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오 하이드로 스폰지(大)
클리오
평점 :
단종


예전부터 베이스를 바를 때 스폰지를 사용하면 좋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는데 선뜻 손이 가지 않았어요. 하지만 손으로 메이크업베이스를 바르면 코주위가 들뜨기도 하고, 볼부분도 들뜨곤 해서 조금은 비싼 것 같았지만 이 제품을 구입하게 됐어요.

사진으로만 봤을 때는 크기가 그렇게 커보이지 않았는데 실제로 받아보니까 총 6조각이 들어있는데 한면이 4.5센치정도 되더라구요. 손에 잡고 쓰기에 불편함도 없고, 6조각이니까 돌아가면서 쓸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일반 스폰지를 살까하다가 하이드로 스폰지를 산 건 순전히 이 제품이 젖은 상태로 사용할 수 있어서 피부에 수분을 공급한다는 것 때문이었는데요 화장할 때 물에 적시러 왔다갔다 하는 건 좀 번거롭지만 그래도 물에 적셔서 꾹 짤아서 사용하니까 한결 더 잘 발리는 것 같더라구요. 마른 상태로 사용해도 된다고 하니까 급할 때는 아쉬운대로 마른대로 사용하셔도 괜찮을 것 같아요. 원래도 부드러운데 물에 적시고 나면 좀 더 부드러워져서 피부가 예민하신 분들도 별문제없이 사용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코나 볼 부분에 화장이 들뜨는 현상도 한결 줄어들었구요.

다만 아쉬운 건 스폰지가 메이크업베이스를 좀 먹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다른 때보다 메이크업베이스를 더 사용한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구요. 들뜨지는 않았지만 평소보다 좀 더 얇게 발리는 듯한 느낌도 있었구요. 그래서 저같은 경우엔 메이크업 베이스를 약간 펴바르고 두드려서 사용하는데 이 편이 제가 쓰기엔 더 맞는 것 같았어요. 전 아직 파운데이션을 사용하지 않지만 오히려 메이크업베이스보다는 파운데이션을 사용하시는 분들이 이 제품을 사용하시면 한 듯 안 한 듯 자연스러운 화장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가격이 좀 비싼 듯한 느낌이 있지만 폼클렌징으로 빨아서 쓸 수 있으니까 반영구적이고, 조직도 쫀쫀한 편이라서 싸구려 스폰지 사는 것보다는 더 오래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처럼 화장에 익숙하지 못하신 분들이 사용하신다면 스펀지 하나로 순식간에 화장 초보 탈출을 하실 수 있을 듯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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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etrain 2006-10-29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폰지가 메이크업베이스나 파운데이션을 좀 먹더라구요.^^
그렇지만 확실히 화장이 자연스러워 진다는..^^
(전 메이크업 베이스를 안쓰고 선크림-파운데이션을 써요.)

이매지 2006-10-29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손으로 바르는 것보다는 훨씬 자연스러워지더라구요.
저도 이 참에 파운데이션 한 번 써볼까 싶기도. ㅋ
 
핑퐁
박민규 지음 / 창비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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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다수결이다. 에어컨을 만든 것도, 말하자면 자동차를 만든 것도, 석유를 캐는 것도, 산업혁명과 세계대전을 일으킨 것도, 인류가 달에 간 것도, 걸어가는 로봇을 만든 것도, 우주왕복선이 도킹에 성공한 것도, 휘 휘 지나가는, 저 규격 저 위치에 저 품종의 가로수를 일렬로 심은 것도, 모두 다수가 원하고 정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인기의 정상에 서는 것도, 누군가가 투신자살을 하는 것도, 누군가가 산출되고 기여를 하는 것도, 실은 다수결이다. 알고 보면 그렇다. -28쪽

서늘한 창에 이마를 맞대고서 나는 빨리 고등학생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빨리 중년이 되고 노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니 빨리 핼리가 와주기를 바랐다. 다행할수록, 삶은 얼마나 가혹한 것인가. 그래서 짧게, 나는 가혹해지고 싶었다. -95쪽

