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최고의 행복이자 최악의 고통, 그 이름은 사랑이다. 세상을 가득 채운 사랑, 그것은 세계를 이해하는 열쇠이다. 그리고 여기, 그 사랑의 신화들이 있다. 동서과 고금, 촘촘히 얽힌 그 사랑의 길 위에 숨어 있던……
최근 대중문화의 아이콘들을 소재로 삶의 아이러니를 드러내는 시들을 선보였던 시인 권혁웅, 그가 신화가 되고 삶이 되고, 시가 되는 사랑 이야기를 전한다. 새로운 ‘길’을 만들고 ‘세월’을 견디고, ‘경계’를 무너뜨리는 사랑 이야기, ‘몸’에 새겨진 그 뜨거운 ‘불’의 이야기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 그것이 곧 우리의 사랑 이야기다.

“사랑이 어떻게 변해요.”

“너 나 사랑하니.”
“……”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헤어져.”
영화 <봄날은 간다> 중에서

“사랑이 어떻게 변해요. 내 사랑은 안 변해요.”
“변해요, 사랑…… 세상에 안 변하는 게 어디 있어요?”
영화 <너는 내 운명> 중에서

어쩌면 사랑이 움직이지 않기를, 그것이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건, 그것이 늘 움직이는 것임을, 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아님을 우리가 모두,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움직이는’ 사랑의 역사는 깊다.
우주 최대, 최고의 난봉꾼이었던 제우스 때문에 헤라는 질투의 화신이 되어야 했고, 사랑하는 것이 본업이라고는 하지만 아프로디테 역시 남편인 헤파이토스 외에 아레스와 아도니스, 디오니소스, 포세이돈 등과 사랑을 나누었다.
올림포스의 제왕 제우스 역시 세상을 풍성하게 만드는 것이 본업이라고 보면 그 역시 자신의 임무에 충실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들의 사랑은 헤픈 연애이기 이전에 충실한 ‘본업’ 수행이었던 셈이다. 아프로디테의 충실한 임무 수행 덕에 “생명의 근원인 축축한 ?과 인공적 생산물을 만들어내는 불의 결합”(+헤파이토스)을 이루어냈고, “왕성한 생식력과 모든 생명의 근원인 물의 결합”(+아레스)을 이루어냈으며, “생식력의 여신과 식물의 정령과의 결합”(+아도니스)을 이루어냈으니.

그러니 다시 한번, 사랑의 본질은 그 움직임, 변화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움직이는 동시에 움직이게 하고, 변하는 동시에 변화하게 한다.
그것은 그 자체가 움직이는 힘이어서, 이야기를 움직이고, 삶을 움직이고 사람들을 움직인다. 이야기를 낳게 하고, 시를 낳게 하고 꿈꾸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곧 우리의 삶의 이야기이고, 우리의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다. 비틀어져 있고 꾸며져 있는 그 사랑의 이야기 속에 우리의 삶의 모습이 있고, 그 평범한 듯한 삶의 모습 안에 신들의 사랑, 전설 속의 사랑이 아닌 우리의 사랑 이야기가 녹아 있다.

사랑의 논리로 엮어낸 재미있고 독창적인 신화 입문서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에게는 여러 이름이 있다. 아포스트로피아(등을 돌리는 여자)나 아노시아(부정한 여자)와 같은 이름은 사랑의 변개(變改)되기 쉬운 속성을 지시하고, 안드로포노스(남자를 죽이는 자)나 에피튐비디아(무덤 위에 선 여자), 튐보리코스(무덤 파는 사람), 파시파이사(지하세계에서 빛나는 여왕)와 같은 이름은 성애와 죽음의 관계를 일러주며, 칼리퓌고스(아름다운 엉덩이를 가진 여자)나 모르포(균형 잡힌 여자)는 사랑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암볼로게라(늙음을 지연시키는 여자)는 사랑이 가진 불로불사의 성격을 보여준다. 이처럼 사랑은 다양한 모습을 지니고 신화 곳곳에 숨어 있다. 신화는 사랑 이야기로 포장된 사람살이 이야기를 보여주기도 하고, 사람살이 이야기로 포장된 사랑 이야기를 숨기고 있기도 하다.
한국을 비롯한 중국, 일본 등 동양 신화와 그리스 로마 신화, 북구 신화 등 전 세계 신화와 민담, 전설 등을 아울러 뽑아낸 신화 속의 사랑 이야기는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사랑은 욕망이고 욕망은 필연적으로 금기의 위반을 부른다. 금기를 위반해 받는 벌은 시간, 계절, 삶과 죽음 등 세계의 여러 경계를 나타낸다. 저자는 신화 속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세계의 기원과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 그리고 인간의 삶, 곧 세계의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신화와 꿈, 그리고 시

