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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주식회사 - 질병과 비만 빈곤 뒤에 숨은 식품산업의 비밀
에릭 슐로서 외 지음, 박은영 옮김, 허남혁 해설 / 따비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2003년 어느 날, 부산 장림공단의 한 피혁가공공장에 환경단체 회원 십여 명이 모였다. 대부분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었다. 미국에서 공업용 쇠가죽을 수입해서, 지갑이나 가방, 신발 등을 만들기 위해 가공하는 공장에 엄마들이 왜 모였을까? 우리 아이들의 입으로 들어가는 과자의 원료가 이 공장에서 재단하고 남은 자투리 쇠가죽(쓰레기)으로 만들어진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부산항으로 수입된 쇠가죽은 이미 온갖 약품처리가 되어 악취가 심했다. 사용하기 알맞은 크기로 재단하고 남은 쓰레기가 공장 마당 한 쪽에 쌓여있었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온갖 먼지와 매연에 노출된 쓰레기 더미를 집게차가 와서 실었다. 공장에서 재단하고 남은 자투리 쇠가죽을 실은 집게 차는 부산의 젤라틴 가공공장으로 들어갔다. 젤라틴은 젤리를 만드는 원료다. 젤리 뿐 아니라, 초코파이나, 초코바, 초콜릿, 마시멜로, 캐러멜, 껌 등 온갖 과자류에도 들어간다. 또한 떠먹는 요구르트, 알약의 캡슐에도 들어있다. 젤라틴을 만드는 과정은 곰국을 끓이는 것을 생각하면 된다. 소뼈를 푹 고아서, 천연단백질인 콜라겐 성분을 뽑아내서 만든다. 그러나 공장에서 값비싼 소뼈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쇠가죽을 이용하는 것이다. 쇠가죽을 이용하는 건 좋은데, 왜 하필 공업용 쇠가죽을 사용하는 건가? 그것도 피혁공장에서 자르고 버린 쓰레기를 갖고 만드는 이유는 뭔가? 돈 때문이다. 어차피 피혁공장에서는 버리는 쓰레기일 뿐이니, 젤라틴 공장 입장에서는 저렴한 가격으로 원료를 구할 수 있는 것이다.
피혁공장에서 젤라틴공장까지 함께 갔던 환경단체 회원들은 경악하고, 분노했다. 식사시간이 훌쩍 지났지만, 다들 피혁공장에서 맡았던 악취 때문에 입맛을 잃었다. 앞으로 다시는 곰국을 못 먹을 것 같다는 분들도 여럿 있었다. 우리는 피혁공장에서 버려진 자투리 쇠가죽 몇 개를 자루에 담아왔는데, 그 악취가 너무 지독해서 말도 못하게 괴로웠다. 회원들은 곧바로 부산식약청으로 달려갔다. 식약청장을 불러달라고 요구하며 한참동안 직원들과 실랑이를 했다. 결국 식약청장과 면담이 이루어졌다. ‘우리 애가 지금까지 먹었던 초코파이가 얼마나 많은데, 이런 쓰레기로 만든 과자를 먹어왔단 말인가!’ 어느 회원이 흥분하여 쇠가죽이 든 자루를 청장실 바닥에 쏟아 부었다. 순식간에 악취가 퍼졌다. 다들 코를 틀어막았다. 식약청 직원 몇 명이 흥분하여 얼굴이 벌게져서 달려들었다. 몸싸움이 벌어졌다. 엄마들은 소리를 질러댔고, 직원들은 이들을 밀어내고 냄새나는 가죽 쓰레기를 치웠다. 식약청장은 잘 알아보겠다는 하나마나한 소리를 하고 황급히 사라졌다.
이 젤라틴 문제는 이후 몇 년간 길고 지리한 싸움을 끌어왔으나, 결국 크게 알리지도 못하고 묻히고 말았다. 쓰레기로 과자를 만드는데, 그걸 가만히 놔두다니.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지만, 우리나라 식약청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젤라틴 공장에서 사들인 원료를 깨끗하게 씻어서, 고온으로 끓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단다. 게다가 법적으로도 전혀 문제가 없단다. 젤라틴은 식품첨가물이다. 우리나라 식품첨가물 공전은 허술하기 짝이 없는데다, 온갖 해로운 물질들도 다 허용 되어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식품첨가물 공전을 조금 살펴보았는데, 상상을 초월하는 내용에 혀를 휘두르고 말았다.
결국 해결되지 못한 이 사건 이후로 나는 절대로 젤리와 초코파이와 초콜릿 등을 사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고, 아이들에게 먹이지 못하도록 당부하곤 했다. 나중에 태어난 내 아이에게도 절대 먹이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젤라틴이 들어간 온갖 나쁜 과자들을 먹고 왔다. 허탈했다. 집에서야 못 먹게 막을 수 있지만, 밖에서 먹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하루 종일 아이를 집에 가둬놓고, 감시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젤라틴뿐만 아니다. 햄에 발색제로 쓰이는 아질산나트륨은 발암물질이다. 이 물질이 햄에 들어가는 이유는 단 하나, 예쁜 색깔을 내기 위해서다. 아질산나트륨을 넣지 않은 햄은 허여멀건 한 색깔이다. 몇 년 전 환경단체의 발표 이후로 어느 가공식품회사가 아질산나트륨을 뺀 하얀 햄을 시중에 내놓았지만, 곧 다시 자취를 감추었다. 판매가 부진해서 그랬던 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환경단체의 발표 이후로 줄어들었던 햄 소비량은 시간이 지나자 다시 늘어났다. 사람들은 여전히 아질산나트륨이 들어간 햄을 사먹고 있다.
