꾿빠이, 이상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1년 2월
구판절판


한 작가는 문학을 위해, 독자를 위해 삶의 다양한 광경을 재구성한다. 천재로 태어나는 주인공을 탄생시켜 그 주인공으로 하여금 열정에 사로잡혀 쏟아지는 빗속을 뛰어다니게 만들고 사랑에 빠지게 한다. 적당한 쓴맛과 단맛을 동시에 내기 위해 막 딴 치커리와 꽃상치를 잘 포개 만든, 여름 점심의 쌈밥을 만들기도 하고 연인 앞에서 처음으로 벗은 몸처럼 부끄러움과 자랑스러움이 교차하는 하얀 살을 그리기도 하는 것. 그게 바로 소설이다. 소설을 읽는 일이 괴로움과 즐거움을 동시에 던져주는 것은 그 때문이다. -78쪽

불멸의 문학이란, 위대한 작가란 그만큼이나 무한한 것일까? 그 끝없음을 믿을 수 있을 만큼 대단한 것일까? 논리와 열정과 진위가 문제가 아니라면, 영원한 문학작품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자신의 삶을 판돈으로 내걸 수 있는 의지의 문제일까, 아니면 제멋대로 굴러가는 운명이라는 주사위의 문제일까? -84~5쪽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인 2006-11-30 0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김연수 선생의 굿빠이 이상 ㅜㅠ
김윤식 선생의 연구서에 큰 힘을 빌고 있고, 소설 중에도 김윤식 선생스러운 사람이 나와서 더 잼있었어요. 김윤식 선생님의 '이상문학텍스트 연구'같은 책 봐도 잼있어요. ㅎㅎ

이매지 2006-11-30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로 그런 책을? 이 책 재미있긴한데 읽다보니까 좀 난해한 구석도 있는 것 같아요. 소설이 아니라 정말 논문을 읽는 듯한 느낌도 살포시
 

 

메리 크리스마스, 늑대 아저씨!

미야니시 타츠야 글. 그림 / 이선아 옮김 / 시공주니어 네버랜드 146

 

 



 

내일은 크리스마스.

아기 돼지 열두 마리가 트리와 화환을

예쁘게 꾸미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어요.

 

♪신나는 신나는 크리스마스

우리들 마음은 두근두근

상냥한 마음이 가득가득

신기한 일이 생길 거예요.

우리 우리 크리스마스♪

 

그런데 배고픈 늑대 한 마리가

아기 돼지들을 몰래 훔쳐보고 있었어요.

"상냥한 마음이 가득가득? 쳇, 신나는 크리스마스 좋아하네!

당장에 저것들을 모조리 잡아먹어 버릴 테다.

고것 참 맛있겠군... 히히히히..."

 

 

 

 




 

늑대는 아기 돼지들을 쫓아가면서

화환과 크리스마스트리를 마구 망가뜨렸어요.

"이까짓 게 다 뭐야!" 와지끈 뚝딱!

"맛 좀 봐라!" 우두둑 우두둑!

그러고는,

 

 

 




 

눈 깜짝할 사이에

아기 돼지 열두 마리를 몽땅 붙잡았죠.

"히히히... 정말 신나는 크리스마스가 되겠군.

오늘 밤엔 배불리 먹어야지..."

 

그렇게 말하며 성큼성큼 뛰어갈 때였어요.

 

 

 




 

으아악~~~!

늑대는 자기가 부러뜨린 크리스마스트리에 발이 걸려,

꽈당!

바닥에 넘어지고 말았어요.

아기 돼지들은 부드러운 풀 위에

떨어진 덕분에 하나도 다치지 않았어요.

 

"늑대 아저씨, 괜찮을까...?"

늑대는 꼼짝도 하지 않았어요.

 


"으..."

정신을 차려 보니, 늑대는 침대 위에 있었어요.

온몸이 너무 아파서 손도 발도 까딱할 수가 없었죠.

"아. 깨어났다!"

