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은 묘한 구석이 있는 소설이다. 책을 읽는 독자 입장에서는 심리적으로 '살인자'를 비난하고 이해할 수 없기 마련인데, 자꾸만 '유이치'가 범인이 아니었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생긴다. 사건의 전모를 듣고 나서도 '그럼, 그렇지. 요시노가 유이치를 자극했으니까 그런 일이 일어난 거지. 유이치가 그랬을 리가 없잖아' 하는 마음.

 

우리는 늘 사건의 결과를 듣는다. 그 사건이 일어나기까지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이 어땠는지는 결과에 따라 구색이 갖춰지기 마련. 진실인지 거짓인지도 모른 채, 그래도 사람을 죽인 건 잘못한 거야라며 죄를 지었으니 벌을 받아야지, 이렇게 말하고 나면 마음이 가벼워진다.

 

그런데 정말 그런 걸까. 살인자는 살인을 했다는 이유로 그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일까. 무조건 죽은 사람만 불쌍하고, 죽인 사람만 나쁜 것일까.  <악인>은 이런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인간을 선인과 악인으로 나눌 수 없다는 건 알지만, 어느새 무의식적으로 선인과 악인을 나누고 옳고 그름을 가르며 남말하기 좋아하던 나를 조금은 반성하게 된다.

 

가려진 저쪽에 있는 진실까지 보듬을 수 있는 인간이 되고 싶다, 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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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8-02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스로 이쪽과 저쪽을 가르는 때에
나 스스로 이쪽과 저쪽으로 나뉘면서
온누리를 두 갈래로 바라보는구나 싶곤 해요.

이러한 이야기 담은 책을 읽을 때면
스스로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새삼스레 돌아볼 수 있구나 싶어요.

마음을데려가는人 2013-08-03 18:33   좋아요 0 | URL
더 재미있는 건
스스로 난 그렇게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보는 인간이 아니야라고 생각한다는 거예요.
그러다가 무심코 그런 생각을 하는 나를 마주하면 깜짝 놀라게 되죠. -_-b
 

 

텔레비전을 줄이니 외롭다는 생각이 든다.

머릿속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왔다가 가는데도,

침묵과 정적의 시간은 묘하게 내가 혼자 있다는 사실을 각인시켜준다.

덩그러니 고요와 마주하는 시간이 어색하고 낯설다.

 

텔레비전을 끄고 팟캐스트를 듣는 시간이 많아졌다.

보이지 않아도 이어폰을 통해 터져나오는 웃음소리와 시시껄렁한 수다들을 듣고 있노라면,

다시 누군가와 이어져 있다는 안도감이 든다.

 

이어폰을 꼽고 밥을 먹고, 이어폰을 꼽고 화장실 청소를 한다.

그러고 보니 하루종일 팟캐스트만 듣고 있는 것 같아서 이어폰을 빼고, 독서를 한다.

 

거대한 밤의 정적,

너무 조용해서 공기에서 소리가 날 것 같다.

가라앉은 밤공기가 불편하다.

 

약간의 망설임을 안은 채 옷을 주섬주섬 챙겨입고 동네 카페로 간다.

거리와 다르게 카페 안은 달떠 있다.

 

뒷자리 남자의 쨍-하고 울리는 웃음소리에 귀가 먹먹해진다.

사람들의 이야깃소리가 문장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다.

책이 안 읽힌다.

 

결국 나는 다시 조용한 집으로 돌아와 나와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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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전셋값 생각에 시달리다가 신랑이 퇴근하고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기로 했다. 우리는 마지노선을 정해놓고 그 이상을 요구하면 과감히 이사를 가기로 정했다. 나는 아무래도 흥분해서 바들바들 떨다가 하고 싶은 말도 못하고 전화를 끊은 후에 이렇게 말할걸, 저렇게 말할걸 후회할 것 같아서 늘 차분함을 유지하는 신랑이 전화를 걸었다.

 

핑퐁처럼 왔다갔다 하는 대화들. 아무래도 집주인은 2천을 생각하고 3천을 부른 것 같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얘기했지만, 집주인은 양보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럼, 어쩔 수 없죠. 살고 싶어도 돈이 없는걸요.

 

협상결렬. 주인은 2천을 안 올려주면 집을 내놓는 수밖에 없다며 1층 부동산에 열쇠를 맡기라고 했다. 그리고 곧바로 집을 보고 싶다고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다. 밥을 황급히 먹고 치우고 있는데 벨소리가 들렸다.

 

인상 좋은 부동산 아줌마와는 낮에 잠깐 이야기를 나눈 터였다. 우리가 가진 돈이면 우리 두 사람 살 집은 많이 있다고, 주인아줌마하고 얘기 잘해보라고 하셨었는데.

