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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 설자은 시리즈 1
정세랑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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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작가님이 역사를 전공한 걸로 아는데 기대가 컸었는지...미스터리치고는 너무 감상적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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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큼 가까이 - 제7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
정세랑 지음 / 창비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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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망가진 채 살아가도 괜찮지 않을까.


새벽 다섯시쯤 눈이 떠져서 마침 읽고 있던 이 책을 마저 읽고

다시 잠을 청하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성장소설을 퍽이나 좋아했었는데,

치유나 화해와 성숙함 같은 것들이 버무려진 그런

성장 이야기가 좋았었는데

망가졌다면 망가진 채로 구멍이 숭숭 뚫린 채

살아가는 삶도 괜찮지 않을까

왠지 이 책을 읽고 나선 그런 생각이 들었다.


큰 사건이 아니어도

인간은 조금씩 망가진 부분을 가지고 살아가니까,

망가지지 않아도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부분은 누구나 있는 거니까,

그 구멍 사이로 사람들이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하며 흔적을 남기는 게

삶인 거 아닐까.


정세랑답게 유쾌한데,

정세랑답지 않게 조금 쓸쓸한 소설.



.................................................................................................................................




정말로 놀라운 건, 종종 내 친구들과 똑같은 얼굴의 아이들과 마주친다는 것이다.

친척도 아니고 아무도 아니다.

아무 관계도 없이 그렇게나 똑같은 얼굴로 태어난다.

누군가 이 세계에 우리와 똑같은 얼굴들을 계속 채워넣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두려운 것은 그 똑같은 얼굴 뒤의 거의 다르지 않을 이야기들이다.

우리는 유일하지도 않으며 소중하지도 않으며 끊임없이 대체된다. 

모두가 그 사실에 치를 떨면서.

-105p


"내 생각에, 인간은 잘못 설계된 것 같아."

주연이가 말했을 때 아무도 '왜 또?" 하고 반문하지 않았다.

"소중한 걸 끊임없이 잃을 수밖에 없는데, 사랑했던 사람들이 계속 죽어나갈 수밖에 없는데, 그걸 이겨내도록 설계되지 않았어."

-192p


있는 듯 없는 듯 살다 간 사람, 있다가 없어진 사람, 있어도 없어도 좋을 사람,

없어도 있는 것 같은 사람, 있다가 없다가 하는 사람, 있어줬으면 하는 사람,

없어졌으면 하는 사람, 없느니만도 못한 사람, 있을 땐 있는 사람,

없는 줄 알았는데 있었던 사람, 모든 곳에 있었던 사람, 아무 데도 없었던 사람,

있는 동시에 없는 사람, 오로지 있는 사람, 도무지 없는 사람, 있다는 걸 확인시켜주는 사람,

없다는 걸 확인시켜주지 않는 사람, 있어야 할 데 없는 사람, 엇어야 할 데 있는 사람......

우리는 언제고 그중 하나, 혹은 둘에 해당되었다.

-25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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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3-06-05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괜찮아 라는 말은 참 위로가 되네요. 아파해도 괜찮아, 망가져도 괜찮아...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심채경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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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이고 엄마이면서 비정규직 천문학자가 풀어내는 이야기는

다정하고 겸손하다.

아마 우주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그렇지 않을까.

미지로 가득한 거대한 우주에 비하면,

우린 너무 작고 보잘것없으니까.



뭔가 대단한 계기가 있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저자는 어쩌다 보니 천문학자의 길을 걷게 되었고,

어쩌다 보니 토성의 위성인 타이탄을 연구하게 되었고,

이제는 달을 들여다보고 있다고 한다.



과학에 대한 소양과 지지가 부족한 대한민국에서

묵묵히 우주의 신비를 연구해주는 분들이 계셔서

정말 다행이다. 



위성과 행성의 차이조차 명확하게 몰랐던 나는

내가 사는 지구와 그를 둘러싼 우주에 대해

너무 궁금해졌다.



나는 만약 우주에 갈 수 있다면 가지 않겠다는 쪽이었다.

우주는 너무 광대하고 나는 너무 작고,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는 곳에

나 홀로 남겨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너무 무섭고 막막할 것 같았다.



우주는, 밤하늘은

지구에서 상상하고 올려다보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그런데 저자의 글을 읽고 나니,

신비롭고 아름다운 우주를 한번쯤

내 눈으로 보는 것도

(기회가 된다면)

괜찮겠다 싶다.

거대한 행성들의 존재를

두 눈으로 보고싶어졌다. 