얘야, 세계는 언제나 듀스포인트란다. 이 세계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나는 줄곧 그것을 지켜봤단다. 그리고 이루 셀 수 없이 많은 이들에게 탁구를 가르쳤어. 어느쪽이든 이 지루한 시합의 결과를 이끌기 위해서였지. 하지만 아직도 결판은 나지 않았단다. 이 세계는 그래서 좋다고도, 나쁘다고도 할 수 없는 곳이야. 누군가 사십만의 유태인을 학살하면 또 누군가는 멸종위기에 처한 혹등고래를 보살피는 거야. 누군가는 페놀이 함유된 폐수를 방류하는데, 또 누군가는 일정 헥타르 이상의 자연림을 보존하는 거지. 이를 테면 11:10의 듀스포인트에서 11:11, 그리고 11:12가 되나보다 하는 순간 다시 12:12로 균형을 이뤄버리는 거야. 그건 그야말로 지루한 관전이었어. 지금 이 세계의 포인트는 어떤 상탠지 아니? 1738345792629921:1738345792629920, 어김없는 듀스포인트야. -117~8쪽

인간의 해악은 9볼트 정도의 전류와 같은 거야. 그것이 모여 누군가를 죽이기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는 거지. 그래서 다들 다수인 척하는 거야. 이탈하려 하지 않고, 평형으로, 병렬로 늘어서는 거지. 그건 길게, 오래 생존하기 위한 인간의 본능이야. 전쟁이나 학살은 그 에너지가 직렬로 이어질 때 일어나는 현상이지. 전쟁이 끝난 후에도 수만 볼트의 파괴자가 남아 있을까? 학살을 자행한 것은 수천 볼트의 괴물들일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 전쟁이 끝난 후에 남는 건 모두 미미한 인간들이야. 독재자도 전범도, 모두가 실은 9볼트 정도의 인간들이란 거지. 요는 인간에게 그 배치를 언제든 바꿀 수 있는 이기가 있다는거야. 인간은 그래서 위험해. 고작 마흔한명이 직렬해도 우리 정도는 감전사할 수 있는거니까. 그래서 생존해야 해. 우리가 죽는다 해서 우릴 죽인 수천 볼트의 괴물은 발견되지 않아. 직렬의 전류를 피해가며, 모두가 미미하고 모두가 위험한 이 세계에서- 그래서 생존해야 해. 자신의 9볼트가 직렬로 이용되지 않게 경계하며, 건강하게, 탁구를 치면서 말이야. -18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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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의 도전 - 한국 사회 일상의 성정치학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대개의 여성들은 여성의 입장을 옹호하는 말을 하려 할 때 '전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과 같은 말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혹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인터넷 기사라도 뜨면 '페미꼴통들'이라는 내용의 댓글들은 셀 수 없이 달린다. '여성부도 있는데 남성부도 만들어라', '여성을 위한 정책은 지나쳐서 남성은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 등등. 한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여성과 남성의 감정의, 그리고 입장의 골은 깊기만 한 듯 보인다. 다소 도발적인 제목과는 달리 이 책에서는 '페미니즘'에 대해 여성의 눈으로 사회를 바라봐달라, 혹은 자신과 다른 시각이 있음을 인정해보자와 같은 과격하지 않은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이 책은 결코, 페미니즘만이 올바른 길이다와 같은 말도 안되는 주장을 하지 않으며, 오히려 이 사회에서의 여성의 처지를 하나씩 예로 들며 독자 스스로 남성 중심의 사회에 대해 눈을 뜰 수 있게 도와준다.

  총 3부로 구성된 책은 실제의 사례를 들어 페미니즘의 문외한인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끔 구성되어 있었다. 같은 한국인 남성에게 강간을 당하면 '과격한 섹스'로 인식하는 반면에 외국인 남성에게 강간을 당하면 '민족의 수치 혹은 침략'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이나 성을 밥벌이의 도구로 삼고 있는 '성매매 여성'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그들은 매(賣. 팔기)는 하지만 매(買, 사기)는 하지 않으므로 엄밀히 말해서는 '성판매 여성'혹은 '성산업에 종사하는 여성'으로 표현해야한다고 말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 속에서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무심결에 사용해온 단어들. 즉, 남성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본 수많은 단어(예를 들어, 남성명사에는 人이 붙지만 여성명사에는 女가 붙는다. 여성에 人이 붙는 경우는 미망인뿐이다.)들에 대해서도 지적을 하는데 뜨끔하던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 (분명 나도 이 사회를 살아가면서 나도 모르게 남성주의적 관점이 강하게 박힌 탓이리라.)

