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월째 집에서 요가를 하고 있다.

처음에는 '아래를 향한 개 자세'라고 불리는

다운독만 좀 해볼까 했던 건데,

요가강사 출신인 아이 친구 엄마가

요가는

늘였으면 수축하는 자세도 해야 

균형이 맞는다고 해서

플랭크도 하게 됐다. 



그러다 보니

두 자세가 다 들어가있는

태양경배자세를 하게 됐고,

또 A를 하니 B도 하게 됐다.

5분이 10분이 되고,

10분이 20분이 됐고,

이제는 30~40분 정도?

시간적 육체적 여유가 있을 때는

한 시간 정도 수련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꾸준히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정말.



생각해보면 원대한 열망을 가지고 시작한 일들은

늘 쉽게 지치고 나가떨어졌다.

거창한 계획을 세우고,

세세한 것들까지 컨트롤하려 했을 땐

그 과정에 지쳐서

마음이 이미 떠나버릴 때가 많았다. 



오히려

묵묵히

생각없이

그냥

할일없으니까

하는 일들은

어쩌다 보니

이렇게 길게 이어진다.



이렇게 오래 하다니

대단하다고들 말하는데,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어리둥절하다.

꾸준히 뭔가를 하기 어려워하는 내가

'어쩌다 보니' 이렇게 오래 하게 됐다는 것도 신기하고,

너무 마음을 들이지 않고, 애쓰지 않는 것들은

이렇게 길게 할 수도 있구나 싶어서. 



물론

습관처럼 만들어야겠다 싶어서

하루도 빼먹지 않고 하려고 애썼던 시간들도 있었다.

그 시간은 좀 힘들기도 했고,

'요가'보다는 '운동'을 한다는 느낌이 강했는데,

그렇게 차곡차곡 쌓아올린 시간들을 지나니

'요가를 한다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과가 돼버렸다.



딸아이와 남편이

나를 보면 꼭 물어보는 말이

"오늘 요가했어?"인 것만 봐도.



어떤 날

딸아이가 물었다.

"엄마, 근데 왜 그렇게 요가를 열심히 하는 거야?"

뭐라고 답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러는 거다.

"아니, 요가를 했으면 사람이 좀 차분해지고 그래야 하는 건데,

화내는 것도 똑같고!!!! 변한 게 없잖아?"



요가를 하면 차분해지는 거라는 말 따윈 한 적도 없는데,

아이가 이런 말을 하는 게 넘 웃겨서

좀 있다 다시 물어봤다.

"근데 요가해서 엄마가 변한 게 진짜 하나도 없어?"

고민하던 아이가 말한다.

"있어!"

"그게 뭔데?"

"음.................. 힘들어해!!!!!!!!!!"




하하하하;;;

벅찬 자세들을

아등바등 따라하면서

너무 힘들다고 외치던 나의 모습.

아이 눈엔

그게 엄마의 요가였나 보다.



마음의 평화 따위

엄만 바라지도 않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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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2-03-24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가 8개월이면.... 설마 이 페이퍼도 왼다리 목에 걸치시고 작성하신 겁니꽈??

마음을데려가는人 2022-03-24 23:39   좋아요 0 | URL
왼다리뿐이겠습니까!? ㅎㅎㅎ

잉크냄새 2022-03-25 13:36   좋아요 0 | URL
그럼,,,공중부양???

마음을데려가는人 2022-03-25 15:55   좋아요 0 | URL
모르죠~ 날아다니는지 ㅎㅎㅎ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심채경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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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이고 엄마이면서 비정규직 천문학자가 풀어내는 이야기는

다정하고 겸손하다.

아마 우주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그렇지 않을까.

미지로 가득한 거대한 우주에 비하면,

우린 너무 작고 보잘것없으니까.



뭔가 대단한 계기가 있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저자는 어쩌다 보니 천문학자의 길을 걷게 되었고,

어쩌다 보니 토성의 위성인 타이탄을 연구하게 되었고,

이제는 달을 들여다보고 있다고 한다.



과학에 대한 소양과 지지가 부족한 대한민국에서

묵묵히 우주의 신비를 연구해주는 분들이 계셔서

정말 다행이다. 



