학년 겨울 방학, 고향과 먼 이역만리 전남 광양 제철소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일당 2만원에 생명수당 3천원. 생명수당은 고압전선 설치와 고공 위험 작업에 대한 것이었다. 50미터 이상 수직으로 올라간 엘리베이터 크기의 배전관 안에서 전선을 당겨 올리던 어느 날 발을 헛디뎌 추락했다. 비명을 지를 새도 없었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만 잠시 스쳐갔다. 순간 이상하다는 느낌이 든 것은 몸은 추락했는데 나는 두둥실 하늘로 올라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팔을 아래로 늘어뜨리고 누운 자세로 깃털이 산들바람에 가벼이 날아오르듯 몸은 둥실둥실 떠올랐다. 고개를 살짝 들어보니 눈부시게 하얀 빛이 나를 감싸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아래를 보니 전선에 팔과 다리가 걸린 내 몸이 보였는데 이상하게도 두려움이나 공포 같은 감정은 느껴지지 않았고 그냥 살짝 서글펐던 기억이 난다. 계속 하늘로 올라갔는데 지금껏 그런 평화롭고 아늑한 기분은 처음인 듯 했다. 먼 곳에서도 나처럼 올라오는 하얀 빛 덩어리들이 보였다. 그때 귓가에 희미한 소리가 들렸다. 어딘가 낯익은 소리였다. 어, 저건 내 이름인데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갑자기 아래로 순식간에 빨려드는 느낌이 들었고 번쩍 눈이 떠지며 갑자기 주의가 어두워지고 겨울의 한기가 느껴졌다. 전선에 걸쳐진 다리가 풀리며 몸이 미끄러지는 찰나 전선을 움켜 잡았다. 이름을 부르며 올라와 등을 받친 친구의 눈은 눈물 범벅이었다. 이 오래된 기억은 공포나 두려움으로 남아있지 않다. 그때 가벼이 올라가던 깃털 같은 순간의 묘한 평화로움과 아늑함이 아직도 기억난다.


임사와 사후 체험이 그다지 일반적이지 못한 것은 그것이 희박한 경험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사회적 시선이 환각이나 망상 ,심지어 정신병과도 같은 병리적 현상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가 만난 체험자들은 그들과 유사한 경험자가 있다는 사실에 위로받기도 한다. 책에서 언급되는 체험의 양태는 인종,지역,시대,성별을 막론하고 거의 유사성을 보인다. 온전한 평온함, 처음 듣는 이상하고 불편한 소리, 어두운 미로를 통과하는 느낌, 몸과 영혼의 분리, 몸을 감싸는 의문의 하얀 빛... 내가 경험한 임사의 경우 소리와 어두운 미로를 통과하는 경험을 제외하고는 거의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단순히 그 동안의 영화나 책 등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학습화된 어떤 경험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 아니면 삶에서 인지하지 못하는 다른 공간이 실재하기에 유사한 경험을 한다고 할 수 있을까. 증명할 수 없는 일이기에, 죽음은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개별적이기에 옳고 그름을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에피쿠로스 학파의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 것도 아니다' 라는 죽음 역설은 죽음에 대한 공포와 경험에 기인한다. '우리가 살아있을 땐 죽음이 우리 곁에 와 있을 수 없고 죽음이 우리 곁에 와 있을 때는 우리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라는 역설은 경험할 수 없기에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일 것이다. 그들이 죽음을 경험할 수 없기에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임사,사후 체험자들은 죽음을 경험했기에 그 죽음이 우리가 막연히 생각하는 고통과 두려움으로 대변되는 지옥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에서, 영원한 소멸이 아닌 다른 존재로의 전이거나 더 높은 의식으로 거듭나는 과정이라는 것에서 위안을 받는다. 오히려 삶보다 평화로왔던 그 경험에서 남은 생의 의미를 다시 찾기도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죽음은 개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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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6-05-21 22: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과거에 특별한 경험을 하셨네요.
크게 다치신 건 아니었는지요?
임사와 사후 체험이 사실 약간 믿기지 않아요. 무섭기도 하고요.

