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봉우리 1
다니구치 지로 지음, 유메마쿠라 바쿠 원작 / 애니북스 / 2009년 9월
구판절판


지금 후카마치는 눈을 이고 선 에베레스트의 눈 덮인 봉우리를 떠올리고 있다.
몇 차례나 꿈속에서 본 에베레스트의 피라미드였다.
아마도… 오델이 맬러리와 어빈을 마지막으로 본 에베레스트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후카마치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영상은 밤이다.
무수한 별이 반짝이는 하늘…
정적이 흐른다…
… 한 사나이가 에베레스트의 눈덮인 능선을 걸어가고 있다.
그것이… 맬러리인지 어빈인지
아니면 다른 누구인지 알 길이 없다…
그 뒷모습을 후카마치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 사나이는 후카마치를 남겨두고 가고 있었다.
"기다려-!"
"날 두고 가지마-!"
후카마치에게는 그 사나이가 산꼭대기에 오르려 하고 있다기 보다는
별이 빛나는 하늘로 돌아가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 사나이가 꼭대기에 도달했는지 못했는지
언제나… 그것을 알기 전에 잠에서 깨어난다. -107~1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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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봉우리 2
다니구치 지로 지음, 유메마쿠라 바쿠 원작 / 애니북스 / 2009년 9월
구판절판


찌릿찌릿 가슴이 시려오는 듯한 저 산…
정상을 올려다보면 가슴이 짓눌려버릴 것만 같은 위압감…
그런 것과는 일절 상관없는 다른 세상에 존재하고 있었겠지.
그런 것과는 작별하게 되었으리라.
그것을 잃고 싶지 않았다.
아마도 지금 하부를 추적하고 있는 건 그것 때문이리라.
하부를 추적하고 있는 동안에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무엇이 끝나지 않았는가…?
아마도 자신의 산이…
그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산의 정상, 환상의 봉우리인지도 모른다…-148~9쪽

8,000미터 봉을 등정하는 데에는 실로 다양한 요인이 개입한다.
첫 번째 요인은 원정 대원에 뽑히는 일이다.
다음은 체력이다.
그리고 건강.
하지만 아무리 체력이 있다 하더라도 고도순응에 실패하면 끝이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강한 의지가 필요하다.
또한 부상을 당하지 않아야 하고
인맥, 혹은 인간관계도 중요하다.
대장이 그 사람을 등정대원으로 뽑아주지 않으면 등정은 하지 못한다.
게다가 행운도 따랴아 한다.
베이스캠프에서 C1, C2F로 캠프를 올려 최종적으로 C6에서 정상공격조가 등정을 향해 출발하게 된다.
그러기까지 대원 모두가 짐을 올리게 된다.
그 모든 작업을 마쳤을 때 자신의 포지션이 중요한 요인이 된다.
로테이션의 형편으로 마침 베이슼캠프나 C1에 있었다면 등정대원에 뽑히는 일은 없다.
C6에 있더라도 체력이 다 소모된 대원은 뽑히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 대원끼리 고도의 심리전이 전개된다.
자기에게 유리한 포지션을 지키거나 체력을 아껴두기 위해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다.
산소가 풍부한 베이스캠프로 돌아가 체력을 회복해두는 것이다. -17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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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의 등
아키모토 야스시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10년 4월
품절


술을 마시고 싶지는 않았지만 내일은 한 해의 일을 마무리하는 종무식이어서 회식에 참석해야만 한다. 그 순간 입에서 쓴웃음이 흘러나왔다. 앞으로 6개월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참석해야만 하는 회식이란 어떤 것일까? 지금 내가 '~해야만 한다.'라고 여겨온 것들이 커다란 소리를 내고 와르르 무너지는 듯했다. 애당초 인간관계는 미래가 있어야만 성립되는 것이 아닌가. -15쪽

세상에서 가장 큰 고독은 어느 누구도 내가 고독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 아닐까? -16쪽

인생이 이렇게 허무할 줄 몰랐어. 영화를 보면서 앞으로 어떻게 될까 가슴 두근거린 순간, 어처구니없이 엔딩 자막이 올라가는 듯한 심정이야. 인생도 영화도, 내 멋대로 기대를 했기 때문이겠지. 솔직히 말하면 내 인생이 6개월밖에 안 남았다는 거, 아직도 남의 일 같아. 입으로는 비극의 주인공처럼 말하지만 도저히 실감이 나지 않더군. 하지만 몇 시간마다 공포가 밀려오기도 해.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하고……. 아침에 세면대 거울 속에 있는 나를 봤을 때, 역 플랫폼에 서 있을 때, 휴대전화로 일 얘기를 하고 있을 때, 불시에 공포가 밀려오는 거야. 과장이 아니라 정말로 다리가 덜덜 떨린다고. -40쪽