신화와 꿈과 시의 테마는 언제나 사랑이다. 신화시대의 주된 관심은 생산력의 증대에 있었다. 신이나 영웅과 같은 집단적인 힘의 대리자가 내보이는 무시무시한 힘은 늘 정력이었다. 이 때문에 최고신 제우스가 그토록 바람을 피웠던 것이며, 신들의 세계에서 한도 끝도 없는 근친상간이 일어났던 것이며, 헤라클레스와 순임금이 지치지도 않고 괴물들을 퇴치했던 것이다. 또한 신화의 논리는 감각의 논리다. 신화는 몸의 느낌―보고 냄새 맡고 만지고 핥고 쓰다듬는―으로 사물을 배치하고 거기에 인과성을 부여한다. 신화는 머리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시의 이미지, 꿈의 욕망이 또한 그렇다. 우리는 그걸 사랑이라고 부른다.

우리 안에 내재하는 신화의 양상을 새롭고 강렬한 이미지로 그려낸 이 책은 미학과 심리학, 시학과 인류학의 대화를 다각적인 관점으로 깊이 있게 전개한 인문학의 문법이다. 사고파는 의식이나 개념적이고 관념적인 인식보다 훨씬 아래쪽에서 신화가 온몸의 기하학으로 실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문장은 빛나고 아름답다. 이야기와 꿈과 시에는 인간과 인간을 결속하는 사랑의 인력이 작용하고 있으므로, 신화적 몽상에 잠겨 있을 때에 우리는 느닷없는 감동으로 찾아드는 사랑을 경험할 수 있으며 자기 발견이란 서로가 서로를 이끄는 이 힘의 체험 이외에 다른 것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권혁웅은 흥미롭게 풀어내었다. 김인환(고려대 국문과 교수)

권혁웅
1967년 충주에서 태어나 고려대 국문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1996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평론이 1997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시가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황금나무 아래서』 『마징가 계보학』, 평론집 『시적 언어의 기하학』 『미래파』 등이 있다. 2000년 제6회 현대시동인상을 받았다. 현재 한양여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중이며 『문예중앙』 편집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 2005년 11월 30일 발행
* ISBN 89-546-0057-3 03810
* 153*210 | 336쪽 | 13,000원
* 담당편집 : 조연주, 김송은(031-955-8862)

출처 : 문학동네 홈페이지 (http://www.munha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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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법의학을 다룬 책.
정약용이 저술한 <흠흠신서>의 기록에 바탕을 두고 있다.
별순검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법의학의 모습들도 신선했는데,
이 책을 통해서 좀 더 상세하게 알 수 있을 듯 하다.
실제 사례로 구성되어 있어 쉽게 읽을 수 있을 듯.



<한국어가 있다> 전 3권의 내용을 쓰임새에 따라서 분류한 책.
포켓북 사이즈에 저렴한 가격이 마음에 든다.
이 책을 시작으로 총 6권이 나올 예정.

국문학을 전공하면서 아직까지 맞춤법에 취약한게 민망하다.
공부 좀 해야할텐데.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를 지은이가 쓴 심리 동화집.
동화형식을 빌려 가족의 병리현상, 선과 악의 문제, 성 역할의 갈등 등
일상생활에서 겪는 삶의 딜레마를 다룬 책이라고 한다.
글쎄. 얼핏 책 소개만 보기엔 이전에 나온 <알고보면 무시무시한 그림동화>와
비슷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그래도 나름대로 재미있을 것 같긴 하다.

 


5년만에 두번째 책이 나왔다.
사실 5년전의 이야기였던 1편의 내용들도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이번에는 어떤 면들을 지적하고 있을 지 궁금해진다.
목차를 보니 권위주의, 숭미주의, 박제가 된 학문의 자유, 병영국가, 진보와 보수.
민감하고 핵심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는 듯한데.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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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6-01-26 0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루비 레드 저도 관심가네요. 재밌을 듯.... ^^

이매지 2006-01-26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점에서 봤을 때는 만화책인줄 알아서 내용도 안 본 -_ -;ㅋㅋ
 

전세계 모험가와 고고학자들을 흥분시킨 고대문명의 진실을 드디어 만난다!
기원전 1만 년 아틀란티스 문명의 기원에서부터 고대문명 사이의 교류, 현재까지 살아남은 그 문명의 흔적까지 전설의 대륙 아틀란티스의 모든 것!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은 글과 논쟁의 주제로 회자되었고 때로는 조롱거리와 멸시의 대상으로 취급받았던 아틀란티스. 기원전 355년경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환상적인 섬제국에 대해 말하면서 그곳을 아틀란티스라 불렀다. 그 후 2천여 년 동안 역사학자, 탐험가들은 그 섬의 실재에 대해 논쟁을 벌이고 소재지를 찾아 나섰지만 모두 허탕만 쳤다. 구약성경에 나타난 천사와 인간의 조우가 다른 진화단계에 있는 문화 간의 교류라는 주장을 입증하여 고고학계에 충격을 던졌던 『천사들의 재에서』의 저자 앤드루 콜린스가 이번에는 아틀란티스라고 하는 인류 역사에 있어 가장 오래된 미스터리에 도전하여 아틀란티스학(Atlantolyly)에 있어 기념비적인 저작을 썼다.


