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안


아침에 출근 준비를 하고 있는데, 외국인들과 대화하는 앱에서 알림이 떴다. 스무살의 터키 여성이 영어로 말을 걸었다. 한국인들은 왜 다 이렇게 어려보이는 것이냐? 이게 유전자의 영향인가? 아니면 라이프 스타일의 영향인가? 처음 말을 걸면서 인사도 한 마디도 이렇게 다짜고짜로. 좀 황당했다. 이 앱은 생년월일을 필수적으로 입력하게 되어있고, 대화 상대방의 나이와 네이티브 언어와 공부 중인 언어를 공개한다. 나는 40대 중반에(앱에서는 만 나이로 정확한 숫자가 나온다.)한국어 네이티브이고 영어를 조금 할 줄 알고, 터키어와 힌디어와 중국어를 배우고 싶다고 나온다. 그리고 사진도 필수적으로 공개하게 되어 있다. 내가 프로필에 등록한 사진은 아마 3년쯤 전에 여행지에서 찍은 셀카였다. 그 사진을 보고 한국인은 왜 다 어려보이냐고 내게 따지듯이 말을 걸었던 것이다. 물론 따지듯이 라는 느낌은 그냥 내 기분 탓이고, 그는 그런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조금 고민하다가 한국인이 다 어려보인다고 생각하는 건 아시아 인들의 얼굴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느끼는 편견이라고 먼저 답했다. 이어서 내 나이 또래 중에 나와 비슷한 얼굴이 많으며, 나는 딱히 어려보이는 편은 아니라고도 답했다. 사실 그 사진을 찍었을 무렵이면 오히려 내 나이에 비해 더 나이가 들어보인다는 평을 늘 듣고 다닐 때였다.


그래 나도 한때는 동안으로 불린 적이 있었다. 아니 30대 후반이 되기 전까지는 늘 그런 소리를 듣고 살았다. 심지어 30대 중반에도 술이나 담배를 사러 가면 신분증을 요구하는 경험을 겪기도 했고, 택시 기사님이 학생이라 여기고 반말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데 30대 중반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으며 급격하게 늙어버렸다. 그리고 최근 2년 사이 나는 다시 또 한번 급격하게 늙었다. 이젠 더이상 그 누구도 어려보인다는 말을 할 수 없으리라.


암튼 그가 마치 따지듯이 묻는 그 말들 때문에 새삼 서러운 생각이 들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렇게 급격하게 늙기 전의 나에게 꼭 주의하라고 말을 해주고 싶다.


그는 그제서야 인사도 없이 이렇게 질문을 던져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리고 그제서야 몇 가지 인사말과 서로의 신상을 묻는 대화를 이어갔다. 출근 시간이라 길게 이야기는 못 했고, 대화는 짧게 끊겼다.


출근길에 그 앱으로 대화를 나눴던 여러 외국인 여성들을 찾아봤다. 대부분 길게 대화를 이어가지는 못했다. 이건 내 성향이나 외국어 실력 때문인지, 이 앱의 불편함 때문인지 모르겠다. 제일 오래 대화를 나눴던 몇몇 여성들은 한 2년 이상 대화를 이어간 경우도 있는데, 대체로 내가 흥미를 잃으면서 한동안 연락이 끊겼다가 다시 복귀해서 한참 대화를 하다가 또 둘 중 하나가 흥미를 잃어서 긴 시간 대화가 끊기기를 반복했는데, 그럼에도 다시 말을 걸면 또 대화가 이어지는 경우들이었다.


그냥 재미로 가볍게 대화를 나누는 건 나쁘지 않은데, 딱 거기까지가 한계다. 더 깊은 얘기를 나누기엔 내 영어가 짧고, 영어 네이티브가 아닌 경우 상대방도 대체로 영어가 그렇게 뛰어나지 않더라. 무엇보다 흥미를 떨어뜨린 원인은 시도때도 없이 엄청나게 많은 중국 젊은 여성들이 말을 걸어왔던 것 때문이었다. 그들 대다수는 대화를 나눈지 얼마되지도 않아서 위챗으로 대화하기를 요구했다. 한국에서는 위챗을 사용할 수 없다고 답하면 그렇지 않다고 우기며 계속 위챗만을 고집했다. 간혹 라인이나 왓츠앱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어서 그 두 앱도 다 깔아뒀는데, 그 경우에는 제법 오래 대화가 이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암튼 너무도 똑같은 패턴이 너무나도 자주 또 많이 생겨서 질려버렸고, 그래서 그 앱을 지워버렸다. 한동안 잊고 살다가 문득 오래 대화했던 다른 사람들이 생각나서 다시 앱을 깔면 또 중국 여성들의 대시가 시작되었고, 또 앱을 지웠다. 그렇게 지우고 깔기를 반복하고 있다.


아무래도 중국어를 공부하고 싶다고 체크한 항목을 지워버려야겠다. 아, 그 터키 여성이 왜 터키어를 배우고 싶냐고 물었을 때, 뭐라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냥 배워보고 싶었으니까. 그런데 발음이 너무 어려워서 사실 손을 뗀지 오래되었다. 터키어 항목도 그냥 지워버려야겠다. 


주말은 독서와 함께


토요일이다. 아침부터 4시 즈음까지 행사 하나를 진행했다. 참가자들이 만족하는 반응을 보여서 준비하고 진행한 입장에서 무척 기분이 좋았다. 그걸 준비하느라 나름 고생했던 나에게 스스로 칭찬해줬다. 


이제 친한 선후배들과 어울리러 갈건데, 맛난 걸 먹고 나서는 책을 좀 읽어야겠다.
















어렸을 때 학급문고로 읽었던 책은 축약판이었다. 너무 재밌어서 어러번 읽었었는데, 어른이 되고 나서 다시 떠올려보니 후반부터 내용이 기억나지 않았다. 다시 읽어보고 싶어서 샀는데, 구매한 직후에 조금 읽다가 흐름이 끊겼다.


며칠전부타 다시 읽어보니 너무너무 재밌었다. 이번 주말 다시 책의 세계로 빠져야겠다.


아, 4월의 마지막 날이다. 그냥 그렇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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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22-05-01 14: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런 앱도 있군요. 저는 나중에 스페인어 다시 공부해보게 되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네요.ㅎ

감은빛 2022-05-03 16:13   좋아요 1 | URL
원래는 서로 배울 수 있도록 학습을 도와주는 앱이었던 것 같은데,
실제로 그렇게 기능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유료 결제를 해보지 않아서 어떤 기능이 더 있을지 저도 궁금하네요.
암튼 여러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해 볼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건 장점입니다.
다만 대화를 주로 나누기 위한 메신저 앱으로서는 또 불편함이 있어요.

얄라알라 2022-05-01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철가면, 복수하는 내용이었던 것 같은데 초딩 때 읽었으니 가물거립니다..

감은빛 2022-05-03 16:15   좋아요 0 | URL
알라님도 초딩때 읽으셨군요. 저도 기억이 잘 안나서 다시 읽어요. ^^

꼬마요정 2022-05-01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뒤마의 철가면이 아니네요. 우와 재미있을 것 같아요. 저도 읽어보겠습니다 ㅎㅎ

감은빛 2022-05-03 16:16   좋아요 1 | URL
뒤마의 철가면도 축약판 밖에 읽어보지 않아서 장담할 순 없지만,
소년소녀문학전집 축약판 기준으로는 뒤마의 철가면보다는 훨씬 재밌었습니다.
순전히 제 기준이기는 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