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일찍 잠드는 날들이 많다. 몸도 마음도 춥고 지쳐서 10시 이전에 잠들곤 한다. 어제도 그랬다. 아마 거의 10시쯤 잠들었던 것 같다. 조금 일찍 잠든 그런 날엔 꼭 서너시쯤 잠에서 깨곤 한다. 아마 3시 40분에서 50분 사이에 깨지 않았을까 싶다. 어둠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한동안 멍하니 누워있었고, 한참 후에 요의를 느껴 화장실을 다녀온 뒤에 휴대폰을 열었다가 깜짝 놀랐다. 자정 즈음에 부재중 전화가 두세개 찍혀있었고, 카톡과 텔레그램 등 메신저 앱에 안 읽은 대화가 수백개 있었다. 뭔가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했다.

태블릿을 열어 뉴스를 찾았다. 속보나 특보 등의 머릿말을 단 뉴스 동영상들이 많았다. 하나씩 찾다가 그 문제의 영상을 보았다. 별로 보고 싶지 않은 포동통한 얼굴이 비상계엄을 선언한다고 말하는 말도 안되는 영상. 나중에 어디선가 누군가 이 영상을 딥페이크 영상이라 생각했다고 써놓은 걸 보았다. 그래. 충분히 그럴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요즘은 유명인의 얼굴과 목소리를 거의 똑같이 복제해 가짜 영상을 만들수 있다고 하니.

어쨋든 국회의원들이 발빠르게 모여서 계엄해제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가결했다고 했고, 대통령은 이를 무조건 수용해야 한다는 뉴스도 뒤늦게 보았다. 결국 상황은 이미 다 끝나있었다. 평소 이번 대통령은 검사 출신이라면서 어떻게 저렇게 상식도 없고 멍청한가 라고 생각하며 참 답답했었는데, 이번에는 그 멍청함 덕분에 이 나라가 최악의 상황에 빠지지는 않았다.

계엄령을 선포하기 전에 미리 군대를 움직여 국회를 철통같이 막아놓고, 국회의원들과 보좌관들 등을 총으로 막아섰다면, 서울 시내 주요 건물들과 교차로에 장갑차와 탱크가 즐비한 아침 출근길을 맞이했을 수도 있다. 각종 언론사들이 군인들에게 점령당하고 뉴스는 다시 80년대 땡전 뉴스처럼 땡윤 뉴스가 되어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계엄령을 사전에서 찾아봤다. 戒嚴令 경계할 계, 엄격할 엄. 엄격하게 경계하겠다는 포고령이다. 윤석열이 어제 내리기 이전에 이 나라에 12번 내려졌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가장 많이 계엄령을 내린 인간은 독재자 이승만으로 7번이라고 했던가? 그 다음이 독재자 박정희이고 이승만이 7번이면, 아마 박정희는 4번이겠지. 독재자이자 학살자인 전두환이 한번 더 내렸고, 그것이 마지막이었으니까. 79년 박정희가 죽은 다음날이었다.

그런데 21세기 평화로운 이 나라에서, 아니 물론 누군가는 평화롭지 못했을 것이고, 그건 먹고 살기 더럽게 힘든 이 나라에서 대체로 대부분의 국민들도 평화롭지는 못했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계엄령을 선포할 그 평화와는 또 다른 측면이니까. 암튼 정말 아까 누군가 딥페이크라고 의심했다고 할 정도로 이 선포는 뜬금없고 놀라운 것이었다. 게다가 정말 아무 준비도 없이, 야당 지도부나 대통령실 참모들도 몰랐다는 추측들이 나올 정도로 급하게, 이렇게 그냥 선포할 성질의 포고령이 아닌데. 한 마디로 그냥 촌극이다. 영어로는 해프닝. 문학으로는 꽁트, 방송으로는 코메디극이다.

이번 대통령 이전에 겪어본 대통령들 중에서, 아니 이 나라가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해방되고 다시 미군정의 지배를 받은 후에 새 정부를 구성한 날 이후로, 즉 건국 이후로 단 한 명도 멀쩡한, 제대로 국민과 국가를 위해 일한 대통령이 있었던가? 내 대답은 아니, 없었다. 고민할 필요도 없다. 노태우까지는 언급할 가치가 없고, 김영삼과 김대중은 나름의 공과 과가 있겠지만 둘 다 과가 크다. 김대중이라는 사람에 대한 평가가 다를 수 있겠다. 나는 민중의 관점에서 혹은 사회변혁을 위해 활동하는 사람의 입장으로 본 것이다. 노무현과 문재인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이 존경한다고 말하는 노무현은 내 기준으로 최악의 대통령이다. 새만금 파괴, 경부고속철도 건설로 금정산, 천성산 파괴, 이라큰 파병과 김선일씨 피살 사건, 부안 핵폐기장 갈등 등 큰 싸움들에 직접 참여했었고 그외 작은 싸움들도 끝없이 많았다. 물론 이명박과 박근혜도 당연히 좋은 대통령은 아니었고, 그들 시대에도 크고 작은 갈등과 싸움은 많았지만, 내 기준으로 최악은 단연 노무현이다.