아틀란티스 대륙은 정말 존재한 것일까? 하루아침에 몰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20여 년에 걸쳐 모든 고대문서와 고대지도를 뒤져 아틀란티스에 대한 언급과 아틀란티스와의 연관성을 조사하였고 전세계 각지에 남아 있는 아틀란티스 문명의 흔적들을 직접 탐사한 끝에 아틀란티스가 실제로 존재했을 뿐만 아니라 그 일부가 오늘날까지도 살아남았다는 신뢰할 만한 증거를 모았다. 플라톤이 남긴 단서를 따라 과거로 떠나는 그의 여행은 최근까지도 학자들이 아틀란티스가 실재하던 곳이라 여기던 크레타 섬과 지중해를 과감히 건너 아메리카 대륙에 이른다. 그가 제시하는 아틀란티스 문명이 가라앉은 명확한 위치는 지금껏 아틀란티스에 대한 모든 논쟁을 종결시키며 이 책을 아틀란티스학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한다.
앤드루 콜린스가 오랜 연구와 탐사 끝에 아틀란티스 위치를 카리브 해, 쿠바라고 제시하자 ‘아틀란티스=지중해 미노아 문명’을 정설로 생각해오던 고고학계에서는 크게 반발을 하였으나 너무나 광범위하고 엄청난 분량의 자료조사에 기반하여 내린 이 책의 결론 앞에서 모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성혈과 성배』의 작가 마이클 베이전트 “이 책은 아틀란티스에 대해 지금까지 내가 읽은 책 중에서 단연 최고다. 저자는 놀라울 정도로 많은 자료를 연구했고 환상적인 아틀란티스의 전설에 있어 과거 어느 누구도 해내지 못한 방식으로 해석해냈다. 이 책을 바로 추천한다. 어서 구입해서 읽고 경탄하길 바란다”고 말했으며 『아웃사이더』의 작가이자 역사학자인 콜린 윌슨은 “이 책은 학문적인 동시에 매우 흥미로우며 책에서 손을 놓지 못하게 한다. 한마디로 놀라운 책이다. 아틀란티스를 다룬 책 중 고전이 될 것이 분명하다”고 극찬했다. 앤드루 콜린스와 같은 주제를 다룬 『아메리카의 아틀란티스』의 저자 조지 에릭슨도 “저자는 아틀란티스가 과연 어디라고 주장하는가? 그 답이 궁금하면 이 책을 읽어보길 바란다. 그가 인도하는 여행은 대단히 흥미롭다. 카리브 해가 한때 해수면보다 위였고 얕은 여울목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저자가 이끄는 결론에 감탄을 금치 못할 것이다”며 인정했다.


플라톤은 아틀란티스를 통해 무엇을 말하려고 한 것일까?

플라톤은 『티마이오스』와 『크리티아스』라는 두 권의 책에서 리비아와 아시아를 합친 크기의 ‘아틀란티스’라는 강력한 고대 제국이 존재하다가 기원전 1만 년경 지진과 홍수로 바다 밑으로 가라앉고 말았다고 기록했다. 이 믿기 힘든 이야기는 사람들의 상상력에 불을 지펴 이상향의 그곳, 아틀란티스를 향한 탐험의 길로 인도하였으나 그 누구도 찾아낼 수 없었다. 심지어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조차도 “그 발명가가 스스로 그것을 사라지게 만들었다”라고 비아냥대기까지 했다. 앤드루 콜린스는 이 플라톤의 텍스트에서 정치적인 의도와 거짓 정보를 제거하고 실재적인 원자료를 파악해야 한다고 말한다. 플라톤이 말한 “리비아와 아시아를 합친 크기의 대륙”이란 아틀란티스 제국의 실제 크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틀란티스 제국의 지배력이 미친 범위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원전 1만 년경이라는 시기를 두고 일부 학자들은 플라톤이 태양력이 아니라 태음력을 이용한 것이기 때문에 그 시기를 기원전 1260년경으로 다시 계산해야 정확하다고 말하며 아틀란티스가 지중해 연안의 섬, 그 중에서도 크레타의 미노아 문명을 가리킨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최근까지도 가장 각광받는 믿을 만한 이론으로 인정돼왔으나 이 책에서 이 이론이 “무너질 듯한 카드로 만든 집”처럼 터무니없는 조작으로 뒤범벅돼 있다고 통렬하게 지적한다. 플라톤이 언급한 기원전 1만 년이란 연도는 실제 연도가 아니라 이집트인들보다 자기 종족(아테네인)의 역사가 오래되었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의도였으며 아틀란티스의 멸망에 대한 기술은 당시 아테네의 정치가들에게 던지는 경고였던 것이다. 위대한 국가 아테네가 되기 위해 이상으로 돌아오라, 그렇지 않으면 아틀란티스처럼 멸망할 것이라는 플라톤의 정치적인 의도가 담겨 있었다.