나는 인생을 되돌아보고 싶다. 내 인생이 이런 것이었다고 확실히 알고 싶다. 인간은 죽기 직전에 자신의 인생을 주마등처럼 되돌아본다고 한다. 아니, 주마등이 아니라 더 느긋하게 되돌아보자. 남은 6개월을 아낌없이 투자해서 내 인생에 관련된 사람을 만나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이별을 고하자. 그것이 남은 6개월을 후회 없이 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제 6개월이 짧다고 한탄하는 짓은 그만두자. 그런 번뇌는 제야의 종소리와 함께 잊어버리는 것이다. -49쪽

인생은 연필로 그리는 데셍 같은 것이다. 연필로 몇 개의 선을 그리면서 조금씩 전체의 모습을 포착한다. 개중에는 아무리 봐도 실제보다 많이 삐져나온 선이 있다. 현실을 왜곡한 선이다. 지우개로 지울 수는 없지만 "지금이라면 이렇게 그릴 텐데……."라는 선을 남기고 싶다. 남은 날들 안에서 인생을 수정하고 싶었다. -135쪽

"원래 세월이란 그런 게 아닐까?"
"마치 추억 같아요."
"한마디로 정리하는군."
"그렇잖아요. 좋지 않은 건 계속해서 잊어버리고, 자신에게 좋은 것만 기억하니까요."
"그게 살아가는 지혜야. 신은 그러기 위해 인간에게 '잊어버리는 능력'을 준 거지."-182쪽

아마 거미는 청소 아줌마와 끊임없는 싸움을 반복했을 것이다. 집을 지으면 청소 아줌마가 치우고, 그러면 거미가 또 집을 짓고……. 강인한 생명력이다. 아니, 거미의 생명력이 특별히 강인한 것이 아니다. 거미는 다만 유전자의 명령에 따라 계속 집을 지을 뿐이니 단순한 본능이다. 안타깝게도 이 거미집은 내일 또 치워질 운명에 처해 있다. 그런 사실도 모르고 거미는 부지런히 집을 짓고 있다. 가령 '네 운명은 그러하다.'라고 누가 가르쳐준다고 해도 거미는 집짓기를 포기하지 않으리라. 보답을 받거나 보답을 받지 않는 것에 상관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나는 작지만 내 집을 지어왔다. 하지만 앞으로 한 달 안에 내 집은 무너진다. 거미는 무엇 때문에 여기에 집을 짓는 것일까? 오래된 집의 천장 안쪽이나 별장의 사용하지 않는 난로, 정원의 나무와 나무 사이에 집을 지었으면 헐리는 일은 없을 텐데……. 내가 거미를 가엷게 여기는 것은 주제넘은 짓일까? 거미는 아마 자신의 마지막 날을 모르리라……. -33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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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자친구의 전 여자친구, 코끼리의 등>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내 남자친구의 전 여자친구
니나 슈미트 지음, 서유리 옮김 / 레드박스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얼굴만 봐도 두근거리고, 함께 있다는 사실에 마냥 설레는 연애 초창기는 쏜살같이 지나가버리고, 시간이 지나며 점점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편안해지는 단계가 온다. 이 책의 주인공 안토니아는 그런 편안함의 단계를 넘어서 애인인 루카스와 편안한 룸메이트 같은 생활을 유지한다. 사랑한다는 문자 대신에 집에 들어올 때 식빵이나 사오라는 문자를 보내고 아무리 야시시한 속옷을 입고 돌아다녀도 루카스가 덮칠 생각도 하지 않는 이런 위기 속에서 루카스의 전 애인인 자비네가 그들이 살고 있는 지역으로 이사온다. 아는 사람도 없는 낯선 지역으로 이사오는 자비네를 위해 루카스는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그렇게 다시 만난 두 사람은 그린피스 활동을 함께 시작하게 된다. 이에 어떻게든 루카스를 자비네로부터 지키기 위한 안토니아의 고군분투는 시작되는데... 

