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은 바다로 떠났다
존 반빌 지음, 정영목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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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커상 수상작은 <파이 이야기>만 읽어봤을 뿐이지만 <파이 이야기>가 나름 괜찮았기때문에 왠지 부커상 수상작들에 관심이 가던 차에 2005년(제37회) 부커상 수상작인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 두꺼운 책은 아니었지만 겨울 바다의 바람을 느끼듯이 천천히 책장을 넘겨갔다. 
 
  '그들은, 신들은 떠났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책에서 '신'들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신, 그러니까 GOD의 개념이 아니다. 주인공 맥스가 어린 시절 시더스에서 만난 그레이스 집안의 사람들, 자신과는 별개의 세상에서 살고 있는 듯한 그들을 그는 신이라고 생각했다. 그들과의 짧지만 인상적인 한 때를 보냈던 그는 어느덧 어른이 된다. 그리고 아내가 병으로 떠나자 그는 시더스로 돌아와 아내에 대해, 그리고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 회상한다. 

  책 표지의 느낌이 왠지 겨울바다의 느낌이 났기 때문인지 이 책을 읽으며 여름의 바다가 등장하는 순간에도 왠지 여름의 화사하고 발랄한, 시원한 느낌의 바다보다는 가을이나 겨울의 쓸쓸하고 고적한 바다가 떠올랐다. 정작 이야기는 맥스가 시더스에서 지내는 몇 주 정도를 다루고 있지만 그의 머리 속에서는 수십년의 세월이 흘러간다. 게다가 맥스가 현재 속에서 타인과 교류하는 동안에도 그의 머리 속에서는 과거로의 회상이 이어지는 방식으로 된 책이라 다소 지루한 느낌도 들었다. 대개 장편소설이라면 중간에 휴지가 있어 쉬엄쉬엄 읽어갈 수 있었는데, 이 책은 최소한 맥스가 한 가지 상념을 끝낼 때까지 읽어갈 수 밖에 없었기에 호흡이 길어질 수 밖에 없었다. 

  우리는 '어두운 가을을 헤치며 이 먹먹한 정적을 떠돌아다니는 슬픔의 작디작은 배'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삶의 모든 것이 삶을 떠나기 위한 긴 준비에 불과한 것'이라고 말하는 등 이 책은 고독과 맞닿아 있다. 고독과 상실, 그리고 쓸쓸함이 묻어나는 책이라 여름보다는 가을이나 겨울에 읽으면 더 몰입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읽기엔 수월하지 않았지만 읽고나니 바다의 잔잔한 물결처럼 내 마음 속에 잔잔한 물결이 일어남을 느낄 수 있었던 책이었다. 쓸쓸함이 느껴지는 계절에 다시 한 번 읽어보며 그 맛을 즐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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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 1- 바이러스
스즈키 코지 지음, 윤덕주 옮김 / 황금가지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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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아웃 - 상
신포 유이치 지음, 윤덕주 옮김 / 문학세계사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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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은 바다로 떠났다
존 반빌 지음, 정영목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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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자는 물이 끓자 저절로 전원이 꺼졌다. 안에서 끓어오르는 물이 언짢은 소리를 내며 가라앉았다.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지만, 나는 일반적인 사물들의 잔인한 자기만족에 놀랐다. 아니, 잔인한 것은 아니고, 자기 만족도 아니고, 그냥 무심할 뿐이었다. 하긴 어떻게 그렇지 않을 수 있을까? 이제부터는 내가 상상한 대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사물을 대해야 할 터였다. 그것이 새로운 형태의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28쪽

하긴, 우리의 모든 순간들 가운데, 삶이 완전히, 완전히 바뀌지 않는 순간이 어디 있을까? 그 모든 변화 가운데 마지막, 가장 중대한 변화가 오기 전까지는. -40쪽

"과거 속에서 사시네요." 클레어가 말했다.
나는 신랄하게 대꾸하려다가 말을 끊었다. 사실 그 애 말이 옳았다. 삶, 진정한 삶이란 투쟁, 지칠 줄 모르는 행동과 긍정, 세상의 벽에 뭉툭한 머리를 들이대는 의지, 그런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돌아보면 내 에너지의 많은 부분은 늘 피난처, 위안, 또 그래, 솔직히 인정하거니와, 그것, 아늑함을 찾는 단순한 일에 흘러 들어가 버렸다. 이것은 충격까지는 아니라 해도 놀랄 만한 깨달음이었다. 전에는 나 자신을 단검을 입에 물고 다가오는 모든 사람들에 맞서는 해적 같은 사람으로 보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이 망상이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숨겨지고, 보호받는 것, 그것이 내가 진정으로 원하던 것이었다. 자궁처럼 따뜻한 곳으로 파고들어 거기에 웅크리고 있는 것, 하늘의 무심한 눈길과 거친 바람의 파괴들로부터 숨는 것, 그래서 과거란 나에게 단지 그러한 은둔일 뿐이다. 나는 손을 비벼 차가운 현재와 더 차가운 미래를 털어 내며 열심히 그곳으로 간다. 하지만 정말이지 그것이, 과거가 어떤 존재를 가지고 있을까? 결국 과거란 현재였던 것, 한때 그랬던 것, 지나간 현재일 뿐이다. 그 이상이 아니다. 그래도. -66~7쪽

