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순간 바람이 되어라 3 - 땅!
사토 다카코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10월
절판


나는 희망을 품을 수 없었다. 아니, 머리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차마 깨끗이 접지 못한 희망에 마음이 매달려서, 혹시나, 만에 하나, 어쩌면, 하며 매일 속삭이고 있었다. 어차피 종체가 끝나면 고백할 작정이었다. 보기 좋게 거절당하면 마음을 정리해버리자고 생각했었다.
희망이 움트고 말았다. 커다란 희망이. 그놈은 강렬한 독약처럼 나를 녹아웃 시켰다. 희망이라는 건 멋진 것인 줄 알았다. 찬란하게 빛나는, 힘의 근원이 되는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희망은 이렇게 괴로운 것이었다. 무서운 것이었다. 잠 한숨 이루지 못했다. 날짜가 바뀌었다. -122쪽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는 포화 상태라는 것이 없는지도 모른다. 잘은 모르지만. 대단한 연애라는 건 그런 게 아닐까? (상상) 이어달리기 팀의 우애도 무한한 것인지 모른다. (실감) 축구에서도 진짜 좋은 팀에는 그런 감정이 있는 듯하다. 나야 경험해본 적이 없지만, 겐짱이 선수권을 다툰 3학년 때, 가이레이 팀은 하나의 패스도 선수 전체가 느낄 만큼 일체감이 대단했다고 한다. 지금의 우리 팀도 마찬가지다. 한 명 한 명의 러닝을 네 명이 전부 느낀다. 사소한 몸짓이나 낯빛만으로도 그날 그 사람의 컨디션을 알 수 있다. 누구의 컨디션이 안 좋을 때는 보완해주고, 좋을 때는 함께 상승할 것 같다. 배턴을 직접 주고받는 사람은 두 명뿐이지만 늘 넷을 의식한다. 육상을 하면서 이런 강한 일체감을 느낄 수 있을 줄은, 솔직히 생각해본 적도 없다. -143쪽

스포츠는 결과가 전부가 아니다. 하지만 결과를 냈을 때는 정말로 대단하다. 눈앞에서 본 도리사와의 승리는 나의 내부에 압도적인 힘을 만들어놓았다. 기쁨이라기보다, 용기라기보다, 뭔가 몸속에 솟구쳐 오르는 힘 자체를 말이다.
도리, 나도 달린다! -164~5쪽

이어달리기는 행복한 러닝이다. 이렇게 행복한 기분으로 달린 적은 처음이다. 같은 직선 100미터를 달려도 개인 종목하고는 전혀 다르다. 2위로 올라갈 수 있다고 예상했고, 예상대로 2위로 관동을 결정지었는데도 이렇게 기쁘니 말이다. 네 명이 멋진 레이스를 펼쳤다는 행복감은 그냥 4배가 아니다, 16배, 64배, 무한대. -184쪽

인생은, 세계는, 이어달리기 자체다. 배턴을 넘겨서 타인과 연결되어간다. 혼자서는 할 수 없다. 하지만 내가 달리는 구간에서는 완전히 혼자다. 아무도 도와줄 수 없다. 도움을 받을 수 없다. 아무도 대신해주지 않는다. 대신해줄 사람이 없다. 이 고독을 나는 좀 더 직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나를 좀 더 직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곳은 말이 없는 세계일 것이다, 아마도. -2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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