아기 돼지 한 마리가 그렇게 말했을 때예요. 늑대가

"너희들을 잡아먹겠다아아아!"

하고 소리쳤어요. 하지만 늑대의 입에는 붕대가 친친 감겨 있어서, 아기 돼지들에게는

"우우우우 우우웃우우우우우!"

하는 소리로 들릴 뿐이었어요.

 

 

"미안하다고 우리한테 사과하는 건가 봐."

"이제 괜찮아요, 늑대 아저씨.

약을 발랐으니까 금세 나을 거예요."

 

 

"그, 그게 아냐! 아픈 데가 다 나으면

너희들을 죄다 잡아먹어 버릴 거라고!"

늑대가 바락바락 소리쳤어요.

하지만 아기 돼지들에게는

"우, 우우우! 우우우웃

우우우우우... 우우우웃!"

하는 소리로 들릴 뿐이었죠.

"이번에는 고맙다고 인사하는 건가...?"

 

 

 




 

내 말은 그게 아냐----------- !

늑대는 부르르 떨면서 소리쳤어요.

"너희들을 잡아먹어 버릴 거라니까!"

하지만 역시 아기 돼지들에게는

"우, 우우우우우우우우웃!

우우우우웃우우우우우우우우웃!"

하는 소리로 들릴 뿐이었는걸요.

늑대는 너무 분해서 눈물이 찔끔 나왔어요.

"앗! 늑대 아저씨가... 울고 있어..."

 

"무지무지 아픈가 봐... 늑대 아저씨...

조금만 참으세요. 금세 다 나을 거예요."

"아, 아니라니까... 나는 너, 너희들을... 잡아먹을 거라니까..."

"괜찮아요, 괜찮아. 이제 그만 우세요, 늑대 아저씨.

내일이면 틀림없이 말끔히 나을 거예요."

이렇게 말하고, 아기 돼지는 늑대의 눈물을 닦아 주었어요.

"흐으..."

늑대는 한숨을 한 번 내쉬고는

스르르 눈을 감았답니다.

 

 

그 날 밤이었어요.

"메리 크리스마스, 늑대 아저씨.

이거, 우리가 드리는 선물이에요.

빨리 나으세요."

아기 돼지들은

침대 위에 살며시

빨간 장갑을 내려놓았어요.

 

 

 




 

다음 날, 크리스마스 아침이에요.

아기 돼지들이 일어나 보니

늑대가 보이지 않았어요.

밖에 나가 보니까,

화환이 말끔하게 고쳐져서 문에 걸려 있었어요.

마당에는 크리스마스트리 열두 그루가 세워져 있었고요.

"우아!"

 

 




늑대는 아기 돼지 열두 마리의

상냥한 마음과 따뜻한 배려와

사랑을 받고 달라졌습니다.

늑대의 마음이 움직인 거예요.

신기한 일이 생긴 거죠.

사랑은 신기한 일을 이루어냅니다.

이 사랑이 시작된 건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는 아기 예수가 태어난 날.

크리스마스는 모든 사람을 위한 날,

그리고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당신'을 위한 날입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얼마 전 케이블 tv에서 러브 액츄얼리를 봤어요.

등장 인물들의 사랑이 하나 둘씩 이루어져가는 기쁨이

크리스마스의 들뜬 분위기와 맞물려

행복을 마구마구 뿌려 주는 영화죠.

용서하고 사랑하고 화해하는, 눈송이처럼 많은 사연들이

'메리 크리스마스'란 다정한 말로 묶이는 것

이런 게 크리스마스고 세상에 사랑의 기적을 일으키는 큰 힘이죠.

 

크리스마스의 기적이 이루어진 이 그림책은 어떠셨어요?

모두 메리 크리스마스로 화답하셨어요?

빨간 장갑을 낀 늑대 아저씨가 귀엽죠?

이런 해피엔딩은 늘상 봐도 기분 좋은 것 같아요.