병은 지금 내가 있다고 느끼는 곳과 비슷하다. 어디로부터도, 누구로부터도 멀리 떨어진 곳이다. -77쪽

그러고 보면 우리는 슬픔의 작디작은 배들이 아닌가. 어두운 가을을 헤치며 이 먹먹한 정적을 떠돌아다니는 작은 배. -78쪽

어쩌면 삶의 모든 것이 삶을 떠나기 위한 긴 준비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103쪽

그러나 나의 혼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에게 빛을 발하는 것은 신성한 그녀가 아니라 죽을 수밖에 없는 그녀다. 이미 사라진 것들의 그림자들 사이에서 그 빛이 아무리 퇴색했다 해도, 그녀는 내 기억 속에 그녀 자신의 화신으로 존재한다. 내 기억 속 풀이 덮인 둑에 누워 있는 여자와 땅이 이제 그녀의 것으로 간직하고 있는 흩어진 먼지와 마른 골수, 이 두 가지 가운데 어느 것이 더 현실적인가? 다른 곳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녀는 살아남아 있을 것이 틀림없다. 기억의 납 인형 진열관 속에서 움직이는 인형과 같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그녀는 나의 그녀와, 또 서로의 그녀와 다를 것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사람은 가지를 치고 흩어진다. 그것은 지속되지 않는다. 지속될 수가 없다. 그것은 불멸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죽을 때까지 죽은 자를 우리와 함께 이고 갈 뿐이다. 그런 다음에는 누군가가 우리를 잠시 이고 간다. 그런 다음에는 또 누군가가 우리를 이고 갔던 자들을 이고 가고, 이렇게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먼 세대들로 이어져 간다. 나는 애너를 기억한다. 우리 딸 클레어는 애너를 기억하고 나를 기억할 것이다. 그런 다음 클레어도 사라질 것이고, 클레어는 기억하지만 우리는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겨날 것이다. 그것으로 우리는 최종적으로 소멸한다. 물론 우리 가운데 어떤 것은 남을 것이다. 바랜 사진, 머리카락 한 타래, 지문 몇 개, 우리가 마지막 숨을 쉰 방의 공기에 들어 있던 원자 몇 개. 그러나 이 가운데 어느 것도 우리, 지금 우리이고 전에 우리였던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죽은 자의 먼지일 뿐이다. -122~3쪽

어린 시절에는 행복이 달랐다. 그때는 그냥 축적하는 것, 뭔가를-새로운 경험을, 새로운 감정을- 가지는 것, 그리고 기것이 마치 광택이 나는 기와인 양 언젠가 놀랍게 마무리될 '자아'라는 누각에 올려놓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그리고 쉽사리 믿지 않는 것, 그것 역시 행복에서 큰 부분을 차지했다. 자신의 단순한 행운을 완전히 믿을 수 없는 그 행복한 상태 말이다. -148쪽

모든 것이 약간씩 균형을 잃었고, 모든 각도가 약간씩 어긋나 있었다. 계단은 더 가팔랐고, 층계참은 더 비좁았고, 화장실 창문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도로가 아니라 뒤쪽의 들판을 내려다보았다. 현실, 지독하게도 자족적인 현실이 내가 기억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휘어잡은 뒤 마구 흔들어 자신의 입맛에 맞는 형태로 맞추자 나는 거의 공황 상태에 이를 뻔 했다. 뭔가 귀중한 것이 해체되면서 내 손가락들 사이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은 그렇게 빠져나가도록 방기해 버렸다. 과거, 그러니까 진짜 과거보다는 우리가 내세우는 과거가 더 중요하다. -159~60쪽

