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생각 없이 응모하는 알라딘 행운의 램프, 우와 연극 당첨되었다! 야호!

 

<에쿠우스>는 영화 <아마데우스>의 원작자로 유명한 극작가 피터쉐퍼의 희곡을 원작으로 한 작품.

1973년 초연 이후 전세계적인 화제를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연극은 말 여덟 마리의 눈을 찌른 열일곱 살 소년 알란을 정신과의사 마틴이 치료하는 과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토록 말을 사랑하고 아꼈던 소년이 왜 그토록 잔인한 짓을 저지질 수밖에 없었는가....

지나친 신앙심을 가진 어머니와 TV조차 못 보게 하는 인쇄공 아버지 밑에서

학교도 다니지 않았던 알런.

그는 어릴 적 바닷가에서 우연히 만난 말에 매혹되어 말을 숭배하고 찬양하기에 이른다.

그런 그가 왜???

치료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소년의 숨겨진 내면세계도 흥미롭지만,

그 속에서 엄청난 갈등에 시달리는 마틴의 고뇌 또한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나는 많은 소년들을 치료했지만 그들을 정상으로 만들기 위해 '개성'이란 것을 빼앗아야 했지.

그런데 '정상'이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알런을 평범하게 만들어 정상으로 돌려놓을 수 있어.

하지만 그에게서 '정열'을 빼앗아 과연 유일신의 세계로 돌려놓는 것이 옳은 일일까?

 

'신' 대신 '에쿠우스(라틴어로 '말'을 뜻하고 연극에서는 알런이 아끼는 말 '디제트'를 가리킴)'를 숭배하면서 위로 받고,

남몰래 어두운 들판으로 나아가 말을 타고 신과의 합일을 경험하며 환희를 느꼈던 알런.

그에게서 그 흥분되고 짜릿하고 생생한 열정을 빼앗아가는 것이,

'정상'으로 돌려놓겠다는 명목으로 그렇게 하는 일이 맞는 것인지... 나 또한 곰곰 생각해보게 되었다.

 

섹시한 근육을 가진 인간들로 대체된 여덟 마리의 말들과 함께 펼치는 군무는 환상, 그 자체였다.

원시적이고 본능적인 세계로 함께 이끌려 들어가는 기분이랄까.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꾸역꾸역 살아내고 있다고 느낄 때

무엇인가 그럴 듯한 것을 하는 척하면서 마음은 저 허공 어딘가를 떠돌 때

마음과 상상으로만 자유를 느끼고 정작 몸은 한정된 공간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할 때

알런이 느꼈던 광기와 열정은, 여덟 마리 말의 눈을 찌르고서라도 경험해보고 싶은 것이다.

 

여러 생각들이 어지러이 머릿속을 휘젓고 다닌 연극이었다.

기회가 되면 한 번 더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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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 색 반신욕조를 샀다.

일본에서는 그 작은 집 코딱지만한 욕실에도 욕조가 붙어 있었기 때문에 기분이 우울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삼십분이고 한시간이고 반신욕을 했다. 보글보글 거품이 나는 욕조 안에서 멍때리고 있다가 나오면, 왠지 모를 상쾌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욕조를 없애는 게 추세라고 했다. 지금 살고 있는 집도 원래는 욕조가 있는 집이었지만 살던 사람들이 없앴다고 한다. 요즘 들어 폭발할 것 같은 불쾌함을 안고 있는 나로서는 더 이상 욕조 없는 삶을 이어가기가 싫어졌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인터넷에서 가장 싼 플라스틱 반신욕조를 샀다.

 

집에 사람이 없을 때 택배 아저씨가 왔다 갔다.

문앞에 거대한 핑크색 욕조가 반투명한 비닐에 싸여 있는 모습이 기이했다.

낑낑거리면서 욕조를 화장실에 갖다놓았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욕조는 그 사랑스러운 빛깔에도 불구하고 스릴러나 공포 영화에서나 볼 법한

투명비닐로 싸인 시체처럼 보였다.

 

화장실 문을 열 때마다 욕조가 생겼다는 기쁨보다는, 관 하나를 마주하는 느낌이 든다.

