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최고의 행복이자 최악의 고통, 그 이름은 사랑이다. 세상을 가득 채운 사랑, 그것은 세계를 이해하는 열쇠이다. 그리고 여기, 그 사랑의 신화들이 있다. 동서과 고금, 촘촘히 얽힌 그 사랑의 길 위에 숨어 있던……
최근 대중문화의 아이콘들을 소재로 삶의 아이러니를 드러내는 시들을 선보였던 시인 권혁웅, 그가 신화가 되고 삶이 되고, 시가 되는 사랑 이야기를 전한다. 새로운 ‘길’을 만들고 ‘세월’을 견디고, ‘경계’를 무너뜨리는 사랑 이야기, ‘몸’에 새겨진 그 뜨거운 ‘불’의 이야기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 그것이 곧 우리의 사랑 이야기다.

“사랑이 어떻게 변해요.”

“너 나 사랑하니.”
“……”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헤어져.”
영화 <봄날은 간다> 중에서

“사랑이 어떻게 변해요. 내 사랑은 안 변해요.”
“변해요, 사랑…… 세상에 안 변하는 게 어디 있어요?”
영화 <너는 내 운명> 중에서

어쩌면 사랑이 움직이지 않기를, 그것이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건, 그것이 늘 움직이는 것임을, 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아님을 우리가 모두,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움직이는’ 사랑의 역사는 깊다.
우주 최대, 최고의 난봉꾼이었던 제우스 때문에 헤라는 질투의 화신이 되어야 했고, 사랑하는 것이 본업이라고는 하지만 아프로디테 역시 남편인 헤파이토스 외에 아레스와 아도니스, 디오니소스, 포세이돈 등과 사랑을 나누었다.
올림포스의 제왕 제우스 역시 세상을 풍성하게 만드는 것이 본업이라고 보면 그 역시 자신의 임무에 충실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들의 사랑은 헤픈 연애이기 이전에 충실한 ‘본업’ 수행이었던 셈이다. 아프로디테의 충실한 임무 수행 덕에 “생명의 근원인 축축한 ?과 인공적 생산물을 만들어내는 불의 결합”(+헤파이토스)을 이루어냈고, “왕성한 생식력과 모든 생명의 근원인 물의 결합”(+아레스)을 이루어냈으며, “생식력의 여신과 식물의 정령과의 결합”(+아도니스)을 이루어냈으니.

그러니 다시 한번, 사랑의 본질은 그 움직임, 변화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움직이는 동시에 움직이게 하고, 변하는 동시에 변화하게 한다.
그것은 그 자체가 움직이는 힘이어서, 이야기를 움직이고, 삶을 움직이고 사람들을 움직인다. 이야기를 낳게 하고, 시를 낳게 하고 꿈꾸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곧 우리의 삶의 이야기이고, 우리의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다. 비틀어져 있고 꾸며져 있는 그 사랑의 이야기 속에 우리의 삶의 모습이 있고, 그 평범한 듯한 삶의 모습 안에 신들의 사랑, 전설 속의 사랑이 아닌 우리의 사랑 이야기가 녹아 있다.

사랑의 논리로 엮어낸 재미있고 독창적인 신화 입문서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에게는 여러 이름이 있다. 아포스트로피아(등을 돌리는 여자)나 아노시아(부정한 여자)와 같은 이름은 사랑의 변개(變改)되기 쉬운 속성을 지시하고, 안드로포노스(남자를 죽이는 자)나 에피튐비디아(무덤 위에 선 여자), 튐보리코스(무덤 파는 사람), 파시파이사(지하세계에서 빛나는 여왕)와 같은 이름은 성애와 죽음의 관계를 일러주며, 칼리퓌고스(아름다운 엉덩이를 가진 여자)나 모르포(균형 잡힌 여자)는 사랑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암볼로게라(늙음을 지연시키는 여자)는 사랑이 가진 불로불사의 성격을 보여준다. 이처럼 사랑은 다양한 모습을 지니고 신화 곳곳에 숨어 있다. 신화는 사랑 이야기로 포장된 사람살이 이야기를 보여주기도 하고, 사람살이 이야기로 포장된 사랑 이야기를 숨기고 있기도 하다.
한국을 비롯한 중국, 일본 등 동양 신화와 그리스 로마 신화, 북구 신화 등 전 세계 신화와 민담, 전설 등을 아울러 뽑아낸 신화 속의 사랑 이야기는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사랑은 욕망이고 욕망은 필연적으로 금기의 위반을 부른다. 금기를 위반해 받는 벌은 시간, 계절, 삶과 죽음 등 세계의 여러 경계를 나타낸다. 저자는 신화 속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세계의 기원과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 그리고 인간의 삶, 곧 세계의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신화와 꿈, 그리고 시

신화와 꿈과 시의 테마는 언제나 사랑이다. 신화시대의 주된 관심은 생산력의 증대에 있었다. 신이나 영웅과 같은 집단적인 힘의 대리자가 내보이는 무시무시한 힘은 늘 정력이었다. 이 때문에 최고신 제우스가 그토록 바람을 피웠던 것이며, 신들의 세계에서 한도 끝도 없는 근친상간이 일어났던 것이며, 헤라클레스와 순임금이 지치지도 않고 괴물들을 퇴치했던 것이다. 또한 신화의 논리는 감각의 논리다. 신화는 몸의 느낌―보고 냄새 맡고 만지고 핥고 쓰다듬는―으로 사물을 배치하고 거기에 인과성을 부여한다. 신화는 머리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시의 이미지, 꿈의 욕망이 또한 그렇다. 우리는 그걸 사랑이라고 부른다.

우리 안에 내재하는 신화의 양상을 새롭고 강렬한 이미지로 그려낸 이 책은 미학과 심리학, 시학과 인류학의 대화를 다각적인 관점으로 깊이 있게 전개한 인문학의 문법이다. 사고파는 의식이나 개념적이고 관념적인 인식보다 훨씬 아래쪽에서 신화가 온몸의 기하학으로 실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문장은 빛나고 아름답다. 이야기와 꿈과 시에는 인간과 인간을 결속하는 사랑의 인력이 작용하고 있으므로, 신화적 몽상에 잠겨 있을 때에 우리는 느닷없는 감동으로 찾아드는 사랑을 경험할 수 있으며 자기 발견이란 서로가 서로를 이끄는 이 힘의 체험 이외에 다른 것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권혁웅은 흥미롭게 풀어내었다. 김인환(고려대 국문과 교수)

권혁웅
1967년 충주에서 태어나 고려대 국문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1996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평론이 1997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시가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황금나무 아래서』 『마징가 계보학』, 평론집 『시적 언어의 기하학』 『미래파』 등이 있다. 2000년 제6회 현대시동인상을 받았다. 현재 한양여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중이며 『문예중앙』 편집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 2005년 11월 30일 발행
* ISBN 89-546-0057-3 03810
* 153*210 | 336쪽 | 13,000원
* 담당편집 : 조연주, 김송은(031-955-8862)

출처 : 문학동네 홈페이지 (http://www.munha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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