3천 년 전 이집트의 미라에서 코카인과 담배의 흔적이 발견되다!

1976년 파라오 시신의 피부와 목덜미 부분에 이상이 발생한 이유를 찾기 위해 이집트 대왕 람세스 2세의 미라가 파리로 이동했다가 이 미라에서 담배식물의 흔적을 발견되었다. 그리고 독일의 뮌헨 박물관에 보관된 미라에서는 코카인이 발견되었다. 처음에는 운반이나 보관상의 실수로 나타난 것으로 치부되었으나 정밀검사 결과 미라가 만들어지던 당시의 담배와 코카인으로 판명되어 고고학계는 경악을 일으켰다. 담배와 코카인 모두가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발견 이후 다른 대륙으로 전해진 것이라 알려졌기 때문이다. 앤드루 콜린스는 이 사건을 통해 고대문명 간의 교역이 훨씬 오래전부터 이루어지고 있음을 유추하여 그 발자취를 추적한다. 그 결과 고대 아프리카와 아랍인들 사이에서 의약용이나 화폐용으로 담배가 이용됐을 뿐 아니라 담배를 가리키는 용어가 “투바크, 타바, 타브” 등 현재의 “타바코”와 유사함이 발견됐다. 이런 고대문명 간의 교역의 증거는 비단 담배만이 아니다. 멕시코의 타스코 주 라벤타의 올멕 중심부에서 최대 20톤 규모의 거대한 두상이 발견되었는데 넓적한 얼굴과 넓은 뺨, 둥근 턱, 큰 입술과 평평한 코 등 명백히 아프리카 흑인의 외모가 드러났다(본문 별지 사진 7). 이 두상 외에도 멕시코 올멕 유적지에서는 셈족이 특성이 드러나는 조각상, 심지어 몽골계의 특징이 분명한 조각상도 발견되었다. 기원전에 메소아메리카를 방문한 그들은 누구였을까? 그들은 어떤 경로를 통해 나타난 것일까. 앤드루 콜린스는 탁월한 항해자였던 페니키아인과 카르타고인의 해상 교역에 주목을 한다.


침묵의 항해자, 대서양을 통해 아틀란티스를 전하다

헤르도토스는 『역사』에서 기원전 1천 년에 페니키아인들이 “리비아를 돌아 항해하면서 오른쪽에서 태양을 보았다”고 언급하였다. 남회귀선 아래에서는 태양이 북쪽 하늘에 머무르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을 기록한 것이다. 이처럼 페니키아인들과 카르타고인들의 항해는 이미 기원전부터 대서양을 걸쳐 전세계를 넘나들었다. 이들은 이 대서양 무역로에 대한 정보가 외부로 새어나가는 걸 막기 위해 아무런 의사소통 없이 교역을 하여 ‘침묵의 항해자’라고 불렸다. 바로 이 침묵의 항해자들이 대서양을 통해 아프리카와 지중해, 멀리 중국과 일본의 문명들을 메소아메리카 지역으로 퍼뜨렸고, 역시 같은 경로를 통해 담배와 코카인을 이집트 파라오에게 건넸으며 무엇보다 아틀란티스의 문명을 세계에 알렸다. 플라톤은 바로 이들이 전해준 아틀란티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티마이오스』와 『크리티아스』에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러한 추정을 사실로 확정하기에는 여러 난제들이 존재한다. 1976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24킬로미터 떨어진 구아나바라 만에서 1미터가 넘고 목에 두 개의 손잡이가 달린 커다란 항아리가 발굴되었다. 검사 결과 모로코 지방에서 만들어진 항아리며 그 연대는 최소한 1500년 이상 되었다고 판정되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조사는 포르투갈 정부의 방해로 인해 중단되었다. 만약 그 항아리가 정말로 지중해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온 것이라면 포르투갈이 브라질을 발견했다는 것도,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도 부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까지도 이런 정치적인 이유로 그 실체에 다가서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광범위한 방증들은 침묵의 항해자들의 대서양 교역을 보여주고 있으며 아틀란티스 문명이 메소아메리카, 특히 카리브 해 일대에서 존재했음을 강력하게 드러낸다.


