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도 안하고 김장했던 추억만 더듬는 아침
며칠 전 오랜만에 알라딘에 들어왔다가 아주 오랫만에 에스와이오(자판 변환하기 귀찮아 한글로) 님의 글을 읽고 반가운 마음에 여러 글에 댓글을 달았는데, 오늘 아침에 에스(이젠 다 두드리기 귀찮아 첫글자만)님께서 일일이 답을 달아주셨다. 그거 읽으러 북플을 열었다가 지난 오늘 메뉴도 열어봤다. 지난 오늘 내가 쓴 글은 다섯개였다. 그중 김장 이야기가 세개나 있었다. 마지막 글이 2022년 글이었는데, 그 글에도 지난 오늘 쓴 글들 중 두개에 김장 이야기가 있었고, 오늘 김장 이야기를 썼으니, 내년 오늘은 세개의 김장 이야기를 읽겠다는 내용을 썼었다. 그 내년, 그러니까 작년 11월 28일에 이 글들을 다시 읽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글은 쓰지 않았네.
2022년 오늘 기준 과거에 쓴 두 번의 김장은 모두 잊지 않고 자잘한 부분까지 꽤 잘 기억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 두 번이 내 평생 가장 힘들었던 김장 1위와 2위로 꼽을 정도로 육체적으로 힘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정작 저 마지막 글인 2022년을 포함해 최근의 김장들은 모두 잘 기억하지 못한다. 최근에는 그냥 운동(사회를 바꾸는 활동이기도 하고 몸을 움직이는 활동이기도 하고)의 일부로 참여하는 것이고, 해가 갈수록 김장에 익숙해져 고수들이 다 된 동료 활동가들이 생겨서 내 역할이 많이 줄었기 때문에 크게 기억에 남을 활약을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심지어 올해는 그 김장에 참여하지 않았다. 작년에는 아마 잠깐 얼굴만 비쳤던 것 같다. 작년에는 그 시간에 다른 일이 있었는데, 억지로 시간을 조정해서 잠깐이라도 얼굴 도장을 찍었던 것이고, 올해는 아예 시간이 안 맞았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초기에는 다들 김장을 해본 경험이 많지 않아 내가 꼭 필요한 상황이어서 미리부터 내 일정을 조정해야 했다면, 최근 몇 년은 다들 김장 도사가 다 되어 내가 꼭 필요하지 않아서 내 일정을 미리 맞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이렇게 과거에 남겨둔 글을 읽으며 당시의 기억을 떠올려보는건 좋은 것 같다. 특히 한밤에 애들을 재워두고(실제로는 억지로 방에 몰아넣고 얼른 자라고 윽박질러놓고) 애들 엄마랑 둘이서 새벽 늦은 시간까지 김장을 하고 뒷정리를 했다고 써놓은 글을 다시 읽으며, 저 날의 사소한 기억들이 마구 떠올랐다. 당시 우리 둘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 저 긴 시간동안 둘이 힘든 노동을 하면서 서로 거의 말이 없었다. 꼭 필요한 말만 꼭 필요한 시점에 억지로 꺼내듯 말했다. 그나마도 나는 주로 제안하는 애들 엄마에게 알았다고 답하고 말없이 묵묵히 몸을 움직였을 뿐, 먼저 입을 연 것은 꼭 필요한 순서나 재료에 대한 언급 뿐이었다. 써놓은 걸 읽어보면 김장을 대강 마친 시간은 새벽 3시쯤이었고, 고무 다라이들과 각종 통들과 엄청나게 많은 그릇들을 다 씻고 정리를 마친 건 4시였다. 그러고 애들 엄마는 피곤해서 씻고 바로 잠이 들었다고 썼는데, 나는 오히려 너무 피곤해서 더 잠이 안와서 씻고 누웠다가 한참 후에 나와서 깡소주를 서너잔 들이붓고 다시 들어왔다고 썼다. 그 기억이 오늘 아침 새삼 사무치게 느껴진다. 그래. 그런 날이, 그런 순간이 있었지.
