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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발 짚은 지 18일째. 결국 깁스는 못하고 이 상태로 회복을 기다리기로 했다. 지난주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보호대를 줄 테니 조금씩 발을 딛어보라고 한다. 아직 통증이 있는데... 상처부위가 약간 더 찢어졌다고 하는데 발을 딛어봐도 되는 건가? 그러다가 더 오래 가면 어쩌지? 이 많은 의문과 생각들은 발화되지 않고 내 안에 남았다. 늘 느끼는 거지만 병원에만 가면 바보가 되는지, 정리가 되지 않은 말들은 의문으로 남는다.


어쨌든 해보라니까 어찌어찌 발을 딛어보려고 하는데 겁이 난다. 찌릿한 통증이 올까봐 무섭고, 자칫 잘못 하다가 상처가 더 커지지는 않을까 두렵다. 몇십년 넘게 걸어왔는데 2주가 조금 넘는 시간에 걷기를 무서워하게 될 줄이야. 어처구니가 없다.


<모래의 여자>를 읽었다. 곤충채집을 하러간 남자가 사구 속 구멍집에 감금돼 모래를 퍼내야 하는 상황이 됐다. 호시탐탐 탈출을 시도하던 남자가 한 번 탈출했다가 잡혀오고 나서는 나갈 수도 있는 상황에서 굳이 나갈 시도를 하지 않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도무지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은 삶도 반복된 패턴 속에서 어느 정도 안정을 이룬다. 한번 만들어진 궤도를 쳇바퀴 돌 듯 도는 인생. 사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던 비슷하다면 비슷하다. 내가 지금 있는 곳이 내 삶이다. 비현실적으로 보였던 그들의 삶이 그의 삶이 되었던 건 어떤 순간이었을까.


나중이 되면 다친 발을 못 디뎌서 쩔쩔 매는 지금이 우습게 느껴지겠지만, 당장은 찌릿하는 1초의 순간이 너무 무섭다. 어서 한 걸음 한 걸음에 적응돼 걷는 일이 우스워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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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27 11: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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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27 14: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신기한 일이다. 별일이 없어도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나인데. 밖에 나가고 싶다, 답답하다, 이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첫날 목발을 짚어보고는 아, 밖에 나가는 건 무리다라고 결론 짓고 집안에만 있어야지 했는데 그 명확한 한계가 마음을 밖으로 끌고 가지 않는 선이 되었다. 이런 마음이라면 감옥도 견딜 만할까.


오랜 불안, 뭘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는 방황의 마음. 이것들은 어디서 왔는가. 오은영 선생님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아이들에게 너무 많은 선택권과 경계없음은 오히려 불안을 촉진한다는 걸 알았다. 부모는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명확하게 가르쳐야 한다. 너무 많은 자유도 너무 많은 통제도 좋지 않다. 나는 엄마의 방목 아래서 컸다. 모든 것은 내 선택과 의지로 이뤄졌지만 명확한 바운더리가 없던 아이는 혼란스럽고 두렵고 불안했다. 가끔 망망대해에 서있는 것 같은 기분은 그래서였을까.


늘 이것도 저것도 다 하고 싶어서 둘다 얻지 못했던 나인데, 밖이 아니라 안을 선택하자 밖의 하늘과 푸르름과 바람과 적당히 기분 좋은 소음들이 크게 그립지 않다. 밖을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럽다. 이 발견은 정말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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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07 13: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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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07 15: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잉크냄새 2022-06-07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활의 재발견이군요. 문득 소소한 일상이 눈부신 그런 날도 있죠.

마음을데려가는人 2022-06-08 13:43   좋아요 0 | URL
되게 새로웠어요 :)
 

너무도 황당한 일로 오른쪽 종아리 근육이 파열되었다. 발뒷꿈치가 바닥에 닿지 않아서 아직 깁스가 안 된다길래, 목발 짚으면 뭐 다닐 만하겠지 싶었는데.... 목발을 짚고 걷는다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이었구나! 양손이 목발에 묶여있기 때문에 뭔가를 옮길 수 없고, 목적지에 다다르면 목발을 어딘가에 두어야 하기 때문에 계산하고 움직이지 않으면 여러 번 왔다갔다 해야 한다. 무엇보다 무거운 내 몸을 목발에 의지하고 걷는 것조차 힘에 부친다. 


오로지 서있기 위해서 에너지의 70%를 쓴다는 펭귄이 된 기분이다. 여기에서 저기로 가기 위해 이것을 저쪽으로 옮기기 위해 에너지의 70% 이상을 쓴다. 별로 움직이지도 못하는데 밤이 되면 녹초가 된다. 


뭐든 실이 있으면 득도 있는 법. 사소한 것들을 포기하게 되었다. 다소 깔끔쟁이인 편이라 하루에도 두세 번씩 청소기 돌리고, 설거지는 밥 먹고 나면 바로, 밥을 먹는 곳이자 이것저것 많은 일을 처리하는 식탁은 늘 잡다한 물건이 놓이지 않도록 신경써왔는데...


