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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영혼 2 - 뫼비우스 서재
막심 샤탕 지음, 이세진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프랑스 문학은 왠지 어렵다는 고정관념이 있어서 이 책도 읽기를 망설였었다. 특히나 평소 읽어오던 영미 작가의 스릴러가 아니라 프랑스 작가의, 그것도 이 작품이 처음인 작가의 책은 별로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에 대한 호평들을 읽어가며 어쩌면 내 생각보다 괜찮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이 생겨났고, 마침내 이 책을 집어들게 되었다. 제법 두꺼운 분량의 책이었지만 일단 읽기 시작하니 무섭게 속도가 붙어 반나절도 되지 않아 끝까지 읽어갈 수 있었다.
프랑스 작가의 작품이라 프랑스를 배경으로 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배경은 미국 포틀랜드였다. 어쩌면 작가가 프랑스 사람이니까 당연히 프랑스가 배경이겠지했던 나의 편견이 허를 찔리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의미를 알 수 없는, 혹은 모든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첫 페이지, 그리고 시작되는 하나의 연쇄 살인사건. 피해자의 팔을 절단해 포틀랜드 인간백정이라 이름지어진 연쇄살인범. 다행히 사건은 그가 새로운 범행을 저지르기 바로 직전에 현장을 덮침으로써 해결된다. 하지만 사건의 마침표를 찍었다고 생각했던 것도 잠시, 정확히 1년 뒤, 포틀랜드 인간백정의 수법과 동일한 수법으로 새로운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나게 되고, 현장에서는 1년 전 체포 시에 사살된 그의 DNA를 비롯한 증거들이 잇달아 등장한다. 흑마술에 빠져있었다는 1년 전의 범인. 정말 그가 살아서 돌아온 것인가?
사실 어떻게 보면 너무도 간단히 범인의 정체를 간파할 수 있는 책이라 다소 맥이 빠질 수도 있었다. 책 속에서 인물들이 겪는 심리적인 변화에 속아넘어가지만 않는다면 의외로 범인은 쉽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이 책의 장점은 그런 부분에 있는 것이 아니다. FBI에서 프로파일러를 목표로 했지만, 결국 FBI에서 나와 경찰이 되서 현장에서 프로파일러로의 자질을 발휘하는 주인공 조슈아와 1년 전 사건의 생존자인 줄리에트의 미묘한 관계, 이 와중에 현장실습을 하고 싶다고 찾아온 검사보와 경찰들의 갈등, 범인이 경찰에 보내는 편지(단테의 <신곡>에서 인용한 글로 이뤄진 다소 퀴즈같은 편지)를 해독해가는 과정, 그리고 잔혹한 사건에 대한 묘사, 빠른 전개 등에서 이 책의 재미를 찾을 수 있다. 단순히 재미만을 찾는 것이 아니라 군데군데에 현대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느낄 수 있어서 적당히 무게감도 유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책의 작가인 막심 샤탕은 조슈아를 주인공으로 한 악의 3부작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첫 편인 이 책을 읽고나니 벌써 다음 권에서는 어떤 인간의 악한 면을 보여줄 지 궁금해졌다. 너무도 생생한 묘사때문에 선혈이 난자하는 작품을 기피하는 분들에게는 별로 권하고 싶지 않지만, 스릴러를 좋아하고, 그동안 영미 스릴러를 읽어보며 왠지 모를 아쉬움을 느꼈던 분들이라면 권해보고 싶다. 문장을 읽어가며 눈 앞에 영상이 스쳐지나갈 정도로 영화로 만들어도 손색이 없을 것 같았던 작품이었다. 마무리가 아쉽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오랜만에 긴장감있는 독서를 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