알라딘 이웃들의 댓글들
지난 오늘 글을 읽는 또 하나의 재미는 댓글들이다. 나는 그리 글을 많이 쓰는 편은 아니었고, 지금도 아닌데, 그럼에도 감사하게 댓글을 남겨주시는 이웃들은 늘 계셨다. 어찌보면 별 것 아닌 인사이거나 다소 형식적인 말 한마디일 수도 있는데, 그것이 마음을 전하는 표현일수도 있다.
오늘 읽은 다섯개의 과거 글들에 달린 여러 댓글들 중에 잊을 수 없는 댓글이 둘 있었다. 하나는 식당에 늦은 점심을 먹으러 들어갔다가 어쩔수 없이 계속 듣게 된 옆자리 일행들의 대화와 실존주의 철학책 이야기를 쓴 글에 달린 댓글인데, 그 분은 그래서 식사를 제대로 못 하셨을 것 같다는 말씀을 남기셨다. 그 당시에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는데 나는 진심으로 그 분에게 고마움을 느꼈고, 어떻게 이 글을 읽고 이런 댓글을 남길 수 있는지 놀랍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무리해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없을 것 같은데, 한편으로 그런 사람이 되면 좋겠다라는 부러운 감정을 느꼈다.
두번째는 긴 시간 꾸준히 내 서재 글들을 읽고 댓글을 남겨주시는 한 이웃님이 자신의 첫 댓글이라고 적어주신 것이다. 그랬구나. 다소 긴 댓글 마지막에 약간 어색함을 감추려는 듯, 첫 방문이예요. 라고 쓰셨다가 나중에 그 밑에 다시 아니, 첫 댓글이예요. 라고 달아두셨다. 그거 안 쓰셨다면 그 분께서 언제부터 내 글에 댓글을 달기 시작하셨는지 알 수 없었을텐데, 덕분에 그 시작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재밌다고 생각했다. 과연 그 분께서는 이 글을 읽으실까? 그래서 본인이 그렇게 썼던 사실을 기억하실까? 나는 못하실 거라고 생각하지만, 이걸 예상하며 자판을 두드리는 것 또한 재미있다.
두번째 달리기 대회
일요일에 두번째 달리기 대회에 나갔다. 9월 초 첫 대회 때에도, 대회 며칠 전부터 계속 관절 통증이 심했고, 대회 당일 컨디션도 안 좋았었다. 심지어 바로 전날인 토요일에 강남에서 기후정의행진을 했었고 그날 관절 통증에도 긴 거리를 뛰고 걷고 한 탓에 다리를 절면서 집으로 돌아왔었다. 암튼 그 첫 대회를 진통제를 먹고 억지로 뛰었는데, 그 경험이 내게는 무척 낯설고 흥미롭고 성취감을 느끼는 계기가 되어 좋았다. 엄청 더운 날이었고, 달리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웠는데, 그걸 참고 결국 결승선을 통과하고 나니 그 뿌듯함이 엄청 컸다. 그래서 올해 안에 한번 더 다른 경기에 참여해보고 싶다고 생각했고, 열심히 알아보고 예약한 것이 이번 두번째 대회였다.
첫 대회와 이번 대회 모두 10킬로미터 코스였다. 첫 대회 때에는 준비과정에서 9킬로까지는 뛰어보았으나 한번에 안 쉬고 뛰었던 것은 아니고, 중간에 제법 오래 쉬고 호흡과 체력을 좀 회복하고 다시 뛰었던 것이었다. 그러니 안쉬고 10킬로를 온전히 뛰었던 것은 그 대회가 처음이었다. 첫 대회를 제대로 준비한 건 7월 말부터였다. 시간으로 치면 약 한 달 반인데, 두번째 대회를 신청하고 준비한 기간도 거의 한 달 반이다. 첫 대회 때는 막판에 거의 2주를 관절 통증이 심해 달리기를 못 했었다. 이번 둘째 대회 때에도 마지막 약 10일 가량 달리기를 못했다. 하지만 둘째 대회 준비는 그 전에 꽤 착실하게 했었다. 첫 대회 때 중반 이후 체력이 딸려서 제대로 뛰지 못하는 나 자신이 너무 한심했기 때문에 이번엔 준비를 잘하자고 마음 먹었었다. 누군가 조언했다. 10킬로를 잘 뛰고 싶으면 그 두 배를 뛰라고. 그러면 자연스레 대회에서 10킬로 정도는 잘 뛸 수 밖에 없다고. 그 말 때문이기도 하고, 한번 10킬로를 뛰고 나니 그 정도는 이제 마음만 먹으면 뛸 수 있다는 자신감 덕분에 나는 꾸준히 거리를 늘려갔다. 마지막으로 뛴 거리는 19킬로였다. 막판에 제법 힘들기는 했지만, 엄청 재밌었고 중간까지는, 그러니까 10킬로를 넘겨 거의 13킬로 정도까지는 별로 힘들지도 않았다. 그래서 자신이 있었다. 이번 두번째 대회는 내가 기대한 목표는 어렵지않게 달성하리라.
