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싱턴의 유령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 열림원 / 199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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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하루키의 장편다운 장편을 다 읽어버리고 계속해서 짤막한 단편으로 그를 만나고 있는 중. 이 책에는 렉싱턴의 유령, 녹색 짐승, 침묵, 얼음 사나이, 토니 다키타니, 일곱번째 남자, 장님 버드나무와, 잠자는 여자 이렇게 총 7개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각각의 이야기는 저마다 나름대로 고독 혹은 상실감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고 있었다. (비단 이 책뿐만 아니라 하루키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이긴 하지만...)

 렉싱턴의 유령을 읽고 나서 나는 이 이야기가 등장하는 사람처럼 누군가가 죽었다고 며칠을 죽은듯이 잠들 수 있을까? 혹은 누군가 나를 위해서 그렇게 죽은 듯이 잠을 자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작가가 겪은 유령들의 파티이야기와 겹쳐져서 뭔가 모를 슬픔을 느끼게 되었고, 녹색짐승에서는 겉모습만으로 판단을 하고 그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서 끊임없이 잔인한 상상을 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섬뜩하기도 하고 잔인하게 생각이 되면서, 정작 나도 다른 사람에게 그러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왠지 모를 반성의식이 싹터났었다. 그리고 얼음사나이. 바로 이 이야기에서 하루키 다운 상실감이 절실히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얼음 사나이와 결혼을 하게 된 여자. 그리고 그와의 결혼 생활이 지속될수록 점점 더 고독을 느끼게 되는 여자. 그녀의 절실한 고독감이 마음이 아려올 정도로 와닿았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옷을 보면 사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여자와 결혼을 하게 된 토니 다키니티, 그는 그녀가 갑작스럽게 죽고 나서 그녀가 남겨놓고 간 수많은 옷과 구두, 장신구들을 보며 그녀를 떠올린다. 사람이 누군가를 떠올리고 그리워할 때 그가 남겨놓은 물건들 혹은 흔적들을 보며 그것의 주인을 생각하는 것만큼 아련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왠지 그 모든 것을 정리해버리고 스스로의 고독속으로 빠져들어버린 토니 다키니티에게 연민의 감정이 들었다랄까?

 여튼간에 하루키의 짤막짤막한 단편은 단편이긴 하지만 한 번 읽고 덮어두는 것이 아닌 책을 덮고 나서도 그 의미를, 그 고독감을 곱씹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도서관에서 하루키의 책을 뒤적거리다가 그의 여행 에세이류가 있는 걸 봤는데, 다음엔 그걸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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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카타야마 쿄이치 지음, 안중식 옮김 / 지식여행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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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은 풋풋하다고 할 수 있는 열 다섯살 아키와 사쿠. 둘은 같은 반 학급 임원으로 만나 친구처럼 지내면서 풋풋한 감정을 키워나간다. 어려서 순수한, 그래서 풋풋했던 둘의 사랑은 아키가 백혈병에 걸리면서 눈물을 짜내는 이야기로 흘러간다. 보통의 백혈병에 걸린 연인과의 사랑이야기처럼 이 이야기는 슬프게 진행되어 간다. 하지만 이 책이 다른 최루성 멜로물과 달랐던 점은 그나마 풋풋한 소년과 소녀의 사랑이었다는 점이었을까?

