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아트리스와 버질
얀 마텔 지음, 강주헌 옮김 / 작가정신 / 2011년 2월
구판절판


헨리는 두 번째 소설도 첫 소설과 마찬가지로 필명으로 발표했고 큰 성공을 거두었다. 두 번째 소설은 많은 상을 받았고 수십 개 언어로 번역됐다. 더분에 헨리는 세계 전역에서 열리는 문학 페스티벌과 번역된 책을 발간하는 행사에 참가했다. 많은 학교와 북클럽이 그 소설을 권장소설로 채택했고, 비행기나 기차에서도 그 소설을 읽는 사람들이 어김없이 눈에 띄었다. 할리우드까지 그 소설을 영화로 제작하기 시작했고, 그 밖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헨리는 근본에서는 예전과 다름없이 익명의 삶을 계속 살았다. 작가가 유명인사가 되는 경우는 무척 드물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작품이 모든 인기를 독차지한다. 대부분의 독자가 자신이 읽은 책의 표지는 쉽게 알아보지만 카페에서 한 귀퉁이에 앉아 있는 작가를 보면 대개 '저 사람…… 누구더라? 잘 기억나지 않는데……머리칼이 길지 않았나…… 어, 가버렸네'라는 반응을 보인다. -5~6쪽

헨리는 자신의 플립북에서, 유대인에 대한 증오를 지루하게 오랫동안 소름끼치도록 폭발시킨 사건, 즉 종교적 용어를 택한 이상한 관습 때문에 홀로코스트로 널리 알려진 사건을 다루었다. 특히, 헨리는 그 사건이 이야기 형식으로 표현되는 방식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오랫동안 많은 책을 읽고 많은 영화를 보았지만 홀로코스트를 실질적으로 다룬 픽션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때문이었다. 그 사건에 대한 접근 방법은 거의 언제나 역사적이고 사실적이었으며, 다큐멘터리나 일화적 형식을 띠었고, 증언을 바탕으로 한 정확한 기록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홀로코스트에 대한 원형적 자료는 생존자의 회고록이었다.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가 대표적인 예다. 반면 인간에게 닥치는 또 하나의 격동적인 사건인 전쟁의 경우는 끊임없이 다른 무엇으로 변형되고 있었다. 전쟁은 진부한 사건, 즉 실제보다 덜 잔혹한 사건으로 변해가고 있었다.-13쪽

현대전은 수천만 명을 죽음에 몰아넣고 적잖은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렸지만, 전쟁의 실상을 전달하는 표현 방식들은 전쟁 스릴러, 전쟁 코미디, 전쟁 로맨스, 전쟁 공상과학, 전쟁 프로파간다 등 다양한 형태로 대중에게 보여지고 들려지며 읽히기 위해서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그렇지만 '전쟁'이 '진부화'와 등호관계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전쟁을 진부한 사건으로 전락시켰다고 항의하는 퇴역군인회가 있었던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 우리가 전쟁을 그런 식으로 다양한 방향에서, 또 다양한 목적에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다채로운 표현 방식을 통해서 우리는 전쟁이 우리에게 무엇을 뜻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이런 상상력이 홀로코스트에는 허용되거나 용인되지 않았다. 그 끔찍한 사건은 거의 전적으로 하나의 관점, 즉 역사적 사실주의로만 표현됐다. 이야기, 항상 똑같은 이야기가 언제나 똑같은 날짜에 일어났다. 무대도 똑같고 등장인물도 변하지 않았다. -13~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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