인간은 생각하는 별들의 먼지라는데,

생명 탄생의 기원이 되는

우주 속 천체들과

우주 속을 유영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도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일지도.





*


그런 사람들이 좋았다. 남들이 보기엔 저게 대체 뭘까 싶은 것에 즐겁게 몰두하는 사람들.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정치적 싸움을 만들어내지도 않을, 대단한 명예나 부가 따라오는 것도 아니요, 텔레비전이나 휴대전화처럼 보편적인 삶의 방식을 바꿔놓을 영향력을 지닌 것도 아닌 그런 일에 열정을 바치는 사람들. 신호가 도달하는 데만 수백 년 걸릴 곳에 하염없이 전파를 흘려보내며 온 우주에 과연 '우리뿐인가'를 깊이 생각하는 무해한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동경한다. 그리고 그들이 동경하는 하늘을, 자연을, 우주를 함께 동경한다. 

-13p


돌이겨 생각해보건대, 도중에 그만두지 못했던 것은 떠날 용기가 없어서였다. 그러나 남은 채 버텨내는 데도 역시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따. 떠난 이들은 남지 못한 게 아니라 남지 않기를 선택한 것이었고, 남은 이들은 떠나지 못한 게 아니라 떠나지 않기를 선택한 것이었다. 이제는 안다. 어느 쪽을 선택했든 묵묵히 그 길을 걸으면 된다는 것을. 파도에 이겨도 보고 져도 보는 경험이 나를 노련한 뱃사람으로 만들어주리라는 것을. 

-31p


거의 습관적으로 적은 그 알량한 축복에, 학생은 넘치게 고마워했다. 이제껏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해준 사람이 없었다고 했다. 

이 젊은 청춘에게, 그따위 싸구려 축복조차 해주는 '선생'한 자가 이때껏 없었다는 게 화가 났다. 넌 잘하고 있다고, 너만의 특질과 큰 가능성이 있다고, 네가 발을 떼기만 하면 앞뒤가 아니라 사방, 아니 만방으로 길은 열릴 것이라고 왜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가. 스무 살, 스물한 살은, 그런 이야기를 차고 넘치게 들어도 되는 나이다. 그런 청춘들이 '대졸자' 꼬리표 하나 달기 위해서 돈과 젊음을 들여 스스로 대학 안에 갇히는 기간, 사회의 틀을 맞추기 위해 스스로의 가능성을 기꺼이 가지치고 분재로 다듬어가는 기간, '멀쩡한 대학 나와서 왜 제대로 된 회사에 취직도 못하느냐'는 어른들의 질문을 향해 전진하는 그 기간이 나는 너무나 아깝다.

-62p


그러나 기초부터 차근차근 되짚어볼 기회는 쉬이 오지 않고, 그럴 시간도 만들기 어렵더군요. 하지만 대신 깨달은 건 있어요. 연습이 부족해서 생긴 빈틈은 그 원리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보는 것으로 메꿀 수 있다는 것. 우리가 구구단은 달달 외워도 인도학생처럼 19단까지 외우진 못하지만, 곱하기의 원리를 이해하고 있으니 계산해보면 19 곱하기 19까지 써내려갈 수 있듯이요. 괴로울 때는 '왜 그때 더 잘하지 못했을까' 하고 과거의 자신을 질책하게 되지만, 그땐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서 삶의 다른 면을 돌보고 있었잖아요.

-70p


나이가 지긋한 과학자에게 무언가에 대해 질문하면 모른다고 대답하는 경우가 많다. 알고는 있지만 설명하기가 어려울 때도 모른다고 하고,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을 때도 모른다고 한다. 확답을 잘하지 않고, 그럴 가능성이 높거나 낮다고만 한다. 우린 항상 잘 모른다. 자연은 늘 예외를 품고 있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사실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 그것만이 언제나 어디서나 진실이다. 

-95p


엄마가 일을 한다는 것. 이 짧은 문장 속에는 너무도 많은 한숨이 응어리져 있다.

-10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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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2-03-21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만 보고 천문학 서적인가 했는데, 가슴에 담고 싶은 문장들이 별처럼 꽉꽉 찬 밤하늘 이었네요.

마음을데려가는人 2022-03-21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을 울리는 글들이 많았어요~ 근데 제가 우주에 대해 아는 게 정말 없더라구요. 하하하. 잘 지내시죠?
 