 책 속에서 우정과 사랑사이를 넘나들면서 지내는 둘의 모습은 읽는 이로 하여금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게 한다. 뭐 소재가 좀 식상하긴 하지만 그건 뭐 어쩔 수 없다고 치고. 그리고 주인공들의 사랑이야기와 평행선을 그으면서 사쿠의 할아버지의 지나간 사랑이야기가 그려지면서 앞으로 사쿠가 그의 할아버지처럼 평생 아키를 마음에 두고 살아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책을 읽으면서 영상적인 장면들이 나도 모르게 떠오를 때마다 영화로 만들면 괜찮겠군.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식상한 내용중에서도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뭐 물론 이미 일본에서 영화로 만들어 졌고, 내일이면 우리나라에서도 개봉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워낙에 재미있다는 소리를 들어서 였는지 기대도 제법 컸었고, 도서관에서 예약을 해놓은지 거의 한 달만에 책이 들어와서 좀 짜증이 날랑말랑할 때 읽어서 그랬는지간에 생각했던 것보다 그렇게 재미있다!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지만, 순애보적인 사랑이야기를 좋아하고, 잊고 지냈던 첫사랑이 추억을 떠올리고 싶다면 읽는 것이 좋을 듯 싶었다. 아니면 나이어린 중고등학생들이 꿈꿀법한 사랑이야기니까 그런 소설을 읽고 싶다면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뭐 진부한 내용이긴 하지만, 지루하지는 않았고, 제법 마음에 드는 구절도 몇 구절 있었으니, 그럭저럭 읽을만한 책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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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이레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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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주인공은 전직이 수학 교수로 교통사고로 인하여 기억이 80분밖에 지속되지 않는 병을 앓고 있으며, 그에게 있어서 모든 기억은 그가 사고를 당한 17년전으로 멈춰있다. 그런 그의 집에서 파출부로 일하게 된 '나'는 미혼모로 열살짜리 아들과 함께 살아가는 여자로 직업 소개소에서 박사를 소개받게 된다. 그에 관한 문서에는 이미 9명이나 되는 파출부들이 그를 포기했다는 도장이 찍혀있었고, 과연 어떤 사람이길래 하는 마음으로 박사에게 간 그녀는 박사에게서 황당한 질문을 받는다. "자네 신발 사이즈는 어떻게 되나?"라는 질문에 24라고 대답을 하니 그는 "24? 정말 청결한 숫자군. 4의 계승이야." 이런 식의 대화를 한다. 보통 사람이 날씨가 어떻냐고 묻는 것과 같이 그에게는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풀어가는 주제가 숫자인 것이다. 그와 함께 지내면서 더불어 그녀의 아들도 아이들은 혼자 둬서는 안된다는 박사의 말에 따라 박사의 집에서 지내면서, 나와 박사 그리고 그녀의 아들 루트(머리가 평평하다고 박사가 붙여준 이름)의 생활이 이 책의 내용이다.

 이 책 속에는 책의 제목대로 박사가 사랑한 수식이 나온다. 소수의 개념, 완전수의 개념 등이 나오면서 잔잔하게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 책은 어떻게 보면 그저 수학의 개념을 쉽게 풀어쓴 책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박사의 수학에 대한 열정과 박사를 이해하고 그에게 친구같은 존재된 가정부인 나와 그의 아들 루트의 우정이 수학과 야구라는 소재에 의해서 그려진다. 그리고 마치 영화 '메멘토'에서 주인공이 자신에게 있었던 일을 기억하기 위해서 몸에 문신을 새기는 것처럼 박사는 자신의 옷에 메모지를 붙여 놓는데, 그 메모지들 중에서 "내 기억은 80분밖에 지속되지 않는다"라고 붙여 놓은 것에서는 왠지 모를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80분밖에 지속되지 않는 기억력을 지녔지만 그가 사랑했던 수학에 관한 것은 잃지 않았던 박사. 끝내 그의 기억을 되찾지는 못했지만, 그렇지만 그 사실에 슬퍼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를 지켜주는 가정부인 '나'와 '루트', 그리고 사고가 나기전부터 사랑했던 미망인이 있었기때문이 아니었을까? 든든한 친구들과 연인이 있어서 그는 행복할 수 있었을 것 같다. 읽고 나니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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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유곤 옮김 / 문학사상사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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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표지에 쓰여 있는 것처럼 이 책은 연작소설이다. 각기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6편의 이야기들은 고베 지진이라는 하나의 배경을 공유하고 있다. 연작 소설이라는 특징말고도 이 책은 하루키의 소설치고 매우 특이하게 3인칭 시점이 사용되고 있다. 책에는 큰 제목이 있고, 그 아래 작은 제목이 하나씩 달려있다. 큰 제목보다는 작은 제목이 책의 내용과 더 가까이 닿아있긴 하지만, 큰 제목과 작은 제목을 두어 보다 열린 생각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그랬으리라. 아무런 예고도 없이 고베에 일어난 지진. 그리고 그 지진이 일어나는 시대를 살아가던 사람들. 그 사람들의 각기 다른 생활. 실질적으로 그들은 지진으로 인하여 어떠한 피해를 봤다던지, 가족이나 친지를 잃지는 않았다. 어찌보면 그들의 생활과 지진은 무관한 일일 수도 있다. 어쩌면 하루키는 이런 점을 말하고자 했을지도 모른다. 책의 처음에는 장 뤽 고달의 <미치광이 피에로>에 나오는 구절이 등장한다.