정말이지 기억을 위한 노력만 충분히 기울이면 사람은 인생을 거의 다시 살 수도 있을 것 같다. -163쪽

나는 애너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는 일부러 그녀 생각을 한다. 하나의 훈련이다. 그녀는 칼처럼 내게 박혀 있는데도 나는 그녀를 잊기 시작한다. 내 머릿속에 들어 있는 그녀의 영상은 이미 가장자리가 닳고, 염료 조각, 금박 조각이 떨어져나가고 있다. 언젠가는 캔버스 전체가 텅 빌까? 내가 그녀를 얼마나 모르는지 깨닫게 되었다. 내가 아주 천박하게, 부적당하게 그녀를 알았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나 자신을 탓하는 것은 아니다. 아니, 탁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내가 너무 게을렀던가? 너무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가? 너무 나 자신에게만 열중했던가? 그래, 다 맞다. 하지만 그것을, 이런 잊음을, 이런 몰랐음을 꼭 탓할 일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차라리 안다는 면에서 너무 많은 것을 기대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 자신도 요것밖에 모르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안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216~7쪽

기억은 움직임을 싫어한다. 사물을 정지된 상태로 유지하는 쪽을 더 좋아한다. 그래서 내가 기억하는 다른 많은 장면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이 장면도 하나의 그림으로 본다. -2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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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6-12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직접 손으로 세차를 합니다. 무섭게 돌아가는 자동세차 기계 안으로 -
밀어넣고 싶지 않거든요.
매일 열심히 달리면서도 어디 아퍼도, 추운 겨울에 몸이 꽁꽁 얼어도, 더운 여름에
혼자 숨이 막혀도 말없이 나를 위해 노동을 하는 자동차에 대한 작은 감사의 표시로 -
나는 직접 손 세차를 해줍니다. 그러면 그 다음 날 가볍게 달리는 자동차의 마음을
느낄 수가 있거든요. (웃음)
모든 사물도 정령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언제나 존중하고 싶습니다.
이 책은 바다, 물에 대한 글인 것 같기는 하나.
저는 이 멋진 밑줄긋기란에서 세상 모든 사물에 대한 시선을 느꼈습니다.

이매지 2007-06-12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아빠도 아침마다 꼭 직접 세차를 하고 나가세요. (택시기사하셔요^^) 차를 깨끗하게 하고 나가면 차도 좋고, 운전하는 아빠도 좋고, 타는 손님도 좋다는 마음에서요^^; 그때문인지 차가 아직 별 고장없이 잘 달려주네요^^

비로그인 2007-06-14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핫. 거대한 팥 아이스크림. 맛있어 보이긴 한데...혼자 먹기엔..(웃음)
(- 사실, 이 댓글을 그 페이퍼에 달고 싶었는데..에러가 나서 말입니다.=_=)
이매지님 서재가 참 깔끔합니다. ^^
 
HOW TO READ 라캉 How To Read 시리즈
슬라보예 지젝 지음, 박정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5월
품절


도둑으로 의심받은 노동자에 대한 오래된 이야기를 상기해보자. 매일 저녁 퇴근할 때 그가 끌고 가던 운반 수레를 꼼꼼하게 조사했지만 감독관은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그 안은 항상 텅 비어 있었던 것이다. 이윽고 감독관은 한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그 노동자가 훔친 것은 바로 수레였던 것이다. 이 반성적 역전은 커뮤니케이션 자체에 내재해 있다. 우리는 소통 행위의 내용 속에 소통 행위 자체를 포함시켜야 한다. 왜냐하면 소통 행위의 의미는 그것이 하나의 소통 행위라는 사실을 반성적으로 주장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점이 무의식의 작동 방식에 대해 잊지 말야아 할 첫 번째 사항이다. 그것은 수레 안에 숨어 있지 않다. 그것은 수레 자체다. -36~7쪽

