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웃고 있고 나조차도 배를 부여잡고 낄낄거리는데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공감하며 진지한 이야기가 오고갈 것이라 믿었던 모임에는 가벼운 웃음만이 가득했다. 한 명이 너스레를 떨며 좌중을 웃기기에 바빴고 우리는 청중이 되어 맞장구를 치거나 목놓아 웃거나 했다.

 

나는 대화가 하고 싶었는데.

난 이러이러해서 저러저러하게 느꼈어.

난 이러저러한 경우라서 그 점이 어땠어.

그런 상황에서 그렇게 하다니 대단해, 멋져!

그때는 참 속상했겠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오게 된 게 감사해.

등등

 

이렇게 마음을 어루만지는 대화를 나눠보고 싶었는데, 나는. 무엇이 불편한가 생각해보았더니 나는 이런 흐름을 '소통'이라기보단 '일방통행'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누가 주인공이 되어 좌중을 들었다가 놨다가 하는 수동적인 관계보다는 무언가를 열심히 주고 받는 사이가 되고 싶다. 공감하고 이해받고 위로받고 싶고, 누군가에게도 내가 할 수 있는 한의 칭찬과 지지를 보내고 싶다. give and take가 가능한 대화, 활발히 에너지를 주고받는 모임. 그런 관계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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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2-12-13 1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이어요, 마음님.
저도 기브앤테이크가 가능한 그런 관계가 제게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어색하지 않고, 서로 상호적으로 소통이 원활하고, 그러면서도 서로를 잘 알고, 위로하고, 어루만지는 그런 관계요. 둘 중 누구 하나가 진지하게 대한다면 가능한 관계인데요.

마음을데려가는人 2012-12-13 21:08   좋아요 0 | URL
소이진님은 여전히 창작욕을 불태우며 청춘답게 뷜랑뷜랑하시죵?:)
어쩌면 남자들이 그런 관계를 더 어려워하는지도 모르겠어요.
남자는 기본적으로 사회생활을 하며 갖는 경쟁욕이 있어서인지
친한 친구들을 만나도 속내를 잘 터놓지 않는 것 같더라구요.
소이진님은 말랑말랑한 감성을 갖고 있으니까 충분히 그런 관계들이 유지될 수 있을 거예요 :)
 

 

아무 이유 없이 갑자기. 멀뚱멀뚱해지더니 아이쿠야 오늘은 잠이 안 오겠는 걸 했을 땐 벌써 새벽 두 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나에게도 가끔 '겨울의 불면증'이 찾아오곤 한다. 많은 시간을 뒤척이고 나서야 하루에 써야 할 에너지를 충분히 쓰지 못했을 때 잠이 오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어제는 충분히 바쁘고 열정적으로 보낸 하루였다. 열두 시가 되기 전부터 몽롱한 잠의 세계가 이리 오라 손짓해도 모자랄 판국에 나는 낮보다 더 쌩쌩해지고 있었으니 참 요상한 일이었다.

 

이동욱이 <강심장>에서 오연수와의 베드신에 대해 얘기하는 걸 들으며 맞아, 그런 드라마가 있었어. 쓸쓸하고 가슴 아픈... 아, 근데 결말이 어땠더라? 기억을 더듬더듬하다가 어차피 잠도 오지 않는 밤. 출근 걱정을 해야 할 직장인도 아닌데 <달콤한 인생>이나 보자 싶어서 1,2회를 시청했다.

 

오연수의 깔끔하고 단아한 아름다움도 아름다움이지만, 이동욱 같이 귀티 나게 새하얀 남자가 '상남자의 매력'을 마구 발산하는 걸 보면서 저런 남자가 얼씬거리면 꼼짝 없이 넘어가겠구나, 싶었다. 북해도의 새하얀 풍경과 두 남여의 외로움과 분노와 상처가 맞부딪치는 장면들이 참 잘 어울렸다. 화면으로만 봐도 온몸이 오들오들 떨릴 정도로 추운 그곳, 눈의 도시에  불꽃이 피어올랐다. 새파란 밤하늘 위로 팡팡 터지는 불꽃들이 나를 감상에 젖게 했다.

 

일본에서 마지막으로 본 불꽃놀이가 생각났다. 우리 집에서 서너 정거장쯤 떨어진 곳에 토다공원이라는 곳이 있었는데 그곳은 매해 큰 불꽃놀이가 열리는 곳으로 유명했다. 나도 신랑이랑 한번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미리 자리를 맡으러 가면서 아, 이 근방에 사는 사람들은 참 좋겠다. 그냥 집에서 볼 수 있잖아, 하면서 부러워하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그 다음해 퇴근하는 신랑을 기다리며 저녁준비를 하다가 어디선가 '피융, 팡팡' 하는 소리가 들리길래 베란다로 나갔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 토다공원의 불꽃놀이가 우리집 베란다에서도 보이는 게 아닌가! 늘 북적이는 사람들 속에 섞여서 바라보던 불꽃놀이가, 자그마한 집들 사이로 피어오르는 장면은 참으로 묘한 것이었다. 사방은 조용하고, 불꽃만이 비현실적으로 반짝거린다.

