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선수 황희찬에 대한 인종차별이 이슈가 되고 있다. 연습경기중 상대방 이탈리아 선수가 황선수에 대하여 “젝키 찬”이라는 인종차별적 호칭을 사용하였다. 올해 들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녀 수상자인 엠마 톰슨과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동양인 배우를 무시하는 듯한 인종차별적 행동을 하여 물의를 빚었고 축구선수 손흥민도 그의 동료 벤탕쿠르가 그를 지칭하며 “동양 사람들은 다들 비슷비슷하다”는 인종차별적 언행을 하였다. 또한 역차별적 현상도 발생하였는데 울산 현대 축구팀의 몇몇 선수가 동남아인의 피부색을 지칭하며 예전 태국 동료 선수인 사살락을 지칭한 경우도 있다.


나도 인종차별을 당한 경험이 있다. 첫번째는 시리아 알레포로 가던 버스안에서이다. 시리아 국경도시에서 비자를 받은 후 올라 탄 알레포행 버스에는 승객이 많지 않았다. 서너명의 중동 청년과 히잡을 둘러쓴 서너명의 중동 여인 그리고 여행자는 나 홀로였다. 국경을 벗어난 버스가 황량한 황톳길을 지나갈 즈음 갑자기 중동 청년 하나가 나를 보며 “젝키 찬”이라며 쿵푸 특유의 동작을 취하고 있었고 나머지 청년들은 그와 나를 번갈아가며 보며 웃음기 띤 얼굴을 하고 있었다. 중동 사람들의 이방인에 대한 과도한 친철과 관심에 어느 정도 익숙해있던 시기였기에 엄지로 코를 치며 괴성을 지르는 동작은 체키 찬이 아닌 브루스 리라고 친절히 설명해주고 황량한 버스 밖 풍경으로 눈을 돌렸다. 그 청년은 “젝키 찬” 을 몇 번 더 소리친 후 제풀에 지쳤는지 자리로 돌아갔다. 이 행동이 인종차별이라는 것은 알레포 숙소에서 만난 일본인 여행자를 통해서다. 저녁을 먹으러 간 자리에서 내가 당한 것과 동일하게 “젝키 찬”이 되어버린 그는 식사내내 인종차별에 대하여 분노하였다. 반면, 난 그 행동을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저 이방인에게 낯선 그들의 치기어린 행동 정도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두번째는 터키 보스포러스 해협 여객선안에서이다. 유럽에서 아시아로 넘어가는 여객선은 이미 꽉차 있었고 입석을 겨우 얻어 타고 해협을 넘어가고 있었다. 일반 선실이 아닌 복도 한 편에 놓인 기다린 의자에 앉아 해 지는 오후의 해협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누군가 무릎을 치고 지나갔다. 바라보니 승무원이 고개를 돌려 슬쩍 웃으며 쳐다보며 지나갔다. 처음엔 별 신경쓰이는 일도 아니었기에 웃음으로 화답해 주었는데 잠시후 또 다시 무릎을 치고 지나갔다. 옆에 앉은 유럽인보다 짧은 내 다리를 말이다. 어이없어 하며 옆에 앉은 유럽인을 바라보니 그가 나에게 살며시 귀뜸해주었다. “저놈 인종차별로 꽤 유명한 놈이야” 세 번째 다리를 치며 지나가는 순간, 일어서며 소리쳤다. “어이, 야” 승무원이 상황 파악 못하고 싱글벙글 다가오는 순간 옆에 있던 유럽여행자가 나서 그의 인종차별적 상황을 주위 사람들에게 설명해주었고 달아올랐던 분위기는 잠시 가라앉았다. 그 자리가 불편하여 자리를 옮겼다. 남은 시간 내내 모멸감과 분노로 가슴이 두근거리는 나에 비해 가끔 보이는 그 승무원은 여전히 싱글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배에서 내리는 순간, 그가 역겨운 웃음을 띄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길래, 나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해주었다. “개XX야”