위성과 행성의 차이조차 명확하게 몰랐던 나는

내가 사는 지구와 그를 둘러싼 우주에 대해

너무 궁금해졌다.



나는 만약 우주에 갈 수 있다면 가지 않겠다는 쪽이었다.

우주는 너무 광대하고 나는 너무 작고,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는 곳에

나 홀로 남겨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너무 무섭고 막막할 것 같았다.



우주는, 밤하늘은

지구에서 상상하고 올려다보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그런데 저자의 글을 읽고 나니,

신비롭고 아름다운 우주를 한번쯤

내 눈으로 보는 것도

(기회가 된다면)

괜찮겠다 싶다.

거대한 행성들의 존재를

두 눈으로 보고싶어졌다. 



인간은 생각하는 별들의 먼지라는데,

생명 탄생의 기원이 되는

우주 속 천체들과

우주 속을 유영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도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일지도.





*


그런 사람들이 좋았다. 남들이 보기엔 저게 대체 뭘까 싶은 것에 즐겁게 몰두하는 사람들.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정치적 싸움을 만들어내지도 않을, 대단한 명예나 부가 따라오는 것도 아니요, 텔레비전이나 휴대전화처럼 보편적인 삶의 방식을 바꿔놓을 영향력을 지닌 것도 아닌 그런 일에 열정을 바치는 사람들. 신호가 도달하는 데만 수백 년 걸릴 곳에 하염없이 전파를 흘려보내며 온 우주에 과연 '우리뿐인가'를 깊이 생각하는 무해한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동경한다. 그리고 그들이 동경하는 하늘을, 자연을, 우주를 함께 동경한다. 

-13p


돌이겨 생각해보건대, 도중에 그만두지 못했던 것은 떠날 용기가 없어서였다. 그러나 남은 채 버텨내는 데도 역시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따. 떠난 이들은 남지 못한 게 아니라 남지 않기를 선택한 것이었고, 남은 이들은 떠나지 못한 게 아니라 떠나지 않기를 선택한 것이었다. 이제는 안다. 어느 쪽을 선택했든 묵묵히 그 길을 걸으면 된다는 것을. 파도에 이겨도 보고 져도 보는 경험이 나를 노련한 뱃사람으로 만들어주리라는 것을. 

-31p


거의 습관적으로 적은 그 알량한 축복에, 학생은 넘치게 고마워했다. 이제껏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해준 사람이 없었다고 했다. 

이 젊은 청춘에게, 그따위 싸구려 축복조차 해주는 '선생'한 자가 이때껏 없었다는 게 화가 났다. 넌 잘하고 있다고, 너만의 특질과 큰 가능성이 있다고, 네가 발을 떼기만 하면 앞뒤가 아니라 사방, 아니 만방으로 길은 열릴 것이라고 왜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가. 스무 살, 스물한 살은, 그런 이야기를 차고 넘치게 들어도 되는 나이다. 그런 청춘들이 '대졸자' 꼬리표 하나 달기 위해서 돈과 젊음을 들여 스스로 대학 안에 갇히는 기간, 사회의 틀을 맞추기 위해 스스로의 가능성을 기꺼이 가지치고 분재로 다듬어가는 기간, '멀쩡한 대학 나와서 왜 제대로 된 회사에 취직도 못하느냐'는 어른들의 질문을 향해 전진하는 그 기간이 나는 너무나 아깝다.

-62p


그러나 기초부터 차근차근 되짚어볼 기회는 쉬이 오지 않고, 그럴 시간도 만들기 어렵더군요. 하지만 대신 깨달은 건 있어요. 연습이 부족해서 생긴 빈틈은 그 원리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보는 것으로 메꿀 수 있다는 것. 우리가 구구단은 달달 외워도 인도학생처럼 19단까지 외우진 못하지만, 곱하기의 원리를 이해하고 있으니 계산해보면 19 곱하기 19까지 써내려갈 수 있듯이요. 괴로울 때는 '왜 그때 더 잘하지 못했을까' 하고 과거의 자신을 질책하게 되지만, 그땐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서 삶의 다른 면을 돌보고 있었잖아요.