우리집에서 이런 걸 신경쓰는 사람은 나밖에 없구나! 아이는 머리끈과 패드를 식탁에 올려놓고 하루가 지났는데도 그대로. 신랑이 아침에 마신 커피 테이크아웃컵은 반나절이 지나도록 그대로다. 바닥 여기저기에 흘린 머리카락을 보면 얼른 고개를 돌려버린다. 다 할 수 없다. 안 된다. 그냥 두자. 청소해라, 뭐해라 말하는 것도 한두 번이고. 그냥 둔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 뭐, 이것도 괜찮다.


당분간 사소한 일에는 눈감고 지내보자. 아무일도 없다. 아무일도. 펭귄처럼 쓰러지지 않도록 조심하자.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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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2-05-31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육 파열이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리겠네요.
사소한 일 소소하게 흘려보내시며 어여 쾌차하시길 바랍니다.

마음을데려가는人 2022-06-01 20:49   좋아요 0 | URL
초기라 3주 정도 걸린다는데 시간이 더딘듯 빠르네요~ 사소한 것들 내려놓기 연습 중입니다 :)
 



폭우씨.

여름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리면

전 당신을 기다립니다.

당신이 천둥씨를 앞세워

곧 올 것 같은 조짐이 보이면

전 마음이 설레요.

당신의 존재감에

압도당하는 그 순간이

너무 기다려집니다.

어제가 오늘 같고 내일도 오늘 같을

별다를 것 없는 일상에

당신이 스며들면

이리저리 방황하던

마음은 당신에게 오롯이 향합니다.

눈을 뗄 수가 없어요.

당신의 거대한 존재감에

전 제가 얼마나 하찮은 인간인지를

다시금 깨닫습니다.

그래요, 

하찮은 제 존재 그대로 가만히 있어도

될 것 같은

마음이 듭니다.

저 거대한 폭우씨 앞에서는

너도 나도

도긴개긴이다.

뭘 그리 아등바등하니?

바람아 불어라,

천둥아 쳐라.

우리 모두

폭우씨 앞에서는

별볼일없는 인간이다!

다 똑같아.

그러니 폭우씨가 온 순간만큼

우리,

인간세계의 온갖 고민과 고통은

다 내려놓자.

뭐 이런 기분이랄까요.

오늘 너무도 잠시 왔다간 폭우씨.

또 언제 오시렵니까?

커피 한 잔 타놓고

오래도록 보고싶은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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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2-05-18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폭우씨가 간만 보고 떠난 바람에 물뿌리개 들고 화단을 다섯번이나 왔다갔다 하고 말았죠.

마음을데려가는人 2022-05-19 09:21   좋아요 0 | URL
잉크냄새님 화단에 식물 키우는 남자였군요!!! 어젠 바로 가버려서 너무 아쉬웠어요 :(
 



집앞 상하수도관 공사의 소음이 버거워서

아이를 등교시키자마자 공원을 한바퀴 돌고

단골 카페로 향했다.



작지만 커피가 아주 맛있는 곳.

오늘은 사장님이 아닌

알바생이 있었는데,

알바생을 보자마자마

'아, 오늘은 커피맛이 덜하려나.'

싶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초심자의 정성이 있으니

더 맛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기대감도 생겼다.




처음 일이 서툴때는

하나하나에

공을 들이고 애쓰다가

익숙해지면

기계적으로

매뉴얼 따르듯

해버렸던 경험은 나에게도 있으니까.




커피를 주문할 때

물 한잔도 부탁했는데,

알바생은

서툰 라떼 아트와 

따뜻한 물 한 잔을 가져다주며,

"아... 제가 일을 배우는 중이라

라떼아트는 실패했지만...

맛있게 드셔주세요"라고 했다.



풋, 웃음이 나왔다.

굳이 하지 되지 않아도 될 말로

자신을 설명하고

이해받고 싶은 마음이

나랑 똑같았으니까.



나는 늘 설명이 길다.

단조로운 문장 하나로

나를, 내 마음을 설명하기엔

너무도 부족해 보였으니까. 



이 계절 따뜻한 음료를 시키며

물을 달라고 할 때는

시원한 물을 원하는 것인데,

따뜻한 커피를 시켰으니

물도 따뜻한 걸 원할 거라 생각해

따뜻한 물을 준 것도 귀여웠다.



나름의 배려.

내가 원하는 것과 달랐다 해도

그 마음과 세심함이 예뻤다.




어쩌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는 사람은,

그럼으로써 자신을 온전히

증명하고 설명하고 싶은 사람은

상대에 대해 더 많이 신경쓰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단순하고 명확한 말 속에

자신을 넣을 수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미처 하지 못한 말까지

신경쓰고 이해하긴 힘들지 않을까. 




불필요한 설명을 덧붙이는 사람은

연약한 마음 안에

타인에 대한 이해를 품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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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2-05-13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커피도 따뜻하고 물도 따뜻하고 그걸 바라보는 시선도 따뜻하고 그 나름의 배려도 따뜻하고,,,,요즘 난데없이 서늘했는데 좀 따스해졌어요.

마음을데려가는人 2022-05-15 13:19   좋아요 0 | URL
잉크님의 시선도 따뜻하고요^^ 5월이 맞나 싶은 날씨에요.. 이전과 다른 계절감각이라 시간이 더 빨리 가는 듯한 착각에 빠져요. 가을인가 싶거든요

2022-05-15 13: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5-17 14:0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