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국경을 넘는다는 건 너무나 생소한 일이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지리학적 특성상 하늘을 날아 다른 나라를 가는 것이 일반적 상식이었으며 북쪽의 국경은 스틱스 강을 건너는 것보다도 더 상상하기 힘든 곳이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바라나시에 머무는 내내 나는 가끔씩 불현듯 떠오르는 스트레스에 빠지곤 했다. 그것은 다음 목적지가 네팔이었고 그곳을 가자면 인도-네팔 국경인 소나울리를 걸어서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어찌보면 별것 아닌 이 일이 계속 맘에 떠돈 것은 걸어서 국경을 넘는다는 낯선 두려움 외에도 그 동안 인도 곳곳(특히, 기차역)에서 겪은 불합리하고 비효율적인 방식에 질린 이유도 있을 것이다.
바라나시에서 새해를 맞이한 다음 날 길을 떠났다. 바라나시에서 오후 3시경 출발한 기차는 다음날 새벽이 되어서야 고락푸르에 도착하였고 간단히 배를 채운 후 올라탄 버스는 점심경이 되어서야 소나울리에 도착하였다. 그곳은 '나 면세점이요' 하는 콧대 높은 건물들이 서 있는 국경 특유의 어떤 특징을 갖추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었고 마을 중앙의 꽤 넓은 길을 통해 사람과 소와 릭샤가 번잡하게 오고 가고 있는 그저 평범함 인도의 시골 마을 같은 풍경이었다.

(인도 소나울리 국경 - 저 명확한 표지판을 못 본 것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국경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일 것이다.)
인파에 휩싸여 두리번거리며 한참을 걸으니 허름한 일련의 일층 건물 속에서 그나마 관공서 같은 모습을 간직한 건물이 눈에 띄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두 명 정도의 사무 인원이 있는 공간에 뚱뚱한 중년의 남성이 미소를 띄며 맞이했다. 출국 수속을 하러 왔다고 하니 그가 큰 소리로 welcome to nepal 이라고 웃는다. 잘못 들었나 싶어 물어보니 이미 국경을 넘어 네팔에 도착했다고 한다. 아, X 됐다. 스틱스 강을 건넌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싶었다. 여행내내 가끔씩 나를 불안하게 하던 상상이 현실이 된 것이다. 당황해 어쩔 줄 몰라하며 큰 죄라도 진 것처럼 최대한 비굴하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으니 다시 인도로 넘어가서 도장을 받아오라고 한다. 국경을 넘어가는 일을 옆 마을 마실 가듯이 말하는 그에게 증명서라도 하나 써 달라고 하니 그냥 갔다 오라고 한다. 다시 발걸음을 돌러 인도로 향하니 그제서야 개선문 같은 아치형 건물이 하나 눈에 들어온다. 어떻게 저걸 놓칠 수 있을까. Indian Border Ends라고 선명히 적힌 저 글귀를 시장 같은 인파 속에서 보지 못하고 넘어선 것이다. 아마 보통 생각하는 국경의 모습이 내 눈을 가린 이유일 것이다. 그 글귀 아래에는 인도와 네팔 병사가 비슷한 색의 군복을 입고 벽에 기대어 웃으며 서로 담소를 나누고 있었고 여전히 사람과 소와 릭샤가 넘어다니고 있었다. 군인을 보니 왠지 찔끔 쫄아 다시 무단 출국에 대해 고해성사를 하니 귀찮다는 듯 그냥 넘어가라고 한다. 다시 인도로 넘어와 눈에 불을 켜고 건물을 찾으니 오, 저기 한쪽 벽에 책상 두 개를 놓고 흰색 와이셔츠를 입은 인도인 두 명이 그제서야 '나 공무원이요' 하는 포즈로 서 있었다. 출국 절차를 간단히 마친 후 출입국 관리소를 찾기 어려워 네팔에 벌써 넘어갔다가 오는 길이라고 기절초풍할 고해성사를 하니 종종 있는 일이라며 허허 웃는다. 아무 일 아니라는 듯 겁나 해맑게.
다시 국경을 넘어가는 길 위에 섰다. 하얀 분필 가루로 그어진 선조차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사람과 소와 릭샤가 어지러이 넘나들고 있는 길 위일 뿐이었다. 양 국가에 한 발씩 걸치고 잠시 서 보니 문득 분단국인 우리에게 국경이란 하나의 엄청난 트라우마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철조망이 쳐지고 총검을 들고 경계 태세를 유지하고 있는 곳, 한발짝 건넌다는 것이 목숨을 담보로 하지 않으면 안되는 길, 그렇게 형성된 국경에 대한 트라우마가 스스로를 금기라는 틀에 가두고 있었던 것이다. 여행길 내 맘 속에도 굳건히 또아리를 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옆 마을 마실과 다름없는 이 길 위에서 오직 나만이 다른 풍경 속 다른 색채를 띄고 다른 길을 걷는 듯 긴장하고 어색한 발걸음을 이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치형 경계선에 기대어 담배 한 대를 물었다. 문득 존 레넌이 Imagine에서 노래한 곳이 이런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Imagine there's no contr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