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관의 살인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권일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오랫동안 많은 추리소설 마니아들에게 회자되었을 정도로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에는 '명불허전'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다. 오랫동안 절판되어 많은 이들을 헌책방을 떠돌게 했던 관 시리즈. 다시금 소개되는 관 시리즈의 네번째는 <미로관의 살인>이다. <암흑관>은 분량의 압박 때문에 미뤄오고 있어 개인적으로는 <십각관>과 <시계관>에 이은 세번째 만남. 나카무라 세이지라는 건축가가 일본 곳곳에 세운 독특한 건축물에서 벌어지는 독특한 사건을 다루고 있는 관 시리즈는 일단 사건의 배경 자체가 독특하다는 점에서 흥미를 끈다. 이번에는 겉으로 보기에는 그 규모가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는, 지하에 위치한 방의 구조가 미로처럼 설계된 '미로관'에서의 사건이다.

  사실 '미로'하면 신화 속의 아리아드네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미로. 그곳에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기 위해 가는 테세우스에게 아리아드네는 실타래를 건넨다는 이야기는 관용적인 표현으로 사용할 정도로 우리에게 익숙하다. 미로관에서도 아리아드네는 빠지지 않는다. 아니, 이 기괴한 미로관에서 아리아드네 이야기는 주요 모티브 중에 하나다. 등장인물들이 머무는 각 방의 이름은 테세우스, 미노타우로스, 이카루스, 미노스, 포세이돈 등 신화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절필을 선언한 한 노 추리소설 작가의 환갑을 기념하는 모임에 네 명의 추리소설 작가를 비롯한 비평가 등 여덟명의 사람들이 초대된다. 하지만 정작 모임 당일, 작가는 자살을 택하고 닷새 동안 미로관에 머물며 최고의 추리소설을 써낸 사람에게 자신의 유산을 물려주겠다는 엄청난 유언을 남긴다. 이에 거액의 유산을 얻기 위해 짧은 시간 안에 추리소설 구상을 시작하는 이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이 쓴 소설 속의 상황처럼 한 명씩 죽어가기 시작한다. 갇힌 미로 속에서 계속되는 살인. 대체 누가, 무엇을 위해 죽음을 만들고 있는 것인가.

  아무래도 오랜 시간의 격차가 있기 때문인지 <미로관의 살인> 속의 트릭은 신선하지는 않다. 적어도 '새로운 놀라움'이라는 점에서만 본다면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도 분명 있다. 결말이 어찌될 것이라고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그럼에도 내가 늦은 밤 읽기 시작한 이 책을 다 읽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책을 놓지 못하게 몰입시키는 뭔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오랫만에 읽는 본격 미스터리의 매력에 빠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책 속의 책이라는 구성으로 이야기가 끝났구나 싶어질 때 마침내 비밀이 밝혀지는 구조도 지루하지 않아서 좋았다. 분량도, 내용도, 아야츠지 유키토의 매력을 느끼기에 적당한 작품. '철없이 가볍게 놀았구나'라는 작가 자신의 개정판 후기처럼 독자도 즐겁게 추리의 향연을 즐길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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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3-02 2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미로관이 제일 잼나다고 누가 그러셔서 조금 기대하고 있었는데..
트릭이 그다지 신선하지는 않군요? ㅠㅠ
저는 시계관과 십각관이 조금 그랬거든요, 약간 부자연스럽다고 느꼈달까...
그런데 암흑관은 3권의 압박 속에서도 참 재미있었어요...

머, 관 시리지 매니아이니 미로관도 곧 읽어봐야겠습니다!
즐거운 한주되세요.

이매지 2011-03-02 23:03   좋아요 0 | URL
트릭이 신선한 느낌이 들지 않았던 것은 비슷한 류의 작품을 많이 읽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네요^^ 신선한 느낌은 아니었지만 훅 하고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었던 작품이었어요.

저도 어여 암흑관을 읽어봐야 할 텐데 말이죠 ㅎㅎ

카스피 2011-03-11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미로관이 다시 재간되었군요.전 서울 출판사에서 나온 관 시리즈를 다 갖고 있는데 오랜만에 다시 봐야 겠네요^^

이매지 2011-03-11 13:09   좋아요 0 | URL
2009년에 신장개정판이 출간되어서 예전과는 다른 판본으로 작업을 했다고 하더라구요. 비교해서 읽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네요 :)
 
미로관의 살인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권일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1년 1월
절판