잉크냄새 2026-05-21 23:38   좋아요 2 | URL
아마 저도 직접 경험하지 못했다면 이 책의 이야기들이 좀 허황되게 들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와 그들 사이 경험의 유사성으로 인해 그때 제가 경험했던 모든 것들이 임사 체험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죠.
상상만으로는 무서운 이야긴데 제 경험상 아늑하고 포근했던 기억이 더 남아요. ^^

차트랑 2026-05-22 09: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잉크냄새님,
저의 절친 한 사람도 같은 종류의 경험을 했는데, 하필 저는 이를 옆에서 목격을 했습니다.
친구의 경험담도 잉크냄새님의 글과 거의 유사합니다.

저는 현대 의학의 도움을 많이 받아 연명을 해왔기에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인지 특히 흥마로운 글이었습니다.

좋은 하루되십시요 잉크냄새님.








잉크냄새 2026-05-22 21:27   좋아요 1 | URL
저도 책을 읽으며 가장 놀란 부분이 많은 이들의 체험의 유사성이었습니다. 혼자만의 경험이 아니라는 사실은 어떤 확신을 주기도 하지요. 직접 경험하지 못했다면 미디어를 통해 노출된 그런 이미지가 왜곡된 기억의 잔상으로 남은 것이라는 일반적인 의견에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을 겁니다. 직접 경험했기에 전 사후 다른 세계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차트랑 2026-05-23 07:14   좋아요 1 | URL
이승과 저승은 서로 짝으로서
이승에 시공이 있는데 저승에는 없겠는가 싶은게 저의 무지한 생각입니다.
그쪽이라고 더 특별할 것도 없다는게 또한 저의 무지한 생각입니다.

염라대왕께서 저를 꼬나보고 계실지라도
전혀 겁이 나지 않는 이유입니다.

아마 잉크냄새님께서도 그쪽이 두렵지는 않으실듯요~




잉크냄새 2026-05-24 20:14   좋아요 1 | URL
아직 죽음을 두려워할 시기는 아니긴 합니다. 그때가 되어서도 영혼의 존재를 믿어 두렵지 않을지는 아무도 모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라지든 소멸하든 전이하든 거듭나든 이번 생이 끝난다는 것은 변함없지 말입니다.

감은빛 2026-05-23 05: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신기한 경험이네요. 그리고 책에 유사한 경험담이 많다는 것도 신기하구요.

저는 오래전에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차에 부딪혀 튕겨나가 바닥에 떨어지며 아주 짧은 순간 아무것도 안 보이다가 다시 시야가 돌아오는 경험을 했었는데, 이게 좀 신기하다고 생각했어요. 사람이 큰 충격을 받으면 아예 의식을 잃기도 하지만, 의식을 잃기 전 단계에서는 감각들을 하나씩 잃는구나 하고 깨달았고, 그중 가장 확식한 감각상실이 바로 시각상실이라고 느꼈어요. 그후에 교통사고 후유증 때문인지 아주 가끔 어지러움과 함께 시각을 상실하며 바닥에 주저앉게 되는 일들이 몇 차례 있었어요.

잉크냄새 2026-05-24 20:20   좋아요 1 | URL
저도 책을 읽으며 제가 한 경험과 유사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보편적 사실은 아닐지라도 경우의 수가 많아지면 확률도 올라가는 것이니 어떤 확신의 감정도 살며시 고개를 들긴 하더군요.

감각 상실...임사체험처럼 직접 겪어보지 못하면 믿지 못하는 현상들이 많죠. 교통사고 후유증 무서운 것인데, 건강 관리 잘 하시길 바랍니다.

마힐 2026-05-25 0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임사 체험, 귀중한 경험이시네요.
저는 꿈에서 가끔 죽는 경우도 있는데, 죽을 때 참 난감 하더라구요.
그런데 다행히 꿈이야... 어찌 그리 안도감이 나는지.... ㅎㅎ
저는 아직 죽음이 두려운 것 같아요.
그런데 막상 죽음이 오면 담담히 맞이할 것 같기도 해요.
뭐 그것도 죽어봐야 아니까...
암튼 잉크냄새님은 오래 오래 사십시요!
 

