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심채경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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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이고 엄마이면서 비정규직 천문학자가 풀어내는 이야기는

다정하고 겸손하다.

아마 우주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그렇지 않을까.

미지로 가득한 거대한 우주에 비하면,

우린 너무 작고 보잘것없으니까.



뭔가 대단한 계기가 있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저자는 어쩌다 보니 천문학자의 길을 걷게 되었고,

어쩌다 보니 토성의 위성인 타이탄을 연구하게 되었고,

이제는 달을 들여다보고 있다고 한다.



과학에 대한 소양과 지지가 부족한 대한민국에서

묵묵히 우주의 신비를 연구해주는 분들이 계셔서

정말 다행이다. 



위성과 행성의 차이조차 명확하게 몰랐던 나는

내가 사는 지구와 그를 둘러싼 우주에 대해

너무 궁금해졌다.



나는 만약 우주에 갈 수 있다면 가지 않겠다는 쪽이었다.

우주는 너무 광대하고 나는 너무 작고,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는 곳에

나 홀로 남겨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너무 무섭고 막막할 것 같았다.



우주는, 밤하늘은

지구에서 상상하고 올려다보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그런데 저자의 글을 읽고 나니,

신비롭고 아름다운 우주를 한번쯤

내 눈으로 보는 것도

(기회가 된다면)

괜찮겠다 싶다.

거대한 행성들의 존재를

두 눈으로 보고싶어졌다. 



인간은 생각하는 별들의 먼지라는데,

생명 탄생의 기원이 되는

우주 속 천체들과

우주 속을 유영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도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일지도.





*


그런 사람들이 좋았다. 남들이 보기엔 저게 대체 뭘까 싶은 것에 즐겁게 몰두하는 사람들.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정치적 싸움을 만들어내지도 않을, 대단한 명예나 부가 따라오는 것도 아니요, 텔레비전이나 휴대전화처럼 보편적인 삶의 방식을 바꿔놓을 영향력을 지닌 것도 아닌 그런 일에 열정을 바치는 사람들. 신호가 도달하는 데만 수백 년 걸릴 곳에 하염없이 전파를 흘려보내며 온 우주에 과연 '우리뿐인가'를 깊이 생각하는 무해한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동경한다. 그리고 그들이 동경하는 하늘을, 자연을, 우주를 함께 동경한다. 

-13p


돌이겨 생각해보건대, 도중에 그만두지 못했던 것은 떠날 용기가 없어서였다. 그러나 남은 채 버텨내는 데도 역시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따. 떠난 이들은 남지 못한 게 아니라 남지 않기를 선택한 것이었고, 남은 이들은 떠나지 못한 게 아니라 떠나지 않기를 선택한 것이었다. 이제는 안다. 어느 쪽을 선택했든 묵묵히 그 길을 걸으면 된다는 것을. 파도에 이겨도 보고 져도 보는 경험이 나를 노련한 뱃사람으로 만들어주리라는 것을. 

-31p


거의 습관적으로 적은 그 알량한 축복에, 학생은 넘치게 고마워했다. 이제껏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해준 사람이 없었다고 했다. 

이 젊은 청춘에게, 그따위 싸구려 축복조차 해주는 '선생'한 자가 이때껏 없었다는 게 화가 났다. 넌 잘하고 있다고, 너만의 특질과 큰 가능성이 있다고, 네가 발을 떼기만 하면 앞뒤가 아니라 사방, 아니 만방으로 길은 열릴 것이라고 왜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가. 스무 살, 스물한 살은, 그런 이야기를 차고 넘치게 들어도 되는 나이다. 그런 청춘들이 '대졸자' 꼬리표 하나 달기 위해서 돈과 젊음을 들여 스스로 대학 안에 갇히는 기간, 사회의 틀을 맞추기 위해 스스로의 가능성을 기꺼이 가지치고 분재로 다듬어가는 기간, '멀쩡한 대학 나와서 왜 제대로 된 회사에 취직도 못하느냐'는 어른들의 질문을 향해 전진하는 그 기간이 나는 너무나 아깝다.

-62p


그러나 기초부터 차근차근 되짚어볼 기회는 쉬이 오지 않고, 그럴 시간도 만들기 어렵더군요. 하지만 대신 깨달은 건 있어요. 연습이 부족해서 생긴 빈틈은 그 원리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보는 것으로 메꿀 수 있다는 것. 우리가 구구단은 달달 외워도 인도학생처럼 19단까지 외우진 못하지만, 곱하기의 원리를 이해하고 있으니 계산해보면 19 곱하기 19까지 써내려갈 수 있듯이요. 괴로울 때는 '왜 그때 더 잘하지 못했을까' 하고 과거의 자신을 질책하게 되지만, 그땐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서 삶의 다른 면을 돌보고 있었잖아요.

-70p


나이가 지긋한 과학자에게 무언가에 대해 질문하면 모른다고 대답하는 경우가 많다. 알고는 있지만 설명하기가 어려울 때도 모른다고 하고,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을 때도 모른다고 한다. 확답을 잘하지 않고, 그럴 가능성이 높거나 낮다고만 한다. 우린 항상 잘 모른다. 자연은 늘 예외를 품고 있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사실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 그것만이 언제나 어디서나 진실이다. 

-95p


엄마가 일을 한다는 것. 이 짧은 문장 속에는 너무도 많은 한숨이 응어리져 있다.

-10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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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2-03-21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만 보고 천문학 서적인가 했는데, 가슴에 담고 싶은 문장들이 별처럼 꽉꽉 찬 밤하늘 이었네요.

마음을데려가는人 2022-03-21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을 울리는 글들이 많았어요~ 근데 제가 우주에 대해 아는 게 정말 없더라구요. 하하하. 잘 지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