스스로 겪은 일이기에 인종차별하면 내가 경험한 두 사건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한 사건에서는 그냥 헤프닝 정도로 여기고 지나갔고 또 다른 사건에서는 분노와 모멸감으로 가슴과 손이 진정되지 않았다. 인종차별 또한 분명히 개인에 따라 온도차가 존재할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헤프닝으로 누군가에게는 분노와 모멸감으로. 그러나 피해자가 어떤 감정을 느낀 것이 가해자의 행위를 정당화해주지는 않는다. “과민반응 아니야”,”난 아무렇지 않은데”…이런 행위는 두 번의 상처를 주는 행위이다. 피해자가 어떤 느낌을 받든 인종차별적 언행 자체의 문제로 귀결되어야 한다.


아래와 같은 용어가 인종차별적으로 간주되는 이유에 대하여 chat-GPT에 물어보니 다음과 같이 답해주었다.


"젝키 찬"이라는 용어가 인종차별적으로 간주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이름을 비하하는 의도: 특정 인종이나 민족의 대표적인 인물 이름을 비하하거나 희화화하는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은 그 인종이나 민족 전체를 무시하거나 경멸하는 태도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2. 고정관념 강화: 이러한 표현은 특정 인종에 대한 고정관념을 강화시키고, 그들을 하나의 개성이나 독립적인 인격체로 보지 않고, 단순히 어떤 인물이나 특성으로만 일반화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3. 역사적 배경: 아시아계 미국인이나 다른 아시아 출신 사람들이 서구 사회에서 오랜 시간 동안 겪어온 차별과 편견의 맥락에서, 이러한 표현은 그들의 고통과 경험을 경시하거나 조롱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동양인은 다들 비슷비슷하게 생겼다"라는 말이 인종차별적으로 간주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개별성을 무시함: 이 표현은 동양인 개개인의 고유한 외모와 개성을 무시하고, 그들을 하나의 동일한 집단으로 일반화합니다. 이는 개개인의 존엄성과 독립성을 침해하는 행위입니다.

  2. 고정관념 강화: 특정 인종이나 민족을 하나의 고정된 이미지로 묘사하는 것은 고정관념을 강화합니다. 이러한 고정관념은 사람들을 특정 방식으로만 바라보게 만들고, 다양한 경험과 배경을 가진 개인들을 하나의 틀에 가두는 결과를 낳습니다.

  3. 차별적 역사적 배경: 아시아인들은 역사적으로 많은 차별과 편견을 경험해왔습니다. "다 비슷비슷하게 생겼다"는 표현은 그들의 고유한 문화와 정체성을 무시하고, 그들의 경험과 역사를 경시하는 태도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4. 편견과 무지의 반영: 이러한 발언은 편견과 무지를 반영합니다. 이는 상대방을 깊이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 겉모습만으로 판단하는 태도이며, 이는 인종차별의 근본적인 문제 중 하나입니다.

  5. 부정적인 영향: 이러한 발언은 동양인들이 자신들의 외모와 정체성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갖게 할 수 있으며, 이는 자존감과 심리적 안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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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


-신경림-


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길은

별과 달과 해와

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

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것도 못 본 체

손 저어 대답하면서,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

누군가 있어 다시 세상에 나가란다면

낙타가 되어 가겠다 대답하리라.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 보고 살다가,

돌아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노라고.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

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

길동무 되어서.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 하나, 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길동무 되어 별과 달과 해와 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 저승길 떠나셨네요. 영면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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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처지는 나의 의식만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대하는 다른 사람의 의식도 규정하였다. -p62-


그래도 프랑스에는 사회적 연대라는 가치가 있기 때문에 한국과 다르오.한국은 가족간의 우애라든가 이웃간의 정, 윗세대에 대한 존경 등의 전통가치는 허물어지고 있는데 사회연대라는 가치는 아직 형성되지 않았어요. 그 비어 있는 가치관에 돈이 자리를 차지했고 또 헤게모니를 쥐게 된 거라고 나는 생각해요. -p130-