어릴 적 나는 인생을 선불제로 생각했다. 좋은 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죽어라 공부만 하며 현재를 ‘지불’하면 그만큼의 괜찮은 미래가 주어지는 줄 알았다. 밤을 새워 소설을 쓰고 몸을 축내면 그 대가로 편안한 미래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언덕을 오를 때는 힘들지만 내려올 때는 편하듯이, 고생과 노력은 초반에, 그 과실은 생의 후반에 따먹는 것이려니 했다. 잘 모르겠다. 다른 사람은 잘 모르겠지만 내 인생은 후불제인 것 같다. 어린 날이 오히려 ‘공짜’였고 지금은 계산을 치르는 중이고 해가 갈수록 더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할 것만 같다. -p156-







여행을 목적으로 처음 회사를 퇴직했을 때 주변 사람들로부터 계속 '왜 멀쩡히 다니던 회사를 관두는지'에 대하여 지겹도록 질문을 받았다. 실질적인 이유는 사십을 넘기면 다시는 용기가 생기지 않을 것 같은, 이대로 삶이 굳어버릴 것 같은 막연한 두려움이었다. 그대로 말해 버리면 뭔가 바보스러울 것 같아 스스로 '왜'에 대한 그럴싸한 이유를 생각해 보았었다. 그때 변명처럼 떠오른 생각이 질량 보존의 법칙을 살짝 비튼 '가치 보존의 법칙'과 김중식의 '이탈한 자가 문득' 이라는 시였다. 질량처럼 가치 또한 형태를 달리할 뿐 세상 어딘가 온전하게 존재하리라는 믿음,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알려준 시인의 위로는 내 선택을 잘 포장해 주었었다. 인생은 후불제란 작가의 글을 읽다 내 인생은 직불제인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얻기 위해 버려야 함을 인정하는 등가 교환의 법칙이 직불제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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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14 2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5-14 2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넬로페 2026-05-14 22:56   좋아요 1 | URL
오, 감사합니다^^

감은빛 2026-05-15 11: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일반적인 기준으로는 여행을 목적으로 회사를 그만두는 걸 이해하기 쉽지 않겠지요. 잉크냄새님의 여행 이야기가 아직 엄청 많이 남아있을 것 같은데 하나씩 하나씩 꺼내주세요. ㅎㅎㅎㅎ

저는 선불제도 후불제도 별로 공감이 가지 않네요. 그냥 그때 그때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것이 인생 아닌가 싶어요.

잉크냄새 2026-05-17 09:50   좋아요 1 | URL
여행 시간에 비하면 그리 많은 도시를 돌아다니지는 못했어요. 보통 한 도시에 일주일 이상 머물다 떠나다 보니 많은 것을 보되 또 많은 기회를 잃어버린 것도 있을 것 같아요.

감은빛님이 말씀하신 그때 그때의 삶을 사는 것이 제가 말한 직불제가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쑤저우苏州는 춘추전국시대 오나라의 수도였던 곳으로 오나라의 머릿글을 따 오군,오주,오현으로 불리다 고소산姑苏山의 소자를 따서 수나라 시절부터 쑤저우라고 불리었다고 한다. 쑤저우에서 택시를 타고 그 지역에 대하여 물어보면 거의 백 프로 나오는 첫 마디는 '上有天堂 下有苏杭 상요우텐탕 샤요우수항(위에는 천당, 아래에는 쑤저우와 항저우)'이다. 쑤저우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항저우杭州에서 노년과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는 그들의 소망을 나타내는 구절이다. 오나라의 수도였던 쑤저우와 저장성의 행정 중심인 항저우, 역사적으로 두 도시는 중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도시로서 지리적으로 풍요롭고 문화적으로 융성했고 정치적으로 강성했다. 오랜 세월 문화적 향유를 누려온 것과 같이 당대의 시인들 백거이白居易와 이백李白이 <억강남>과 <오서곡>으로 찬양하고 중국 최고의 지성이라 불린 소동파苏东坡가 사랑한 쑤저우에서 가장 사랑받는 시는 놀랍게도 비교적 무명인 당나라 시인 장계张继의 <풍교야박枫桥夜泊>이란 시이다. 