'권선징악'보다는 '개과천선'이 더 보기 좋잖아요. ^^

 

저는 돼지들이 부르는 캐럴을

징글벨 음에 맞춰 불러 봤는데 얼추 맞는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 읽어 줄 때 한번 징글벨 음으로 불러 줘 보세요.

더 친근하게 받아들이지 않을까요?

 

집에 이 작가의 그림책이 하나 더 있는데

전집 구성에만 있는 책이어서 서점에선 구하지 못하니

잠깐 소개해 드릴게요.

 




'한 마리 늑대와 백 마리 돼지'라는 책인데

사실 '메리 크리스마스 늑대 아저씨는 이 그림책의 그림이 너무 맘에 들어

작가 검색하다가 알게 된 거예요.

만화적인 그림, 유머러스한 스토리가 너무 즐겁더라구요.

백 마리 늑대가 한 마리 돼지를 잡아먹으려다가 성에 안 찰 것 같아

그 돼지 보러 백 마리를 채우게끔 친구를 데려 오라고 해요.

그런다고 돼지가 순순히 친구를 데리고 돌아올까요?

돼지는 이게 웬 휑재냐~ 하며 집에 돌아가 쿨쿨 자고

백 마리 늑대는 하염없이 돼지를 기다려요.

영 늑대같지 않은 늑대들 하는 짓이 얼마나 귀엽던지요. ^^

 

이번 크리스마스엔 그림책 선물이 어떨까요?

그림책은 아이들만 보는 책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혹시 아나요? 그림책 선물을 받은 분이 그 계기로 그림책 마니아가 될지요.

부모님이나 연인에겐 '은행나무처럼'을

조카들에게는 이책 '메리 크리스마스, 늑대아저씨'

태어날 아기들을 위한, 아기 엄마에게는 정순희의 아기 그림책 '누구야?'

선생님이나 선배, 직장 상사한테는 '가족이 있는 풍경' 정도면 아주 좋을 것 같아요.

 

즐겁고 행복한 크리스마스 계획 잘 세우시구요,

저는 미리 인사드릴게요!

그 즈음엔 제 첫 아들 준석이 생일 잔치 때문에 바빠질 것 같아요.

여려분, 메리 크리스마스!!

 

 

작가에 대하여

미야니시 타츠야는 작가 스스로 한국어판이 특히 마음에 든다고 한 <개구리의 낮잠>으로 한국 어린이들에게 처음 인사했다. 보기만 해도 웃음이 절로 나는 그림, 작가의 한없는 애정이 뚝뚝 묻어나는 등장인물들로 엮인 따뜻한 이야기, 그리고 글과 그림에 흐르는 유머 감각은 미야니시 타츠야 작품의 특징이다. 1956년 시즈오카 현에서 태어나 일본대학 예술학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인형미술가, 그래칙디자이너를 거쳐 그림책 작가가 되었다. <오늘은 정말 운이 좋은걸>로 고단샤 출판문화상, 그림책상을 수상했고, <아빠는 울트라맨>, <돌아온 아빠는 울트라맨>으로 '겐부치 그림책 마을' 대상을 수상했다. 그밖의 작품으로 <돼지와 늑대 100마리> <아빠, 빠빠, 아버지> <숨바꼭질> <배고픈 늑대> <크림, 너라면 할 수 있어>들이 있다. 종이 연극, 동화 구연과 같은 일도 하면서 부지런히 책을 내고 있다. 2남2녀의 아버지이며, 부인인 미야니시 이즈미는 동화 작가이다.

 

Copyright ⓒ 그림책을 보여 줄게 All Rights Reserved.