 

아줌마가 집 이곳저곳을 둘러보는데 다시 신랑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달세요?

 

반전세로 돌릴 생각은 없냐는 말이었나보다. 당근, 우리는 그럴 생각이 없음을 밝혔고 다시 전화는 끊겼다. 부동산 아줌마는 이왕에 이렇게 된 거 집 빨리 나가게 하고 살 집을 구해보자고 했다. 우리는 이 집에 들어올 때 냈던 전세금 선에서 집을 구해달라고 당부했다.

 

아주머니가 내려가시고 지인에게 전화가 와서 통화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신랑이 방으로 쑤욱 들어오더니 입모양으로 "천 달래, 천!" 이러는 거 아닌가.

 

주인아주머니가 다시 부동산에 전화를 걸어 "천 정도 올리는 건 어떻겠느냐?"고 부동산아줌마에게 의향을 물어본 모양이다. 부동산 아줌마는 보통 집을 옮길 때 지금보다 더 나은 금액을 주고 집을 찾는데 같은 금액으로 찾는 걸 보니 여유가 많아 보이지는 않는다, 어차피 이사 나가고 이사 오면 서로가 돈만 드는데 이왕이면 천 정도로 서로가 합의를 보는 게 낫지 않겠냐고 하셨단다.

 

그러고는 주인아주머니가 우리 신랑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얼마면 괜찮겠냐고.

 

결국 주인아줌마는 신랑에게 몇 살이냐고 묻더니 "서른넷이요"라는 말에 "아이고, 우리 아들이 서른셋이다" 하시고는 천에 합의를 보셨다고 한다. 아들 같으니 이쯤에서 그만하자는 말씀이셨겠지.

 

그 짧은 시간에 참 많은 이야기가 오고갔다. 만약 우리가 마지노선을 정해놓고 과감히 나가기로 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까.

 

작년에 한 중소기업에서 번역거리를 맡은 적이 있다. 적정선에서 단가를 정하고 집에 와서 한 장 번역을 해봤는데, 너무 시간이 많이 걸리는 거다. 아, 이 가격에는 도저히 할 수 없으니 만약 내가 원하는 가격에 맞춰주지 않으면 그냥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전화를 했다. 억울한 마음으로 꾸역꾸역하는 것보다는 요구한 만큼 받으면서 성실하고 싶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지. 못 맞춰주겠다면 진짜로 안 할 생각이었는데, 상대방은 순순히 내가 원한 선에 금액을 맞춰주었다. 이것이 밀당이고, 협상의 법칙이란 걸 그때 어렴풋이 알았던 것 같다.

 

원하는 선을 절대로 양보하지 않겠다.

그리고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느니 그냥 포기하겠다.

 

이런 마음. 처음부터 협상의 여지가 없는 사람에게야 안 통하겠지만, 내가 원하는 것을 분명히 할 때 비로소 그것이 내게 주어진다, 는 게 내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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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4-03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전세를 저렇게... 올려 달라 말하는 것은 참... 거시기합니다. 슬프네요.

시골에서는 천만 원이면 집 한채를 사거든요. 시골 집 한 채란 적어도 마당 텃밭이
50~70평쯤 있는 집이지요.

뒷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그 집임자라 하는 분이
당신 아들 나이 때문에 집 계약을 해 주었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다른 까닭이 있겠지요.

아무튼......
가장 중요한 대목은
이사를 가건 안 가건
가장 마음이 느긋하면서 좋을 만한 집에서
살아갈 수 있기를 빌어요.
그것 하나뿐입니다.

마음을데려가는人 2013-04-04 02:03   좋아요 0 | URL
큰돈일수록 통장에 찍힌 숫자에 불과한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시장에서 부추 한 단, 양파 한 망 사면서 만 원을 주고 거스름돈을 받을 때가
어쩌면 돈을 실감하는 가장 큰 순간일지도 모르겠어요.

시골에선 천만 원으로 집을 살 수 있군요.
우린 같은 하늘 아래 사는데,
같은 돈을 갖고 경험할 수 있는 크기가 다르네요.
슬픈 현실이죠.