月落乌啼霜满天 월락오제상만천(웨뤄우티쑤앙만텐) 달 지고 까마귀 울어 서리 가득한 하늘

江枫渔火对愁眠 강풍어화대수면(쟝펑위훠뛰쵸우멘) 강가 단풍과 고깃배 불빛을 마주하여 시름 속에 잠드네

姑苏城外寒山寺 고소성외한산사(구수청와이한산쓰) 고소성 밖 한산사

夜半钟声到客船 야반종성도객선(예빤쫑성따오커촨) 한밤중 종소리가 객선까지 들려오네


가장 유명한 시구는 3구와 4구인데 지명을 직접 언급한 3구와 뱃전에 다다른 한밤의 종소리로 고향 떠난 나그네의 깊은 객창감을 건드는 4구가 오래도록 회자되었다. 그러나 이 시가 유명해진 건 단순히 시의 아름다움 때문만은 아니다. 수 백년에 걸쳐 당대의 내노라 하는 지식인들 사이에 시를 둘러싸고 이어진 논쟁 때문이었다. 풍교야박이 쑤저우를 중심으로 유명세를 떨치자 시에 대한 비판이 서서히 생겨났다. 가장 유명한 비판은 종소리에 대한 비판이다. 첫째, 산사의 종은 한 밤에 울리지 않으므로 시인이 한밤에 들었다는 종소리는 허구다. 둘째, 한산사는 풍교와 지척이라 한밤중에 종을 울리면 시끄러워 시와 같은 은은함을 느낄 수 없다. 셋째, 한산사에는 종이 없더라. 당대부터 이어진 비판은 송대를 거쳐 명,청대에 이르기까지 계속 되었다. 비판에도 불구하고 노이즈 마케팅에 편승한 시는 어느덧 쑤저우를 대표하는 시가 되어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이 시를 음송하지 못하는 소주인이 없다고 한다. 시적 사실과 시적 허용의 문제는 예전부터 늘 시 언저리에서 시와 함께 생명을 이어가고 있구나 싶다. 


<요즘 중국에도 고전 양식의 옷을 입는 젊은 세대들이 늘고 있다. 그들은 서시의 후예다.>


풍교야박의 논쟁을 직접 확인하러 풍교로 향했다. 시구 3구처럼 고소성에서 잠시 벗어난 한산사는 비교적 한적한 곳에 위치했으나 관광객은 중국 여느 곳과 같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한산사 정문을 빗겨 한 바퀴 도니 수향 마을답게 절 주위로도 수로가 형성되어 있다. 다리 높이로 보아 한때 절 주변으로 꽤나 큰 마을이 형성되었으리라 짐작된다. 풍교는 한산사 뒤쪽 수로를 따라 걷다 보면 만난다. 풍교 주위로 단풍나무도 몇 그루 서 있고 다리 한 쪽으로 한산사의 모습도 보이니 시가 완전 허구는 아님을 알 수 있다. 한산사의 종은 직접 보지 못했고 종소리 또한 듣지 못했다. 밤에 오지 못한다는 점, 관광객이 너무 많아 장계 선생이 느낀 객창감은 전혀 느낄 수 없다는 점은 아쉬웠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풍교를 건너려니 바로 옆에 3D 체험관이 있다. 풍교야박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는 설명에 배에 올라탄다. 


