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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밤의 코코아
다나베 세이코 지음, 서혜영 옮김 / 포레 / 2013년 11월
평점 :
품절
올봄, '봄이구나 연애하고 싶다'는 생각을 솔솔 들게 한 <서른 넘어 함박눈>을 읽은 뒤 새삼 다나베 세이코의 매력에 빠졌다. 이 할머니는 어쩜 이렇게 오글거리지 않는 연애소설을 쓰시지, 싶으며 몇 작품 더 찾아 읽으려 했는데 그새 마음이 난폭하여 '연애는 무슨, 다 미워' 모드가 되어 추리소설만 주구장창 읽어버렸다. 그렇게 여름과 가을이 가고 매일매일 점점 추워지는 어느 날 <고독한 밤의 코코아>로 다나베 세이코가 다시 찾아왔다. 별 생각 없이 가볍게 책장을 넘기다가 어느샌가 빠져들어 마지막 장까지 다 넘어갔는데, 읽고 나니 여자의 마음을 잘 표현한 이 할머니가 더 얄미워졌다. 무려 30년 전(!)에 쓰여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작품.
<고독한 밤의 코코아>에는 총 열두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여기에 등장하는 여자들은 20~30대 여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정도로 친숙했다. 애인에 대해서 "인생이나 사람에 대해서는 척하면 착 통하지만 좀더 소중한 것, 우리의 관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해하기도 하고, 연애에 빠진 동료를 "꽤 훌륭한 취향을 가진 여자였는데 지금은 좀 눈이 뒤집혀버린 느낌"이라며 약간 조롱했지만 정작 자신도 연애를 시작한 뒤 변해버려 "연애라는 건 시작되기 전이 가장 멋진 건지도 모른다"고 씁쓸해하기도 한다. 그가 건넨 따뜻한 말이 만우절 거짓말이 아닌 진심일지 모른다고 설레하기도 하고, 헤어지고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자신이 정말 행복했음을, 그 행복은 다시 찾아오지 않을 것임을 깨닫기도 한다.
사랑 이야기뿐만이 아니라 나이가 들면서 이상과 현실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는 점도 좋았다. 예를 들어, "헛된 노력일 수도" 있다고 "어쩌면 영원히 아무 보상도 받지 못한 채 끝날 수 있다"고, "결혼도 연애도 못 해보고 싸구려 원고지만 더럽히면서 청춘을 다 날려보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월급을 한 푼 두 푼 모아 작가라는 꿈을 향해 가는 모습을 마냥 긍정적으로 그리지 않은 게 좋았다. "나이가 되면 자신에게 어울리는 이미지를 설계해서 그 이미지에 가까워지도록 자신을 교정하고 수련해야 한다"는 '나이 화장'에 대한 이야기도 한 살 한 살 먹으며 나도 조금씩 생각해오던 문제라서 그런지 남 얘기 같지 않았다.
<고독한 밤의 코코아> 속 여자들을 만나며, 나이는 달라도, 처한 상황은 달라도, 심지어는 시대가 달라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어하는 여자의 마음은 변치 않는구나 싶었다. 열두 편의 단편들은 저마다 각각의 색깔을 갖고 있지만, 여느 연애소설처럼 마냥 핑크빛만은 아니라 오글오글한 연애소설은 닭살 돋아 못 읽는 나도 부담스럽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자극적이지는 않지만 은근한 맛이 있는, 다나베 세이코의 삶에 대한, 사람에 대한, 사랑에 대한 연륜이 묻어나는 이야기들. <고독한 밤의 코코아>라는 제목처럼 깊어가는 겨울밤 따뜻한 코코아 한 잔과 함께 읽으면 몸도 마음도 조금은 녹아들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