2년 만에 집을 옮긴다는 게 떠돌기 싫어하는 저로선 엄청난 부담감이었는데
그래도 한동안은 정 붙인 곳에서 계속 살 수 있다는 사실 자체로 기쁘네요 :)

이진 2013-04-05 0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님 마음님 마음님 마음님!!
얼마만이어요, 이게. 깜빡 잊었다 싶을때마다 찾아오셔선 저를 일깨워주시니.
댓글을 휴대폰으로 확인하고 한달음에 달려가려고 했으나 아이참, 이거 컴퓨터를 할 시간이 없네요. 더 자세히는 알라딘을 할 시간. 사월 들어선 이제 글 쓰고 책 읽기만 하려구요. 지켜질는지... 두고봐야 겠지만.
추천에서 이제 공감으로 바뀌었는데, 어떤 이웃에게는 추천을 주고 싶었고, 또 어떤 이웃에게는 공감을 주고 싶었던 저로선 좋기도 하고 안 좋기도 하고 그래요. 마음님께는요 항상 공감을 하고 싶었지요. 그래서 좋아요. 마음님! 발길이 늦었지요. 안녕히 주무시고, 오늘 날이 밝으면 또 행복한 하루 되시길.

마음을데려가는人 2013-04-05 16:24   좋아요 0 | URL
아웅, 풋풋한 이진님. 제가 뭔가를 할 땐 팍 하고 안 할 땐 또 아예 안 하는 성격이라 한동안 또 알라딘에 들어오질 못했어요. 여전히 방황중이기도 하고요. 헤헤헤헤.
사월에는 본격적으로 읽고 쓸 생각인가봐요. 저도 한동안 뱉어내지 않고 지냈더니 뱉어낼 게 많이 생기더라고요. 이진님께도 사월은 무언가를 차곡차곡 쌓아서 숙성시키고 좋은 것을 골라내게 하는, 그런 달이 될 것 같아요. 이진님의 성장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게 참 감사하네요. 공감하는 이웃이 있다는 것도 해피하고요. 숙성의 시간 잘 보내시고 더 좋은 얘기들 많이 들려주세요. :)
 

 

바람이 참 좋다. 계절은 햇살의 눈부심과 바람으로 가늠할 수 있다. 싸대기라도 한 대 후려갈기 듯 거칠었던 겨울바람이 가니, 내 볼을 살살살 어루만지는 봄바람이 온다. 바람이 온몸에 휘감기는 느낌이 참 좋다.

 

3월엔 헐벗은 나무들 사이로 힘겹게 힘겹게 몽우리를 만들어내던 녀석들이 어느덧 짙은 연두빛을 뽐내며 싱그럽게 자라났다. 진달래도, 개나리도, 산수유도 아직은 삭막한 숲속에서 반짝반짝 빛이 난다.

"봐, 지금은 내 세상이야, 내 계절이라구!" 외치는 것 같다.

 

내 마음은 바닥이다. 6월이면 전세계약 만기가 다가오는데, 급등하는 전세값을 생각했을 때 어느 정도 올려달라고 할 거라는 예상은 했었다. 그런데 어젯밤 신랑의 전화로 집주인이 전화를 걸었다. 자기 아들이 결혼을 앞두고 있어서 돈이 필요하니 3천 만원을 올려달란다. 본인도 너무했다 싶었는지 3천에 3년을 계약을 하자고.

 

3년 계약이 문제가 아니라, 3천만 원이 문제인 것을. 아줌씨는 은근슬쩍 구렁이 담넘어 가듯 얼버무리려한다.

 

워낙 조분조분 고분고분한 말씨를 가진 신랑이라, 어이없다는 식의 표현을 하지 않는 게 옆에서 듣는 나로선 좀 짜증이 났다. "그게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걸 표현해!!!!"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실은 주인아줌마에 대한 분노인 것을.

 

전화를 끊고 신랑과 얘기를 나누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한도는 3천만 원의 반이다. 협상이 결렬되었을 때 이사할 것을 생각하니 머리가 지끈거린다. 좋은 집을 찾는 것은 둘째치고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삶이 지겹고 힘겹다.

 

신랑은 내 집이 아닌 이상 아무 데서나 살아도 상관없다는 입장이고, 나는 인간은 좀 더 쾌적한 곳에서 살아야 심신이 건강하다는 주의이다. 기분좋음을 유지하기에 쾌적한 환경만큼 유용한 것도 없으니까.

 

자면서 밤새 주인아줌마와 씨름했다. 부산에서 올라온 아마도 '돈'이 최상의 가치이며 '돈'을 갖기 위해서 악바리처럼 살았을 그 아줌마와 어떻게 하면 이야기를 잘 풀어나갈 수 있을까. 머릿속으로나마 시나리오를 그려본다. 실전에서는 바르르 떨리는 목소리로 하고 싶은 말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걱정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볕이 눈부신 봄이라 좀 위로가 된다. 스산한 바람이 부는 계절에 이런 상황이었다면 나는 저 바다의 심연속으로 가라앉아버렸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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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사업을 하다가 사이가 틀어졌다는 얘기는 흔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친구'란 이해를 목적으로 하는 관계가 아닌데, 함께 사업을 하며 이윤을 추구하다 보면, 여지껏 '친밀한 관계' 속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또다른 모습이 나오게 마련이고, 그 모습은 내가 친구로서만 대할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일 확률이 높다. "내가 알던 누구누구가 아니야"라면서 배신감을 느끼기 쉬운 것이다.