모건 스퍼록 감독의 <슈퍼사이즈 미>라는 영화는 감독 자신이 한 달 동안 맥도날드의 음식만을 먹으며 살아보는 실험을 보여준다. 하루 세끼를 모두 맥도날드에서 먹으면 어떻게 될까? 궁금하지 않은가? 결과는 충격적이다. 이 영화가 국내에 소개될 당시에, 똑같은 실험이 시도되었다. 환경정의 활동가 윤광용씨는 모건 스퍼록 감독과 같은 방법으로 자신의 몸에 실험을 했다. 역시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실험은 24일 만에 중단되었다. 건강이 치명적으로 악화되어서 도저히 실험을 계속할 수 없었다. 당시 윤광용씨와 모건 스퍼록 감독은 모두 30대 초반이었다. 한창 건장한 나이의 청년들조차도 이럴 진데,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얼마나 나쁜 영향을 미칠지 생각해보면 끔찍하다.
몇 년 전까지는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종종 했다. 시민단체 활동비로는 도저히 생활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그때 아이들의 먹거리에 대해 알고 큰 충격을 받았다. 학교를 마치고 곧바로 학원으로 온 아이들은 대부분 학원 매점에서 컵라면과 삼각 김밥 따위로 저녁을 때운다. 집에 가서 밥을 먹고 오라고 하면 그럴 시간도 없고, 집에 아무도 없기 때문에 밥을 먹을 수 없다고 했다. 내가 가르친 아이들은 초등학교 4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였다. 한창 자랄 나이의 아이들이 매일 컵라면과 삼각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었다. 게다가 아이들은 틈만 나면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를 사먹었다. 언젠가 어느 아이의 생일을 집근처 패스트푸드점에서 하는 모습을 보았다. 아이 친구들이 이십 여명 와있었는데, 모두 똑같은 무슨 세트를 먹고 나서 한참 떠들고 놀다가 돌아갔다. 패스트푸드 점 직원들 두어 명이 옆에 대기하면서 아이들이 흘린 음식이나 두고 간 쓰레기 따위를 치우고 있었다. 생일은 맞은 아이의 부모는 햄버거 값을 계산하는 것으로 생일잔치를 간단하게 끝냈다. 마침 근처에 약속이 있어서, 한동안 그 가게를 지켜봤는데, 주말이라 그런지 그렇게 생일잔치를 치르는 아이들이 시간대별로 계속 있었다. 한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점원들은 와르르 들어왔다가, 우루루 빠져나가는 아이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정신이 없어보였다.
아이들의 비만, 허약한 체력을 지적하는 뉴스가 종종 나온다. 아토피에 대한 얘기들. 병원에선 유난히 면역력이 떨어진 요즘 아이들에 대한 얘기를 들은 적도 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무상급식에 대한 논의 이전에 이런 문제들이 먼저 고려되어야 하지 않을까? 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한 정부. 날마다 구제역이 확산되어 150여만 마리의 가축이 생매장되었다는 뉴스. 조류독감의 유행. GMO 농산물 수입, 농약의 피해 등등 먹거리 문제에서 신경 써야 할 부분은 너무나도 많다.
이 모든 문제는 식품산업과 관련이 있다. 우리 입으로 들어가는 먹거리가 산업의 영역에 속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모든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 책은 미국의 식품산업을 파헤쳐, 무엇인 문제이고,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만든다. 식품안전에 대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사람들과 단체가 나온다. 단순히 먹거리 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식품산업은 사회의 가장 기초적인 산업이므로 사회구조의 다양한 요소들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7장과 8장에서 다루고 있는 자본과 노동과 식량의 문제가 무척 흥미로웠다. 지금까지 다양한 먹거리 문제를 두고 단편적으로 하나하나의 문제에만 집중했던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큰 틀에서 식품산업이 어떻게 움직여지고 있는가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또 책에서는 각 장마다 우리사회의 이야기를 함께 전해준다. 먹거리와 농촌문제에 대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계시고, <내가 먹는 것이 바로 나>라는 책을 쓰고, <굶주리는 세계>, <로컬 푸드>, <학교 급식 혁명>, <래디컬 에콜로지> 등의 책을 번역한 허남혁 선생님이 이 부분을 쓰셨다. 미국의 상황과 더불어 국내의 상황에 대해서도 함께 살펴볼 수 있어서 좋았다. 출판사의 기획이 돋보인다!
환경과 생태분야 책들을 접할 때마다 늘 느끼지만, 외국 번역서들을 읽으면서 참 부럽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이 책에 나온 수많은 사람들과 단체들이 실제로 활동하고 있는 미국이란 나라가 부럽다. 우리나라에도 활동하는 사람들이 없지는 않지만,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통해 보다 많이 공감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나타났으면 좋겠다. 그래서 아이가 밖에서 젤라틴이 들어간 과자를 먹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 따위 하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