이명박과 박근혜 시대에도 어쩌면 저 인간은 저렇게 멍청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정말로 진지하게. 이명박은 이름 명박을 알파벳으로 mb라고 부르며 메모리 용량이 2메가 밖에 안된다고 2메가로 많이 불렸다. 아무리 좋지 않은 사람이라도 이렇게 웃음거리로 만드는 방식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당시에는 나도 종종 그렇게 부르며 그 갑갑한 시절을 견뎠던 것 같다. 이명박은 한편으로 외모 때문에 쥐에 비유되는 경우도 많았는데, 이건 사실 좀 심각한 외모 비하라서 아무리 이명박이라도 그렇게 불러서는 안 되었다. 아마 당시에 나는 약간의 거부감은 느끼면서도, 한두번쯤은 그 비유를 썼던 것 같다. 박근혜도 참 답이 없다 생각할 정도로 심각하게 상식이 부족하고 멍청했는데, 박정희의 공주라는 의미로 공주님이라 불린 것 외에 다른 건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통용되는 다른 멸칭들이 분명 있었겠지만, 나는 관심을 두지 않았고, 사용한 적도 없었다고 기억한다.

암튼 이명박과 박근혜 그리고 어떤 측면에서는 문재인까지 참 답답하고 갑갑한 인간들이었는데, 이번에 윤석열이 하고 있는 짓거리를 보고 있자니, 그들은 오히려 양반이었구나 생각이 드는 것이다. 예전에 타짜 2편이 나왔을때 1편과 비교해 완전 망작이라고, 어떻게 타짜라는 이름을 달고 이 따위 영화를 만들 수 있냐고 엄청 안타까워 했었는데, 그로부터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3편이 나오자, 2편은 오히려 아니 차라리 훌륭한 명작이라고 칭찬할 수준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그만큼 3편이 총체적으로 엉망인 것이고 이건 뭐 망작의 작 글자를 붙이는 것이 어색한 그냥 쓰레기였다. 타짜2는 3편에 비해 엄청나게 잘 만들기도 했지만, 이젠 시간이 많이 흘러 추억이라는 개념으로 우리 뇌에서 한번 더 아름답게 포장하는 작업을 거치며, 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내게 이명박, 박근혜, 윤석열은 타짜2와 타짜3 처럼 느껴진다. 이 정도로 엉망인 인간이 대통령이란 자리에 앉아 있다보니 차라리 이명박이나 박근혜가 더 나았다는 착시 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사실 비교할 일이 아니다. 윤석열이 그만큼 나쁜 인간이라면, 이명박도 박근혜도 또한 딱 그만큼 나쁜 인간들이었으니까.

계엄령 선포 이후 벌어진 한바탕 촌극이 국회 계엄해제 결의안 가결 기준으로 약 3시간, 공식적으로 다시 해제 선포 기준으로 약 6시간만에 마무리 되었다. 또 온라인 어디선가 누군가 이걸 기네스북에 올려야 한다고 했다. 과연 이보다 짧게 끝난 계엄령이 있었을까?

자, 이제 윤석열은 자멸의 길을 걸을 것이 명확하게 보인다. 지금 시점에서 그에게는 별다른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 체포를 당할수도 있고, 탄핵을 당할수도 있고. 그 외에 다른 어떤 길로 가더라도 그 자리를 더 길게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이미 우리는 박근혜 탄핵 이후 문재인이라는 그리 썩 좋지않은 전례를 겪었다. 사람들이 흔히 간과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든 사람이 바로 문재인이라는 사실이다. 문재인이 그렇게 무능하게 그 자리에 앉아있지 않았다면 지금의 윤석열도 없었다.

지금부터 다가올 혼란의 시기가 두렵다. 특히 이재명이라는 사람이 큰소리를 치고 이 자리에 새롭게 앉을 확률이 높기 때문에 걱정스럽다. 빨간당과 별반 다르지도 않은 파란당이 마치 자신들이 선인양, 진보인양, 국민을 위하는 척 위선을 떨어대는 모습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다. 과연 이 나라는 언제쯤 제대로 된 대통령을 만날 수 있을까? 인류가 멸종하기 전에 가능할까? 모르겠다. 아마 불가능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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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4-12-04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아침에 누가 카톡에 올려준 영상으로 봤는데...첨엔 이게 뭐지..하다가 혈압오르다가..
조소를 금할 수 없는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경험했네요..ㅎㅎ
탄핵이 압당겨질 사건을 쳐버렸으니...내란죄로 처벌이 가능한지도 알고 싶네요..

감은빛 2024-12-04 17:04   좋아요 0 | URL
그래서 제가 자멸이라고 썼어요. 우스갯소리로 대통령 하기 싫어서 그랬다는 얘기와 술먹고 그랬다는 설이 도는데, 당연히 둘 다 아니겠지만, 정상적인 판단을 절대 아니죠.

법적 해석으로 처벌을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 처벌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희선 2024-12-05 0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찍 잠들었다 새벽에 깨어서 이 일을 아셨군요 그동안 계엄령 많았군요 그런 거 몰랐습니다 그제 밤에 보고 무슨 저런 일을 했네요 시간이 흐르고는 뒷감당 어떻게 하려고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해제돼서 다행이기는 합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 동안 걱정되기도 했습니다


희선

잉크냄새 2024-12-05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의 상황이 기가 막혔다면 오늘은 기가 차네요. 전 쿠데타보다도 그 이후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 더 두렵고 치가 떨리네요. ‘쿠데다, 까짓것 그냥 한번 해봤어‘ 라고 말하는 반란수괴와 ‘쿠데타, 까짓것 오죽하면 했겠냐‘는 부역자들, 그리고 그 뒤에서 ‘쿠데타, 까짓것 한번 해봐, 오빠‘ 라고 반란수괴를 가스라이팅 했을 대통년까지. 절망적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