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추억, 기억


오늘도 또 새벽에 잠에서 깼다. 늘 악몽을 꾸다가 깨곤 했는데, 이번에는 악몽은 아니었다. 살짝 슬픈 이야기이긴 했는데, 악몽이라 부를만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언젠가 소설 소재로 써먹으려고 폰을 들어 메모장을 열었다가 귀찮아서 다시 닫고 누웠다. 조금이라도 더 자려고 눈을 감았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이런 저런 잡다한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가고,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다가오는 어린이날에 생각이 멈췄다. 동네에서 어린이날 행사를 하는데, 이제 6학년인 작은 아이를 데리고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일 때문에 잠시라도 들러야 하는데, 혼자 가서 일만 하기에는 좀 억울한 느낌이다. 아니 사실 꼭 가야하는 건 아닌데, 도의적으로 얼굴이라도 보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아이에게 같이 가자고 꼬셨는데, 안 넘어온다. 어렸을 때는 이런저런 행사들, 회의와 토론회와 집회 따위에 아이들을 정말 많이 데리고 다녔다. 작은 아이의 책상에는 우리나라 근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사진과 간단한 설명으로 담은 연대표가 붙어 있었는데, 가장 마지막 사건이 박근혜 탄핵 촉구 촛불집회였다. 작은 아이에게 저 사진 속 어딘가에 우리도 있었다고 말하자. 안그래도 학교 수업 시간에 친구에게 자신이 저 자리에 있었다고 말을 했단다. 사실 작은 아이는 이런저런 잡다한 행사에 많이 데려갔지만, 집회나 행진에는 별로 데리고 다니지 않았다. 큰 아이를 키울 때는 내가 그런 집회나 행진의 주최를 맡은 담당자인 경우가 많아서 많이 데리고 다녔다. 암튼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아이들을 데리고 다녔던 온갖 집회 현장들이 떠올랐다. 그때는 아이들도 고생시켜서 미안한 마음이 컸지만, 아이들이 나를 따라 다녔어도 잘 놀고 잘 지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점점 자라면서 아빠는 자주 자기들을 어딘가에 데려다놓고 본인 일을 하느라 바빴고, 챙겨주지 않았다고 말을 허더라. 아이들이 이미 많이 자랐구나 싶었다. 그 다음부터는 어지간하면 일을 해야 하는 장소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가지 않으려고 했다. 않으려고 했다고 표현한 것은 이후로도 가끔은 데리고 다녔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러다가 구글 포토 사진첩에 들어가 옛날 사진들을 찾아봤다. 사진과 친하지 않아서 찍은 사진이 많지 않은데, 아이들이 어렸을 때 찍은 사진은 꽤 많더라. 죄다 아이들 사진만 있었다. 하나씩 살펴보는데, 그 가운데 몇 개의 동영상들이 보였다. 눌러보니 당시 애들 엄마가 찍은 것들이 몇 있었다. 저 때 저런 걸 찍었었구나. 갑자기 새벽에 애들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묘해졌다. 한때 저런 목소리로, 저런 눈빛으로, 저렇게 잘 지냈던 시절이 있었지. 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이기 때문에 더 슬프게 느껴졌다.


사진들을 쭉 넘겨보면서 사진으로 남은 장면과 남지 않았으나 머리 속에 사진처럼 찍혀있는 추억과 그리고 단편적으로 떠오르는 기억들에 대해 생각했다. 아이들 사진을 제외하고 간혹 발견할 수 있는 애들 엄마나 가족들의 사진은 낯설었다. 저 시절에 저런 모습이었구나. 그리고 그보다 훨씬 더 가끔 발견할 수 있는 내 모습은 더욱 낯설었다. 살면서 유일하게 딱 한 번 파마를 했는데, 뽀글뽀글 아줌마 파마가 되어버려서 엄청 속상했던 기억이 있다. 그 시절은 내 기억 속에만 남아있는 줄 알았는데, 유일하게 찍힌 내 사진이 있더라. 시간이 조금 흘러 파마가 많이 풀렸고, 끝 부분을 좀 잘라서 그래도 제법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보였다. 그제서야 약간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아무리 못난 얼굴이라도 그래도 시기 별로 내 모습을 좀 남겨 놓았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마음이었다.