폰 쇤부르크 씨의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법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 지음, 김인순 옮김 / 필로소픽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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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좀 실망스러운 책이었다. 가난하지만 우아하게 사는 법을 가르쳐준다면 기꺼이 배울 용의가 있었는데, 내 관점에서 이 책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서에 가깝다. 저자의 말이 틀린 건 아니다. 매스미디어는 늘 우리를 현혹한다. 일 년에 한 번은 해외여행을 가야지, 이걸 바르면 예뻐질 거야, 저걸 걸치면 고급스러워 보일 거야, 아이들은 이런 최신 장난감을 좋아해, 맨날 집밥 먹기 지겹지 않아? 등등. 아마 과거처럼 이웃나라 사람과 부자들이 어떤 집에서 살고 뭘 먹고 뭘 입고 다니는지 일거수일투족 알기 어려운 시대였다면, 우리는 더 적은 것으로도 더 행복했을 거다, 분명.

 

18세기부터 영락의 길을 걸어온 집안 내력 때문에 실직을 하고도 우아함을 잃지 않고 사는 법을 터득했다는 저자는 세계는 앞으로 더 가난해질 수밖에 없다고 한다. 앞으로 점점 일자리는 줄어들 테고 세계는 전체 인구의 20%에 의해 움직일 것이다. 그럴 때를 대비해 우리는 망해도 의연하게 사는 법을 익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삶에 우선순위를 정하고, 일은 줄이고 유희를 즐기고, 집 자체보다는 생활양식이 주도하는 삶을 살아야 하며, 욕망을 좇기보다는 몸에 좋은 음식을 섭취하고, 많이 움직여 건강을 지키고, 자동차를 버리고, 남들이 간다고 따라가는 휴가여행을 가지 말 것이며, 어떤 옷을 입느냐보다는 옷을 어떻게 입느냐에 신경 써야 한다…….

구구절절 맞는 말들이지만, 돈은 나쁘고 부자들의 대다수가 경박하며 덜 갖는 것이 무조건 행복하다는 식의 주장에는 동의할 수가 없다.(이 점에서 저자의 주장은 좀 설득력이 부족하다. 자본주의와 돈을 비판하는 데 급급해서 가난한 것이 더 좋은지 잘 전달이 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가난이 나쁜 것은 가난그 자체가 아니라, ‘가난하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줄어든다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살 수 있는데 안 사는 것과 살 돈이 없어서 못 사는 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이다. 돈은 사고를 제한하고 사고는 행동을 제한한다. 저자의 말처럼 휴가 여행을 떠나는 것보다 집에 머무르는 것이 천배 백배 나으려면 휴가여행을 경험해보고 그것이 산책보다 더 나을 것이 없다는 깨달음으로 이어져야 하는데……, 일개 나약한 인간일 뿐인 우리가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내면에 대한 탐색이 꾸준히 이뤄져야 한다. 사람과 미디어의 말에 상관없이 내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뭘 할 때 정말 행복하다고 느끼는지, 나는 집의 안락함과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의 쾌감 중 무엇이 더 좋은지……. 자신만의 가치관과 기준이 올바르게 서 있어야 욕망을 절제할 수 있다. 그래야 자신 있게 휴가여행을 포기하고 집에 머무르는 길을 선택할 수 있지 않겠는가. 내면이 단단한 사람은 외적인 요인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법이니까.

중간 중간 좋은 구절들이 많았는데, 그에 비해 이야기들이 골고루 섞이지 않은 느낌이다. 독일 문화에 대한 이해 없이 읽기에는 선뜻 다가오지 않는 내용들은 번역의 탓인가.

 

밑줄긋기

 

지나친 만족을 추구하지 마라. 감각적인 만족이 나쁘기 때문이 아니라 과다한 만족 후에는 오히려 심신이 침체되기 때문이다. 에피쿠로스에게 일시적인 만족의 포기는 만족감의 고조로 이어진다. 언제나 흥청거리며 호사스럽게 사는 사람은 머지않아 다시없이 근사한 물건 앞에서도 더 이상 만족감을 느낄 수 없다 

-24p

 

네가 돈을 위해 일을 해야 한다면, 돈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조지 버나드 쇼

-62p

 

집에 들이는 돈이나 집이 위치한 동네가 아니라 손님들을 맞아들이는 자연스러움을 통해서 집은 아름다워진다. 친구들이 모여 드는 집을 가진 사람은 부유하다. 그리고 가슴 답답한 비 오는 날에 찾아갈 수 있는 친구를 가진 사람도 부유하다. 그러나 보스의 고성능 음향기기, 능동 매트릭스 화면의 대형 텔레비전, 콘런의 디자이너 가구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장소를 만들어주지 못한다.