 

신랑이 집에 오자마자 야끼우동으로 대충 끼니를 때우고 카메라를 들고 우리는 불꽃이 터지는 곳을 목표로 걷.기.시.작.했.다. 집들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불꽃이란 참 매력적이고도 요상한 것이어서 조금만 걸으면 그곳에 닿을 듯한 착각이 들었다. 뛰거나 걸으며 불꽃놀이가 잘 보이는 위치에 자리잡고 앉아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과 마주치곤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뿐, 오직 불꽃만을 쳐다보며 앞으로 전진하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는 듯했다. 참, 이상하지. 나는 이 세상에 오로지 검푸른 어둠과 집과 불꽃만이 존재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숨박꼭질하듯 보였다 숨었다 하는 불꽃을 쫓아 이제 거의 닿았으리라 생각했을 무렵, 불꽃놀이는 끝이 났다. 아름다운 너울거림은 사라지고 거대한 사람들의 물결이 내 쪽을 향했다. 아쉬운데, 심장이 펄떡거렸다. 아마 우리가 닿을 때까지도 불꽃놀이가 계속되고 있었다면 시시했을 것이다. 정적 가운데 아름답게 피어오르던 나만의 불꽃은 번잡스럽고 시끄러운 '보통의 불꽃놀이'로 전락해버렸겠지.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맘만 먹으면 불꽃놀이를 감상할 수 있었는데, 마음이 끌리지가 않았다. 나만 아는 어떤 비밀스러운 풍경이 퇴색될까봐 두려웠을까. 아직은 불꽃놀이를 떠올리면 언제라도 그 풍경이었으면 좋겠다. 나의 일상 속 자그마한 판타지로 남아 있어 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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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2-11-01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꽃놀이가 일본어로 하나비, 였나요. 하나비, 하는 어감이 참 좋아서 기억하고 있네요. 저는 어릴 적 아파드 뒷단지(?)에서 자그마하게 불꽃놀이를 하다가 불을 낼뻔한 일이 있어서 조금은 무섭기도 해요. 잔디밭에 모조리 불이 붙었었는데, 어떻게 껐는지는 생각이 나질 않아요.
오랜만에 불꽃놀이 보고 싶은 걸요~ 날씨 추워지는데 몸조심 하셔요 ㅎ

마음을데려가는人 2012-11-12 18:21   좋아요 0 | URL
네, 하나비 맞아요 :)
잔디밭을 홀라당 태울 뻔한 하나비도, 귀엽네요.
제가 요새 정신을 딴 데 팔고 있어서
이렇게 늦게 댓글 답니다. ㅎㅎㅎ
소이진 님도 추위조심, 감기조심!!!!
 

 

1.

나도 왕따를 당해본 적이 있다. 중3 때 같이 놀던 무리가 있었는데 새로 전학을 온 아이가 우리 무리에 끼게 되었다.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뺀다고, 그 아인 내가 뭐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아이들을 사주(?)해서 나와 말을 섞지도 눈을 마주치지도 못하게 했다. 소풍 날이던가,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기다려도 기다려도 오지 않던 친구들. 나는 당황했고 억울했고, 무엇보다 도대체 '무엇이' 원인이지 알고 싶었다. 수없이 쪽지를 보냈지만 돌아오는 건 묵묵부답뿐이었다.

 

나는 내 옆자리, 앞자리에 앉은 친구들과 너스레를 떨며 지냈지만, 체육시간에는 늘 혼자 운동장으로 향했다. 지금 같았으면 "나도 껴줘!"라고 말할 수 있었겠지만 그때 나에게 남은 건 누구에게도 먼저 손을 내밀지 않겠다는 자존심뿐이었다. 어리고 서투른 나에겐 그것이 최선이었다.

 

가면을 쓰고 굳은 얼굴 근육을 애써 움직이며 웃다가 돌아오면 나는 검정 싸인펜을 들고 엉엉 울면서 일기를 썼다. 검정 싸인펜은 마구 휘갈겨도 글이 부드럽게 잘 써졌다. 눈물로 얼룩진 노트를 보면서 또 꾹꾹 참았던 눈물이 터지곤 했던 날들.

