찡칭,
네가 전화하지 않았다면 참 삭막한 주말이었을꺼야. 누런 하늘을 멍하니 보고 있었거나 목적지 없는 거리를 걸었을지도 몰라. 네가 사천성 출신이라는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면 네가 사천요리를 사주고 싶어한다는 전화기 저편의 중국어를 알아듣지 못했을꺼야. 벌써 낙엽이 바람에 정처 없이 휩쓸리기 시작한 거리 벤치에서 식당에서 쓰는 중국어 표현을 어눌한 발음으로 연습하는 나를 멀리서 쳐다보는 너를 발견했을 때 순간 가슴 한 켠이 먹먹해지더라. 알 수 없는 먹먹함은 중국 식당에서도, 거리로 나오고 나서도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았어. 내가 그토록 적응하지 못하는 중국음식의 강한 향신료 때문도 아니고, 사천요리 특유의 매운 맛도 아니었어. 물론 향수 때문도 아니었어. 잎을 다 떨구고 겨울을 맞이하는 가로수 옆 너의 모습이 앙상해 보였고, 낡고 닳아 헤어진 소매 자락이 힘없이 나폴거리는 모습이 서글퍼 보였기 때문인지도 몰라. 많은 인파 속에서 네 외투를 가리키며 선물해주고 싶다는 눈치를 보였을 때, 넌 “메이꿘시(괜찮아요)”를 되풀이하였고, 적합한 중국어 표현을 찾지 못한 난 “워~(난~)”만 되풀이하다 너의 손바닥에 “心”자를 적어주었어. 손바닥 위 글자를 따라 내려간 체온이 사라지기 전에 넌 밝은 얼굴로 머리를 끄덕였어. 겨울 외투를 사서 나온 거리에서 한번 입어보라는 제안에 넌 지금 신고 있는 운동화에 입는 옷이 아니라며 다소 뽀로통한 표정을 지었고, 옷을 고르던 모습이나, 가격을 흥정하는 모습이나, 뽀로통한 모습에서 한국이나 중국이나 여자는 똑같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 큰 소리로 웃고 말았어. 광장의 다른 중국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찡칭, 천진의 겨울은 뼛속을 파고든다고 한다. 따뜻한 겨울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