욕조에 물을 받고 그 안에 들어갈 때마다 관속으로 들어가는 연습을 하는 것 같다.

사람 하나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란 작고 별 볼 일 없는데,

나와 너는 뭘 위해 그렇게 아등바등거리는 거니?

묻고 싶어진다.

 

반신욕을 즐길 수 있다는 그 자체는 즐겁지만,

왠지 이 동거가 불편하기도 하다.

 

나는 욕조 하나만큼의 밥값은 하고 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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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었는데도 출출하고 달달하고 부드러운 게 땡겨서 카페베네에 갔다. 커피는 낮에 마셨으니 스팀밀크와 허니브레드를 시켜서 신랑과 나눠먹었다.

 

가끔, 신랑과 카페에 온다. 카페에 오면 단둘이 마주앉아서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다. 분명 같이 사는 사람인데 오늘 누굴 만나 뭘 하고 왔는지, 입을 열기 전에는 알 수가 없다.

 

결혼하고 나서 '그 많던 대화는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싶어서 쓸쓸해지는 때가 있었다. 보통 나는 낮에 단골 카페에 가서 커피 한 잔을 하고 마니, 저녁에 퇴근하고 돌아온 신랑과 카페에 가는 일은 드물다. 보통, 저녁을 먹고 뒹굴거리거나 티비를 보며 박장대소하거나 밀린 빨래를 세탁기에 돌리거나, 자잘한 일상으로 채워진 우리의 저녁시간은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다.

 

어느날인가 우연히 밤의 카페를 찾았는데 집에 있을 때처럼 티비가 우리의 시선을 끄는 것도 아니고, 해야 할 일상적인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볼 수밖에 없게 되었고,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란 것이 만들어지자, 의외로 여러 이야기들이 술술 나왔고, 그즈음 알 수 없던 신랑의 마음도 알게 되고, 나의 마음도 얘기할 수 있었다.

 

아, 부부란 가끔씩 밖에 나와서 진지하게 마주 앉아 대화를 해야 하는구나.

물리적인 방해요소들을 없애고 차분히 앉아 있으면,

그러면 굳이 뭘 이야기해야 생각하지 않아도, 마음속에 있던 이야기가 저절로 나오는 거구나. 싶었다.

 

나는 매일 내가 한 얘기를 신랑이 금방 까먹어버린다고 토라지지만, 나 역시 귀기울이지 않고 대충 흘려넘겼던 이야기들의 조각을 모아서, 허니브레드와 스팀밀크와 먹고 나니, 배도 부르고 졸음이 온다. 오늘은 달달한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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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10-01 0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로 마음을 툭 터놓고 느긋할 만한 자리에 있어야
비로소 자잘한 것들 아닌
마음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구나 싶어요.

마음을데려가는人 2013-10-02 18:10   좋아요 0 | URL
그래서 환경이란 게 중요한 건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
 

 

어제는 많이 걷고 햇빛을 많이 쪼이고 많이 먹었다.

자주 가는 카페 주인언니와 코스트코를 가기로 했다.

언니는 월요일 휴무마다 코스트코에 가서 장을 보는데,

한번 따라가야지, 따라가야지 했던 게 일 년이 되었다.

요샌 마음만 바쁘고 실은 한가한 터라 따라나서겠다고 했다.

두 시쯤 밥을 먹고 양재에 있는 코스트코로 출발하기로 했다.

쌀국수 마니아인 언니는 쌀국수를 국물까지 싹싹 흡입하고는 "우리 그냥 반포까지 산책할까?" 했다.

내심 추석 전이라 사람이 엄청 많아 붐빌 생각을 하면 가고 싶지 않는 마음도 있었기에 난 '콜!!!!!!!'

방배동 카페 골목 쪽으로 가서 '두닷 갤러리'를 구경하면서

어떤 집에서 어떤 가구를 두고 살지 요리조리 재보기도 하고,

직접 원두를 볶는 카페에서 깜짝 놀랄 만큼 맛있는 커피를 마시기도 했다.