<장계 선생이 시를 읊은 자리는 저 반대편 선상이었으리라 추측해본다.>


"뱃전에 앉으니 당나라 어느 수향 마을이 펼쳐진다. 바야흐로 봄이다. 동자와 꾸냥이 가져온 차를 한 잔 받아 마시니 배가 서서히 수로를 따라 움직인다. 막 기지개를 켜고 일어난 봄이 수로 양 옆으로 가득하다. 겨울 빨래를 가져 나온 아낙들이 수다스럽고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올리는 꾸냥이 슬며시 미소짓는다. 배를 타고 꽃을 파는 소녀에게서 수선화와 장미를 받아보고 음식을 파는 배 옆에서 만두를 받아 먹어본다. 봄을 지난 수로는 여름으로 접어드는데 웃통을 벗어 제낀 아이들이 수로로 뛰어들고 번잡한 시장에서는 흥정이 한창이다. 한 켠에는 수로 위로 줄타기를 하는 광대가 위태롭다. "짜요 짜요" 응원 소리가 드높더니 갑자기 나타난 용선 3척이 앞다투어 질주한다. 그 물결에 두둥실 흔들리던 배는 갑자기 다리 위로 솟구친다. 아래로 한여름 축제가 한창인 고소성이 펼쳐진다. 밤의 불꽃 축제가 고소성 하늘을 뒤덮고 골목골목은 선남선녀의 흥청거림으로 번잡하다. 고소성을 한 바퀴 돈 나룻배가 다시 수로로 돌아오니 어느덧 늦가을, 문득 찾아온 쓸쓸함에 주위를 둘러보니 초승달이 지고 까악 까악 까마귀 우는 가을 밤 위로 흰 서리가 하늘 하늘 떨어지는데 붉은 단풍 위에 내려앉은 자태가 처연하다. 어디서 본 풍경이다 싶더니 바로 <풍교야박>의 구절이 아닌가. 뱃전에는 언제 나타났는지 장계 선생이 홀로 술잔을 기울인다. 시중들던 동자가 나를 가르키며 "장계 선생, 이 분도 장안에서 피난온 사람입니다" 하니, 장계 선생은 더욱 깊은 우수에 젖어 긴 장탄식과 함께 술잔을 들고 일어선다. 뎅~뎅~ 한산사 종소리에 잠시 시름 겹더니 오른손 검지와 중지를 붙여 들어 왼손에 든 술잔 속의 술을 찍어 올려 가을 밤 하늘에 일필휘지로 갈겨쓰며 시를 음송한다. 족자를 들고 나온 동자가 장계 선생에게 시 제목을 청하니 <풍교야박>이라 적는다. 동자의 손을 떠나 족자가 가을 밤하늘로 날아오르더니 다시 한번 가을 밤에 장계의 시를 적으며 음송을 권한다. 뱃전 여기저기서 <풍교야박>이 흘러나온다. 최대한 당대의 목소리로 크게 음송한다. '웨뤄우티쑤앙만텐~~~~' " 고글을 벗고 내리니 뒤에 탄 서생들이 전부 유치원생이다. 음, 초로의 중년이 유치원생과 다투어 시를 음송하다니. 살짝 부끄러웠다. 쑤저우에서 <풍교야박>이 천 년 세월을 살아난 이유이리라.


<AI로 풍교의 늦가을 정취를 표현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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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26-05-08 06: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없던 종이 산사에 생겨나고, 치지 않은 종이 밤에 울리는 것은 시에서 필요했기 때문이 아닐까 잠시 생각해봤습니다. 분위기상 필요하다면 오후 5시에도 소쩍새가 울어줄 필요가 있듯이 말입니다^^ 님아, 또 가시려거든 그땐 혼자일랑 가지를 마오~

잉크냄새 2026-05-08 20:50   좋아요 2 | URL
그러게요. 시적 허용으로 받아들이면 좋을 것을. 당대의 내로라하는 석학들이 이 간단한 문제로 천 년 세월 아옹다옹 다툼을 했다니,,, 틀에 집착한다는 것이 이리도 어마어마한 일입니다. ㅎㅎ