  우리는 살면서 한시도 떨어져 이성과의 삶을 살아가지 못한다. 하지만 이성에 대한 이해는 서로 부족한 편이다. 사유의 방식이 다른 서로를 단순히 자신과 다른 신체구조를 지닌 사람으로만 인식하거나 혹은 말랑말랑한 연애관(숱한 연애심리관련서들을 보라)에서 바라볼 뿐이다. 어린 시절부터 파란 옷을 입고 총을 가지고 논 남성과 분홍옷을 입고 인형을 가지고 논 여성은 다를 수 밖에 없다. 본성도 다르지만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 자체가 다른 것이다. 하지만 이런 '다름'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고 '자신과 같은' 위치에서 '전혀 다른' 상대를 바라보려고 하는데서 갈등은 생겨나는 것이다. 사회적으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정치적으로도 우리는 다른 대우를 받고 있다. 예를 들어, 성판매여성을 보호하고자 만들어졌다는 '성매매방지법'은 사실 지나치게 비대화된 성산업이 '정상적인' 국가 경제를 위협할 수준에 이른 것에 대한 위기의식과 인신매매 3등급 국가, 여자 장사 왕국이라는 국제적인 망신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게다가 법 제정 운동의 계기가 된 군산 성매매 업소 화재 참사에서 엿볼 수 있었듯이 성판매여성에 대한 감금, 구타, 강간, 인신매매 등의 사건은 국가가 개입하지 않을 수 없게끔 된 것이다. 요컨대, 상황적으로, 그리고 체면을 살리기 위해서 성매매방지법을 제정하게 되었던 것이고 때문에 이는 성판매 여성의 실상과는 동떨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남성중심적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일은 힘든 일이다. 21세기를 함께 살아가지만 사회는 여성에게 때로는 21세기의 모습으로, 때로는 19세기의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요구한다. 즉, 때로는 사회의 진취적인 일꾼으로, 때로는 남성의 보조자로 살아가길 원하는 것이다. 페미니즘은 기득권, 남성의 논리가 아니다. 자신의 굳건한 영역을 깨부수는 것으로 보이는 페미니즘은 어쩌면 남성들에게는 피하고 싶은 방해물일지로 모른다. 하지만 이 방해물을 마냥 피해만 다니기보다 그것을 분석하고 이해할 때 남성 스스로 더욱 더 유연성을 갖게 되어 발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공적인 관계와 사적인 관계 속의 여성의 이중적 잣대를 잠시 거두고, 여성과 남성이라는 이중적 시선을 잠시 거두고 서로를 좀 더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면 이 사회는 발전해갈 수 있지 않을까? 페미니즘은 이 사회 속의 많고 많은 갈등을 해소할 조그마한 퍼즐 조각일 뿐이다. 사회 속에서 여성만이 피해를 보는 것도, 절대적 소수도 아니기에 우리에겐 이해하고 받아들일 퍼즐 조각들이 페미니즘말고도 수없이 많기에 이해심과 그것을 받아들일 넓은 마음, 그리고 배려, 관용은 사회를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하다. 그런 소수에 대한 빈 공간을 하나씩 하나씩 채워갈 수 있는 계기를 이 책이 마련해준 것 같다. 간혹 다소 격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보았을 때 논리적으로 잘 짜여진 글이 아니었나 싶다. 현대를 살아가는 남성, 그리고 여성들이라면 한 번쯤은 읽어보고 자신의 내면에 감춰진 성적 이데올로기와 마주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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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28 0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매지 2006-10-28 0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수정하는 사이에 홀랑 추천까지 눌러주시다니. 민망하네요^^; 시험기간때문에 거의 보름을 붙잡고 있었던 책이라 사실 앞부분은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뒷부분 중심으로 쓸 수밖에 없어서 아쉬워요 ㅠ_ㅠ

