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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
A.M. 홈스 지음, 이수현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4월
평점 :
샛노란 표지에 확 끌려서 이 책을 처음 잡았을 때만 해도 이 책이 이렇게 웃길 줄 몰랐다. 미국드라마 <L 워드>의 각본을 썼다는 저자는 온통 비현실적인 인물들을 등장시키고, '이건 뭐 어디 한 번 갈데까지 가보자는건가' 싶을 정도로 말도 안되는 사건들이 연달아 만들어낸다. 처음에는 다소 심드렁하게 읽었지만,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면서 책의 두께때문에 가방에 공간이 없거나말거나 며칠동안 이 책을 끼고 살 정도로 푹 빠졌다.
가정부와 트레이너, 영양사가 집으로 찾아오고, 직업도 집 밖으로 나갈 일이 없어 몇 달째 집안에서만 지내고 있는 주인공 리처드 노박. 나름 정해진 규칙을 지키며 어디까지나 예측가능한 범위에서만 살던 그는 어느날 정체 모를 통증을 느낀다. 여차저차해서 응급실에 실려왔지만 별다른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검사 결과가 나와 바로 퇴원한다. 집으로 돌아가던 중 그는 우연히 한 도넛 가게에 끌려 택시를 세우고 그 곳에 들어간다. 만약 바로 집으로 갔더라면 다시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일상이 펼쳐졌겠지만, 도넛 가게에 들어서며 그의 인생은 바뀌기 시작한다. 그저 고용-피고용적인 인간관계를 맺고 있었던 그에게 도넛 가게의 주인 앤힐은 친구가 되어 준다. 앤힐과의 만남으로 세상에 한 걸음 발을 내딛는 노박. 그가 그렇게 만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 책에 그려지고 있다.
평온하게 살고 있던 노박이 어느날 갑자기 고통을 느낀 것과 노박이 살고 있는 집 앞에 큰 구덩이가 생기고 이게 점점 커진다는 사실은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둘 다 '왜' 그런 것인지는 끝까지 설명을 나오지 않지만, 어쨌거나 노박의 인생은 두 사건(고통과 구덩이)때문에 변하기 시작한다. '대체 무슨 맛으로 먹나' 싶은 영양적 밸런스를 맞춘 파우더 정도만 먹는 노박의 모습은 정말인지 비인간적이다. 타인과의 대화도 거부한다는듯이 방음이 잘 되는 헤드폰을 끼고 러닝머신을 하고, 주가를 체크하는 모습은 영 정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자신만의 공간에서 생활했던 노박은 '고통'을 없애기 위해 병원에 가기도 하고, 명상원에 들어가기도 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며 세상과 교류한다. 그 과정에서 그는 식료품 매장에서 울고 있던 여자를 가사에서 해방시켜 주기도 하고, 뉴욕에서 자동차를 타고 로스앤젤리스까지 여행을 한 아들을 만나 그동안 쌓였던 감정과 대면하기도 한다. 노박은 이전과는 180도로 달라져 '어떻게 남한테 그렇게까지 해줄 수 있나'라고 생각될 정도로 남을 도우며 살아간다.
사람들이 책을 읽는 이유중 하나는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기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온통 비일상적인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어 정말 '소설'을 읽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뭐가 이렇게 황당해'가 아니라 '야, 이거 밑도 끝도 없는 얘긴데 희안하게 재밌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간간이 등장하는 유머에서는 정말 혼자 빵터져서 키득거리기 일쑤였다. <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라는 다소 강렬한 제목처럼 이 책이 누군가의 '인생'을 구해줄 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책은 누군가의 '일상'을 구해줄 것이라는 것이다. 매일 똑같은 생활에 지루했던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으며 눈이 번쩍 뜨이고, 가슴이 뻥 뚫린 기분을 맛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책 읽기에 시들해진 사람이라면, 뭔가 일탈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이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에 빠져보는 것도 좋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