둘째 대회날 새벽에 일찍, 그러니까 채 2시도 안 되어 잠이 깼다. 더 자고 한 대여섯시쯤 일어나도 되니까 더 자려고 누워 있었는데, 잠은 오지 않았다. 가만히 누워 있으려니 자꾸 불길한 생각이 들어 일어나서 몸을 움직였다. 전반적으로 몸이 안 좋았지만 특히 왼쪽 무릎과 오른쪽 발목이 아팠다. 대회 시작 한 시간 전에 진통제를 먹을 계획이었다. 미리 다 챙겨둔 가방을 엎어서 준비물들을 하나 하나 다시 챙겼다. 이건 없어도 되려나. 어, 그거 어딨지? 뭔가 더 필요한데 빠뜨린 것 같은데. 입고 나갈 옷을 미리 깔아두고 마지막까지 고민을 했다. 그냥 나가지 말고 진통제 먹고 잠이나 잘까. 아니면 올해 목표 달성을 위해 나갈까.
결국 나는 옷을 챙겨입고 버스를 타고 대회 장소로 향했다. 이번 대회는 출발선과 결승선의 위치가 달랐고, 가방과 겉옷 등을 보관할 물품보관소는 결승선에 있었다. 출발선과 결승선은 버스 두 정류장 정도 거리였다. 나는 사람들이 이 추운 아침에 겉옷을 벗어두고 얇은 달리기 복장으로 어떻게 버티는 지 궁금했다. 버스에서 내리기 전에 보니, 수많은 사람들이 반팔이나 민소매 위에 얇은 일회용 비닐 우비를 입고 인도에서 뛰고 있었다. 가끔은 두툼한 조끼를 입은 사람들도 보였고, 그보다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은 바람막이를 입고 있었다. 나도 계속 고민한 것이 바람막이를 입고 출발선으로 갈지, 그냥 안 입고 버틸지였다. 분명 달리기를 시작하고 조금만 지나 땀을 흘리기 시작하면 벗어서 허리에 감고 뛰어야 할텐데 그게 너무 번거롭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냥 기능성 셔츠 하나만 입고 버티기에는 출발선으로 이동하는 시간과 출발선에서 대기하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바람막이 대신 비닐 우비를 입고 뛰다가 땀이 나면 그냥 거리에 버리려고 하는 구나 깨달았다.
그 순간 좀 화가 났다. 그 수많은 사람들이 비도 안 오는데 바람 잠시 막겠다고 그렇게 많은 비닐 쓰레기를 만들다니! 나는 마지막까지 하던 고민을 손쉽게 해결했다. 나는 그냥 바람막이를 입고 뛰다가 허리에 두르리라. 그래서 남들처럼 쓰레기를 만들지 않았음을 보여줘야겠다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중에 깨달았는데, 그 얇은 바람막이 잠바 하나라도 없었다면 짧지 않은 대기 시간을 버틸수 없었으리라. 출발 시간 이전에 미리 도착해서 몸을 풀면 몸에서 열이 좀 나서 괜찮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기에는 그날 아침이 너무 쌀쌀했다. 게다가 미리 도착해서 준비운동을 하고, 어느 정도 몸을 푼 후에도 시간은 많이 남았다. 추위에 떨며서 제자리 뜀박질 등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는데, 꽤나 지겹고 또 추웠다. 마침내 시간이 다 되었고, 10킬로 코스 출발선에서 그 앞의 하프코스 참가자들 세개 조 모두 출발하기를 기다리는 데에도 꽤 긴 시간이 걸렸다.
