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당신은 아무 생각도 없이 하늘을 보고 있었어요?" "하늘을 바라볼 때는 다 그러는 법 아닌가?" "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당신은 모르나보군요." 소녀는 눈을 한 번 커다랗게 떴다가 마치 한숨을 쉬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그제야 시즈마는 소녀의 양쪽 눈동자 색깔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응달에 있어서 몰랐는데, 오른쪽 눈은 머리카락과 똑같이 칠흑빛이지만 왼쪽 눈은 약간 초록빛을 띠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오른쪽 눈이 촉촉하고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데 비해 초록빛을 띤 왼쪽 눈은 인공적이고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아무래도 의안인 듯했다. -25~6쪽
"……혹시 야마시나 씨가 용의 연못에 남은 게 그것 때문이야?" "그래요. 아버지는 내가 슬슬 데뷔해도 되겠다고 생각하고 계시고, 나도 한시라도 빨리 어머니와 같은 탐정의 세계에 뛰어들고 싶어요. 그러니까 지금은 고토노유에서 결과를 기다릴 수밖에요." "그럼 미카게가 탐정으로 데뷔를 하느냐 마느냐가 야마시나 씨의 교섭 능력에 달려 있다는 말이네. 살인현장에서 비지니스라. 어쩐지 굉장히 현실적이군." "원래 탐정이 그런 거예요. 묘한 환상 같은 건 버리는 게 나아요. 그리고 나는 그런 일을 하기 위해, 어머니의 뒤를 잇기 위해 태어난걸요. 이래봬도 사회에 필요한 일이라고요."-62쪽
예민한 시기를 스가루 후보의 대역으로 보낸 사나코는 자신만의 길을 찾고 싶은 것이리라. 그런 심정은 이와쿠라가 평한 '자유'라는 말만으로는 제대로 표현한 수 없을 것 같았다. 미카게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저도 어렸을 때부터 돌아가신 어머니의 뒤를 이어 탐정이 되기 위해 수련해왔어요. 5년 전부터는 경험을 쌓기 위해 아버지와 함께 수많은 마을을 돌아다녔죠. 여러 마을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다양한 생각을 접했고요. 그런 과정에서 저는 제가 나아가려는 길이 옳다는 걸 더욱 깊이 확신하게 됐어요. 사나코 씨도 바깥세상으로 나가면 찾고 있던 자신의 길을 분명히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미카게는 마치 연장자 같은 말투로 말했다. 열일곱 소녀가 스물네 살 여자한테 하는 말이니 입장이 완전히 뒤바뀐 셈이다. 하지만 미카게의 목소리에는 그러한 나이차를 뛰어넘은 진실미가 담겨 있었다. -147~8쪽
"내 왼쪽 눈은 미사사기 미카게의 증표야. 하지만 이 눈이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건 아니지." "그건 무슨 소리야? 요전에는 꿰뚫어본다고 큰소리친 것 같은데." 며칠 전의 광경이 되살아났다. 용의 연못에서 수정 눈을 뜨고 침묵으로 주위를 압도하던 아름다운 모습. 그건 거짓이었던 걸까. "그냥 퍼포먼스야. 나는 점쟁이도 초능력자도 아니고, 합리적 사고를 바탕으로 움직이는 탐정이거든. 그리고 지금까지 줄곧 어머니의 뒤를 이을 탐정으로 자라왔고." (중략) "중요한 건 오른쪽 눈이야. 실은 이 오른쪽 눈이 내게 힘을 줘. 시즈마는 우뇌와 좌뇌의 활동에 관해 알아? 우뇌는 감성, 좌뇌는 언어를 관할한다고 해. 그리고 뇌는 각각 반대쪽의 감각을 다스리지. 우뇌가 불완전하면 좌반신에 마비가 오는 식으로." "즉 오른쪽 눈으로 본 걸 좌뇌가 판단한다는 말이야?" "그런 셈이야. 그러니 내 머리에 들어오는 모든 정보는 불완전하고 상황에 좌우되기 쉬운 감성이 아니라, 합리성을 필요로 하는 말로 처리되는 거야. 나는 모든 것을 말로 처리할 수 있어. 거기에는 전혀 애매함이 없지."-158~9쪽
"그럼 미카게는 컴퓨터에 수식을 쳐넣는 것처럼 사물을 본다는 거야? 못 믿겠는데. 바로 에러가 날 거야." (중략) "그러니까 오히려 탐정활동에는 수월해. 합리적이지 않으면 반드시 좌뇌가 반응하지. 모순된 현상이라고 말이야. 특히 인간은 우뇌 탓에 확실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나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것에만 반응하도록 되어 있어. 어중간하지. 하지만 말로 처리할 때는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해야 해. 어중간한 건 원래 나쁜 일은 아니지만, 탐정한테는 마이너스 요소일 뿐이야."-1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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