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큼 가까이 - 제7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
정세랑 지음 / 창비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망가진 채 살아가도 괜찮지 않을까.


새벽 다섯시쯤 눈이 떠져서 마침 읽고 있던 이 책을 마저 읽고

다시 잠을 청하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성장소설을 퍽이나 좋아했었는데,

치유나 화해와 성숙함 같은 것들이 버무려진 그런

성장 이야기가 좋았었는데

망가졌다면 망가진 채로 구멍이 숭숭 뚫린 채

살아가는 삶도 괜찮지 않을까

왠지 이 책을 읽고 나선 그런 생각이 들었다.


큰 사건이 아니어도

인간은 조금씩 망가진 부분을 가지고 살아가니까,

망가지지 않아도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부분은 누구나 있는 거니까,

그 구멍 사이로 사람들이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하며 흔적을 남기는 게

삶인 거 아닐까.


정세랑답게 유쾌한데,

정세랑답지 않게 조금 쓸쓸한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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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놀라운 건, 종종 내 친구들과 똑같은 얼굴의 아이들과 마주친다는 것이다.

친척도 아니고 아무도 아니다.

아무 관계도 없이 그렇게나 똑같은 얼굴로 태어난다.

누군가 이 세계에 우리와 똑같은 얼굴들을 계속 채워넣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두려운 것은 그 똑같은 얼굴 뒤의 거의 다르지 않을 이야기들이다.

우리는 유일하지도 않으며 소중하지도 않으며 끊임없이 대체된다. 

모두가 그 사실에 치를 떨면서.

-105p


"내 생각에, 인간은 잘못 설계된 것 같아."

주연이가 말했을 때 아무도 '왜 또?" 하고 반문하지 않았다.

"소중한 걸 끊임없이 잃을 수밖에 없는데, 사랑했던 사람들이 계속 죽어나갈 수밖에 없는데, 그걸 이겨내도록 설계되지 않았어."

-192p


있는 듯 없는 듯 살다 간 사람, 있다가 없어진 사람, 있어도 없어도 좋을 사람,

없어도 있는 것 같은 사람, 있다가 없다가 하는 사람, 있어줬으면 하는 사람,

없어졌으면 하는 사람, 없느니만도 못한 사람, 있을 땐 있는 사람,

없는 줄 알았는데 있었던 사람, 모든 곳에 있었던 사람, 아무 데도 없었던 사람,

있는 동시에 없는 사람, 오로지 있는 사람, 도무지 없는 사람, 있다는 걸 확인시켜주는 사람,

없다는 걸 확인시켜주지 않는 사람, 있어야 할 데 없는 사람, 엇어야 할 데 있는 사람......

우리는 언제고 그중 하나, 혹은 둘에 해당되었다.

-25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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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3-06-05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괜찮아 라는 말은 참 위로가 되네요. 아파해도 괜찮아, 망가져도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