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 가족 레시피 - 제1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6
손현주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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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나 가출을 꿈꾼다.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훌쩍 사라지고 싶다. 하지만 아직까지 시도도 못 한 겁쟁이기도 하다. 가출을 시도하지 않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완벽한 가출을 위해서는 준비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실 가출은 충동적으로 나가는 게 맞미나 그렇게 나간 아이들을 보면 모두가 개고생을 한다. 다시 집으로 개 끌려오듯 돌아오는 경우는 정말 최악이다. 할매나 아빠에게 내 존재감이나 한번 알리고 마는 집 나간 똥개 신세는 되고 싶지 않다. 신중한 가출이 필요하다. 가출은 곧 권여울의 독립선언이므로. 그래서 나는 가출이란 말 대신 출가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 내 수첩에도 '완벽한 출가를 위한 지침서'를 만들어 틈틈이 정보를 모아 적어두었다. -10쪽

쉬지 않고 쫑알대는 참새를 바라보며 이 세상에는 딱 두 가지 부류가 있다는 걸 새삼 느꼈다. 관리 받는 년과 방해 받는 년. 참새나 류은이 같은 아이들을 보면 가끔 화날 때가 있다. 아무리 똑같이 놀았다 해도 본질적으로 그 아이들과 나는 삶의 질부터가 다르다. 그 아이들은 마음 놓고 놀아도 최소한 안전망이라도 있지만, 나 같은 아이는 그물망조차 없어 바닥을 지나 지하 3층까지 떨어질 수 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평등하다는 개뼈다귀 같은 소리는 누가 지껄였는지 모르겠다. 만약 그 인간이 내 눈앞에 있다면 머리를 죄다 쥐어뜯어 놓고 싶다. 절대 인간은 평등하지 않다. 이건 내가 십칠 년간 세상을 겪으면서 깨달은 진리다. -100쪽

미하일은 세몬과 살면서 그 질문의 답을 얻는다.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미래를 볼 수 있는 지혜고,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것은 사랑이며, 사람은 사랑 때문에 산다는 게 그 답이었다. 미하일은 지극히 종교적인 이 세 가지 답을 깨닫고 하늘로 올라간다.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는 것은 영원한 생명이며, 인간의 내부에 있는 것은 욕심이며, 결국 인간은 자기 자신의 힘으로 살아간다. 우리 가족을 생각하면서 얻은 답이다. 모두들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고 있지, 누군가의 관심과 사랑으로 살아가는 인간은 한 명도 없다. 미하일이나 세몬은 책 속에나 등장할 법한 인물들이다. 이런 인간이 진짜 있다면 매점 식권을 복사하는 일이나 아빠의 호주머니를 뒤지는 허접한 일 따위는 결코 안 할 것이다. -10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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