시마다 씨, 작품에 대한 평가란 다분히 개인의 취향에 영향을 받는 문제인 만큼 우리는 각자 입장에서 기탄없이 의견을 이야기하고 진지하게 논의하는 가운데 결론을 찾아갈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예를 들면 '도입부의 불가해성' '중반의 서스펜스' '결말의 의외성', 이 세 가지를 좋은 미스터리의 조건이라고 흔히 이야기하는데, 여기에도 얼마든지 예외는 있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 객관적인 기준 같은 것은 있겠지만 저 네 사람이라면 모두 그런 조건을 충분히 소화해낼 수 있는 작가니까요…….-1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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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아트리스와 버질
얀 마텔 지음, 강주헌 옮김 / 작가정신 / 201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인도에서 살던 한 소년이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떠나던 중 난파되어 몇몇 동물들과 구명보트를 타며 일어나는 이야기 <파이 이야기>. <파이 이야기>와 <베아트리스와 버질>은 동물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같다. 하지만 <파이 이야기>가 생존을 위한 '투쟁'의 이미지와 종교적인 느낌이 강했다면, <베아트리스와 버질>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좀더 암시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제목자와 표지 이미지 때문에 비슷비슷해 보이는 두 책을 다르게 읽을 수 있게 하는 요소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야기는 저자 얀 마텔과 여러모로 비슷해 보이는 화자 '헨리'의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두번째 소설의 성공으로 명성을 얻은 헨리는 전쟁을 다루는 방식은 그렇게 다양하면서 홀로코스트를 다루는 방식은 왜 천편일률적일까 하는 의문을 갖는다. 이에 헨리는 한쪽 페이지에는 소설을 맞은편 페이지에는 평론을 수록한 플립북을 만들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그의 원고를 접한 관계자들의 거절과혹평이 이어지고, 결국 그는 소설가로서의 삶을 떠나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자신이 소설가임을 알려주는 것은 세계 각국의 독자들이 보내오는 편지뿐. 그렇게 도착한 편지 가운데 한 독자가 보내온 플로베르의 단편을 읽게 된 헨리. 동물의 죽음에 대한 부분에 형광펜이 칠해진 그 단편을 읽어내려간 헨리는 그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메시지에 마음이 흔들린다. 마침 독자의 주소가 그의 집 근처였기에 그는 편지나 전할 요량으로 그곳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박제사로 일하고 있는 헨리라는 노인을 만나게 된다. 

  소설과 헨리와 박제사 헨리. 두 사람은 닮은 듯 다르다. '글'을 매개체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가려고 한다는 점에서 둘은 비슷하지만, 그 방식이나 삶에 대한 자세는 사뭇 다르다. <20세기의 셔츠>라는 희곡을 써내려가고 있는 박제사 헨리는 이야기 속에서 당나귀 베아트리스와 고함원숭이 버질을 통해 홀로코스트에 대해 이야기한다. 무언가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고, 먹을 것을 갈망하고, 자유를 소망하는 두 동물의 이야기를 듣노라면 독자는 어느샌가 소설가 헨리처럼 이 이야기가 홀로코스트에 대한 이야기임을 깨닫게 된다. 단테의 <신곡>에서 단테가 베르길리우스(버질)와 베아트리체(베아트리스)의 안내를 받는 것처럼 <베아트리스와 버질>에서 베아트리스와 버질도 홀로코스트에 대한 안내를 맡는다. 그동안 그저 살아남은 자들의 '증언'으로만 기록된 홀로코스트. 그 사건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 소설가 헨리가 이룰 수 없었던 그 목표를 박제사 헨리는 <20세기의 셔츠>를 통해 이뤄낸다. 

  "모든 것이 끝나는 어느 날, 우리가 겪은 일들을 어떻게 말해야 할까"라는 대화를 나누는 베아트리스와 버질. 그들의 말처럼 홀로코스트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이야기 말미에 붙은 '구스타프를 위한 게임'까지 읽어가면 인간다움을 포기하게 하는 비극적인 상황에 절로 고개를 떨구게 된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우리는 언제까지 자신의 인간다움을 지켜낼 수 있을까. 베아트리스와 버질. 두 안내자를 정신없이 따라가다보니 어느새 홀로코스트 한복판이었다. 은유와 비유로 잘 포장되어 있지만, 그 속에는 무시무시한 진실이 숨겨져 있는 느낌이 들었다. 오랫동안 기다려온만큼 더 탄탄한 이야기로 돌아온 얀 마텔. 그가 다음으로 풀어갈 주제는 어떤 것이 될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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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아트리스와 버질
얀 마텔 지음, 강주헌 옮김 / 작가정신 / 2011년 2월
구판절판


헨리는 두 번째 소설도 첫 소설과 마찬가지로 필명으로 발표했고 큰 성공을 거두었다. 두 번째 소설은 많은 상을 받았고 수십 개 언어로 번역됐다. 더분에 헨리는 세계 전역에서 열리는 문학 페스티벌과 번역된 책을 발간하는 행사에 참가했다. 많은 학교와 북클럽이 그 소설을 권장소설로 채택했고, 비행기나 기차에서도 그 소설을 읽는 사람들이 어김없이 눈에 띄었다. 할리우드까지 그 소설을 영화로 제작하기 시작했고, 그 밖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헨리는 근본에서는 예전과 다름없이 익명의 삶을 계속 살았다. 작가가 유명인사가 되는 경우는 무척 드물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작품이 모든 인기를 독차지한다. 대부분의 독자가 자신이 읽은 책의 표지는 쉽게 알아보지만 카페에서 한 귀퉁이에 앉아 있는 작가를 보면 대개 '저 사람…… 누구더라? 잘 기억나지 않는데……머리칼이 길지 않았나…… 어, 가버렸네'라는 반응을 보인다. -5~6쪽