비로그인 2006-10-28 0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정희진을 좋아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이 책 읽고 푹 빠져버렸습니다..;;;

기인 2006-10-28 0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 저도 추천하고 가용~~
새벽에 안 자고 스타리그 보면서 감동하고 있는 긴 -_-a

릴케 현상 2006-10-28 0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이네용

멜기세덱 2006-10-28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재 제가 읽고 있는 책인데요, 읽으면서 내가 '페미니스트'가 되가는 듯한 생각이 들어요...ㅎㅎ

이매지 2006-10-28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군님 / 저는 처음 접했는데 괜찮더라구요.
기인님 / 그 시간까지 안 주무시고 뭐하셨습니까? ㅋㅋ스타리그에 너무 푹?
자명한 산책님 / 감사합니다^^;
멜기세덱님 / 세뇌는 아니고 왠지 그렇게 변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죠^^ 멜기세덱님의 리뷰 기대할께요^-^
 
펭귄의 우울
안드레이 쿠르코프 지음, 이나미.이영준 옮김 / 솔출판사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러시아 작가(이 책을 쓴 작가는 우크라이나의 작가이지만)의 글은 왠지 묵직할 것 같이 느껴지는 편견 아닌 편견이 내 속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인지 왠지 이 책은 끌리지 않았었다. 하지만 귀여운 펭귄이 그려진 표지에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겠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결론적으로 말할 때 이 책은 내가 생각했던 그런 류의 묵직함은 없었지만 그간 내가 다른 러시아 소설을 읽었을 때처럼 '무거운 분위기'는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한 편의 추리소설을 읽는 것과 같은 기분은 이러한 무거운 느낌을 잠시 잊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던 것 같다.

 이 책 속에는 동물원에서 먹이를 줄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동물을 분양할 때 황제펭귄 한 마리를 분양받아온 빅토르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사실 이야기의 첫 부분에서 이 부분만을 봤을 때는 '음. 그럼 펭귄과의 코믹한 일상을 그리고 있나?!'라고 생각했는데 나의 이런 예상 역시 또 빗나가버렸다. 이 책 속에서 펭귄이 하는 일이라곤 고작 밤에 조용히 빅토르의 무릎에 몸을 기대거나 뒤뚱뒤뚱 걸어다니는 정도이다. 그들은 한 지붕 아래에서 살아가며 유대관계를 다지지만 그 유대관계란 룸메이트와 별반 다를 게 없을 정도다. (물론, 이들은 룸메이트가 아닌 양육자-피양육자의 관계지만)

  주인공인 빅토르는 소설이라고 하기엔 너무 짧아서 원고료도 얼마 받지 못하는 작가이다. 그러던 그는 어느날 자신의 원고를 한 신문사에 갖다주게 되고 그 곳에서 다소 희안한 제안을 받게 된다. 다름아닌 죽은 사람들의 '조문弔文'을 써달라는 것. 그가 조문을 쓰는 것은 대개가 하나 둘씩 비밀을 갖고 있는 정부관계자, 군인, 사업가 등인데 희안하게 그가 쓴 조문은 금방 사용할 기회를 얻게 되고 그는 빠져나올 수 없는 깊은 늪 속으로 빠져들어가기 시작한다. 게다가 우연히 알게된 펭귄이 아닌 미샤의 딸도 맡게 되고, 그녀를 위해 보모를 들이면서 미완성적이긴 하지만 가족의 형태도 꾸리며 살아가게 된다. 새로운 변화. 하지만 어디로 치달을 지 모르는 변화는 그렇게 빅토르의 삶을 흔들기 시작하는데...