콜럼버스도 해상왕 엔리케 왕자도 아틀란티스를 찾아 바다를 건넜다!

1397년 베니치아의 지도제작자인 도미니코 피치가니와 프란체스코 피치가니 형제가 제작한 항해도에서 ‘안틸리아’라는 지명이 최초로 등장하며 1424년 이들의 후손인 주아네 피치가니 항해도에서 다시 안틸리아가 등장을 한다. 이렇듯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향해 항해를 떠나기 전부터 황금의 섬 ‘안틸리아’라는 지명과 그와 관련한 전설이 알려져 있었다. 콜럼버스도 치팡과 카사이를 목적지로 하는 항해 중 안틸리아와 만날 것을 예상하고 있었고 콜럼버스가 디에고 벨라스케스를 쿠바 총독으로 임명하자 벨라스케스는 쿠바에 ‘일곱 개의 도시와 황금’에 대한 전설을 믿고 10년간 보물을 찾으며 쿠바 원주민을 몰살했다.
해상왕 포루투갈의 엔리케 왕자도 ‘사라진 일곱 개의 도시’를 찾아 지속적으로 원정단을 파견했다. 그의 거침없는 항해에는 숨은 이유가 있었다. 단순히 자국의 무역과 통치권을 확장하려는 것이 아니라 해상세계에서 대한 엔리케 왕자만의 비밀 정보가 있었던 것이다. 이 비밀 정보는 무어인 점령시기와 십자군 원정시기에 아랍인과의 접촉을 통해 전해진 것으로 추측된다. 엔리케 왕자는 그리스도 기사단을 적극 후원하여 유럽 최강의 군사조직으로 성장시켰고 콜럼버스도 이 종단과 관련이 있었다(콜럼버스의 배 산타마리아 호에는 종단의 상징인 붉은 십자가를 달고 항해했다). 사실 콜럼버스와 엔리케 왕자의 항해 이전에 기독교 문명이 아메리카 대륙과 접촉한 흔적은 남아 있다. 아스텍의 툴텍 민족영웅인 ‘케찰코아틀’에 대한 전설에는 케찰코아틀이 키가 크고 머리칼이 검고 길며 턱수염을 휘날렸으며 피부색이 하얗다고 전해진다. 게다가 케찰코아틀을 묘사한 그림에는 망토에 십자가가 그려져 있다!(본문 300쪽 그림) 케찰코아틀은 과연 누구였을까?


아틀란티스와 어원을 공유하는 아스틀란, 앤틸리스는 모두 쿠바를 가리킨다!

멕시코에 신화에 따르면 ‘뱀의 사람들’이 기이한 배를 타고 메소아메리카로 건너와 멕시코를 지배했다고 전해진다(본문 317쪽 그림). 이 사람들은 동쪽의 ‘아스틀란’에서 건너와 일곱 개의 동굴인 ‘퀴네베얀의 동굴’에 오두막을 지어 살았다고 한다. ‘아스틀란’이란 말은 ‘아틀란티스’와 어원적 뿌리를 공유하며 이 ‘뱀의 사람들’은 바로 쿠바에서 건너온 사람들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신화에서 묘사되는 ‘일곱 개의 동굴’과 들어맞는 지역이 쿠바 본토에서 1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발견됐을 뿐 아니라 쿠바에서 발견되는 검은 대리석 신상이나 비취도끼들은 메소아메리카 지역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면서도 제작 시기는 훨씬 앞선다. 다른 메소아메리카의 창조신화를 보더라도 최초의 선조이자 지혜를 가져다준 이들의 원래 고향은 대 앤틸리스 제도의 섬들이며 이들을 ‘뱀’ 혹은 ‘깃털달린 뱀’이라고 불렀다. ‘앤틸리스’ 역시 ‘아틀란티스’와 동일한 어원을 공유한다. 결국 일곱 개의 동굴과 관련된 메소아메리카의 창조신화가 기원적 2천 년에서 1천 년 사이 이미 존재했고, 이 이야기가 대서양 항해자들에 의해 지중해와 북아프리카로 전해졌을 것이다. 이 이야기가 나중에는 일곱 개의 도시로 분할된 ‘아틀란티스의 전설’이 된 것이다.


아틀란티스 문명은 어떻게 사라진 것일까?

