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정원
심윤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02년 7월
구판절판


영주는 우리 식구들 중에 유일하게 애정 표현이 자유롭던 사람이었다. 우리는 그 아이가 벌리는 팔과 그 아이가 내미는 입술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서, 그 아이를 통하지 않고는 웃지도, 이야기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하게 길들여져 있었다. 우리 가족들은 마치 신호등이 고장난 네 갈래 길에 각각 서 있는 당황한 사람들처럼, 서로 말을 걸거나 상대방의 마음을 짐작하지 못한 채 우두커니 서로 바라만 보게 되었다. 우리의 소통이 엉키지 않도록 요술 같은 방법으로 누군가는 기다리게 하고, 누군가는 직진하게 하고, 누군가는 좌회전하도록 지도하던 우리의 푸른 신호등은 영원히 잠들어버렸다. 우리는 신호등없이는 교차로를 지날 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27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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