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움
토요일 오전에 1시간짜리 강의를 맡았다. 내가 정말 잘 못하는 것 두 가지는 짧은 글을 쓰는 것과 짧은 강의를 하는 것이다. 긴 글을 얼마든지 쓸 수 있지만, 짧게 써달라고 하면 머리가 아파진다. 예전에 시민신문에 연재할 당시에는 정해진 원고 분량의 두 배 정도 글을 써놓고 분량에 맞게 줄이느라 엄청 힘들었다. 강의도 마찬가지다. 세시간이나 네시간짜리 강의는 얼마든지 환영하지만, 1시간짜리 강의는 너무 어렵다. 요청받은 주제를 제대로 떠들어보려면 적어도 서너시간은 필요한 내용이었다. 그래서 준비 과정에서 더 긴장되었고, 핵심 내용을 빼먹지 않으려고 미리 대본을 작성하기까지 했다. 만약 2시간짜리 강의였다면 이렇게까지 준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주 강의했던 주제였고, 2시간 안에 적절하게 시간 분배하며 떠들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열심히 준비한 것에 비해, 강의 참석자가 무척 적었다. 지금까지 강의했던 중에 제일 적었다. 두자리 수를 채우지 못 했으니. 게다가 온라인 강의라는 부분 역시 횟수가 늘어나도 자연스럽게 진행하지 못한 원인이 되면서 여러모로 아쉬움이 많이 남게 만드는 원인이었다. 강의를 열심히 잘 하고도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스스로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강의를 준비하면서 새로 논문도 많이 찾아보고, 해외 기사들도 많이 찾아봤는데, 그런 내용들을 다 제대로 전달하지도 못했다. 시간 압박 때문에 조금 더 얘기해주고 싶었던 걸 망설였고,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다음 내용으로 넘어갔다. 그런 틈새가 생기면서 매끄럽게 진행이 되지 않아서 조금 당황하게 되었고, 나도 모르게 단어가 떠오르지 않거나 발음이 부정확하게 되는 일이 벌어지고 그래서 또 다른 실수로 이어지는 등의 평소 나 답지 않은 사소한 실수들이 자꾸 나왔다.
나를 믿고 강의를 부탁한 분에게 실망을 안겨드린 것 같아서 좀 부끄러웠다. 아, 진짜 온라인 강의가 아니었다면 이 정도는 아니었을텐데. 강의 시간이 1시간만 더 있었어도 이보다는 훨씬 더 잘해을텐데. 아쉽지만 지나간 일을 되돌릴 수는 없는 일. 이번 상황을 잘 새겨서 다음에는 더 잘 할 수 있는 거름으로 만들어야지.
체스
작은 아이가 학교 방과후 활동으로 체스를 배우고 있다. 아이는 처음 배우는 체스가 재밌었는지, 내게 조잘조잘 이야기를 했다. 마침 아이들과 대형 마트 근처에 저녁을 먹으러 가던 참이었다. 저녁을 먹고 나서 나는 아이에게 체스 판을 사주고, 집으로 돌아오자 마자 같이 체스를 뒀다. 나는 체스를 한번도 둔 적이 없어서 두는 법을 몰랐기에 아이에게 배웠다. 다만 어려서부터 장기는 많이 뒀기 때문에 말의 움직임에 있어서는 익숙한 패턴들이 보였다.
체스 판을 구매한 날 작은 아이와 두 판을 뒀는데, 아이에게 체스 두는 법을 배운 내가 두 판을 내리 이겼다. 장기와 비슷한 면이 있어서 몇몇 말의 운용이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이후 아이는 계속 체스를 배우고 익히면서 아빠를 이기는 것을 목표로 했다.
어떤 부모들은 아이에게 일부러 져주기도 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어떤 일이든 아이에게 일부러 져주는 편은 아니다. 그게 달리기거나, 보드 게임이거나, 가위바위보라도 어떤 놀이라도 아이가 스스로 노력해서 이길 수 있게 노하우를 가르치는 편이지, 일부러 지는 편은 아니다. 체스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는 몇 주가 지나도록 계속 크게 지고 이기지 못하자 좀 기가 죽은 모습이었다. 게다가 작은 아이보다 더 체스를 못 두는 큰 아이와는 딱 한 판을 뒀는데, 승부욕이 강한 큰 아이가 졌다는 사실 때문에 눈물을 보이며 제 방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가 버렸다.
그리고 다시 한 주 뒤에 작은 아이와 한 판을 뒀는데, 이때는 내가 조금 정신이 산만해 실수를 했던 건지, 아니면 유난히 아이가 잘 뒀던 건지. 처음으로 무승부가 나왔다. 아이는 엄마에게 큰 소리로 자랑을 했다. 드디어 아빠랑 비겼다고. 다음에는 이기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 후 다시 몇 주가 지나는 동안 나는 다시 계속 연승을 이어가고 있다. 이제 다시 비기는 것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체스는 생각보다 룰이 복잡하더라. 아이가 아직 어리고 경험이 부족해서 쉽게 이기는 것이지, 결코 내가 잘 두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나보다 조금 더 경험이 많은 사람을 만난다면 거의 이기지 못할 것이라 본다. 나는 작은 아이에게 장기를 가르쳐보고 싶었다. 장기라면 훨씬 더 재밌게 같이 놀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이는 싫다고 거절했다. 음. 만약 아이가 호기심을 가진다면 우리나라 장기에 그치지 않고, 중국 장기(샹치)와 일본 장기(쇼기)까지 같이 배워가며 놀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져봤는데, 아이는 응하지 않았다.