마힐 2026-05-08 21: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원래 한산사의 한산은 승려의 이름입니다. 한산과 그의 친구 습득은 절에서 바보 취급 받았답니다. 다른 스님들에게 구박 받으면서도 둘은 뭐가 그리 좋은지 항상 웃으며 서로 장난치며 다녔다고 해요. 그런데 이들의 대화를 가만히 들어 보면 도통한 경지가 드러났다네요, 지금도 한산문답이라고 전해진답니다. 이들의 우정은 상징이 되어 화합이선이라 부른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들은 보살의 화신들 이었다고 하네요. 그리고 한산사는 아이러니 하게도 화합이선이란 상징 때문에 절에 결혼식장이 있다고 하네요. 믿거나 말거나... ^^

잉크냄새 2026-05-08 21:32   좋아요 2 | URL
한산사가 논란의 중심에 설 이유가 또 있었군요. ㅎㅎ 종이 없다는 풍문도 그러하거늘 결혼식장까지 있다니.... 미리 알았다면 이번 발걸음에 예식장도 한번 찾아보는 건데 아쉽네요. ㅎㅎ
아, 한가지 더 한산사를 일본인이 유독 좋아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본에서 가장 인기있는 한시가 <풍교야박>이라고 하더군요.

감은빛 2026-05-15 11: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지리 감각이 없어서 쑤저우와 항저우가 어딘지 몰라 지도로 찾아봤어요. 상하이 근처군요. 춘추전국시대 오나라의 수도였군요.

시에 얽힌 이야기도 재미있고, 체험하신 이야기도 마치 영상을 보는 듯 느껴지네요.

잉크냄새 2026-05-17 09:48   좋아요 1 | URL
네 상하이에서 내륙 쪽으로 한 시간 가량 떨어져 있어요. 상하이와 근접한 이유로 한국에서 쑤저우로 직항하는 비행기 편이 없어서 다소 불편합니다. 그래도 이천 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에 걸맞게 중국에서 가장 문명스러운 도시라는 것을 살아보면서 충분히 느꼈습니다. 그에 비하면 상하이는 이제 한 세기 정도 밖에 안된 신도시라고 볼 수 있죠.
 