-87p

 

우리는 전혀 허기를 느끼지 않거나 그저 조금 입맛이 당길 뿐인데도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좌절감에서, 욕망을 쫓아서 음식을 먹는다.

-95p

 

무엇보다도 중요한 규칙은, 사람이 옷을 입은 게 아니라 옷이 사람을 입은 것처럼 보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옷을 건전하게 경멸하는 사람만이 우아하게 보일 수 있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경우에 지나치게 옷을 차려입는 것보다는 차라리 수수하게 입는 것이 더 낫다.

-131p

 

아이들이 제대로 기쁨을 누리도록 훈련시킬 수 있는 결정적인 비결은 원한다고 무조건 모든 걸 사주지 않는 것이다. 호주머니 사정이 빠듯한 부모들이 무리하게 형편을 무시하고 자녀들에게 지나치게 많은 물건들을 마련해주는 경향이 종종 있다. 혹시라도 남들보다 자녀들에게 못해 주지 않을까 두려운 마음에서, 온갖 잡동사니, 말하는 인형, 디즈니 그림이 그려진 책가방, 비디오게임, 나이키 제품 일체를 사준다. 그래야만 아이들이 학우들에 비해 불이익을 당한다는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런 아이들이 나중에 자라서 어른이 되면, 옆 사람이 가진 것은 무엇이든 갖고 싶어 하는 마음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스스로를 전혀 억제할 줄 모른다. 출생에서부터 고등학교 졸업까지 시장이 제공하는 모든 것에 푹 파묻혀 지낸 아이들에게 최악의 경우에는 언젠가 결핍이 혹독한 체험일 수 있다.

-152p

 

인간은 포기할 줄 알아야만 만족감을 극대화할 수 있다. 철학자 아널드 겔렌은 인간이 절박한 욕구 충족 이상의 것을 원하도록 촉구하는 압박에 끊임없이 시달린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항상 더 많이 가지려고 하는 것을 겔렌은 과잉 충동이라고 불렀다. 겔렌에 따르면, 이 과잉 충동이 없었더라면 인간은 절대로 현재만큼 문명을 이룩하지 못했을 것이며, 지구는 지금과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되었을 것이다.

더 많은 것, 더 나은 것, 더 새로운 것을 향한 충동은 겔렌이 말하지 않아도 우리가 느끼는 깊은 만족을 향한 욕구처럼 우리 본성의 일부이다. 타고난 본성을 거스르며 살 수는 없기 때문에 이것에 저항하는 사람은 불행해진다. 깊은 만족의 비결은 자신의 욕망을 인식하고금욕주의자처럼 억누르거나 부정하려고 하는 대신알맞게 제한하는 것이다. 라틴어에는 이것을 표현하는 산뜻한 낱말 temperantia가 있다. 이 낱말은 지나친 억제와 훈율보다는 올바른 배합의 기교를 암시해 산뜻하다. 요리를 망가뜨리지 않으려면 설탕이나 밀가루를 적정 분량 사용해야 하는 것과 비슷하다.

-154p

 

부를 좀 더 개인적으로 정의하면 비교적 쉽게 부에 이를 수 있다. 내가 코스타 스메랄다의 집이나 페라리를 소유하는 것을 부유하다고 이해한다면 평생 가련한 녀석으로 지낼 가능성이 아주 많다. 그러나 은행 예금액을 높이는 걸 포기하고서 가능한 한 많은 여가를 즐기고, 또 이 여가 시간에 나 자신을 돌볼 뿐 아니라 예를 들어 어딘가에서 명예직으로 종사하는 것을 부라고 일컫는 경우에는 엄청난 부자가 될 수 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내 힘이 닿는 일에 내 자존심을 걸면 부자가 될 것이고, 이루어지기 어려운 일에 내 행복을 걸면 가난할 확률이 아주 높아진다. 나는 내 인생의 절반을 훨씬 더 부유한 사람들의 그늘에서 보냈으며 다른 사람들의돈을 내 것으로 해야만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었던 동안에는 불행했다. 있는 그대로의 삶이 아름답고 다른 사람들의 삶은 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나는 마치 해방된 것 같았다. 부는 욕구의 문제이다. 이른바 우리의 욕구라고 하는 것들은 대부분 인위적으로 만들어졌으며, 심지어 우리 본래의 욕구를 가로막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면 누구나 부를 누릴 수 있다. 다만 광고 업계가 우리를 설득하려고 하는 것과 조금 다를 뿐이다.