 

오늘은 아주 사소한 일로 이중적 관계에 대해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자주 가는 개인카페가 있는데, 동네에 있고 워낙 자주 가다 보니 사장 언니와도 굉장히 친해져서 일상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눌 정도의 사이가 되었다. 동네친구이기도 하고 자주 가는 가게의 주인과 손님이기도 한 관계.

 

언니가 쉬는 날엔 다른 단골들과 맥주를 얻어마시기도 하고, 뷔페에 같이 가기도 한다. 단골들이 모여 있으면 언니는 커피 한두 잔 정도는 서비스로 주는 편이고, 우리도 가게 안의 사소한 일들에 대해 신경을 써주는 편이다. 언니가 바빠서 손이 모자랄 땐 다른 손님에게 화장실을 안내해주거나, 언니가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 손님에게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말해준다거나.

 

오늘은 테이크아웃을 해서 좀 걷기로 작정하고 집을 나왔다. 뒷산에라도 가서 기분전환을 하고 싶은데 추적추적 내리는 비 속에 산에 가기엔 좀 무리인 듯 싶었고, 동네 산책 정도라면 괜찮을 비라서. 나름 할 일을 정해놓은 터라 마음이 조금 바빴는데, 가게 안에 단체손님이 있었다. 조금 시간이 걸릴 듯 싶어 앉아서 기다렸다. 이상하게 기다리기 시작하면 시간은 더디 간다.

 

나는 상대나 주변상황에 굉장히 신경을 쓰는 사람이라 이어폰을 한쪽 귀에 꽂고 언제 주문을 받으려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데, 내 차례가 올 기미가 안 보인다. 이동진의 빨간 책방을 듣고 있었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 집중도 안 되고 주문도 하지 못하는 어정쩡한 상태가 지속되었다. 단체 손님에게 음료가 나가고도 두 팀 정도 주문이 더 밀려 있었는데, 음료 네 잔 정도야 금방 끝나려니 하는 사이, 세 명의 테이크아웃 손님 들어왔다.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차례에 민감한 편이다. 아무리 바쁜 상황이라도 내가 먼저 왔는데 뒷사람이 먼저 서비스를 누리는 꼴을 못 본다. 그런데 언니가 "**씨, 좀만 기다려줘요" 하더니 나보다 나중에 온 사람들의 주문을 먼저 받는 게 아닌가.

 

만약 오늘 내가 마음의 여유가 있었거나 카페에서 먹고 갈 생각이었다면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 일이, 오늘은 내 심보를 건드렸다. 그런데  "제가 먼저 왔는데요"라고 이의를 제기하기에는 너무도 친한 사이인 것이다. 언니는 단골이고 그만큼 잘해주는 손님이니 이해해주겠거니 생각했을 테지만, 나는 친한 건 친한 거고 오늘은 나도 음료 빨리 받아서 가고 싶은 마음이 컸다.

 

딜레마다. 애매한 관계다. 손님으로서의 권리만 주장하기엔 언니가 마음을 써준 일들이 참 많고, 그냥 참고 넘어가자니 나 또한 돈을 내고 음료를 먹는 손님인 거다.

 

나는 속마음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는 사람이라 '안 좋은 표정'을 보이기 싫어서 나중에 온다고 하고 카페를 나왔다. 그리고 찬찬히 생각해본다. 그래봤자 오 분 정도를 못 참고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이유가 단지 '뒷사람에게 먼저 음료를 주었기 때문일까'

 

음, 사실 나는 내가 '한가한 사람으로 취급받는 게' 불편했던 것 같다. 자주 카페에서 노닥거리며 시간을 보내니 언니 입장에서도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건데. 나는, 어제 면접에서 한참 자존심을 구긴 후에 '뭐라고 되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인데 현실은 따라와주지 않는 이 불편함 속에서, 괜히 '내가 한가한 사람으로 보이니까 뒷사람 주문 먼저 받는 거 아냐?' 하고 마음속에서 시비를 걸었던 거다.

 

늘 원인은 내 마음이다. 괜한 사람에게 시비 걸고 마음만 잔뜩 상해 씩씩거리느니 당분간은 집에서 마음을 다스리는 게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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