라캉이 "상징적 거세"라고 부른 것(여기서는 무시할 수 있는 복합적인 근거로)이 바로 즉각적인 심리적 정체성과 상징적 정체성(대타자 안에서 혹은 대타자에 대해서 내가 누구인지를 결정하는, 내가 쓰고 있는 상징적 가면이나 타이틀) 사이의 간극이다. 그리고 남근은 이 상징적 거세의 기표다. 라캉에게는 왜 남근이 단순한 생식기관이 아니라 기표일까? 전통적인 임관식에서 권력의 상징물은 그것을 획득한 주체를 권력 실행자의 위치에 놓는다. 만약 왕이 손에 홀을 쥐고 왕관을 쓰고 있다면 그의 말은 왕의 말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그런 상징물은 내 본성의 일부가 아니라 외재적인 것이다. 나는 외부의 그것을 착용하는 것이다. 나는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 그것을 입는다. 즉자적인 존재로서의 나와 내가 행사하는 기능 사이의 간극을 도입함으로써(즉 나는 결코 완벽하게 내가 행사하는 기능의 차원일 수 없다) 그것들은 말 그대로 나를 "거세한다." 이것이 그 악명 높은 '상징적 거세'의 의미다. 거세는 내가 상징적 질서에 포획되어 있다는 사실과 상징적 가면이나 타이틀을 받아들이는 사실에서 발생한다. 거세는 직접적인 존재로서의 나와 나에게 어떤 지위나 권위를 부여하는 상징적 타이틀 사이의 간극이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거세는 권력의 반대가 아니라 권력과 동의어다. 그것은 나에게 권력을 부여한다. 그래서 남근은, 내 존재의 생명력을 표현하는 기관이 아니라 그 자체로 상징물, 즉 왕이나 판사가 자신의 표장을 착용하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내가 쓰는 가면이나 상징 같은 것이다. 남근은 내가 달게 된 일종의 신체 없는 기관으로, 그것은 결코 신체 일부가 되지 않은 채 내 몸에 달라붙어 비일관성과 과도한 보충성으로 삐쳐 나오는 것이다.
이 간극 때문에 주체는 결코 완전하게 자신의 상징적 가면이나 타이틀과 직접 동일화될 수 없다. -55~6쪽

우리는 타자의 욕망과 대면함으로써 야기되는 불안(anxiety)에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라캉에 따르면, 환상이 타자의 수수께끼 같은 욕망에 대한 대답을 제공한다. 환상에 대해 기억해야 할 점은 환상은 우리에게 어떻게 욕망할 것인지를 가르쳐준다는 점이다. 환상이란 내가 딸기 케이크를 원하지만 현실에서 구할 수 없을 때 딸기 케이크를 먹는 환상을 꿈꾸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문제는 어떻게 나는 다른 무엇보다 딸기 케이크를 원하는지 아는 것이다. 환상이 말해주는 것은 바로 이 것이다. -76쪽

하지만 이와 동시에 덧붙여야 할 것은 환상에서 상연되는 욕망은 주체의 것이 아니라 타자의 욕망, 내 주위에서 내가 관계 맺는 사람들의 욕망이라는 점이다. 환상, 혹은 환상적 장면 내지 시나리오는 "너는 그것을 말하고 있지. 하지만 네가 그렇게 말하면서 실제로 원하는 것은 뭐지?"에 대한 대답이다. 욕망의 근원적 질문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내게 원하는 것은 무엇이지? 그들이 내 안에서 보는 것은 무엇이지? 나는 그들에게 무엇이지?"다. 어린아이는 복잡한 관계망 속에 끼워져 있다. 아이는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아이를 둘러싸고 전쟁을 벌이는 아버지, 어머니, 형이나 누나, 삼촌, 숙모 등. 가령, 어머니는아들을 보살핌으로써 아버지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의 전쟁터 내지 촉매 같은 역할을 한다. 아이는 자신의 이런 역할을 인지하고 있지만 그가 타인들에게 정확히 어떤 대상인지, 그들이 자신을 가지고 벌이는 게임의 성격이 정확히 무엇인지 헤아릴 수 없다.
환상은 이 수수께끼에 대한 답을 제공한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환상은 내가 타인들에게 어떤 존재인지 알려준다. 환상의 상호 주관적 성격은 프로이트가 자신의 어린 딸이 딸기 케이크를 먹는 환상에 대해 말한 것처럼 지극히 간단한 상황에서도 파악될 수 있다. 이 상황은 결코 욕망의 환각적 작용(어린 딸은 케이크를 원한다. 하지만 케이크는 없다. 그래서 아이는 케이크에 대한 환상을 갖는다)의 상황이 아니다. 중요한 점은 딸기 케이크를 게걸스럽게 먹는 동안 그 어린 소녀는 자기가 케이크를 맛있게 먹는 걸 엄마 아빠가 만족스럽게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는 점이다. 딸기 케이크를 먹는 환상은 실제로는 이와 같은(부모가 준 케이크를 맛있게 먹는 아이와의) 동일성을 형성하려는 시도에 관한 것으로, 그것은 부모를 만족시켜서 자신을 그들의 욕망의 대상으로 만들어준다. -77~8쪽

