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 색 반신욕조를 샀다.
일본에서는 그 작은 집 코딱지만한 욕실에도 욕조가 붙어 있었기 때문에 기분이 우울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삼십분이고 한시간이고 반신욕을 했다. 보글보글 거품이 나는 욕조 안에서 멍때리고 있다가 나오면, 왠지 모를 상쾌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욕조를 없애는 게 추세라고 했다. 지금 살고 있는 집도 원래는 욕조가 있는 집이었지만 살던 사람들이 없앴다고 한다. 요즘 들어 폭발할 것 같은 불쾌함을 안고 있는 나로서는 더 이상 욕조 없는 삶을 이어가기가 싫어졌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인터넷에서 가장 싼 플라스틱 반신욕조를 샀다.
집에 사람이 없을 때 택배 아저씨가 왔다 갔다.
문앞에 거대한 핑크색 욕조가 반투명한 비닐에 싸여 있는 모습이 기이했다.
낑낑거리면서 욕조를 화장실에 갖다놓았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욕조는 그 사랑스러운 빛깔에도 불구하고 스릴러나 공포 영화에서나 볼 법한
투명비닐로 싸인 시체처럼 보였다.
화장실 문을 열 때마다 욕조가 생겼다는 기쁨보다는, 관 하나를 마주하는 느낌이 든다.
욕조에 물을 받고 그 안에 들어갈 때마다 관속으로 들어가는 연습을 하는 것 같다.
사람 하나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란 작고 별 볼 일 없는데,
나와 너는 뭘 위해 그렇게 아등바등거리는 거니?
묻고 싶어진다.
반신욕을 즐길 수 있다는 그 자체는 즐겁지만,
왠지 이 동거가 불편하기도 하다.
나는 욕조 하나만큼의 밥값은 하고 사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