여기서 궁금한 점이 하나 있었다. 대회 주최측은 사전에 전체 참가자들에게 공식 기록증을 이메일로 보내라고 요청했다. 몰랐는데 풀코스와 하프와 10킬로는 모두 기록증의 유효기간이 다르더라. 당연히 거리가 긴 하프와 풀코스가 더 기간이 길고, 10킬로는 거리가 짧은 만큼 유효기간도 짧더라. 암튼 나는 9월 초 첫 대회의 기록증 밖에 없으니 그걸 보냈다. 나중에 조 편성 기준이 궁금해서 홈페이지에서 찾아보고 내가 불필요한 일을 했구나 생각했다. 10킬로 코스 기준 조 편성 기준은 A조가 40분 이내, B조가 1시간 이내, 그리고 기록증이 없거나 1시간 이상 기록인 사람들이 C조라고 나와있었다. 내 첫 대회는 1시간을 조금 넘겼기 때문에 나는 기록증을 보내던, 보내지 않던 그냥 C조였다.
자, 이제 다시 대회 당일 아침 출발선에 선 나는 그제서야 내가 무슨 조인지 사전에 확인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나의 배번호표에는 참가번호 앞에 알파벳 A가 적혀있었다. 그러면 나는 A조라는 말인가? 나는 기록으로 보면 분명 C조여야 맞는데 왜 내가 A조에 배정된 것일까? 이거 나중에 문제가 되는 거 아닐까? 갑자기 생각이 많아지고 불안해졌다. 꼭 확인을 받아야 할 것 같아서 멀리 있는 진행요원을 찾아갔다. 대회 시작 직전이라 정신이 없는 진행요원에게 내가 무슨 조인지 묻자, 그는 내 번호표를 가르키며 당연하다는 듯 A조라고 말하고 바쁘게 자리를 옮겼다. 아니, 나도 눈이 있으니 글씨는 읽을수 있다고! 문제는 내 기록으로 왜 내가 맨 앞조에 속해 있는지 그게 궁금했지만, 그 진행요원이 그것까지 확인해 줄 수는 없기에 다시 얌전히 빈 공간을 찾아 수많은 인파 사이로 들어갔다.
나중에 생각한 것이지만, 만약 내가 B조나 C조였다면 목표 달성이 생각보다 더 어려웠을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A조 무리 중에서 약간 뒤쪽에 있었는데, 앞에 사람들이 너무 많고, 자꾸 길을 막아서곤 해서 많이 신경쓰였다. 만약 뒤쪽 조에서 달렀으면 훨씬 더 심하게 사람들 틈에서 뛰던 흐름을 놓치곤 했을 것이다. 누군가의 착오였거나, 아니면 기록증을 제출한 사람이 적었거나, 아니면 전체 참가자 숫자가 너무 많았거나. 어느 경우라도 이번에 내가 맨 앞조에 속한 건 운이 좋은 거였다.
대회 당일 아침은 생각보다 더 쌀쌀했다. 발가락 끝부분과 손은 많이 시렸다. 약간이라도 두께가 있는 장갑은 많이 신경 쓰일 것 같아서 아주 얇은 흰 장갑을 준비했는데, 얇아서 움직이기는 편했지만, 너무너무 손이 시려웠다. 그런데 달리는 와중에 바닥에 버려진 두툼한 장갑들을 몇 번이나 보았다. 사람들은 땀이 나고 몸에 열이 나기 시작하면 비닐 우비 버리듯이 장갑도 막 버리고 뛰는구나. 그날 내가 챙기길 잘 했다고 생각한 것 하나는 귀도리? 방한 귀마개였다. 흔히 넥워머라고 내 생각에 좀 어색한 영어 이름을 가진, 다른 말로는 뭐라 해야할지 잘 모르겠는 것도 같이 구비해서 가져갈까 말까, 입을까 말까 고민했었는데, 그건 안 입기를 잘 했던 것 같다. 달리기 시작한지 약 2킬로도 못가서 바람막이 잠바를 벗어 허리에 묶었고, 귀마개는 잠시 목으로 내렸다가 다시 올리기를 반복하기 시작했고, 4킬로 즈음부터 귀마개를 완전히 벗어서 팔에 끼우고 달렸다. 나는 다른 부위보다 유난히 귀가 시려워 것을 잘 참지 못해서 매년 겨울에는 방한용품으로 헤드폰을 항상 쓰고 다닌다. 만야 저 귀마개가 없었다면 대기시간과 초반 레이스에서 내 기량만큼 달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다만, 구매할 때 화면으로 보내 안 쓸때에는 팔에 끼우고 다닐 수 있다고 사진도 나와있었는데, 팔에 끼우고 달리다보니, 얘가 자꾸 돌아가고 움직여서 많이 신경쓰였다. 달리기 대회는 어떻게든 1초라도 기록을 더 줄이는 것이 목표인데, 조금이라도 신경 쓸 거리를 안 만들어야 한다. 중반 이후로는 차라리 손에 들고 뛰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 그렇게 했고, 확실히 마음이 더 편했다.