출처 : http://paper.cyworld.nate.com/book-lover/191315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아름다운 정원
심윤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0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1978년 동생 영주의 탄생에서부터 1981년 영주의 죽음에 이르는 4년 간의 이야기를 어린 소년 동구의 눈으로 바라보는 책은 얇지만 탄탄하게 무게감있게, 그리고 재미있게 진행된다. 딸을 낳았다고 잡아먹을 것 같이 며느리 구박을 하는 할머니, 그런 할머니의 역정을 꾸역꾸역 참아내는 엄마, 이야기를 하기 싫을 땐 회피하거나 자신의 뜻을 강요하는 아빠. 그리고 난독증으로 고생을 하지만 4학년 때 만난 담임선생님 덕분에 늦게나마 글을 배우게 되는 동구, 그리고 똘똘하지만 누구보다 자기 감정표현을 잘하는 영주. 이런 구성원으로 이뤄진 가족은 박정희 암살, 광주사태 등 사회의 격변기 속에서 삐걱삐걱 살아간다. (물론, 이런 사회적인 현상은 어린 동구에게 하나의 '구경거리'에 불과하지만) 

  어떻게 보면 이 책은 고부 간의 갈등을 그린 이야기다. 아니 어린 동구가 성장해가는 과정이 그려진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짧지만 모두의 마음 속에 깊이감을 남긴 영주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이야기를 기대하고 읽게되더라도 분명 독자는 만족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제대로 성장하고 성숙한 어른이라도 이해하기 힘든 상황. 그런 상황이 어린 동구의 눈에는 얼마나 불합리해보이고 이해가 되지 않겠는가? 이 책 속에서 비춰지는 모습들은 초등학생인 동구에게도, 대학생인 나에게도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나야 했고, 왜 그런 일은 일어날 수밖에 없었을까? 사회의 희생양이 되어 사라져야만 했던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영주의 죽음으로 가족에게 가까스로 피어오른 희망의 불꽃이 꺼지는 과정, 이런 경험을 통해 조금은 성장해 다시 그 꺼져가는 불꽃을 살려내는 동구의 모습이 이 책 속에는 당시 사회상과 잘 어울려져있었다.

  이 책을 펼쳐들었을 때만 해도 나는 몰랐다. 앞으로 내가 어떤 감정의 변화를 겪게 될 지. 밖에서 책을 읽느라 나오는 눈물을 꾸역꾸역 참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일 것인지를. 심윤경 작가의 첫 작품인 이 책은 신인답지 않은 짜임과 감동으로 내게 찾아왔고, 그 덕에 지금 내 책상에는 심윤경 작가의 책들이 나의 손을 기다리며 올려져있다. 매번 반복되는 비슷한 스토리를 찍어내는 한국 여성작가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내게도 드디어 좋아하는 여성작가가 한 명쯤은 생긴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물론, 남은 작품들도 읽어봐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겠지만) 화해와 용서, 그리고 희망과 감동. 이 모든 것이 이 책 속에는 녹아들어있었다. 생명력 있는 캐릭터, 그리고 웃음과 감동이 있는 이야기를 찾는 독자라면 놓치지 말고 꼭 읽어야 할 작품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오랜만에 별 다섯개를 줘도 아깝지 않은, 내 가슴에 깊이 남는 책이 등장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ooninara 2006-12-03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이 작가의 데뷔작이란게 놀랍죠?
'달의 제단'이나 '이현의 연애'도 만족하실겁니다.^^

이매지 2006-12-03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빨리 읽고 싶은데 시험기간이라 바빠서 못 읽고 있어요 ㅠ_ㅠ
공부도 안하면서 ㅠ_ㅠ
 
나의 아름다운 정원
심윤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02년 7월
구판절판


영주는 우리 식구들 중에 유일하게 애정 표현이 자유롭던 사람이었다. 우리는 그 아이가 벌리는 팔과 그 아이가 내미는 입술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서, 그 아이를 통하지 않고는 웃지도, 이야기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하게 길들여져 있었다. 우리 가족들은 마치 신호등이 고장난 네 갈래 길에 각각 서 있는 당황한 사람들처럼, 서로 말을 걸거나 상대방의 마음을 짐작하지 못한 채 우두커니 서로 바라만 보게 되었다. 우리의 소통이 엉키지 않도록 요술 같은 방법으로 누군가는 기다리게 하고, 누군가는 직진하게 하고, 누군가는 좌회전하도록 지도하던 우리의 푸른 신호등은 영원히 잠들어버렸다. 우리는 신호등없이는 교차로를 지날 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273~4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이어트의 성정치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18
한서설아 지음 / 책세상 / 2000년 8월
구판절판