뭐 아이가 싫은 걸 억지로 시킬 수는 없는 일. 그나마 아이가 체스에 관심을 가져서 같이 놀 수 있는 것이 내겐 큰 선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 이제와서 새로 배울 것이 많은 것이 부담스러워 그런 것인지 몰라도 체스를 막 잘 두고 싶다는 생각이 그닥 들지는 않는다.
그래서 예전에 봤던 [퀸스 갬빗] 드라마를 다시 보면서 흥미를 가질 수 있으려나 생각을 해봤다. 책도 사려고 했는데, 몇몇 알라딘 이웃 분들의 평을 보니 드라마와 거의 다르지 않다는 내용이 있어서 책을 살지 말지 조금 망설여진다. 그리고 사놓고 일지 않았던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을 발견했다. [체스 이야기]를 읽지 않고 책장 어딘가 방치해두고 있었더라.
일단 [퀸스 갬빛] 드라마를 다시 보기 시작한 것은 성공이었다. 처음 봤을 때에도 여주인공을 맡은 안야 테일러 조이의 연기에 푹 빠져서 봤던 기억이 나는데, 이번에도 연기력 뿐 아니라 연출과 의상, 영상미 까지 뭐 하나 흠잡을 데 없는 잘 만든 드라마라고 느끼며 빠져들었다. 아쉬운 건 체스를 두는 내용이 자세히 묘사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긴 [신의 한 수]도 소재만 바둑일 뿐 바둑을 두는 장면은 전혀 의미가 없었지. 원작이 일본 만화라고 알고 있는 [3월의 라이온]은 어쩌다 실사판으로 대충 봤는데, 주인공들이 쇼기를 두는 장면이 그래도 비중이 조금 있는 편이라고 느꼈다. 특히 우리나라 장기와는 전혀 다른 면이 많아서 호기심이 많이 생겼고, 두는 법을 따로 찾아보고 우리 장기와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었다.
만약 작은 아이가 이대로 계속 체스에 관심을 유지하고 조금씩 실력이 늘어간다면 나 역시 더 실력을 늘리기 위한 노력을 같이 할 수 있을텐데, 과연 아이가 그럴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어쩌면 이미 관심이 다른 것으로 옮겨가는 것은 아닌가 싶다.
운동
사실 아이들과 함께 해보고 싶은 건 운동이었다. 예전부터 종목에 관계없이 뭐든 아이들과 몸을 움직이며 노는 것이 좋았다. 아이들은 어렸을 때는 나를 잘 따랐기에 배드민턴도 같이 치고, 쉬운 코스로 등산도 종종 다니고, 가볍게 축구도 하곤 했다. 큰 아이는 애들 엄마의 영향으로 동네 여자 축구단에 가볍게 참여하기도 했다. 사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내 손으로 아이들에게 태권도, 권투, 격투기 등을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도 했는데, 그렇게 힘들게 몸을 써야하는 무술을 부모가 가르치는 일은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큰 아이는 나중에 태권도 도장을 다니기도 했는데, 시범 경기를 보러 갔다가 이 아이는 태권도에 참 맞지 않구나 하고 깨달았다. 본인의 흥미와 용기가 따라주지 않는다면 쉽지 않다고 느꼈다. 인도 영화 [당갈]을 작은 아이와 같이 보면서 아빠랑 같이 레슬링을 배워보면 어떠냐고 여러 번 물어봤는데 아이들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예전에는 가끔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운동을 할 때 아이들이 내 철봉에 매달려 놀거나 아령이나 케틀벨을 들어보려고 용을 쓰기도 했다. 물론 아이들이 어렸을 때였기 때문에 꿈쩍도 하지 않을만한 무게였고, 철봉 역시 놀이기구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아빠와 같이 운동할 수 있도록 운동에, 아니 가볍게 몸을 움직이는 정도의 신체활동에라도 관심을 가져주면 참 좋겠다는 내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며칠 전 저녁을 먹고 작은 아이와 공원 산책을 나갔다가, 야외 농구 코트에서 농구 연습을 하고 있는 한 가족을 발견했다. 얼핏 보았던 거라 나이를 장담할 수는 없지만, 부부는 모두 30대 초중반으로 보였다. 아이들은 이제 겨우 대여섯살 수준이었다. 그 집 작은 아이는 아직 어려 그 큰 농구공을 어쩌지 못했지만, 큰 아이는 어린 나이에도 큰 농구공을 튕기며 드리블을 했다. 수비수를 등지고 드리블하는 모습이 엄마 아빠가 연습하는 장면을 잘 보고 따라하는 것 같았다. 그 집 아빠는 키와 몸매를 보아 기본적으로 운동을 좋아하고 운동 신경이 좋다고 느꼈다. 농구 실력도 제법 좋아보였다. 그리고 엄마는 실력은 뭐라 말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래서 배운지 그리 오래된 것 같지 않아 보였지만, 움직이는 모습은 무척 열성적으로 보여서 부러웠다.
당연히 거절당할 줄 알았지만, 같이 걷고 있던 작은 아이에게 아빠랑 같이 농구하자고 졸라봤는데, 아이는 전혀 흥미를 갖지 않았다. 작년에 학교에서 농구를 접했던 큰 아이는 당시에 조금 농구에 흥미를 가졌었는데, 그때는 내가 농구를 같이 할 짬을 전혀 내지 못했었다. 코로나 때문에 농구할 수 있는 공간도 찾기가 쉽지 않았었다. 다시 큰 아이를 꼬셔봐야겠다. 과연 넘어올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