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공부법
지쓰카와 마유 외 지음, 송태욱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5월
품절


AFS라는 국제적인 교육 교류단체를 통해 유학을 가보는 건 어떨까, 하고 딸들에게 유학을 권했을 때 우리는 솔직히 '고등학교 때 유학을 가는 것은 학업 면에서 위험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유학을 보내기로 결정한 것은 감수성이 풍부한 고등학교 시절에 자신이 경험해온 것과는 다른 문화 속에서 살아보는 체험이 그후의 인생에 커다란 자산이 될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 주변에는 고등학교 때 유학을 경험한 친구들이 많았는데, 그들은 모두 자기만의 매력을 갖고 있었다.
우리는 어학력, 특히 영어 실력을 높이기 위해 유학을 고려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영어권 선진국은 성장한 다음에도 유학 갈 기회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좀처럼 살아볼 기회가 없는 문화권에 가서 고등학생이 느낄 수 있는 것들을 체험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더 강했다. AFS의 고등학생 파견 유학의 기본 목표는 문화 교류에 있었는데, 거기에 공감했기 때문에 위험성을 알고도 보낸 것이었다. -60쪽

핀란드에는 입시가 없다. 대학은 모두 국립, 학생들은 매월 나라에서 장학금을 받는다. 입학금도 수업료도 공짜니, 내는 건 교통비뿐이다. 그러나 앞서도 말했듯이 대부분의 학생들은 집 근처에 있는 학교에 다닌다.
인종과 민족이 다양하게 섞여 있는 학교를 기피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들은 조금 먼 학교에 다닌다고 한다. 그러나 일본처럼 전철이나 버스로 한 시간도 더 걸리는 학교까지 굳이 보내는 부모는 없다. 집에서 조금 떨어진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대체로 기숙사 생활을 택한다. 학교 기숙사에 들어가면 그 기숙사비도 공짜다.
고등학교는 일반 고등학교 외에 일본에도 있는 전문학교가 있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 일반 고등학교로 진학할지 전문학교로 갈지는 자신이 결정한다.
핀란드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진로를 스스로 정한다는 것이다. 당연하다면 또 당연한 얘기일 수 있는데, 일본처럼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부모가 아이의 진로를 결정하거나 취직을 고려해서 과목을 선택해주는 것은 핀란드에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모양이다. -92쪽

핀란드의 고등학생들 사이에 있으면 학교가 '공부하는 곳'이라는 것을 무척 강하게 느낀다. 물론 학교에서 친구들과 만나 수다를 떨기도 하고 함께 점심을 먹으면서 즐거움을 얻기도 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그들에게는 학교란 '배우는 곳'이라는 인식이 확실히 자리잡고 있다. 때문에 일부러 학원까지 가서 배우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핀란드 학생들이 수업에 임하는 진지한 자세에도 나타난다. 그들은 수업중에 절대로 졸지 않는다. -94쪽

그럼 일본 고등학교는 어떨까?
물론 일본의 학교도 공부하는 곳, 배우는 곳이다. 하지만 수업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침시간과 방과 후에는 클럽활동이 있고, 점심시간에도 학교가 기획한 이벤트가 있으며, 축제가 있고, 운동회가 있다.
학교생활이 그대로 자신의 생활이 돼버리는 것이다. 그런 탓인지 '학교에 구속되어 있다'는 의식이 강하고, 학교는 아침부터 하루 종일 쭉 있어야 하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핀란드에서는 학교란 단지 '공부하는 곳'이고, 학교에 반드시 가야한다고 아무에게도 강제당하는 것 같지 않았다.
이것이 일본 고등학교과 핀란드 고등학교의 커다란 차이였다. -96쪽