-70p


나이가 지긋한 과학자에게 무언가에 대해 질문하면 모른다고 대답하는 경우가 많다. 알고는 있지만 설명하기가 어려울 때도 모른다고 하고,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을 때도 모른다고 한다. 확답을 잘하지 않고, 그럴 가능성이 높거나 낮다고만 한다. 우린 항상 잘 모른다. 자연은 늘 예외를 품고 있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사실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 그것만이 언제나 어디서나 진실이다. 

-95p


엄마가 일을 한다는 것. 이 짧은 문장 속에는 너무도 많은 한숨이 응어리져 있다.

-10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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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2-03-21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만 보고 천문학 서적인가 했는데, 가슴에 담고 싶은 문장들이 별처럼 꽉꽉 찬 밤하늘 이었네요.

마음을데려가는人 2022-03-21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을 울리는 글들이 많았어요~ 근데 제가 우주에 대해 아는 게 정말 없더라구요. 하하하. 잘 지내시죠?
 
데이비드 호크니의 인생
카트린 퀴세 지음, 권지현 옮김 / 미행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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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다섯 살에도 삶은 여전히 당신에게 선물을 안겨줄 수 있다.

즐겁게 지내려는 마음을 잃지 않고 도전하면 된다.

즐거움과 두려움의 비명을 용기 내어 지르고,

디즈니랜드를 사랑한다고 씩씩하게 말하고,

눈치 보지 않고 솜사탕을 먹고,

순간의 욕망을 따르고,

완성한 결고를 부수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놀고,

어른이라서 스스로 금지했던 일을 하라.

내면에 있는 어린아이와 연결을 끊지 마라."


-135p



겨울이 몇 주밖에 남지 않았다.

겨울에는 해가 여섯 시간만 떠 있으니 서둘러야 했다.

데이비드는 유독 겨울에 나무를 그리고 싶었다.

가지가 잎의 무게를 떠받치느라 인간이 결국 묻힐 땅으로

늘어지는 계절이 아니라 

가지가 살아있는 계절에 말이다.

겨울에는 가지가 자유롭고 가벼워져

하늘을 향하고 하늘과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았다.

겨울 나무보다 더 우아하고 자존감 있는 건 없다.


-19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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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1-10-05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 나이 관련된 글귀 하나에 밑줄을 그었거든요.좀 쌩뚱맞은 나이이긴 하지만...
˝길을 잘못 들어서는 사치도 스스로 허락하지 못한다면 스무 살일 자격이 없다고도 했다.˝ 주기율표- 프리모 레비

마음을데려가는人 2021-10-05 19:46   좋아요 0 | URL
ㅎㅎㅎ 결국 우리가 꽂힌 건 나이 때문이 아닌 것 같아요~ 삶에 대한 태도!! 그게 와닿았던 거죠
 


가을이다.

줄곧 외부로 향하던 관심이

나의 내부로 돌아오는 시간.



초록이들을 참 좋아하는데

늘 죽이기만 했던 난,

코로나로 인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어느덧 식물러버가 되었다.



작년에 산 몬스테라가

근 일년에 거쳐

새잎을 4개나 내주는 광경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조용히 느리게,

아무 움직임도 생명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들이

문득 돌아보면

훌쩍 성장해있는 모습에 매료됐다.



그간 내가 왜 식물을 죽였는지

확실히 알게 된 시간이기도 했다.



예전에는 사두기만 하고

나가서 노느라

옆에서 지켜볼 줄을 몰랐던 거다.

잠시잠깐 관심을 줬다가

마치 장식품처럼 그냥 두기만 했으니

어느날 갑자기 깨달았을 땐

이미 회생불가.



마침 내가 주로 앉아서 시간을 보내는 자리에서

잘 보이는 곳에 몇 가지 식물들이 있다.

무심히 일주일에 한 번씩 물을 갈아주고,

화분은 과습만 조심하면 된다고 해서

흙 상태에 맞게 물을 줬더니

아직까지 잘들 자라고 있다.



너무 많은 관심과

무관심 사이,

그 적정선이 중요하다.



다시 요가를 하고 있다.

4년 전쯤

아이를 신랑에게 맞기고

밤 열시 마지막 타임 요가를

열심히 하러 다녔던 적이 있었다.

