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두 도시 이야기 ㅣ 펭귄클래식 135
찰스 디킨스 지음, 이은정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2년 8월
평점 :
고전을 '누구나 제목은 알지만 읽지 않는 책'이라는 우스갯소리를 흔히 한다. 내게 찰스 디킨스 또한 그랬다. 『크리스마스 캐럴』이나 『올리버 트위스트』, 『위대한 유산』 등으로 이름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몇 년 전 크리스마스에 『크리스마스 캐럴』을 읽은 것을 제외하고는 그의 작품을 제대로 읽은 적이 없었다. 그때 읽은 『크리스마스 캐럴』이 조금이라도 더 매력 있었다면 그의 작품을 내리 읽었을지 모르겠지만,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강조하는 내용일 뿐 이야기 자체는 크게 매력이 없었던 터라 영 심드렁했었고 찰스 디킨스도 그렇게 관심 밖의 작가가 되었다. 그러던 차에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영감을 『두 도시 이야기』에서 얻었다고 언급했고, 때마침 뮤지컬 <두 도시 이야기>도 시작돼 다시 한번 찰스 디킨스에 도전해볼까 싶어졌다. 600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에 히익, 하고 질겁했지만 다행히도 초반의 지루함을 넘기자 나도 모르게 런던과 파리를 오가는 두 도시로 이동했다.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기이자 의심의 세기였으며, 빛의 계절이자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면서 곧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 앞에는 모든 것이 있었지만 한편으로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는 모두 천국으로 향해 가고자 했지만 우리는 엉뚱한 방향으로 걸어갔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두 도시 이야기』는 짧게 말하자면 프랑스 혁명의 중심에 선 사람들의 이야기다. 어느 정도 개인의 삶이 보장되고, 다소간의 갈등은 있을지라도 전반적으로 안정된 분위기의 런던. 그런 런던과 반대로 파리는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사람들의 얼굴은 찌들었고 목소리에는 근심이 배었으며 얼굴에는 굶주림의 고랑이 깊어져만 가는 도시다. 가난과 배고픔, 지배계급의 압제에 사람들은 최소한의 삶조차 보장받지 못한 채 살아간다. 그리고 이 상황을 더는 견디지 못한 그들은 조금씩 '그날'을 준비한다.
그리고 이렇게 물밑에서 혁명이 진행되는 동안 자신의 의지와 전혀 상관 없이 이 혁명에 휩쓸린 사람들이 있다. 프랑스 귀족 가문의 일원이었으나 민중을 향한 폭압을 더는 용인할 수 없어 자신의 모든 지위와 권리를 버리고 런던에서 새 삶을 시작하는 찰스 다네이를 비롯해, 18년 동안 감옥에 갇혀 지내며 정신적으로 무너져 어둠 속에서 구두 만들기에만 골몰하나 친구인 로리의 도움으로 딸 루시를 만나며 '되살아난' 마네트 박사, 아버지 마네트 박사와 남편 다네이를 사랑으로 보듬어주고 이들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루시를 중심으로 영국 은행에 근무하는 로리, 변호사 스트라이버와 시드니 카턴 등이 그들이다. 그리고 이렇게 혁명에 휩쓸린 사람들 반대편에 오랫동안 혁명을 준비해온 드파르주와 그의 부인이 있다. 런던과 파리라는 두 도시가 대비되듯이 인물 구성에 있어서도 크게 두 축으로 대비된다. 각각의 축에 그 나름의 사연이 있고, 그 나름의 개연성을 가졌기 때문에 쉽사리 이들의 대립을 선과 악의 대립이라고 선을 그을 수 없다. 그저 하나의 사건, 하나의 시대를 둘러싸고 어쩔 수 없는 만남이 하필 그곳에서 벌어진 것일 뿐이다.
장소와 인물의 대비를 통해 이야기는 탄탄하고 극적으로 진행된다. 사랑과 증오, 희망과 절망, 용서와 복수 등 온갖 감정의 변화를 읽어가다보면 어느샌가 마지막 페이지에 다다른다. 워낙 다양한 층위의 이야기가 있어 한 가지 한 가지에 초점을 맞추다보면 이야기가 길어질 테지만, 꼭 짚고 싶은 것은 대중의 광기다. 애초에 품은 혁명의 취지를 잊은 채 그저 피에 굶주려 한 사람의 죄과를 제대로 판단하기보다는 그저 더 많은 사람들을 기요틴에 보내려는,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며 점점 광기에 취해가는 '애국시민'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대체 무엇을 위한 혁명인가, 결국 이들은 그들이 쫓아낸 귀족들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라는 자조가 들었다. 두 번 재판석에 오르는 다네이를 보면 '애국시민'의 이같은 태도는 극명히 드러난다. 첫번째 재판에서는 그의 무죄에 환호하던 사람들이 두번째 재판에서는 그의 유죄 선고에 환호하고 그의 처벌을 촉구한다. 이미 광기에 휩쓸린 '애국시민'에게는 대의도 명분도 유무죄 여부도 중요하지 않다. 그저 그들은 복수와 피에 목말라 누군가에게 화살을 돌리고 싶어할 뿐이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혁명이라는 혼돈의 시기에서만 유효한 이야기일까?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늘 이성적인 판단을 한다고, 사리분별을 갖췄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온라인상에서 그 상대만 바꿔가며 끊임없이 벌어지는 마녀사냥도 '애국시민'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 내면에 잠재된 광기의 변형은 아닐까? 인간이란 누구나 이렇게 타인을 향한 잔인한 폭력성을 안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기요틴에 잘려간 머리를 세는 낙으로, 붉게 물든 땅에 익숙해져버린 사람들을 보면서 섬뜩했지만, 그 안에서 내 모습을 본 것만 같아 부끄럽기도 했다.
"내가 지금 하려는 행위는 지금까지 해온 어떤 행동보다 훨씬 더 숭고하다. 지금 내가 가려는 길은 지금까지 걸었던 어느 길보다 훨씬 더 평안한 길이리라"라는 문장과 함께 사랑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시드니 카턴. 그리고 그가 마지막을 함께해준 한 소녀. 그들의 죽음과 함께 『두 도시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하지만 이야기가 끝난 뒤에도 쉽사리 책을 덮을 수가 없었다. <다크나이트 라이즈> 때문에 읽기 시작했으나 어느 순간 영화와의 연관성을 찾으려 하기보다는 찰스 디킨스라는 거장이 만들어낸 이 놀랄만큼 가혹하고도 숭고한 이야기에 매혹되었다. 『두 도시 이야기』를 통해 절망 속에서 희망을 보았다, 라고 훈훈하게 마무리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 모든 상황이 그저 안쓰럽고 안타까웠다. 시드니 카턴의 희생도,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사랑도 과연 숭고하다고만 말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자조 섞인 탄식을 할 뿐이었다. 게다가 이것은 몇백 년 전 파리와 런던의 이야기로 그치는 것이 아닌, 이제는 끝난 시절의 이야기가 아닌 오늘날 지구 반대편의 이곳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이야기니 말이다.
덧1) <다크나이트 라이즈>와 『두 도시 이야기』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이미 잘 정리하신 분이 계셔서 링크로 갈음한다.
덧2) 근래에 읽은 책 중에 정말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오탈자가 많았다. 영화와 뮤지컬 등에 맞추느라 일정이 급했겠거니 이해는 되지만 매력적인 이야기에 옥의 티처럼 오탈자가 있어 안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