헨리는 자신의 플립북에서, 유대인에 대한 증오를 지루하게 오랫동안 소름끼치도록 폭발시킨 사건, 즉 종교적 용어를 택한 이상한 관습 때문에 홀로코스트로 널리 알려진 사건을 다루었다. 특히, 헨리는 그 사건이 이야기 형식으로 표현되는 방식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오랫동안 많은 책을 읽고 많은 영화를 보았지만 홀로코스트를 실질적으로 다룬 픽션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때문이었다. 그 사건에 대한 접근 방법은 거의 언제나 역사적이고 사실적이었으며, 다큐멘터리나 일화적 형식을 띠었고, 증언을 바탕으로 한 정확한 기록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홀로코스트에 대한 원형적 자료는 생존자의 회고록이었다.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가 대표적인 예다. 반면 인간에게 닥치는 또 하나의 격동적인 사건인 전쟁의 경우는 끊임없이 다른 무엇으로 변형되고 있었다. 전쟁은 진부한 사건, 즉 실제보다 덜 잔혹한 사건으로 변해가고 있었다.-13쪽

현대전은 수천만 명을 죽음에 몰아넣고 적잖은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렸지만, 전쟁의 실상을 전달하는 표현 방식들은 전쟁 스릴러, 전쟁 코미디, 전쟁 로맨스, 전쟁 공상과학, 전쟁 프로파간다 등 다양한 형태로 대중에게 보여지고 들려지며 읽히기 위해서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그렇지만 '전쟁'이 '진부화'와 등호관계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전쟁을 진부한 사건으로 전락시켰다고 항의하는 퇴역군인회가 있었던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 우리가 전쟁을 그런 식으로 다양한 방향에서, 또 다양한 목적에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다채로운 표현 방식을 통해서 우리는 전쟁이 우리에게 무엇을 뜻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이런 상상력이 홀로코스트에는 허용되거나 용인되지 않았다. 그 끔찍한 사건은 거의 전적으로 하나의 관점, 즉 역사적 사실주의로만 표현됐다. 이야기, 항상 똑같은 이야기가 언제나 똑같은 날짜에 일어났다. 무대도 똑같고 등장인물도 변하지 않았다. -13~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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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 가족 레시피 - 제1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6
손현주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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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나 가출을 꿈꾼다.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훌쩍 사라지고 싶다. 하지만 아직까지 시도도 못 한 겁쟁이기도 하다. 가출을 시도하지 않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완벽한 가출을 위해서는 준비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실 가출은 충동적으로 나가는 게 맞미나 그렇게 나간 아이들을 보면 모두가 개고생을 한다. 다시 집으로 개 끌려오듯 돌아오는 경우는 정말 최악이다. 할매나 아빠에게 내 존재감이나 한번 알리고 마는 집 나간 똥개 신세는 되고 싶지 않다. 신중한 가출이 필요하다. 가출은 곧 권여울의 독립선언이므로. 그래서 나는 가출이란 말 대신 출가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 내 수첩에도 '완벽한 출가를 위한 지침서'를 만들어 틈틈이 정보를 모아 적어두었다. -10쪽

쉬지 않고 쫑알대는 참새를 바라보며 이 세상에는 딱 두 가지 부류가 있다는 걸 새삼 느꼈다. 관리 받는 년과 방해 받는 년. 참새나 류은이 같은 아이들을 보면 가끔 화날 때가 있다. 아무리 똑같이 놀았다 해도 본질적으로 그 아이들과 나는 삶의 질부터가 다르다. 그 아이들은 마음 놓고 놀아도 최소한 안전망이라도 있지만, 나 같은 아이는 그물망조차 없어 바닥을 지나 지하 3층까지 떨어질 수 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평등하다는 개뼈다귀 같은 소리는 누가 지껄였는지 모르겠다. 만약 그 인간이 내 눈앞에 있다면 머리를 죄다 쥐어뜯어 놓고 싶다. 절대 인간은 평등하지 않다. 이건 내가 십칠 년간 세상을 겪으면서 깨달은 진리다. -100쪽

미하일은 세몬과 살면서 그 질문의 답을 얻는다.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미래를 볼 수 있는 지혜고,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것은 사랑이며, 사람은 사랑 때문에 산다는 게 그 답이었다. 미하일은 지극히 종교적인 이 세 가지 답을 깨닫고 하늘로 올라간다.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는 것은 영원한 생명이며, 인간의 내부에 있는 것은 욕심이며, 결국 인간은 자기 자신의 힘으로 살아간다. 우리 가족을 생각하면서 얻은 답이다. 모두들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고 있지, 누군가의 관심과 사랑으로 살아가는 인간은 한 명도 없다. 미하일이나 세몬은 책 속에나 등장할 법한 인물들이다. 이런 인간이 진짜 있다면 매점 식권을 복사하는 일이나 아빠의 호주머니를 뒤지는 허접한 일 따위는 결코 안 할 것이다. -10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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