그냥 여럿이서 함께 땀흘리며

호흡하는 그 시간이 참 좋았다.



당연히 올해는

바이러스로부터 서서히 해방될 줄 알고

뭔가 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웬걸? 작년보다 더 심하잖아?



홈트는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혼자서 하는 요가는 

함께하는 요가보다 힘은 더 들지만,

뭔가 묘하게 더 집중된다.

한 호흡 한 호흡

나의 흐름에 맞춰가는 시간이 좋다.



절대 변하지 않을 것들도,

돌아보면 변해있다.

나는 그간 보지 못했던

나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는 중이다.



코로나 덕분이고,

가을이라 더더욱 그렇다.



이 느린 호흡이

다시 바삐 돌아가는 세상과 합을 맞출 시간도 다가오겠지.

그렇게 돌고 도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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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1-10-04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절대 변하지 않을 것들도, 돌아보면 변해있다.˝ 뭔가 심쿵한 느낌인데요.
˝잊혀진 것들은 변하지 않고 고스란히 내 안에 남아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김연수 작가의 이 글귀가 요즘 맘에 콕 박히는 가을입니다요.

마음을데려가는人 2021-10-04 21:08   좋아요 0 | URL
그럴 수 있겠네요... 늘 그대로 거기에서 변함없이 있기에 자각조차 못하는 것들이.. 있을 수 있겠어요. 전 언젠가부터 변하지 않는 게 없다라는 생각이 자주 들어요. 같아 보이는데 미묘하게 달라지는 것들, 조금씩의 변화를 눈치 못 채다가 갑자기 변했구나 알게 되는 것들...
잉크냄새님 마음에 변하지 않고 남아있는 것들은 무엇인가요? :)
 


어제부터 내일까지 주어진 휴가.

어차피 오후는 

아이 픽업 때문에

나를 위해 쓸 시간이 많진 않지만,

오전만큼은

평소에 잘 하지 못하는 것을 해보고 싶었다.








앨리스 달튼 브라운.

바다 풍경을 뒤로 한 채

하얗고 투명한 커튼이 넘실대는

창문 그림이 왠지 힐링이 될 것 같은 생각에

오늘 삼성역으로 향했다.



사실 나는

실제와 똑같이 그리는 그림에 대해 

약간 편견을 갖고 있었다.

어차피 똑같이 그릴 거라면

사진이 낫지 않아?

뭐 이런 생각.



그런데 오늘 앨리스 달튼의 그림을 보는데,

눈앞에 바다가 펼쳐지고,

어디선가 산들바람이 불어오고,

오후 창가로 스며든

빛의 나른함에 도취되는 것을 느끼며.

아, 똑같은 풍경일지라도

누군가의 손을 거쳐

완성되는 그림이란,

화가의 느낌과 기분과 분위기 같은 것이

녹아있는 거구나.

사진이랑은 완전 다른 거구나.

얼핏 알 것 같았다.






그녀의 그림은

빛을 좇는다.

여름 바람이라는 연작의 결과물들은

우리가 휴가를 떠나

막 숙소에 도착해

커튼을 촤르륵 열었을 때 보고싶은

딱 그런 느낌의 풍경이다.

밖은 뜨거운 열기로 일렁거리지만,

바다는 눈부시게 반짝거리고

저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제법 시원하다.

눈이 푸르고 푸르다 못해 눈부시다.



그런데 막상,

그런 풍경은 어디론가 떠나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전시회를 보고 나오는데

길가의 가로수 잎사귀가

바람에 흔들리며 무수히 많은 빛들이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그 반짝임에는

빛에 가려진 그림자도 함께했다.

미처 발견하지 못했을 뿐.





앨리스 달튼의 전시회를 계기로

일상에서 좀더 많은 빛을 발견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청명한 가을이라 더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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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1-09-22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사진속의 풍경이 그림이라니....이렇게 눈부신데

마음을데려가는人 2021-09-26 23:54   좋아요 0 | URL
그쵸? 저도 첨엔 사진인 줄 알았어요. 굿즈가 저 섬세함을 못 담아서... 못 산 게 아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