약 8킬로 지점에서 나는 페이스메이커 둘을 만났다. 첫 대회 때에 10킬로 코스는 60분 기록의 페이스메이커만 운영한다고 공지했었다. 그날 나는 뒤쪽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페이스메이커를 만나지 못했었다. 이번 대회는 10킬로 코스에도 여러 구간의 페이스메이커를 운영했는데, 나는 그중 50분이라고 적힌 풍선을 달고 뛰는 두 사람을 만났다. 남녀 한 쌍으로 둘은 완전히 같은 페이스로 뛰고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페이스메이커 주변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페이스로 뛰고 있었다. 그런데 왜 50분이지? 나는 계속 520페이스(그러니까 1킬로를 5분 20초에 뛰는 속도)로 뛰고 있었는데, 50분 페이스메이커는 500으로 뛰어야 하잖아. 내가 순간적으로 좀 빨리 달렸다고 해도 이제까지 8킬로를 520 정도로 뛰었는데, 500을 그것도 나보다 앞에서 먼저 출발한 페이스메이커를 따라잡았을 리는 없었다. 그럼에도 기록 욕심이 나서 순간적으로 저 사람들을 따라가면 50분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그러나 나는 520도 아주 살짝 오버페이스였다. 아마도 이들 페이스메이커 두 명은 뭔가 이유가 생겨 살짝 뒤쳐졌던 것이리라. 내 예상대로 얼마 가지 않아서 그들은 페이스를 올렸고 순식간에 내게서 저만치 멀어졌다. 나는 쫓아가보고 싶었지만, 이미 지쳐서 오히려 더 페이스가 떨어지려하고 있었다.
여기가 내 최대 고비였다. 8킬로에서 9킬로까지가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자꾸만 발이 멈추려고 하는 걸 억지로 움직였다. 잠깐만 아주 잠깐만 걷자는 유혹을 뿌리쳤다. 이 추운 날씨에 비싼 신발 신고 이러고 있는 이유를 생각해보라고 나 자신에게 다그치며 멈추지 못하도록 막아야했다.
9킬로를 지나서는 막판 스퍼팅이란 걸 해보고 싶었으나 이미 그럴 힘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내 생각에 대회 시작전에 대기하면서 추위에 버티며 에너지를 너무 많이 쓴 것 같았다. 추위에 유난히 약한, 따뜻한 남쪽 동네에서 올라온 내가 제 기량을 펼치기엔 날이 생각보다 추웠다. 첫 대회는 정말 너무 더웠고, 둘째 대회는 좀 추웠다. 내년에는 좀 달리기 좋은 계절에 대회를 나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결승선을 지났다.