  가장 좋아하는 장르가 추리소설이라서 추리소설적 기법이 사용되었거나 그런 분위기라도 풍기는 작품이면 사족을 못 쓰는데 이 작품이 그랬다. 열린 결말의 형태이고, 책의 뒷표지에도 다음 작품인 <펭귄의 실종>이 있다고 하니 계속되는 빅토르와 펭귄 미샤의 이야기가 등장할 것이라는 짐작은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이어지는 이야기보다는 빅토르가 살아가는 '현재'의 모습이 더 실감있게 다가왔다. 이유도 모른채 편집자가 시키는 대로 일을 해야하는 모습, 사랑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냥 이대로가 좋다는 생각에 가슴에 품고 자는 여자, 개인의 이익에 따라 만났지만 그 정체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만나는 친구 등 빅토르가 접하는 인간관계는 우리가 현재 이루고 있는 인간관계와 별반 차이가 없어보인다. 자신의 고향과 멀리 떨어져있어서 우울한(것으로 추정되는) 펭귄 미샤. 자신의 자리가 아닌 곳에서 삶을 살아가는 것은 얼마나 우울한 일인가. '나의 자리', '내가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닌 타인에 의해서 그 자리에 있어야만 하는 것. 이 점에서 빅토르도, 미샤도 자유로워질 수는 없었던 것 같다. 타인이 정한 곳에서 타인이 시키는대로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는 둘의 모습은 결국 둘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빅토르와 미샤, 그리고 나를 하나로 묶어준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 이어질 <펭귄의 실종>에서는 과연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 지 더 궁금해진다. 안드레이 쿠르코프. 처음 듣는 작가였지만 솔 출판사의 3세계 작가를 소개한 책답게 흥미로웠다. (여기서 헝가리의 작가인 산도르 마라이도 만날 수 있었고, 핀란드의 작가인 아르토 파실린나도 만날 수 있지 않았던가!) 시큰둥하게 집어든 책이었지만 아무런 기대가 없었기때문인지 모처럼 재미있게 읽어갈 수 있었던 책.

 

덧) 내용과는 상관없지만 이 정도 두께라면 책갈피를 할 수 있는 책끈을 하나쯤 달아줬으면 좋았을텐데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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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소설 읽는 노인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3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처음 접할 때만 해도 루이스 세풀베다는 내게 낯선 작가였지만 이제는 그의 다른 작품들도 몇 권 읽고나서인지 처음 접했을 때보다는 조금 더 낯익은 느낌으로 읽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용을 알고 있었기에 한 걸음 뒤에 물러서서 사건을 바라볼 수 있었다는 점이 되려 더 만족스러웠던 느낌.

  그리 두껍지는 않은 분량이지만 이 책 안에는 아마존 밀림이 담겨있다. <연애소설 읽는 노인>이라는 다소 말랑말랑한 제목 뒤에는 양키에게 자식을 잃고 절규하는 암살쾡이가 눈을 번뜩이며 숨어있다. 우리는 개발이라는 이름아래 자연을,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삶을 얼마나 파괴하고 있는가! 아무런 잘못없이 오직 잘못이라면 사람 앞에 나타났다는 이유로 무차별하게 총질을 당하는 동물들, 살쾡이를 잡아 어디에 쓸 것도 아니면서 가죽을 벗겨 자랑스럽게 사진을 찍고는 버리는 사람들, 자연이 회복할만한 시간도 주지 않은 채 그저 불도저로 모든 것을 밀어버리는 잔혹함. 그런 이야기들이 이 책 속에는 담겨져 있는 것이다.

  자연에 대한 사랑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건과 인물을 통해 우회적으로 드러내기때문에 그 점에서 오히려 독자의 마음을 파고들어간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또, 분노한 암살쾡이를 추적하는 장면은 마치 한 권의 추리소설을 읽는 것 같은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는 점에서 만족스러웠다. 마지막 장면인 암살쾡이와 노인의 대결에서는 가슴 한 켠이 무거워지면서 먹먹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애초에 아마존을 개간하러 왔지만 이제는 오히려 그 속에서의 삶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살아가는 노인의 모습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배워야할 부분이 아닐까 싶었다. (비록 자연에 모든 것을 빼앗긴 그가 처음에는 자연에 복수심을 품은 적도 있었지만) 자연없이는 인간도 더이상은 살아갈 수 없을테니까. 환경을 보호하자라는 말은 백 번 들어도 잔소리처럼 느껴지고, 이제는 너무 많이 들어서 익숙함으로 다가오는 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잔소리도, 익숙함도 남아있지 않다. 그저 인간에게 삶을 송두리째 빼앗긴 생명들만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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