바하마와 카리브 해의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홍수신화에 “격렬한 폭풍우로 인해 땅이 가라앉았고 … 모든 것이 무너져버렸다. 오랜 달이 부서지고 … 바다가 몰려들었다”고 남아 있다. 분명 플라톤이 말한 아틀란티스가 멸망하는 장면과 유사하나 ‘오래된 달’이란 단어가 애매하며 실제로 쓰나미나 해일로는 땅이 영구적으로 가라앉을 수는 없다. 해상지질학자들에 의하면 대 바하마 사구는 기원전 8천 년부터 3천 년 사이에 서서히 가라앉았다. 그렇다면 아틀란티스의 종말을 일으킨 원인은 무엇일까. 저자는 직접 쿠바에 방문하여 일곱 개의 동굴이 위치한 푼타델에스테 동굴1호를 탐사하면서 동심원이 연속적으로 고리를 이루면서 그 옆으로 기이한 S자 모양의 꼬리가 나와 있고 더 많은 동심원들이 그것을 둘러싼 그림을 발견하였다(본문 별지 사진 30, 31). 그 그림은 마치 혜성 같았다! 고대인들은 혜성을 하늘에서 내려오는 ‘불의 뱀’이라고 인식했었다. 1991년 유카탄 반도 끝에서 발견된 운석 구덩이는 직경이 160킬로미터나 되며 해수면의 상으로 인해 가장자리 일부가 멕시코 만 아래에 가라앉을 정도였다. 게다가 카리브 해 일대에서 운석의 충돌 순간에 대기 중에 분출되는 용해된 바위조각인 ‘베디아사이트’가 다량 발견되었다. 이 베디아사이트에 의해 핵겨울과 같은 이상 대기현상이 벌어질 수 있다. 바로 빙하시대인 것이다. 그렇기에 홍수신화에 등장한 ‘오랜 달’이란 외계의 물체, 즉 운석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이 운석으로 인해 지구 역사상 마지막 빙하시대가 도래하였고 이 시기에 아틀란티스 문명은 지구의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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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와 문화의 자긍심을 빛낸 걸작 단원풍속도첩
전통 수제본으로 복원한 대화가의 풍속화첩


지난 10월 28일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이 1년간의 유물 이전 작업을 마치고 마침내 개관을 맞아 귀중한 역사 유물들을 풀어놓았다. 새로 개관한 국립중앙박물관은 연일 입구에서부터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하는 박물관을 빠진 데 없이 관람하는 데는 무려 11시간이 걸린다고 하니, 박물관 자체에서 ‘국립중앙박물관 명품 50선’과 같은 관람 코스를 추천하기까지 하고 있다. 그 ‘명품’ 목록에 반가사유상(미술관 Ⅱ)과 단원풍속도첩(미술관Ⅰ)이 들어 있다.
이번에 민음사에서 소개하는 책 『반가사유상』과 『단원 풍속도첩』은 위 두 가지 유물의 미술적 기품과 가치, 그리고 역사적 의미를 충분히 되살리고 보다 널리 보이고자 기획된 책으로, 지난 10월 17일부터 23일에 열린 2005 프랑크푸르트 국제 도서전을 통해 소개되었으며, 몇몇 해외 출판사로부터 관심을 받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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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수상한 식모들』 출간!
제1회 『새의 선물』의 은희경, 제2회 『아무 곳에도 없는 남자』의 전경린, 제3회 『예언의 도시』의 윤애순, 제5회 『숲의 왕』의 김영래, 제8회 『그녀는 조용히 살고 있다』의 이해경, 그리고 지난해 제10회 『고래』의 천명관까지, 말 그대로 ‘대형 신인’의 산실인 ‘문학동네소설상’이 또 한 명의 걸출한 신인을 선보이게 되었다. 올해 수상자인 박진규씨는 올해 스물아홉. 며칠 후면 서른이 될 그는 결코 데뷔가 빠르다고 할 수가 없는 나이인데도 역대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자 중 최연소이다.

“나는 타구를 들고 뛰어다니는 노예가 되어 유령들이 뱉어버린 일곱 빛깔 무지개 각혈들을 모으고 또 모았다. 그것은 어느새 글자로 굳어지고, 문장으로 나불대고, 그림으로 살랑거리다가, 이야기새끼줄로 비비 꼬더니, 돌연 춤사위로 손을 뻗어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러다보니 어느덧 타락하여 능청스러워진, 그러면서도 옛날 옛적 이솝보다 약간 귀염성 있고 애련한 이 노예는 소설가라는 이름을 슬쩍 바짓주머니에 집어넣게 되었다.”

지난해 문학동네소설상 최종심에까지 올랐다가 고배를 마셨던, 제목부터가 수상하기 그지없는 이 소설 『수상한 식모들』은 이렇게 씌어졌다. 요즘 아이들 말로 ‘그분’이 오셨다는, 아니 ‘그분’을 모셨다는 얘기. 박진규의 ‘그분’은 먼저 꿈에 나타나셨나보다. 어느 날 우연하게 ‘수상한 식모들’이라는 제목이 먼저 떠올랐고, 몇 번 중얼거리다보니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했고, 그때쯤 후배로부터 모딜리아니의 <하녀>라는 그림에 나오는 하녀의 눈빛이 도도하다고 해서 그것이 궁금해졌고, 그리고 그 무렵 호랑이가 자주 꿈에 나타났다.
해는 동쪽에서 뜨고, 강물은 바다로 후른다는 사실을 우리가 의심하지 않듯이, 우리는 우리가 곰의 자녀라는 신화적 혈통에 대해서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곰과 함께 쑥과 마늘을 들고 동굴로 들어갔다가 참지 못하고 뛰쳐나온 호랑이에 대해서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곰이 여성의 시조라면, 그때 호랑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라는 의문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그 끝에 열매로 매달린 것이 ‘호랑아낙’이었고, 『수상한 식모들』이었다.