인간이 모두 똑같이 태어나지 않기 때문에 평등 개념이 창안되어야 했던 것이며, 인간이 모두 같은 이데올로기를 갖지 않기 때문에 인권 개념이 창안되었어야 했던 것입니다. -p210-


똘레랑스는 역사의 교훈입니다. 똘레랑스는 극단주의를 외면하며, 비타협보다 양보를, 처벌이나 축출보다 설득과 포용을, 홀로서기보다 연대를 지지하며, 힘의 투쟁보다 대화의 장으로 인도합니다. 그리고 권력의 강제로부터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합니다. -p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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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 선생의 부음을 접하고 책꽂이를 찾아 보니 세권의 책이 이십년의 세월을 가만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를 꺼내어 들춰보니 그 시절의 나는 저 구절에 밑줄을 치며 그의 글에 심취해 있었구나 싶다. 실천적 진보 지식인들이 이제 하나 둘 세상을 떠나간다. 당신들이 남긴 글과 삶을 통하여 꿈은 이어질테니...영면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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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밥에는 낚싯바늘이 들어 있다. 밥을 삼킬 때 우리는 낚싯바늘을 함께 삼킨다. 그래서 아가미가 꿰어져서 밥 쪽으로 끌려간다. 저쪽 물가에 낚싯대를 들고 앉아서 나를 건져올리는 자는 누구인가. 그 자가 바로 나다. 이러니 빼도 박도 못하고 오도 가도 못한다. 밥 쪽으로 끌려가야만 또다시 밥을 벌 수가 있다 -p71-









밥에는 대책이 없다. 한두 끼를 먹어서 되는 일이 아니라, 죽는 날까지 때가 되면 반드시 먹어야 한다. 이것이 밥이다. (...중략...) 나는 밥벌이를 지겨워하는 모든 사람들의 친구가 되고 싶다. 친구들아, 밥벌이에는 아무 대책이 없다. 그러나 우리들의 목표는 끝끝내 밥벌이가 아니다. 이걸 잊지 말고 또다시 각자 핸드폰을 차고 거리로 나가서 꾸역 꾸역 밥을 벌자. 무슨 도리 있겠는가. 아무 도리 없다.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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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 없음을 알면서도 꾸역꾸역 해야하는 살아있음의 구체성인 밥! 김훈이 말하듯 밥은 무엇보다도 긍정되어야 하고 무시되지 말아야 하는 것이지만 생존의 가장 기초인 밥마저 스스로의 입질을 유도하는 낚싯 바늘을 품고 있다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다. 노동을 강요하고, 더 일하라고 부추기는 사회에 대해 우리의 목표는 끝끝내 밥벌이가 아니다 라는 냉철한 통찰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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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을 무기로 상대방을 지배하려고 해. 자신이 얼마나 불행하고, 얼마나 괴로운지 알림으로써 주변 사람들-이를테면 가족이나 친구-을 걱정시키고, 그들의 말과 행동을 속박하고 지배하려 들지. 첫날 말했던, 집에 틀어박혀서 지내는 사람들은 곧잘 불행을 무기로 하는 우월감에 빠지네. 아들러가 “오늘날 연약함은 매우 강한 권력을 지닌다”라고 지적했을 정도야. -p103-


나는 옳다, 즉 상대는 틀렸다. 그렇게 생각한 시점에서 논쟁의 초점은 ‘주장의 타당성’에서 ‘인간관계의 문제’로 옮겨가네’ 즉 ‘나는 옳다’는 확신이 ‘이 사람은 틀렸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고, 궁극적으로는 ‘그러니까 나는 이겨야 한다’며 승패를 다투게 된다네. 이것은 완벽한 권력투쟁일세. -p123-


타인에게 잘 보이려고 남들의 시선에 신경을 쓰는 걸세. 그것은 타인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자기에 대한 집착이나 다름없지. (중략) ‘남에게 어떻게 보이느냐’에만 집착하는 삶이야말로 ‘나’이외에는 관심이 없는 자기중심적인 생활양식이라는 것을.-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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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는 미움과 저자가 말하는 미움은 그 의미가 다르다. 나의 미움은 어리석고 그의 미움은 정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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