이언의 철학 여행 - 소설로 읽는 철학
잭 보언 지음, 하정임 옮김, 박이문 감수 / 다른 / 2020년 10월
평점 :
절판


14살 소년 이언이 꿈속에서 만난 노인과 철학적 명제를 논하고 아침 밥상머리에서 정신분석가 부모가 반론을 펼치는 소설 구성의 철학서이다. 철학을 쉽게 본 걸까, 소설을 우습게 본 걸까. 소설의 껍데기를 뒤집어 씌워도 철학은 여전히 어렵다. 너무 많은 꿈을 꾸게 된 것이 오히려 악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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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란 얼굴의 여성분이 도서관으로 들어오며 도움을 요청했다. 3층 여자 화장실에 남자가 들어왔다는 것이다. 일요일 도서관에는 여자 직원만 있었으므로 도움을 요청하는 그들의 요구에 응하여 3층으로 향했다. 상급자의 지시와 업무 매뉴얼을 확인하는 여직원은 계단을 오르내리며 연신 통화중이었다. 직원의 요청에 따라 난 남자를 제지할 목적으로 화장실 입구가 보이는 계단 근처에서 기다리며 상황을 주시중이었다. 처음에는 '에이 설마, 남녀 화장실을 헷갈려서 잘못 들어간 거겠지. 미친 놈이 아니고야' 라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남자가 화장실에서 나와 '죄송하지만 잘못 들어갔어요' 라고 말한다면 어떤 식으로 해야 하나 하는 다소 난감한 상황도 그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시간이 흐를수록 실수가 아닌 의도된 행동일 수도 있다는 쪽으로 바뀌었다. 십 여분의 시간이 지나고 통화를 마치고 오는 여직원에게 '경찰에 신고해야 하지 않을까요' 라는 말을 했고 그 순간 화장실 문이 열리며 건장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이십 대 초반의 그는 남자인 내가 보기에도 위협적일 정도로 큰 키와 축구로 단련됐음을 한 눈에도 알만큼 다부진 체격이었다. 내가 제지할 틈도 없이 내 앞에서 머리를 숙이며 '죄송합니다. 제가 호기심에 눈이 멀어 실수를 했습니다' 라며 먼저 입을 열었다. '실수 여부를 떠나 범죄인 건 아시죠?' 라고 하니 무릎을 꿇으며 어리석은 호기심에 한 실수라며 선처를 호소했다.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다. 여직원이 매뉴얼에 따라 그의 신상명세와 연락처, 화장실에 의도적으로 침입한 상황에 대하여 녹취를 진행하였다. 신체 구속의 권한이 없음을 고지한 여직원의 말을 마지막으로 그를 돌려보내고 도서관으로 다시 내려왔다. 도서관 한쪽 구석에 조마조마하게 앉아 있던 여성분이 상황을 물으며 다가왔다. 그때서야 그 여성분의 얼굴을 찬찬히 볼 수 있었는데 두려움과 공포가 눈동자에 고스란히 묻어 나왔다. 떨리는 목소리로 전하는 당시의 상황을 듣고서야 그가 반년 가까이 스토커처럼 행동했고 오늘은 화장실까지 몰래 침입한 상황이었음을 알았다. 상황의 긴박함을 느끼고 여직원은 피해자 여성과 함께 경찰에 신고했다.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소설을 읽은 것은 한국 출장 후 중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였다. 길지 않은 소설이라 비행 중 다 읽었는데 인상적인 글이었다. 특히 남성이 느끼는 별 것 아닌 일상과 생활이 여성에게는 공포와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상황은 놀라운 충격이었다. 당시 중국은 인터넷 검열로 다음 등 일부 사이트가 막혀있었고 한국의 상황에 별 관심도 없던 시절이라 이 소설의 평가가 어떠한지는 몇 달이 흐른 다음번 입국때 쯤이었다. 의미 있는 공론의 장이 되었으리라는 기대와 달리 인터넷은 온통 남혐, 여혐, 군대, 출산 등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남녀 간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군대와 출산 등의 문제는 한국에서 충분히 논의되어져야 할 사항이긴 하나 이 소설에서 어떻게 이 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인터넷 뿐만 아니라 내 주변에도 동일한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다수라는 상황은 더 혼란스러웠다. 이런 차이는 어디에서 올까. 누군가를 이해하는 데에는 입장의 동일화가 전제되어야 한다. 서로 다른 입장을 동일한 선상에서 바라보려면 타인에 대한 상상력, 특히 타인의 고통에 대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그때서야 비로서 타인에 대한 공감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내가 그 날 처음 사건을 단순히 실수이지 않을까 하고 받아들이는 감정 자체도 혼란한 상황에 대한 부정 방어 기제의 발현일 수도 있지만 타인에 대한 상상력의 부재에서 오는 바가 더 큰 듯 했다.   


얼마 후 도서관 복도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니 그 여성분이 가볍게 목례를 한다. 그 날 도와주셔서 감사하다고. 같이 인사하며 바라보니 그 날 보이던 두려움과 공포는 눈에서 보이지 않는다.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부디 그때의 장면들이 트라우마로 남지 않기를 바래본다. 화장실로 들어간 남성은 경찰 조사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모든 혐의에 대하여 자신의 어리석은 잘못임을 시인했다고 한다. 법적 처벌이 어떻게 이루어질지는 모르겠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충분한 법적 처벌을 받기를 원한다. 그리고 이번 사건을 계기로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고 살아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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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26-04-24 01: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이런 일이 있었군요. 바로 곁에서 지켜보신 잉크냄새님도 수고가 많으셨네요.

우리나라의 스토킹 범죄와 성범죄는 도를 넘었다는 아니 아예 기본적인 선을 넘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쩜 이런 나라가 있을까 싶기도 하구요.

제가 가장 놀랐던 건, 그 옛날 화성 연쇄살인사건이 대부분 성적 쾌락에서부터 시작된 살인이었다는 부분이었어요. 정말 너무나도 다행히 과학기술의 발달로 뒤늦게라도 진범을 확인했지만, 증거 보관이 조금만 잘못 되었더라도 우리는 평생 화성 연쇄살인사건이라는 희대의 사건 진범을 모를 뻔 했지요.