라디오의 뉴스: 미군도 수많은 전사자를 냈지만, 베트콩측도 115명이전사했습니다.
여자: "무명이란 참 무섭지요."
남자: "뭐라고?"
여자:"게릴라가 115명이 전사했다는 것만 갖고는 아무것도 알 수 없지 않아? 한 사람 한 사람에 관한 일은 무엇 하나 아는 게 없는 상태지. 아내나 아이들이 있었는지? 연극보다 영화를 더 좋아 했었는지? 전혀 알 길이 없다. 그저 115명 전사라는 것 말고는-."

 이와 같은 글로 살펴보건데 하루키는 고베 지진으로 죽은 수많은 사람들의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들이 아닌 단편적인 숫자로써 그들의 죽음이 드러나는 것을 안타까워했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이 하루키의 소설 치고는 매우 독특했던 것은 비단 3인칭 시점의 사용이나 연작소설이라는 측면을 제외하고도, 이야기가 그동안 그의 소설에 나타난 고독감이나 상실감이 비교적 덜 드러난다는 것을 들 수 있겠다. 그의 소설치고는 이 책 속에는 다양한 인물이 드러난다. 이러한 여러가지 사정들이 그의 소설이지만 그의 소설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을 불러일으키면서 독특함으로 다가올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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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일간의 세계 일주 - 쥘 베른 컬렉션 04 쥘 베른 걸작선 (쥘 베른 컬렉션) 4
쥘 베른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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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성룡이 주연한 80일간의 세계일주라는 영화가 개봉한 적이 있었다. 그 일을 계기로 어린 시절에 읽었던 책에 대한 생각이 다시 나면서, 다시금 포그씨와 세계일주를 하고 싶은 마음에 책을 읽기 시작했다.

 사실, 80일간의 세계일주는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이긴 하다. 영국의 신사 포그가 클럽의 회원들과 내기를 하고 이를 스스로 보이기 위해서 조금은 무모해보이지만 80일간의 세계일주를 시작한다. 그리고 때마침 영국에서 일어난 은행 강도 사건의 용의자가 포그로 몰리면서 포그는 형사 픽스에 의해 쫓기면서 80일간의 세계일주를 마치고 돌아왔으나 80일만에 돌아오지 못했다고 생각하여 내기에 졌다고 생각하지만, 포그가 동쪽으로 여행한 덕분에 하루를 벌었다는 극적인 사건이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행복하게 마무리 된다. (가족이나 친구하나 없던 포그가 인도에서 구한 아우다와 결혼한다.)

 어릴 때는 80일간의 세계여행을 읽으면서 단순히 영국 신사 포그의 여행담쯤으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 읽은 80일간의 세계일주는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우선은 쥘 베른의 작가적 능력이 눈에 띄었다. 그는 어린시절 사촌누이에게 산호목걸이를 선물하려고 인도행 무역선에 탔다가 아버지에게 들켜서 돌아오고 "앞으로는 꿈속에서만 여행하겠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의 말처럼 그는 굉장히 많은 여행에 관한 책을 썼다. 여행에 관한 욕구를 글로써 표현한 것일까? 여튼간에, 쥘 베른은 다양한 나라의 모습들을 그림 그리듯이 묘사한다. 책 속에서 포그는 그 나라에 도착하는 것이 목적이지 관광이 목적이 아니었으므로 자세한 나라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지만, 책의 내용은 쥘 베른이 세계로 나아가고자 한 열망이 있었음이 드러난다. 사실 어릴 때는 포그가 굉장히 매력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다시 읽어보니 그는 너무 냉정하고 이성적이었다. 되려 그의 하인이었던 파스파르투의 성격이 더 마음에 들었다랄까? 그의 쾌활한 성격은 책에 활기를 불어넣어주었다. 파스파르투의 모습은 포그를 바라보는 나의 모습이었으며, 어찌보면 가장 인간적인 모습이었던 것 같다.

 80일간의 세계일주가 가능할 것인가 아닌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고 싶지 않다. 어찌됐건 이 책은 소설이기도 하지만, 사실 아무리 돈이 있다고 해도 포그처럼 제 시간에 도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하기사 그게 여행과 일주의 차이려나. 이 책의 마지막은 '이 여행에서 그가 얻은 이익은 무엇인가? 그는 이 여행에서 무엇을 가지고 돌아왔는가? 아무것도 없다고 사람들은 말할까? 확실히. 한 아리따운 여성말고는 아무것도 얻은게 없었다. 그러나 좀 믿어지지 않는 일이지만, 그 여성은 그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로 만들었다. 사실 우리는 그보다 훨씬 하찮은 것을 위해서라도 세계일주를 하지 않을까?'라는 말로 끝난다. 그 말이 왠지 여운을 남기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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