둘째 대회를 신청할 무렵 내 올해 목표는 10킬로 60분 이내에 들어오는 것이었고, 그걸 이 대회에서 달성하고 싶었다. 그런데 10월에 15킬로 이상 뛰기 시작하면서 이미 그 목표는 달성을 못하는 게 더 어려운 숫자가 되었다. 이제 좀 여유있게 뛰어도 50분 후반대는 나왔다. 그래서 목표를 55분으로 조정했다. 이번 대회에서 그 목표를 달성했고, 그 사실이 정말 기뻤다. 드디어 해냈다! 날도 춥고 많이 힘들었는데 결국 해냈다. 이제 내년에는 50분을 목표로 달려야지. 그리고 좀 더 자신이 붙으면 하프에도 도전해봐야지. 기록 신경 안 쓰고 천천히 뛰면 지금도 하프 충분히 뛸 수 있는데, 대회에 나가면서 기록을 신경 안 쓸 수는 없는 법. 지금처럼 6분대가 아닌 5분대 페이스로 하프를 뛸 수 있도록 만든 후에 대회에 나가야지.
사람들은 누구나 세가지 모습이 있다.
공적인 나
개인적인 나
비밀의 나
- [완벽한 타인] 마지막 자막
눈이 많이 왔다. 뉴스에서 120년? 암튼 11월 폭설로는 기상관측이래 처음이라고 했다. 눈이 많이 온 밤에 영화 [완벽한 타인]을 다시 봤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이 영화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국가에 판권이 팔리고 리메이크작이 만들어진 영화라고, 22개국 버전의 내용을 비교하는 영상을 봤다. 그게 아마 2년전 영상이었는데, 그사이 또 다른 나라들에서도 더 찍었을테니, 지금은 그 숫자가 한두개 이상 더 늘어났겠지. 그 영상을 보고나니 영화를 다시 보고 싶어 찾아봤다.
처음 봤을 때 엄청 어이없다고 생각했던 마지막 부분 연출이 이번에는 좋더라. 특히 눈 덮힌 도로에 차가 신호에 걸렸다가 다시 출발하는 장면. 난 눈을 참 싫어하는데, 화면에 담긴 눈은 가끔 좋더라. 화면이니까. 나랑 직접 상관이 없으니까.
원작인 이탈리아 영화도 꼭 찾아봐아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 판이 로컬라이징을 꽤나 잘 했다고 하던데, 두번째 보니 디테일을 참 잘 살렸더라. 물론 아까 말한 22개국 버전 비교 영상을 보면 원작 설정을 크게 벗어나지 않아 꼭 우리나라 판본의 디테일이 더 우수하다고 말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래서 원작을 보고 싶은 것이고. 두번째 보니 배우들의 연기가 눈에 들어오더라. 뭐, 누구 하나 빠질 것 없이 연기를 잘 했는데, 특히 유해진, 염정아, 이서진 이 세명이 조금 더 눈에 잘 들어왔다. 그 중에서도 최고는 이서진. 저렇게 바람둥이 연기가 잘 어울리는 배우가 또 있을까 싶다.
감독이 마지막 자막을 넣을까 말까 고민을 많이 하다가 넣었다고 하던데, 내 생각엔 좋은 선택이었다. 특히 반지가 돌아가는 장면 이후 상황이 바뀐 내용들과 자막은 잘 이어진다고 본다. 영화는 영화이기 때문에 더 보여주고 어렵고, 더 적나라한 표현을 넣을 수 없었겠지만, 당연히 현실은 훨씬 더 복잡하다.
누구나 세가지 모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셀 수 없이 많은 다양한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중 어떤 모습을 얼마나 보여주느냐, 숨기느냐에 따라서 미세하게 다른 내가 될 것이고, 또 보여주고 숨기는 양상과 형태에 따라서도 내 모습은 달라질 것이다.
일터에서 안면만 있거나 철저히 공적 관계로만 얽힌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행동하는 내 모습과 일터 동료들 중에서도 나이를 떠나 친한 사람들과의 나는 완전 다른 사람이다. 그리고 개인적인 친구들과의 나, 아주 친한 절친과 있을 때의 나는 모두 다르다. 거기서 가족들과 나 역시 또 다르다. 마지막으로 혼자 있을 때의 나도 어떤 상황에서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
벌써 연말이 다 되었다. 정말 눈 깜빡할 사이에 한 달이 지나가고 새해가 오겠지. 지금의 나와 그때의 나는 또 얼마나 같고, 얼마나 다를까?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아니 그냥 크게 달라질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올해 연말은 되도록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혼자 조용히 지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