지인 중 야한 언니 이야기를 하면서 키득거리기도 하고,

신세계 백화점에 가서 소이캔들의 아름다운 향에 취하고 비싸지만 너무 예쁜 식기들을 구경하기도 했다. 버스를 타고 돌아와 조스떡볶이에서 떡볶이와 튀김을 먹고 이마트에 가서 싸다는 이유로 닭똥집을 샀다. 하루가 훌쩍, 그렇게 갔다.

 

뽀송뽀송한 바람이 얼굴을 간질이는 느낌, 상쾌하리만큼 따가운 햇살, 가을 초입의 산책은 참  유쾌했다. 옥상에 널어놓은 이불은 이미 밤이슬을 맞아 비릿한 냄새가 나서 다시 빨아야 했지만, 어제 하루는 이불을 다시 빨아 넣는 수고를 해도 괜찮을 만큼 평온하고 즐거웠다.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의 조각들이 때로는 이렇게 힘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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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13-09-18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가을이구나 싶네요.
글에서도 가을 냄새가 나네요. 가을이니까 가능한 유유자적한 하루의 일상.

마음을데려가는人 2013-09-22 19:02   좋아요 0 | URL
가을인데 참 더운 추석이었어요. 헥헥.
이제 금세 추워지겠죠? 가버리기 전에 언능 만끽해야겠어요. :)
 

 

이토록 노력하는 삶을 동경해본 적이 있었던가.

나는 요즘, 쉼 없이 노력할 줄 아는 자들이 부럽고 질투나고 때론 짜증이 나기도 한다.

나는 늘 자유롭고 시간을 자유자재로 부릴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나는 왜 갑자기 성실하고 치밀하게 규칙적으로 살아가는 사람과 삶이 부러워진 것일까.

 

사람들은 나를 성실하다고 평가하지만, 내가 아는 나는 딱 적정선의 성실을 벗어나 본 적이 없다.

숙제가 있으면 미리 해놓고 몇 번 다듬어 제출하지만,

시험이 있으면 시험범위를 전부 두 번 이상 훝어보지만,

그 시간을 전부 다 성실하게 쓰진 않았던 거다.

더 깊게 파고들 수도 있으련만,

딱 거기까지, 딱 그만큼만 하고 이정도면 됐지? 하고 자족하는 날이 더 많았다.

 

체력이 좋지 않아 생기는 부작용 중의 하나는 '에너지를 아끼려는 습성'이 있다는 것이다. 방전될 때까지 나를 내버려두지 않고 조금씩 힘을 남겨두는 것이 내 나름대로 익힌 삶의 기술이었다 해도 좋다.

 

하지만 반 칠십이다.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나는 빨리 성장하고 빨리 어떤 궤도에 진입하고 싶은데 집중력이 따르질 않는다. 하루는 길고 나는 나름의 시간 배분을 하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몇 번이나 다짐하고 또 다짐하는데, '성실하게 꾸준히 하는 일'이란 왜 이리 말라비틀어진 북어대가리처럼 건조하고 거친지.

 

인내하고 싶진 않다. 그냥 과정을 즐기면서 가고 싶을 뿐이다. 근데 역시 '성실'은 '인내'를 동반해야만 얻을 수 있는 열매인 걸까?

 

내가 마음대로 안 되니 짜증난다. 잘해보려고 하니까 마음이 조급해진다.

에효, 얼마나 해봤다고 저래. 또다른 내가 비웃는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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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13-09-16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실함과 꾸준함이 상호적이란 생각이 듭니다. 둘이 기대어 서지 않으면 온전한 표현이 이루어지지 않는것 같아요. 삶도 온전함과 부족함이 서로 기대어 이루어지지 않을까요.

마음을데려가는人 2013-09-17 13:07   좋아요 0 | URL
아직은 부족함이 더 큰 삶인 듯해요.
온전함을 많이 키우고 싶네요. ^^

숲노래 2013-09-16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으로 나아갈 기나긴 삶
즐거우면서 아름답게 잘
누리시기를 빌어요.

'성실' 하면서 즐겁고 아름답다면
날마다 사랑스럽겠지요~

마음을데려가는人 2013-09-17 13:07   좋아요 0 | URL
'성실'을 누리는 사람, 좋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