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아트리스와 버질
얀 마텔 지음, 강주헌 옮김 / 작가정신 / 201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인도에서 살던 한 소년이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떠나던 중 난파되어 몇몇 동물들과 구명보트를 타며 일어나는 이야기 <파이 이야기>. <파이 이야기>와 <베아트리스와 버질>은 동물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같다. 하지만 <파이 이야기>가 생존을 위한 '투쟁'의 이미지와 종교적인 느낌이 강했다면, <베아트리스와 버질>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좀더 암시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제목자와 표지 이미지 때문에 비슷비슷해 보이는 두 책을 다르게 읽을 수 있게 하는 요소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야기는 저자 얀 마텔과 여러모로 비슷해 보이는 화자 '헨리'의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두번째 소설의 성공으로 명성을 얻은 헨리는 전쟁을 다루는 방식은 그렇게 다양하면서 홀로코스트를 다루는 방식은 왜 천편일률적일까 하는 의문을 갖는다. 이에 헨리는 한쪽 페이지에는 소설을 맞은편 페이지에는 평론을 수록한 플립북을 만들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그의 원고를 접한 관계자들의 거절과혹평이 이어지고, 결국 그는 소설가로서의 삶을 떠나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자신이 소설가임을 알려주는 것은 세계 각국의 독자들이 보내오는 편지뿐. 그렇게 도착한 편지 가운데 한 독자가 보내온 플로베르의 단편을 읽게 된 헨리. 동물의 죽음에 대한 부분에 형광펜이 칠해진 그 단편을 읽어내려간 헨리는 그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메시지에 마음이 흔들린다. 마침 독자의 주소가 그의 집 근처였기에 그는 편지나 전할 요량으로 그곳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박제사로 일하고 있는 헨리라는 노인을 만나게 된다. 

  소설과 헨리와 박제사 헨리. 두 사람은 닮은 듯 다르다. '글'을 매개체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가려고 한다는 점에서 둘은 비슷하지만, 그 방식이나 삶에 대한 자세는 사뭇 다르다. <20세기의 셔츠>라는 희곡을 써내려가고 있는 박제사 헨리는 이야기 속에서 당나귀 베아트리스와 고함원숭이 버질을 통해 홀로코스트에 대해 이야기한다. 무언가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고, 먹을 것을 갈망하고, 자유를 소망하는 두 동물의 이야기를 듣노라면 독자는 어느샌가 소설가 헨리처럼 이 이야기가 홀로코스트에 대한 이야기임을 깨닫게 된다. 단테의 <신곡>에서 단테가 베르길리우스(버질)와 베아트리체(베아트리스)의 안내를 받는 것처럼 <베아트리스와 버질>에서 베아트리스와 버질도 홀로코스트에 대한 안내를 맡는다. 그동안 그저 살아남은 자들의 '증언'으로만 기록된 홀로코스트. 그 사건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 소설가 헨리가 이룰 수 없었던 그 목표를 박제사 헨리는 <20세기의 셔츠>를 통해 이뤄낸다. 

  "모든 것이 끝나는 어느 날, 우리가 겪은 일들을 어떻게 말해야 할까"라는 대화를 나누는 베아트리스와 버질. 그들의 말처럼 홀로코스트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이야기 말미에 붙은 '구스타프를 위한 게임'까지 읽어가면 인간다움을 포기하게 하는 비극적인 상황에 절로 고개를 떨구게 된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우리는 언제까지 자신의 인간다움을 지켜낼 수 있을까. 베아트리스와 버질. 두 안내자를 정신없이 따라가다보니 어느새 홀로코스트 한복판이었다. 은유와 비유로 잘 포장되어 있지만, 그 속에는 무시무시한 진실이 숨겨져 있는 느낌이 들었다. 오랫동안 기다려온만큼 더 탄탄한 이야기로 돌아온 얀 마텔. 그가 다음으로 풀어갈 주제는 어떤 것이 될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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