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과 소설가 - 오르한 파묵의 하버드대 강연록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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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작가는 소설을 쓸 때 자신이 사용하는 기교를 인식하지 못합니다. 머릿속에서 하는 온갖 작업과 계산도 잊고, 소설 예술이 제공한 기어, 핸드 브레이크, 버튼 들을 사용하고 있으며, 더욱이 이중에 새로 발명된 것도 있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하지만, 아주 자연스럽게 저절로 씁니다. 소설 쓰기에(그리고 독서에도) 인위적인 면이 있다는 것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이러한 유의 독자와 작가를'소박한 사람'이라고 부릅시다. 이것과는 정반대되는 감성, 그러니까 소설을 읽거나 쓸 때 텍스트의 인위성과 현실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소설을 쓸 때 사용되는 방법과 소설을 읽을 때 우리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에 특별하게 관심을 두는 독자와 작가를 '성찰적인 사람'이라고 부르지요. 소설 창작은 소박한 동시에 성찰적인 일입니다. -20쪽

실러에 의하면 성찰적인 시인은 무엇보다도 먼저 단어들이 실재를 규명할지, 실재에 도달할지, 말들이 그가 원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을지 등등의 문제로 불안해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그들은 자신이 쓴 시를 너무나 잘 알고 있고, 사용한 방법과 기법 들의 인위성도 자각하고 있습니다. 소박한 시인은 자신이 인지하는 세계와 세계 자체를 그다지 구별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현대적이고 성찰적인 시인은 자신이 지각하는 모든 것을 의심하고, 심지어는 자신의 지각마저 의심합니다. 게다가 자신이 지각한 것을 시로 옮길 때도 교육적, 도덕적, 사상적 원칙들로 고민합니다. -23쪽

우리는 소설에 중심부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소설을 읽을 때면 마치 풍경을 걸어가며 모든 잎사귀를, 모든 부러진 가지를 어떤 신호처럼 여기고 의심하며 주의 깊에 살피는 사냥꾼처럼 행동합니다. 우리 눈앞에 나타난 모든 새로운 단어, 사물, 캐릭터, 주인공, 대화, 묘사, 세부 사항, 소설의 언어적, 형식적 특징, 이야기의 예상 밖 진행 등이 표면에 보이는 것과는 다른 어떤 것을 암시한다고 느끼면서 읽어 나갑니다. 소설에 중심부가 있다고 믿으면 중요하지 않게 여겼던 세부 사항이 중요할 수 있고, 소설 표면에 있는 모든 것에 다른 의미가 있을 수 있다고 느끼게 됩니다. 소설은 죄책감과 피해망상 그리고 불안감을 향해 열려 있는 서사입니다. 소설을 읽을 때 느끼는 심오한 감정 또는 어떤 삼차원 세계에 있는 것 같은 착각도 이 감춰진 중심부의 존재 때문입니다. -32쪽

세부 사항들이 정확하고 분명하고 아름답게 묘사될 때면 우리는 "맞아, 정확히 이래, 바로 이거야"라고 감탄합니다. 이러한 묘사를 통해 독자들은 상상 속에서 장면을 떠올리고 작가에게 열광하게 됩니다. 또한 우리가 좋아하는 작가가 모든 것을 마치 실제 경험한 것처럼 설명할 수 있으며, 전혀 경험하지 않았던 것도 실제 경험한 것처럼 우리를 설득할 수 있을 거라고도 느낍니다. 이러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힘을 작가의 '역량'이라고 합시다. 이 역량은 정말로 멋진 것이며, 소설가의 존재를 잠깐이 아니라 전적으로 잊고 소설을 읽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무척이나 재미없는 일이라는 것을 한 번 더 환기하고자 합니다. 그 어떤 소설을 읽건 내내 작가를 잊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소설의 감각적 세부 사항들을 항상 우리의 경험과 비교하고, 그렇게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우리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기 때문입니다. -51쪽