감은빛 2026-04-24 01:22   좋아요 2 | URL
흔히 부산 돌려차기 사건이라고 말하는 그 건도 명백한 성범죄가 확실한데, 너무 어이없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증거가 없다는 식으로 결정되었다고 들었어요.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밀양 여중생 성범죄 사건이 있지요. 44명의 가해자가 무려 1년동안 성폭력을 가했지만, 거의 대부분 제대로 된 처벌은 받지 못했지요. 이런 나라가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라는 사실이 참담한 현실입니다.

잉크냄새 2026-04-24 21:09   좋아요 1 | URL
동물학대가 인간에 대한 범죄로 이어지듯이 스토킹이나 성추행도 강력한 성범죄나 가혹한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머리만 똑똑한 판새들의 사법 판결이 어이없는 경우가 많은데 피해자의 고통보다는 가해자의 창창한(?) 앞날을 걱정하는 경향이 두드러지는 것 같아요. 확실히 사법부가 성에 대해서도 너무 보수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부산 돌려차기 미친 넘은 출소 후 보복 살인을 장담하는데도 적법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 것 같아 참 어이가 없더군요. 밀양 여중생 사건은 마을 전체가 은폐하고 감추려 했다는 점에서 구토가 나올 지경입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국뽕이 아니라 사회의 아프고 약한 고리 먼저 생각하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firefox 2026-04-24 08: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당황스러우셨겠어요. 앞으로 일하시면서 같은 일이 없으시길 바래봅니다. 행복하고 건강하세요.

잉크냄새 2026-04-24 21:11   좋아요 0 | URL
네 좀 많이 당황스럽기는 했습니다. 흔한 경우는 아니니 더 이상 볼 일은 없겟죠. ㅎㅎ 폭스님도 행복하고 건강하세요.

페넬로페 2026-04-24 13: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그런 일이 있었군요.
반 년동안 스토킹을 당하고 그 남자가 화장실까지 따라 들어왔으니 그 분의 트라우마가 상당히 클 것 같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위험했을수도 있는데 도와주신 잉크냄새님에게도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저는 <82년생 김지영>을 읽으며 왜 젊은 남성들이 그렇게 김지영을 싫어했는지를 지금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요 ㅠㅠ
어떠한 것도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적 상황이 너무 안쓰러울 지경입니다.

잉크냄새 2026-04-24 21:23   좋아요 1 | URL
저도 그 분을 도서관에서 다시 봤을 때 그 분이 받았을 트라우마가 먼저 떠오르더군요. 잘 극복하길 바래야요.

<82년생 김지영>은 글에서 언급했듯이 저도 이해가 가지 않더군요.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고 자신의 입장을 설득시켜 가는 과정이 아니라 ˝그건 잘 모르겠고 우리도 힘들어˝ 하며 대결 구도를 만들어 간 게 문제가 아닌가 싶어요

마힐 2026-04-25 07: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노출되고 있는 위험을 여성 혼자 지고 다닌다는 것이 너무나 가혹하네요. 남자인 저도 어떨 땐 조마조마한 순간이 살면서 가끔 느끼는데 여성분들은 평범한 일상에서조차 조바심으로 살아야 한다니, 참으로 먹먹해지네요. 그저 단지 나와 내 주변이 좀 더 밝아지길 마음 낼 뿐입니다. 잉크냄새님 같은 분이 계셔서 그 도서관도 밝으리라 믿습니다.

잉크냄새 2026-04-26 09:26   좋아요 1 | URL
<82년생 김지영>을 읽으며 일상의 두려움과 공포에 대하여 여러가지 생각을 참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저희가 학창시절 추억처럼 떠올리는 좋아하는 여학생을 몰래 따라가 집을 알아내었던 것들조차 그녀들에게 두려움과 공포였을 수 있다는 생각에 참 마음이 착잡해지던 기억이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