  둔한 건지 안토니아의 질투심을 유발하는 것인지 자비네와 자꾸만 가깝게 지내는 루카스. 그런 루카스를 보며 점점 초조해하는 안토니아. 그리고 그런 안토니아를 물심양면으로 돕는 안토니아의 베프 카타. 이런 독특한 캐릭터도 읽는 재미를 더했지만, 무엇보다 오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점점 멀어진다는 설정이 어쩐지 현실적으로 느껴져서 재미있었다. 루카스와 당장 결혼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딱히 그렇다고 루카스 외의 대안을 찾을 의지도, 희망도 없었던 안토니아. 그런 안토니아가 루카스의 사랑을 확인하고 되찾기 위한 노력이 가끔은 안쓰럽게도 느껴졌다. 어떤 부분에서는 루카스를 사수하기 위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안토니아도 새로운 사랑을 찾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기도 했는데, 아쉽게도(?) 예상이 빗나갔다. 

  밤새도록 눈물이 나도록 웃었다는 띠지의 문구처럼은 아니어도, 이 책은 꽤 유머러스했다. 좀 더 진지하고, 좀 더 유머러스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들었지만,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본 것처럼 별 부담없이 읽을 수 있었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 류의 영화나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에게 잘 맞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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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 바람이 되어라 3 - 땅!
사토 다카코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10월
절판


나는 희망을 품을 수 없었다. 아니, 머리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차마 깨끗이 접지 못한 희망에 마음이 매달려서, 혹시나, 만에 하나, 어쩌면, 하며 매일 속삭이고 있었다. 어차피 종체가 끝나면 고백할 작정이었다. 보기 좋게 거절당하면 마음을 정리해버리자고 생각했었다.
희망이 움트고 말았다. 커다란 희망이. 그놈은 강렬한 독약처럼 나를 녹아웃 시켰다. 희망이라는 건 멋진 것인 줄 알았다. 찬란하게 빛나는, 힘의 근원이 되는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희망은 이렇게 괴로운 것이었다. 무서운 것이었다. 잠 한숨 이루지 못했다. 날짜가 바뀌었다. -122쪽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는 포화 상태라는 것이 없는지도 모른다. 잘은 모르지만. 대단한 연애라는 건 그런 게 아닐까? (상상) 이어달리기 팀의 우애도 무한한 것인지 모른다. (실감) 축구에서도 진짜 좋은 팀에는 그런 감정이 있는 듯하다. 나야 경험해본 적이 없지만, 겐짱이 선수권을 다툰 3학년 때, 가이레이 팀은 하나의 패스도 선수 전체가 느낄 만큼 일체감이 대단했다고 한다. 지금의 우리 팀도 마찬가지다. 한 명 한 명의 러닝을 네 명이 전부 느낀다. 사소한 몸짓이나 낯빛만으로도 그날 그 사람의 컨디션을 알 수 있다. 누구의 컨디션이 안 좋을 때는 보완해주고, 좋을 때는 함께 상승할 것 같다. 배턴을 직접 주고받는 사람은 두 명뿐이지만 늘 넷을 의식한다. 육상을 하면서 이런 강한 일체감을 느낄 수 있을 줄은, 솔직히 생각해본 적도 없다. -143쪽

스포츠는 결과가 전부가 아니다. 하지만 결과를 냈을 때는 정말로 대단하다. 눈앞에서 본 도리사와의 승리는 나의 내부에 압도적인 힘을 만들어놓았다. 기쁨이라기보다, 용기라기보다, 뭔가 몸속에 솟구쳐 오르는 힘 자체를 말이다.
도리, 나도 달린다! -164~5쪽

이어달리기는 행복한 러닝이다. 이렇게 행복한 기분으로 달린 적은 처음이다. 같은 직선 100미터를 달려도 개인 종목하고는 전혀 다르다. 2위로 올라갈 수 있다고 예상했고, 예상대로 2위로 관동을 결정지었는데도 이렇게 기쁘니 말이다. 네 명이 멋진 레이스를 펼쳤다는 행복감은 그냥 4배가 아니다, 16배, 64배, 무한대. -184쪽

인생은, 세계는, 이어달리기 자체다. 배턴을 넘겨서 타인과 연결되어간다. 혼자서는 할 수 없다. 하지만 내가 달리는 구간에서는 완전히 혼자다. 아무도 도와줄 수 없다. 도움을 받을 수 없다. 아무도 대신해주지 않는다. 대신해줄 사람이 없다. 이 고독을 나는 좀 더 직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나를 좀 더 직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곳은 말이 없는 세계일 것이다, 아마도. -2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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