 

그럭저럭 잘 버티다가 졸업할 때즈음, 나는 주동자를 뺀 나머지 친구들에게 전부 편지를 받았다. 미안했다고, 나는 글을 잘 쓰는 네가, 책 읽는 어른스러운 너에게 질투가 났다고도 써 있었다. 나는 기뻤다. 더는 회복할 수 없는 우정이었지만, 그래도 나는 내가 나인 것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2.

대학교에 들어가 인터넷이란 걸 접하고 '다음'이라는 사이트에서 친구를 찾는 게 엄청 유행했던 때가 있었다. 지금이나 그때나 나는 과거를 돌아보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느 날 메일이 한 통 왔다. 중학교 친구 C로부터였다.

 

약간 처진 눈망울을 하고 있던 착한 C와 나는 아주 친한 사이였다. 하지만 따돌림이 시작된 후 나의 연달은 쪽지 공세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은 건 C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같이 친하게 지내던 다른 반 친구가 아무리 C를 설득해도 C는 하룻밤 사이에 돌이 된 여인처럼 고집스럽게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 그 C가 메일을 보낸 것이다. 졸업을 하고도 늘 그 일이 자기를 따라다녔다고 했다. 그래서 그 일을 잊고 싶어서 부산으로 전학을 가서 살았는데, 그래도 아직도 마음에 남아서 이렇게 친구 찾기를 해서 너의 메일주소를 알았다고. 그때 정말 미안했다고, 그리고 너를 정말 좋아했다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나는 충분히 괜찮았다. 미안하다는 편지를 받고 용서한 지가 오래이며, 나는 그때 우리가 어리고 용기가 없었다는 것을 안다. 너 역시 가해자이며 피해자였다는 걸 아는데, 나는 이제 웃으면서 왕따를 당한 적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데, 너는 그토록 오랫동안 자책하면서 살았구나. 여리고 여린 너는 얼마나 너 자신을 미워하며 살았니.

 

 

3.

가끔 왕따를 다룬 드라마나 소설을 보면 나는 C가 생각이 나서 마음이 아프다. 그때는 어쩔 수 없이 휩쓸려서 했던 일이 나중에 얼마나 큰 상처로 남을지, 지금 아무 생각 없이 누군가를 따돌리고 있는 아이는 알까. 친구를 향했던 미움과 두려움이 이번에는 자신을 괴롭힐 수도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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싹둑싹둑 잘려가는 머리카락에

마음이 철렁, 하면서도 묘한 쾌감 같은 게 느껴졌다.

이상할까봐 걱정되는 마음 반,

이제껏 보지 못한 나의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될 거라는 기대감 반.

그것은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은 설레임.

 

숏컷을 한번 해봐야지 맘 먹은 게 벌써 몇 년 전.

난 안 어울릴 거야. 그냥 짧은 단발로 할까.

수많은 고민과 생각의 시간들을 거쳐

정작 결심하고

미용실을 찾아가고

머리를 자르는 데는 두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어색해서 어쩔 줄을 모르겠으면서도

괜히 기분이 좋았다.

오랜 숙원사업을 푼 것 같아서

속이 후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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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2-10-22 1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숏컷으로 자르셨나요. 흔히들 그러잖아요. 머리 자르는 건 심경의 변화가 생겼을 때 하는 거라고. 안 좋은 일 없이 무사히 지내셨죠~?

마음을데려가는人 2012-10-23 14:49   좋아요 0 | URL
그냥 한번 과감해져보고 싶어서요 :)
 

 

*

가을볕은 봄볕과는 다르다.

서른 넘게 살면서 처음 알았다.

아침에 창으로 스미는 햇살이 그렇게 눈부실 수가 없더니

가을이 되니 어스름하게 부끄러운 새색시처럼 어른어른하다.

해가 점점 짧아지는 거야 당연하게 알고 있었지만

빛의 투명도와 강약과 빛깔이 저리도 다르다니.

 

 

내가 늘 똑같이 반복되고 있다고 믿어왔던 사계절과 일상도,

실은 그렇게 조금씩 다른 강약을 주며 존재하는지도 모르겠다.

 

 

똑같다.고 말하기 전에.

눈 한 번 크게 뜨고.

사물을 바라보는 연습.

다시. 하면서.

설레고 싶은.

가을.

 

 

시리도록 푸른 가을 하늘.

요. 문장을. 대신할. 수 있는.

말을. 한번. 찾아보고. 싶은.

아름다운.

나의.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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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2-10-19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입니다, 마음님!

마음을데려가는人 2012-10-22 12:24   좋아요 0 | URL
어이쿠, 청년이 되어 나타나셨네요. :)

이진 2012-10-22 19:35   좋아요 0 | URL
청년이라니요. 아직 어린 꼬맹이입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