역사에 대한 전복적인 해석 때문에 새롭고, 발상의 불온함 때문에 신선하고,
상식성을 벗어난 상상력 때문에 웃기고, 그리고, 최종적으론 섬뜩하고 무섭다!


자신의 소설을 읽는 독자들이 “환각상태”를 경험했으면 한다는 작가의 소망은 이루어진 듯하다. 소설을 읽다보면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듯 살짝(!) 어지럽다. 자, 안전바를 내리고, 어깨의 벨트를 꽉 잡고 두근두근, 조마조마 천천히 하늘언덕을 향해 올라간다. 정상에서 잠시 정지. 잠깐 주위를 둘러볼 사이도 없이 곧장 떨어지기 시작하면 그때부턴 정말 보이는 게 없다.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들, 그저 롤러코스터와 한 몸이 되어 돌고 떨어지고 다시 오르고…… 그러곤 어느 사이 종착지점.
『수상한 식모들』은 이런 롤러코스트와 꼭 닮았다. 온라인 하녀 게임에 빠져 있는 실업자 아빠, 졸부의 아내 역에 심취해 있다가 갑자기 망해버린 아빠의 사업 때문에 하루 종일 신세한탄만 늘어놓는 엄마, 가족들은 안중에도 없는 콧대 높은 초등학생 천재 동생, 집 나간 형을 둔 백삼십 킬로 비만 고등학생의 그저 그런 가족일기인가 했더니, 이야기는 순식간에 ‘호랑아낙’과 그뒤를 잇는 ‘수상한 식모’의 그것으로 바뀌어 어느새 구르고 돌고 재주넘고, 온갖 묘기를 선보이며 빠르게 진행되다가 어, 어, 하는 사이 종착지점에 와 있다. 정말 수상한 것은, 그렇게 정신없이 쫓아가다 책장을 덮고 나니, 지나친 풍경들이 보이는 것이다. 소설의 재미에 빠져 놓치고 있었던, 혹은 그대로 지나쳐버릴 수도 있었을 어떤 ‘새롭고, 신선하고, 웃기고 섬뜩’한 장면들이 눈앞에 하나둘 떠오르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한번 롤러코스터에 오른다. 이미 경험한 것임에도 처음의 그 가슴 설렘을 다시 반복하면서……


“여러분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세요. 우리는 혼돈을 출산합니다. 깃발 대신 식칼을 들고 부르주아 가정의 거짓 행복을 재료 삼아 마음대로 요리합니다.”

