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거사 크리스티가 탄생시킨 명탐정들은 제각각의 매력을 갖고 있다. 우수한 두뇌를 자랑하는 포와로, 뛰어난 관찰력과 인간에 대한 통찰이 무기인 미스 마플은 감탄을 자아내게 하지만 명색이 명탐정이다보니 독자 입장에서는 어쩐지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게 약간은 거리감이 느껴지는 포와로와 미스 마플과는 달리 그저 모험을 좋아하고 일상에 따분해하고 있을 뿐인 토미-터펜스 부부는 독자에게 친근감을 안겨준다. <비밀 결사>에서 처음 등장해 결혼에 골인한 이들의 또 다른 모험담이 이 책에 펼쳐지고 있다. (토미-터펜스 부부가 등장하는 책으로는 이 책을 비롯해 <N 또는 M>, <엄지손가락의 통증>, <운명의 문> 등이 있다) 일거리가 없어 무료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토미-터펜스 부부. 그런 그들에게 첩보국의 카터가 와서 그들에게 데어도어 블런트라는 인물이 소장으로 있던 국제탐정사무소를 반년 정도 맡아달라고 부탁한다. 그 와중에 푸른색 봉투에 러시아 우표가 붙은 편지나 사무실에 와서 16이라는 숫자를 꺼내는 사람이 있으면 즉시 알려달라는 조건만 붙인다. 그렇게 블런트로 가장한 토미와 그의 비서로 가장한 터펜스. 그들의 좌충우돌 사건 해결기가 시작된다. 앞서 토미-터펜스 부부는 독자에게 친근감을 안겨주는 캐릭터라 언급했는데, 이 책 속에서는 그런 면이 더 두드러진 거 같다. 특히 각 사건마다 유명한 탐정을 흉내내는 이들의 모습은 기존에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에게 색다른 재미를 안겨준다. <노래하는 백골>에 등장하는 손다이크 박사를 비롯하여, 셜록 홈즈, 포와로 등 다양한 탐정을 흉내내며 사건을 해결하는 토미와 터펜스의 모습을 보노라면 왠지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어린아이들이 탐정 놀이를 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각각의 이야기가 길어봐야 20페이지 남짓되는 분량이라 이야기의 전개도 빨라서 지루하지 않게 읽어갈 수 있었다. 등장하는 사건들도 크게 잔인하다거나 복잡한 사건들이 아니기때문에 빡빡한 추리소설을 읽다가 잠시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야금야금 읽으면 좋을 듯 싶었다. 총 23장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연결되는 이야기가 많아 개별적인 사건은 10개가 조금 넘는 정도라 부담없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인 듯 싶다. 장편을 읽을만한 시간이 없는데 정말 책이 읽고 싶다면, 간단히 화장실에서라도 볼 수 있을 것 같은 책이었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다른 소설들보다 좀 더 코믹하면서 귀여운 추리소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