남녀의 지위가 뚜렷하게 차별적인 전통시대에는 한 남자의 여자로서 그가 원하는 몸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고, 대를 이을 아이를 낳아줌으로써 정숙한 아내, 현명한 어머니가 되는 것 외에는 어떠한 정체성도 가질 수 없고, 사회적 활동에도 접근할 수 없었다. 이러한 시대에 '외모를 가꾼다는 것'은 여성들에게 결코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더욱이 엄격한 신분 사회에서 몇몇 최상류층 여성들을 빼놓고는 절대 접근할 수 없었던 사회적 권력을, 시대의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소수의 여성들은 그 권력자 남성의 '여자'가 됨으로써 어느 정도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도 있었다.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신화와 동화들은 아름다운 몸을 가짐으로써 신분의 높은 벽을 훌쩍 뛰어넘은 여성들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결국 남자와의 관계를 통해서만이 존재 가치를 부여받을 수 있었던 당시의 여성들은 사회의 주인공인 남자들이 원하는 몸을 가짐으로써 그 남자의 파트너 자격으로라도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자격을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26~7쪽

경제적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초기 자본주의가 발달하고 귀족 외에도 부유한 계층이 등장함에 따라 귀족들의 음식 섭취를 모방하는 경우가 생겨났다. 그러자 귀족들은 음식의 '양이 아닌 질'로 자신들의 계층 문화를 차별하기 시작했다. 이로부터 '미식'의 개념과 풍습이 생겨나고 음식 섭취를 통제하고 조절하는 것이 상류층을 상징하는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날씬한 몸매는 이러한 통제와 조절의 성공을 나타내는 하나의 미적인 이상이 되었다.
한편 이러한 이상은 19세기에 들어 점차 중산층에도 확대되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것은 이 과정에서 '날씬함'의 이상이 특히 여성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는 점이다. 19세기 중엽까지도 중산층 남자들의 '살찐 배'는 성공적인 사업가의 축적된 부를 상징하는 것으로 당시 점점 쇠퇴해가던 귀족 계급의 우아하고 마른 몸과 자신을 구분하는 역할을 해주었다. 반면 중산층 여성들의 아름다움은 그 여성을 '소유'한 남자의 권력과 부를 결정적으로 빛나게 해주는 것으로 여겨졌으며, '연약한 몸매'를 가진 미모의 아내는 사회적 활동을 하지 않고 가정에만 머물 수 있는 '혜택'을 자신의 여자에게 줄 수 있는 중산층 남편들의 성공을 나타내는 징표가 되었다.-36~7쪽

여성들의 날씬한 몸매는 서구화 또는 최첨단의 발전이라는 가치를 함축하게 되었고 새로움의 가치를 추구하는 모든 여성들에게 하나의 이상으로 자리잡았다. -40쪽

우리는 지금 아무리 얼굴이 예쁘더라도 '날씬하고 잘 빠진' 몸매를 갖지 못하면 자타가 인정하는 미인이 될 수 없는 시대에 살게 되었다. 이렇듯 이미지가 막강한 사회적 위력을 발휘하는 시대의 도래는 여성의 아름다운 몸에 대한 기준을 변하게 만들고 그 기준을 대중적으로 크게 확산시켰을 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것보다도 이상적 외모가 상징적, 경제적 가치를 지니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했다. '다이어트'는 이러한 분위기에서 여성들에게 마치 종교에 대한 몰두와 같은 사회적 붐을 일으켰다. -42쪽