사람에게 상처 받고, 사람에게 위안을 얻고


주말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대부분 좋아하는 사람들. 나를 인정해주고, 걱정해주는 사람들이었다. 그들과 시간을 보내며 많이 떠들고 많이 웃었다. 아주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을 하면서 겪는 스트레스는 대부분 사람들 때문이다. 그만큼 대인관계라는 것, 사회생활이라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사람들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해소한다. 그들이 공감해주고, 위로해주고, 묵묵히 들어주는 것으로 나는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가끔 나란 인간 왜 인생을 이렇게 밖에 못 살았나 절망하는 날이 많지만, 그래도 가끔은 운이 참 좋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직도 내 주변에는 이렇게 나를 위해 시간을 내주는 사람들이 많구나 싶어서다.



어떤 감정


작년 가을에 어떤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갑자기 사고 후유증으로 통증이 심해져 나는 아주 기본적인 것만 알려주고 실무를 일터 후배 활동가가 다 맡았었다. 그때 그의 여자친구가 많이 도와줬다고 했다. 그 분은 준비만 도운 것이 아니라 행사 당일에도 현장에서 진행을 도왔다. 나로서는 말로만 듣던 분을 그날 현장에서 처음 마주쳤는데, 후배 활동가가 미리 말을 해주지 않아서(아마 정신이 없어서 말할 여유가 없었겠지만) 처음엔 그의 여자친구일 거라고 생각을 못 했는데, 두 사람이 대화하는 걸 보면서 짐작할 수 있었다.


그때 도와줘서 고맙다고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했더니, 두 사람 모두 회를 좋아한다고 회를 사달라고 했다. 그런데 서로 바쁜 삶을 살다 보니 계속 시간이 안 맞았고, 차일피일 미뤄오다 최근에서야 두 사람과 회를 먹으러 갔다. 젊디 젊은 청춘 남녀가 티격태격 하기도 하고, 꽁냥꽁냥 거리기도 하면서 회를 먹는 모습을 앞에서 지켜보고 있으니, 나는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른 느낌이었다. 나도 언젠가는 저런 시절이 있었는데, 생각하다가 문득 떠올랐다. 애들 엄마와 연애할 때, 당시 40대 중반의 농민회 형님이 우리 둘을 불러 밥을 사줬던 날이 있었다. 그때 형님도 거의 드시지 않고 우리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지켜보셨던 기억이 났다. 그때 형님은 우리를 보며 어떤 기분이셨을까? 며칠 전에 내가 후배 활동가 커플을 보며 느꼈던 것과 얼마나 같고 또 얼마나 다를까?


그건 분명 젊음에 대한 부러움과는 달랐다. 회한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을까? 이제 다시는 오지 않을 어떤 사건과 감정에 대한 느낌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방점이 찍히는 부분이 평생 다시는 겪지 못할 거라는 것에 있었다.
















토요일에 철가면을 읽다가 끊고 일요일부터는 이 책을 시작했다. 이 책도 구매하자마자 조금 훑어보고 책장에 꽂혔던 걸 오랜만에 꺼내 들었다. 철가면을 아주 재밌게 잘 읽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무 이유 없이 sf가 읽고 싶어졌다. 그때 바로 눈에 들어온 책이 이 책이었다. 읽으려고 책상 위에 올려두긴 했는데, 두꺼운 철가면을 읽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진득하게 오래 읽을 여유가 별로 없어서 먼저 다 읽고 시작하기에는 너무 오래 걸릴 것이 뻔했다. 뭐 늘 그랬듯이 조금씩 나눠서 읽어야 할 상황이었다. 찔끔 찔끔 번갈아가며 읽어야겠다.


아! 북플에 확인해보니 오늘(5월 3일)은 과거의 오늘 쓴 글이 없더라. 즉, 지금 쓰는 이 글이 2004년 서재를 시작한 이후 18년 만에 처음으로 5월 3일에 쓰는 글이라는 뜻이다. 뭐든 처음은 이유 없이 기분이 좋기 마련이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끄적인 이 글 덕분에 오후부터는 기분 좋게 남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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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2-05-03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음해 5월 3일엔 이 글을 썼다고 알려주겠네요 잊고 있다가 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는 어떨지, 한해 동안 큰일 없이 지내시기 바랍니다 바란다고 그렇게 될지 모르겠지만...


희선

감은빛 2022-05-04 19:52   좋아요 1 | URL
아마도 잊고 있다가 북플이 알려줘서 발견하겠죠.
그날 따라 바빠서 북플에 접속할 여유가 없다면,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겠네요.

말씀은 고맙습니다만, 과연 큰 일이 없을 수 있을까 싶어요.
대통령이 바뀌면 거리에서 시간을 보낼 일이 많아질 것 같아요.
이래저래 큰 일이 없을 수 없는 조건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