'이상적 자아'는 주체의 이상화된 자기 이미지(내가 되고 싶은 모습, 타인이 그렇게 봐주기를 원하는 모습)다. 자아 이상은 내가 내 자아 이미지 속에 새겨 넣고자 하는 응시의 작인으로, 나를 감시하고 나로 하여금 최선을 다하도록 촉구하는 대타자이자 내가 따르고 실현하고자 하는 이상이다. 초자아는 그와 같은 작인의 가혹하고 잔인하며 징벌하는 측면을 가리킨다. 이 세항을 기초 짓는 구조화 원리는 라캉의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다. 이상적 자아는 상상계로, 라캉이 "소문자 타자"라고 부른 내 자아의 이상화된 분신 이미지이다. 자아 이상은 상징계로, 내 상징적 동일화의 지점, 그러부터 나 자신을 관찰(판단)하는 대타자 내부의 지점이다. 초자아는 실재계로, 내게 불가능한 요구들을 퍼붓고 그것을 해내지 못하는 내 실패를 조롱하는 잔인하고 탐욕스러운 작인이자, 내 '죄스러운' 분투를 억누르고 그 요구들에 응하려 하면 할수록 그 시선 속에서 나는 점점 더 유죄가 되는 그런 작인이다. 스탈린 시대 공개 재판에서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는 피고에 대한 냉소적인 모토 '그들이 결백하면 할수록 그들은 총살당할 만하다'는 가장 순수한 모습의 초자아다. -1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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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6-11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책 좋아요? 아직 실물을 못봤는데

이매지 2007-06-11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제 내용은 200페이지 남짓이구요, 종이도 페이퍼백 타입이라 가벼워요. 전에 서점에서 봤는데 이 시리즈가 두께는 다 비슷비슷하더라구요. 아직 라캉밖에 읽지 않아서 다른 건 잘 모르겠지만, 내용도 괜찮은 듯 싶네요^^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것 같아서 좋네요^^

가넷 2007-06-11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던데요. 안내하고있는 내용의 어려움 여부를 떠나서..-.-;
 
뉴트로지나 후레쉬 쿨링 바디 미스트 선블럭 SPF30/PA+++ - 141.5g
존슨앤드존슨
평점 :
단종


  기존에 별도로 바디용 선크림을 사용해 오지 않았는데 요새는 햇빛이 워낙 강해서 그런지 선크림을 바르지 않고 밖에 나가면 따끔따끔한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기존에 얼굴에 사용하던 선크림을 팔, 다리에 바르고 나갔는데 얼굴에 발랐을 때는 몰랐는데 끈적거리는 느낌이 들어서 하루 종일 답답한 느낌이 들었어요. 게다가 번들거리는 느낌도 있어서 보기에도 썩 좋지 않더라구요. 또 무엇보다 일일이 펴발라줘야하니까 면적이 넓은지라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구요. 그래서 바디용 선크림을 하나 살까하고 둘러보다가 이제품을 알게되서 혹시나하고 한 번 구입해봤어요.

  이 제품은 크기가 어느 정도 되기때문에 휴대하기엔 다소 부담스러운 느낌이었어요. 그렇지만 가방에 넣고 다니지 못한 정도는 아니었어요. (굳이 따지자면 3단 우산 크기 정도 되는 듯) 제 손이 작은 편인데 한 손에 딱 잡히는 정도라 크게 불편함은 없었어요. 사용법은 간단하게 흔들어 준 다음에 몸에 뿌리면 되서 바쁜 아침에도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었어요. 기존에 선크림을 쓰면서 아쉬웠던 번들거림과 끈적임도 없어서 좋았어요. 게다가 뿌리면 시원한 느낌이 있어서 한 낮에 뿌릴 때에는 잠시나마 시원한 느낌이 들어서 좋았어요. 

  등산을 자주 다니시는 엄마도 보시더니 등산하면서 뿌려도 되겠다라고 얼굴에 한 번 뿌리셨는데 눈이 따갑다고 하시더라구요. 남자친구도 얼굴에 뿌려보더니 면도한 부분이 따끔따끔하다고 하더군요. (스킨보다 더 따갑다고 하더라는) 또 스프레이 방식이라 아무래도 공중에 날려버리는 부분이 없지 않은 듯 싶었어요. 생각보다 금방 사용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리고 향이 썩 좋은 느낌이 아니라 아쉬움이 남았어요. 오이향 비스무레한데 크게 상쾌한 향이 아닌. 게다가 이 향이 하루 종일 가기때문에 지울래야 지울 수 없는 향의 압박이. 향만 조금 보완한다면 여름에 간편하게 사용하기 좋을 것 같은 제품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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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10 2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매지 2007-06-10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얼굴에 안 뿌려봐서 모르겠지만 엄마와 남친의 반응으로 미뤄봐서 충분히 그정도의 위력을 발휘하는 것 같은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