우리가 어떤 소설에 전적으로 몰입했을 때, 소설 표면에 있는 복잡한 풍경 가운데 깊숙이 내재된 의미를 찾고, 주인공들의 감각적인 경험으로부터(사람들의 대화와 일상의 사소한 세부 사항들을 통해 세계가 그들 눈에 어떻게 보이는지 발견하면서) 즐거움을 느낄 때 작가의 존재를 잊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우리 손에 들린 소설이 어떤 작가에 의해 계산되고 계획되어 쓰였다는 사실조차 완전히, 소박하게 잊을 수도 있습니다. 소설 예술의 강력한 특징은, 우리가 작가를 가장 많이 잊는 순간, 그가 텍스트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작가를 잊는 순간, 작가의 세계가 자연스럽고 실재라고 느끼며, 작가의 '거울'을 완벽하고 자연스러운 거울(여기서 유행이 지난 비유를 사용하고 싶습니다)이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물론 완벽한 거울은 없습니다. 단지 우리의 기대에 완벽하게 부응하는 거울만이 있을 따름입니다. 소설을 읽기로 결심한 모든 독자는 자신의 취향에 따라 하나의 거울을 선택합니다. -52쪽

소설의 등장인물은 필연적으로 이 지점에서 풍경으로 들어갑니다. 왜냐하면 소설 읽기는 세상을 등장인물의 눈과 정신과 영혼을 통해 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낭만시, 서사시, 메스네비, 장시 같은 현대 이전의 서사들은 세상을 독자의 관점에서 묘사합니다. 이러한 전통 서사에서 주인공은 어떤 풍경 속에 있고, 우리 독자들은 외부에 있습니다. 소설은 우리를 풍경 속으로 초대하고, 우리는 세상을 그 안에 있는 등장인물의 관점에서, 그의 감각을 통해서,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의 단어를 통해서 봅니다. 등장인물의 눈으로 볼수록 세계는 우리에게 더 친근하게 느껴지고 쉽게 이해됩니다. 소설 예술의 거부할 수 없는 힘은 이 친근함에서 나옵니다. 하지만 진짜 주제는 소설 주인공들의 '캐릭터'가 아니라, 세계의 속성입니다. 주인공들의 삶, 세상 속에서 그들이 차지한 위치, 그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며 순간순간 보고 느끼는 방식 등이 순문학 소설의 소재가 됩니다. -62쪽

소설을 다른 장편 서사들과 구별하고, 보편적으로 사랑받는 장르로 만든 기본 특징은 선 안에 있는 이 작은 점들(신경관) 각각을 통해 이야기 속 인물 가운데 한 명의 눈으로 볼 수 있고, 그렇게 관찰한 결과를 주인공의 감정과 지각과 결부시킬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사건이 일인칭 관점으로 서술되든 삼인칭 관점으로 서술되든, 소설가 또는 서술자가 이 관련성을 알든 모르든, 독자는 전체 풍경 속 모든 세부 사항을 사건과 관련된 주인공의 감정, 심리 상태와 연관지어 읽습니다. 소설 예술의 내부 구조에서 비롯된 황금의 법칙은 바로 이것입니다. 이야기와 별로 관계가 없고 사람이나 사물이 없는 풍경 묘사라 할지라도 소설 독자들은 주인공의 감정적, 정신적 세계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79쪽

소설은 기본적으로 시각적 문학입니다. 소설은 주로 우리의 시각적 지능, 즉 사물들을 눈앞에 떠올리고 단어를 머릿속에서 그림으로 전환하는 능력에 호소하여 우리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다른 문학 장르와 비교했을 때, 소설은 우리의 평범한 인생 경험과 때로는 알아차리지도 못했던 감각에 대한 기억에 의존한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 소설은 세상이 어떻게 보이는지에 관한 것이기도 하지만, 냄새, 소리, 맛, 감촉에 의해 일깨워진 느낌들도-다른 그 어떤 문학 형식도 흉내낼 수 없는 풍부함으로-묘사합니다. 소설의 전체 풍경은 주인공들이 보는 것 외에도 세상의 소리, 냄새, 맛, 감촉의 순간들이 있어 활기를 띱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존재하면서, 매 순간 우리 나름대로 느꼈던 경험들 가운데 가장 뚜렷한 것은, 당연히, 보는 것입니다. 소설 쓰기는 단어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고, 소설 읽기는 다른 사람의 단어를 가지고 우리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는 것입니다. -92~3쪽

소설가는 주인공들을 둘러싸고 있는 사물들에 대해 주인공만큼이나 관심이 있으며, 소설 속 세계의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 그 안에 있기 때문에 '사물'들을 필요한 만큼 화가처럼 묘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플로베르가 말한 '적절한 단어'를 찾기에 앞서 소설가들이 찾아야 하는 '적절한 심상' 역시 풍경, 사건, 소설 속 세계에 완전히 들어간 뒤에야 찾을 수 있습니다. 소설가가 주인공에게 느끼는 애정도 이렇게 해야만 드러날 수 있습니다. 소설에서 사물에 대한 묘사는 주인공들에게 느끼는 애정의 결과이며 표현입니다. -112쪽