신의 뜻을 거스르지 않고 복종한 대가로 여성의 시조가 된 짐승이 곰이었다면, (이 소설에 따르면) 신에게의 복종을 거부하고 스스로 여자가 된 짐승이 있었으니, 바로 호랑이었다. 이 호랑아낙들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남성들의 거대한 억압체계와 맞서왔다. 이들이 한국사회의 부와 명예를 독식해온 집단(왕조, 탐관오리, 다수의 뻔뻔한 양반이나 귀족계급)에 대해 은밀하게 대항하는 모습을 보여왔다면 호랑아낙의 정신을 이어받은 수상한 식모들은 의도적으로 부르주아 가정에 잠입하여 그들의 위선을 까발리고, 가정을 해체시키는 역할을 떠맡아왔다.
호랑아낙들은 연산군을 폐위시키는 일에 참여하기도 했고, 지방 탐관오리의 악행을 고발하는 데 일조하기도 했으며, 동학혁명 때도 큰 몫을 해냈다. 수상한 식모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일제시대 때부터였다. 조선을 지탱하던 신분사회는 몰락했지만 신분 사이의 경계는 더욱 두터워졌다. 이 단단한 신분의 경계를 만들어놓은 것은 바로 자본. 자본은 어떠한 법도보다 더 강력하게 신분 사이의 교류를 끊어놓았고, 이제 계급과 계급 사이에서 활발히 움직이던 호랑아낙의 움직임은 점점 둔해지다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아예 호랑아낙은 전설로만 남고, 수상한 식모들이란 이름을 지닌 새로운 집단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박진규가 풀어놓는 이 호랑아낙 그리고 수상한 식모들의 행각은 그야말로 황당하고 기발하다.
천기를 누설한 죄로 얼굴을 제외한 모든 신체부위가 돌이 되어버린 ‘마지막 수상한 식모’ 순애씨는 ‘나(경호)’에게 수상한 식모들의 비밀을 하나하나 풀어놓는다. 그녀의 이야기 속엔 예언자 염옥과, 어떤 병이든 치료할 수 있는 신비한 효험을 가진 ‘오줌’을 누게 된 민자씨, 바구니만 들고 나갔다 하면 무엇이라도 채워오는 점래, 저 유명한 시인 김수영에게 「식모」라는 시를 쓰게 한 식모 김수영 등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을 펼쳐 보인 수상한 식모들의 이야기가 숨어 있다. 순애씨의 이야기를 받아적는 경호 역시 어린 시절 ‘순애씨가 집어넣은 꿈을 갉는 쥐 때문에’ 성장기를 순탄치 못하게 지내왔(다고 믿)으며, 가족들 역시 이 때문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화목하다고는 할 수가 없다. 젊은 시절의 그 수상한 식모를 잊지 못해 환갑이 넘은 나이에 다시 붓을 잡고 며느리에게 누드 모델을 서달라는 할아버지와, 유산을 생각하고 기꺼이 시아버지 앞에서 옷을 벗는 엄마, 경호의 친구 선재의 목소리가 더빙된 ‘하녀 시뮬레이션 게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버지와 트림하는 괴물이 되어 집을 떠난 형(알고 보니 형 역시 수상한 식모의 피해자였고……), 할아버지 앞에서 벌거벗고 있는 엄마를 본 충격으로 천재 꼬마에서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되어버린 초등학생 동생……
이야기는 경호의 가족 얘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어찌어찌 제 생활을 찾고 자리를 잡아가던 그에게 다시 ‘물’이란 정체불명의 여인이 등장하고, 그야말로 믿거나 말거나 황당한 이야기는 다시 시작된다.
자 이제, 당신은 이 이야기를 믿을 건가? 믿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당신들 귀에 쥐를 집어넣는다면 믿을 텐가?


질주하는, 전복적인, 쾌활한 상상!

『수상한 식모들』은 발상이 신선하고 접지하는 방법은 아주 웃긴다. 읽고 나면 어딘지 모르게 섬뜩해진다. 혹시 ‘수상한 식모들’이 내 주변에도 있는 게 아닌가. 옆에서 잠든 아내 얼굴도 새롭게 꼼꼼히 들여다보게 만드는, 그런 이상한 힘을 이 소설은 가지고 있다. 『수상한 식모들』은 역사에 대한 전복적인 해석 때문에 새롭고, 발상의 불온함 때문에 신선하고, 뜨거운 것들을 짐짓 감추면서, 그러나 음험하게, 상식성을 벗어난 상상력 때문에 웃기고, 그리고, 최종적으론 섬뜩하고 무섭다. 박범신(소설가)

『수상한 식모들』은 기존 소설 독법을 배반한다. 쓸데없는 허튼 상상으로부터 출발하는 것 같은데 다 읽고 나면 의외로 묵직한 울림을 준다. 이 작가 덕분에 이제 식모라는 존재는 이전의 식모가 아니다. 낡은 의미를 새롭게 전환시키는 것도 문학의 힘이라도 본다면 이 작품은 그에 이바지한 셈이다. 시종일관 웃으며 읽다가 다 읽고 나서 돌연 주변이 수상하게 여겨지는 느낌을 이 작품을 읽은 사람들은 경험케 될 것이다. 더불어 아무렇지도 않게 진행되는 우리 일상이 아주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 또한 동시에 체험할 것이다. 신경숙(소설가)

이 얼마나 발칙한 상상인가. 또 얼마나 유쾌한 농담인가. 그리고 또 우리가 애지중지하듯 모시고 있는 역사상에 대한 얼마나 신랄한 풍자인가. 한마디로 『수상한 식모들』은 호랑이도 자기 스스로 여자가 되었다는 유쾌한 상상 하나로 저 신화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오던 남근 중심주의적이고 로고스 중심주의적인 사회 모럴의 허구성과 억압적 성격을 여지없이 묘파해낸 소설이라 할 수 있거니와, 이는 기존의 권위주의적 담론을 의심하고 탈영토화하려는 자유 의지가 만들어낸 하나의 쾌거라 할 만하다. 『수상한 식모들』로 인하여 우리 소설사도 이제 농담의 역사, 혹은 역사적 농담이라는 희귀한 변종을 갖게 되었다고나 할까. 류보선(문학평론가, 군산대 국문과 교수)



- 초판발행 | 2005년 12월 22일
_ 신국판 | 336쪽 | 값 9,500원
_ ISBN 89-546-0073-5 0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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