'읽다'. 사실 이것이 핀란드 교육의 열쇳말이다.
어쩌면 대부분의 일본 학생들에게 해당되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일본에서 나의 공부법은 딱 하나, 암기였다.
시험을 코앞에 두고 책 내용을 암기하고 시험이 끝나면 머리가 텅 비어버린다. 특히 잘하지 못하는 과목은 공부해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지만, 시험 때는 어떻게든 점수를 따야 하기 때문에 억지로 쑤셔넣는다. 즉, 암기하는 것이다. 시험이 끝나면 바로 다음날 잊어버린다. 나의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은 이런 일의 반복이었다. -109~110쪽

그후에도 에베 선생님은 고맙게도 나에게 다양한 과제를 내주었는데, 나는 선생님이 과제를 평가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선생님은 과제에 점수를 매기거나 수준을 판단하는 일이 없었다. 이건 어느 정도의 수준, 이건 몇 점이라는 평가를 절대 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대신에 구석에다 그녀의 예쁜 글씨로 글에 대한 감상을 적었다.
'이 부분이 좋아.'
'이 부분이 마음에 들어.'
이것은 영어를 맡은 한네 선생님도 마찬가지였다. -196쪽

그 밖에 오페라를 보러 가기도 했다. 강제로 가야 하는 것이 아니라 가고 싶은 사람만 자유롭게 참가하는 식이었다. 헤르토니에미 고등학교에서는 오페라만이 아니라 견학을 가거나 연극을 보러 가는 수업에서도 대부분 가고 싶은 사람만 가는 식이다. 가지 않는다고 해서 점수를 깎는 일은 없다. 나는 오페라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참가했는데, 자유 참가인데도 반 학생들 대부분이 와 있었다. -198쪽

이때부터 프리젠테이션이라는 것은 선생님의 수업과 같은 가치를 갖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학생이 수업시간을 얻어 직접 수업을 해보고, 다른 학생들과 함께 공부한다. 즉, 학생이 선생님이 돼보는 것이다. 에베 선생님의 수업은 때로는 수업시간의 절반 이상이 학생의 프리젠테이션으로 채워질 때도 있었다. 그리고 학기말시험에는 학생들의 프리젠테이션에서도 문제가 출제된다. -208~9쪽

'중학교 때부터 유급을 시킨다고?' 하며 얼핏 가혹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핀란드 사람들은 유급한 학생을 이상한 눈으로 보지 않는다.
실제로 내 주변에는 유급한 학생이 널려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후트넨 가의 형제들이다. 내가 유학을 갔을 때 열네 살이던 막내 요카는 중학교 2학년으로 올라가지 못해서 중학교 1학년에 머물러 있었다. 학교에서 보면 다른 남자애들보다 삼십 센티미터는 훌쩍 커서 좀 우스꽝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그는 비길 데 없는 게이머로 밤에도 계속 컴퓨터에 매달려 있어서 도통 공부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래도 시험 전에는 교과서를 펼치기는 하지만, 불과 몇 분만에 다시 컴퓨터로 돌아가곤 했다.
니나 아줌마는 그런 요카에게 당연히 화를 냈지만, 성적이 어떻다든가 유급한 주제에, 같은 말은 결코 하지 않았다.
"하겠다고 한 것은 해야지!"
이렇게 꾸짖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223~4쪽

다시 유급 이야기로 돌아가면, 핀란드인에게 낙제는 특별히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모르는 것을 확실히 배우지 않고 졸업하는 것이 더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이런 인식이 자리잡은 배경으로는 당연히 핀란드의 교육이 무료라는 것을 들 수 있겠지만, 그 이상으로 학교에 대한 관점이 일본인들과는 다른 것 같았다. 그것은 앞서 말한 대로, 학교에 무엇을 기대하는가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학교는 교육을 받는 곳이라는 것이 핀란드인의 생각이다.
반대로 일본인은 학교는 교육을 제공하는 곳이지만, 그것 외에도 학교로부터 뭔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핀란드인도 교육 외에 학교에 뭔가를 요구하겠지만, 일본만큼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핀란드의 학생들은 교육을 받으면서 자신이 왜 교육을 받는지 똑똑히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2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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