외모는 성별 차이에 대한 믿음이 사회적으로 형성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어왔다. 그러나 남성다운 외모와 여성다운 외모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은 하나의 사회적 믿음이지 남성과 여성의 신체적 차이에 정확히 근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차이를 실제로 자신의 몸에 구현하는 것이 개인이 사회적 관계를 맺고 정체감을 형성하는 데 필수적인 토대가 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각각 자신의 성에 어울리는 외모를 가지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47쪽

남성들은 여성에 비해서 다양한 사회적 자원에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그러한 자원의 소유가 남자로서 가지는 매력 중에 중요한 부분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사회적 기준에 꼭 들어맞는 외모를 가지고 있지 못해도 그 부족함이 다른 자원, 예를 들어 높은 사회적 지위나 좋은 성격 등으로 충분히 상홰될 수 있는 융통성이 남성들에게는 존재한다. 그에 비해 여성들의 경우에는 워낙 다른 사회적 자원에 대한 접근도 어려울 뿐더러, 설령 그러한 자원을 소유하고 있다고 해도 일차적으로 외모를 중심으로 '여성다운 매력'이 구성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상적인 외모를 갖고 있지 못하면 아무리 다른 사회적 자원을 가지고 있어도 남자들의 시선에 의해서 '여자'로 감지되지 못하며 오히려 다른 자원의 가치까지 폄하되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예쁜 여자가 공부를 잘하면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못생긴 여자가 공부를 잘하면 독한 여자라는 소리를 듣는다는 농담 등은 여성이 가진 다른 자원의 가치를 '외모의 수준'에 따라 평가하는 사회의 시선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남성이 남자다움을 인정받는 데 외모는 하나의 필요조건일 뿐이지만, 여성에게는 '여자'로 인정받기 위해서 없어서는 안될 충분조건이라는 것을 여성들은 일상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48~9쪽

결국 날씬한 몸을 가져야 '여자'로 인정받고 '성'에 있어서도 더욱 주체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사회의 메세지에 둘러싸인 여성들은 안정된 정체성과 성적 주체성에 대한 적극적 욕망을 무엇보다도 '날씬한 몸' 만들기에 대한 욕구로 전환시키고 있다. -53쪽

1980년대 이래로 광고, 드라마, 영화 등 영상매체에 등장하기 시작한 이른바 '커리어 우면'이미지는 여성들의 사회적 진출에 대한 욕망이 점점 커져감에 따라 급격하게 부상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러한 이미지 속에서 성공한 여성을 나타날 때 가장 핵심적으로 부각된 것이 바로 세련된 패션과 스타일을 소화해낼 수 있는 여성의 날씬한 외모였다. 이제 이 이미지들 속에서 현대 사회의 바람직한 여성으로 부각되는 '일하는 여성', '성공한 여성'은 곧바로 '아름다운 여성'으로 재현되었다. (중략) 이로써 날씬한 외모는 이제 단순한 미적 기준을 넘어서 자아 실현과 사회적 성공에 대한 여성들의 욕망의 중심에 자리잡게 된다.-55~6쪽

최근에는 사회적인 성공을 하려면 좋은 학벌, 인맥, 그리고 능력과 노력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는 차원을 넘어서 외모 역시 하나의 능력이자 자본이라는 생각이 확산되고 있다. -58쪽

여성들이 다이어트를 본격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순간부터 '몸'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에 대한 '자기 검열'을 통해 '자신의 의지'로 '스스로 선택한 규칙'에 따라 행하는 것이 되고 따라서 다이어트의 성공은 결국 '자기 만족'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의미가 확대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다이어트의 필요성을 여성들에게 각인시키는 사회문화적인 힘은 여성이 '자아'와 맺는 관계 속으로 흡수되고 다이어트는 따라서 철저하게 개인적인 문제, 자아의 문제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97쪽

'먹고 싶다, 그러나 마르고 싶다'로 표현되는 여성들의 딜레마는 식욕의 억제와 분출 모두를 부추기는 소비 문화를 통해서 더욱 첨예해진다.-108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