소설이 일상생활의 경험과 감각을 묘사하고, 삶의 본질적인 순간을 포착하는 작업을 통해 독자를 일깨운다는 얘기는 앞에서 여러 차례 했습니다. 동시에 소설은 인간적인 감정, 우리 주위의 평범한 일상, 제스처, 말, 태도 들에 대한 강력하고 풍부한 기록 보관소 역할을 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인식하지 못했던 다양한 소리, 단어, 일상 구어, 냄새, 모습, 맛, 물건, 색깔은 오로지 소서가들이 이것들을 인식하고 단어로써 주의 깊게 배치했기 때문에 보존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박물관에서 어떤 사물 또는 그림을 봤을 때 그것이 어떻게 인간의 삶과 이야기와 세계관에 영향을 끼쳤는지는 카탈로그의 도움으로만 추측할 수 있습니다. 소설에서는 사물들뿐만 아니라, 이미지, 대화, 냄새, 이야기, 신념, 감각 등이 일상생활의 일부로서 묘사되고 보존됩니다. -125쪽

어떤 소설을 완성하고, '실현'하려면 작가의 의도 못지않게 독자의 의도도 중요합니다. 한 명의 독자로서 나 자신을 언급하자면, 아이셰처럼 그리고 다른 많은 독자처럼, 아무도 그 소설을 읽지 않을 때 나 혼자만이 발견한 것 같은 느낌으로 읽으며 불운하게도 사람들이 작가의 진가를 몰라준다고 상상하는 것을 나도 좋아합니다. 그런 순간이면 이해받지 못하는 소설의 가장 이해받지 못하는 부분을 나 혼자만이 이해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그러면 주인공들과 동일화되는 것이 자랑스러워질 뿐만 아니라 작가가 소설을 내 귀에 대고 속삭이고 있다는 착각이 듭니다. 이러한 자긍심이 극에 달하면, 심지어 자신이 그 소설을 썼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중략) 아무도 읽지 않는 소설을 읽을 때는 작가에게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더 열심히, 더 상상력을 발휘하여 익게 됩니다. -136~7쪽

어떤 소설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의 어려움은 작가의 의도나 독자의 반응을 파악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텍스트 속 지식들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확보하고 텍스트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아내는 데 있습니다. 소설가는 독자가 이래저래 해석하리라 추측하며 썼겠지 하고 추측하며 텍스트를 쓰고, 독자 역시 소서가가 이래저래 추측하면서 썼겠지 하고 추측하면서 읽는다는 것을 절대 잊지 맙시다. 독자들이 스스로 작가가 된 기분에 젖거나, 작가가 이해받지 못해 불행해한다고 여기면서 읽을 거라는 것도 소설가는 미리 예상하고, 거기에 맞춰 소설을 씁니다. 어쩌면 지금 나는 직업상의 비밀을 너무 많이 털어놓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작가협회에서 제명당할지도 모르겠군요! -137쪽

소설의 중심부는 처음 작가로 하여금 그 소설을 쓰도록 이끈 직감, 사고, 지식 등등입니다. 하지만 소설가들은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중심부의 장소와 형태가 바뀐다는 것도 압니다. 대부분 중심부는 소설을 써 나갈수록 모습이 드러납니다. 많은 소설가가 처음 글을 시작하면서 중심부를 이야기의 형태로 전달될 주제 정도로만 여깁니다. 하지만 소설을 쓸수록 필연적으로 여러 가지로 해석 가능한 중심부의 심오한 의미를 발견해 드러낼 수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소설이 진행되고 풍부해질수록, 각각의 나무뿐만 아니라, 뒤엉킨 나뭇가지와 잎사귀가 정성스럽게 묘사되어 그림이 되어 드러날수록, 작가도 독자도 '감춰진 중심부'에 대한 생각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소설 읽기는 진짜 중심부와 진짜 주제가 무엇인지를 탐색하는 과정입니다. 우리는 한편으로는 표면의 세부 사항에서 묘미를 느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진짜 중심부가 무엇인지를 궁금해합니다. 때로 독자에게는 중심부, 즉 소설의 진정한 주제를 탐색하는 것이 그 세부 사항들보다 더 중요하게 보입니다. -1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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