-20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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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4-04-05 0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여러모로 밑줄 많이 그으셨네요.
좋은 알맹이를 즐겁게 받아먹으면서
우리가 누리면서 나눌
'넉넉함(부자)'과 '홀가분함(가난)'을
깊이 돌아보면 사랑스러운 이야기가
피어나리라 생각해요.

마음을데려가는人 2014-04-05 23:42   좋아요 0 | URL
그니까요. 좋은 글도 많았는데 전체적으로는 별로였다는.
오홍, '가난'을 우리말로 하면 '홀가분함'인가요?
없는 만큼 가볍다는 의미겠죠? 새롭네요 :)

2014-04-18 13: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4-29 19: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야시 - 눈을 감으면 다른 세상이 열린다
쓰네카와 고타로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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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 친구들과 산에 갔다가 사소한 일로 삐쳐서 혼자 내려온 적이 있었다. 낙엽을 주워오는 숙제를 하러 갔던 터라 수풀을 헤집고 무작정 걷다가 보니 어느새 깊은 숲속이었다. 덜컥 겁이 난 나는 그길로 냅다 집까지 뛰어갔다. 내가 여기 있는지 아무도 모르는데 홀로 그곳을 헤매다가 영영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아 무서웠다. 낯선 곳에서 미아가 될지도 모르는 두려움, 야시는 그런 공포를 자극하는 소설이다.

 

이 책에 담긴 바람의 도시야시는 두 편 다 이쪽 세계에서 우연히 다른 세계로 흘러들어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벚꽃 놀이를 갔다가 아빠를 잃어버리고 집을 찾아가던 길에 우연히 비밀의 길 고도를 알게 된 소년. 열두 살이 되던 해 친구와 그곳을 다시 찾았다가 친구의 죽음을 겪게 된 소년은 친구를 살리기 위해 비의 사원으로 가는 모험을 감행한다. 또 하나의 이야기는 대가를 치르고 무언가를 사지 않고는 빠져나올 수 없는 야시(夜市)를 배경으로 한다. 어릴 적 축제에 갔다가 동생을 팔아 야구 재능을 산 유지는 다시 야시가 서는 날, 동생을 되찾아 오기 위해 그곳을 찾는데…….

 

밤과 꿈과 환상이 얽힌 다른 세계, 한 번쯤 발을 들여 보고 싶은 호기심이 생기지만 매혹적인 만큼 두렵기도 하다. 영원히 그곳을 떠돌며 그 세계의 사람도 될 수 없고, 원래 내가 살던 곳으로도 돌아올 수 없다면? 이 이야기들이 무서운 것은 많은 신화나 옛이야기가 그러하듯 한 인간이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로 들어가 모험을 겪으며 한층 더 성숙해진다는 해피엔딩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인공들은 결국 그 세계에서 빠져 나오지만 그곳을 알기 전과 삶은 많이 달라진다. 그쪽 세계의 것이 되어버린 친구동생을 이 세계 사람들은 기억하지 못한다. 내 마음속에서 죄책감이라는 형태로 남아 있을 뿐.

 

고도야시에서의 경험은 나를 성장시킨 원동력이 아니라, 나에게서 소중한 사람을 앗아가고, 나도 모르게 저지른 나의 죄악을 상기시키는 잔혹한 기억에 불과하다. 금단의 영역을 호기심만으로 탐색하기에는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도 큰 것은 아닌지. 하지만 저자는 바람의 도시의 마지막 구절에서 이렇게 전함으로써 그 또한 당신이 선택한 길이니 스스로 감당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하는 듯하다.

 

이것은 성장 이야기가 아니다.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고 변화도 없고 극복도 하지 않는다. 길은 교차하고 계속 갈라져나간다.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풍경을 보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 나는 영원한 미아처럼 혼자 걷고 있다. 나뿐만이 아니다. 누구나 끝없는 미로 한가운데 있는 것이다.”

 

12회 일본호러소설 대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오감을 자극하는 짜릿한 공포는 없다. 오히려 서정적이고 담담한 문체를 따라가다 보면 느릿한 걸음으로 다른 세계를 떠도는 듯한 몽환에 빠지게 된다. 그러다가 문득 저들이 겪은 악몽이 무엇인지 떠올리며 안타깝고 애잔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이 책에서 그리는 기묘한 환상 세계는 흥미진진한 모험이 펼쳐지는 다이내믹한 공간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찾고, 그리워하고, 그런 상황을 만든 자신을 꾸짖으며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마주해야 하는 내면 갈등이 심화된 세계이다. 간결한 문장들 사이에서 환기되는 이미지를 비집고 나도 한번 선택의 기로에 서본다. 나는 과연 후회 없는 선택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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