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교생선생님이나, 결혼 전의 선생님들에게 항상 졸라대던 게 있었다. 바로 '첫사랑'이야기였다. 조금 남는 시간이 생기거나 질문이 있냐고 물어보면 늘 '첫사랑' 타령이었다. 그럴때면 선생님들은 묘한 미소를 띄우며 다른 이야기로 주의를 돌리거나 아예 다시 수업을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나중에는 내가 그 처지를 고스란히 겪게 되었다.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해 종종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곤 했는데, 조금 시간이 남아 아이들에게 쉬는 시간을 주면 앞쪽에 앉은 여학생들이 입을 모아 소리쳤다. '선생님! 첫사랑 얘기 해주세요!' 딱히 옛날에 선생님들이 어떻게 했던가 기억을 떠올린 것도 아닌데, 나 역시 다른 이야기로 주제를 바꾸거나, 그래도 안통하면 아예 다시 책을 펼치며 수업을 이어가겠다고 해서 원성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오래전에 '작가들의 첫사랑'이란 주제로 여러 작가들이 겪었던 짧막한 첫사랑 이야기들을 엮어서 낸 책이 있었다. 워낙 예전에 읽었던 책이라 제목도 가물가물 한데 거기에 등장한 유명한 작가들의 첫사랑 이야기들이 참 인상적이어서 여러번 읽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 집에선 보이지 않는 걸 보니, 고향 집에 있는 것 같다.  

왜 갑자기 첫사랑 이야기냐고? 계기가 있다. 지난 주 목요일로 거슬러 간다.

지난 주 목요일 저녁 아내가 홀로 외출을 했다. 아이들을 내게 맡긴채로 혼자 외출한 건, 둘째 태어나고 거의 4달만에 처음이었다. 아내가 간 곳은 '여성노동자 글쓰기모임'이었다. 한 달에 한 번씩 모임이 있는데, 앞으로 달마다 나가고 싶다고 했다. 나는 흔쾌히 그러라고 했다. 둘째가 분유를 잘 먹는 편이 아니라서 조금 걱정이 되긴 했지만, 뭐 아내도 하고 싶은 일은 하고 살아야 하니까, 한 달이 아니라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나가라고 했을 거다. 

아마 한 두어 달 쯤 전이었던 것 같다. 아내가 느닷없이 '여성노동자 글쓰기모임'에 나가고 싶다고 말했던 게. 아니 꽤 오래전에도 한번쯤 얘기한 적은 있는 것 같은데, 이번에는 그냥 말로만 그치지 않고, 구체적으로 참가할 수 있는 방법을 물었다. 아마 해마다 가을쯤 강좌를 열었던 것 같은데, 그 강좌를 듣는 것으로 시작하는 게 제일 무난할 거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시간이 좀 지나서, 아내는 직접 운영자인 박수정 선배의 블로그에 글을 남겼고, 나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며칠이 지나서 수정선배의 전화를 받았다. 처음엔 수정선배인 줄 몰랐다. 한참 얘길 하는데, 아내얘길 꺼내길래, 누군가 아내 친구이거나, 아내 일과 관련된 사람 중에 내가 아는 사람인가 싶었다. 그런데 글쓰기 모임 얘길 듣고서야 머리속에서 퍼즐이 맞춰졌다. 수정선배였다. 나는 아내의 연락처를 알려줬고, 수정선배는 직접 아내에게 모임 일정을 알려줬다.

지난 주 첫 모임에 다녀온 아내는 그날의 주제가 '첫사랑'이었다고 전했다. 대부분 결혼하고 아이들이 클만큼 커서 어느정도 시간에 여유가 생긴 아줌마들이었다고 했다. 나는 예전에 강좌 진행에 도움을 주기위해 두어번 참여해봐서 대충 주요멤버들은 알고 있었다. 아내의 얘길 들으며 몇 년 만에 그 사람들의 얼굴들을 머리속으로 떠올려 보았다. 암튼 그날은 주제가 주제인지라 그 자리를 나서는 순간부터 그 시간에 들었던 말들은 절대비밀에 부쳐야 했다. 

단 한 명 예외가 있었으니, 바로 르포작가 박수정 선배였다. 수정선배는 현재의 남편인 경동선배가 첫사랑이었다고 하며 남편 자랑을 했다고 한다. 하긴 내 기억에도 수정선배가 경동선배를 위하는 마음은 참 대단했던 것 같다. 시인과 르포작가. 글쓰는 사람들끼리 부부가 되면 낭만적인 사랑을 할 수 있을까 궁금하다. 

 

  

 

 

 

 

 

 

 

 

 

 

 

 

 (르포작가 박수정 선배와 시인 송경동 선배의 책들) 

아내는 절대비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는지, 수정선배의 이야기 외에 다른 사람의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물론 본인의 첫사랑 이야기도 들려주지 않았다. 그날의 분위기와 인상적이었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이어갔다. 내가 아는 사람들 이야기가 나오면 몇 마디 거들어주면서, 얘기해주지도 않을 남의 첫사랑 이야기에 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대신 내 첫사랑을 떠올렸다. 지금 생각하면 참 옛날 일처럼 느껴지는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서투르고, 멍청하고, 바보같았던 내 모습과 따뜻한 웃음을 띄운 귀여운 그녀의 모습이 생각났다. 그때도 그리고 그때 이후로도 나는 누군가를 좋아하면 그 사실을 절대 숨기지 못하는 편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다 눈치챌만큼 그 사람에게 빠져드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차라리 남들이 알아채기 전에 먼저 그 사람에게 표현을 하는 편이다.(고백이라기보다는 좋아한다는 느낌을 전해주는 정도랄까!) 

첫 눈에 반한 것은 아니었지만 처음 만난 자리에서 확실하게 호감을 느꼈다. 그리고 두번, 세번 만날때마다 그녀를 향한 마음이 불타올랐다. 그녀는 정말 얄밉게도 내 마음을 살짝 흔들어놓을만큼만 내게 관심을 나타냈다. 아마 내가 그녀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걸 주변 친구들이 다 알게되었고, 그녀도 알고 있었을텐데. 그래서였을까 만날 때마다 조금씩 더 잘해주는 그녀를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그 시기는 교과서에도 나오는 '질풍노도'의 시기였다. 수많은 일들이 우리를 휩쓸고 지나갔다. 많은 일들이 지나간 후에 조금은 잔인한 이별의 순간이 찾아왔고, 다시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에 나는 비교적 담담하게 그녀에 대한 내 감정을 정리할 수 있었다. 

군대가기 전에 나는 첫사랑 이야기를 바탕으로 소설을 한 편 썼다. 당시 동아리 회장을 맡은 후배 녀석이 동아리 회지에 실을 원고를 달라고 졸라서 입영열차를 타기 전날까지 열심히 연필로 적은 원고를 건네준 기억이 난다. 황당한 건 이 녀석이 결국 회지를 내지 못했고, 그 원고는 어떻게 되었는지 찾지도 못했다는 거였다.(휴가나왔을 때, 내 원고를 타이핑 했다는 새내기 여자후배를 만난 기억은 있다. 글을 읽고 어떤 사람인지 무척 궁금해 했다고..... 아마 시커먼 군인이 그 글의 주인공임을 알고 곧바로 궁금증이 사라져버렸겠지만!) 물론 노트에 적어놓은 초고는 갖고 있었다. 나중에 문학동호회에서 활동할 시절에 그 초고를 다시 손보곤 했다.  

한창 글을 열심히 끄적였던 시절에 썼던 단편소설이 여러 편 있다. 대부분 남에게 보여주기 부끄러운 수준이다. 내 원고들을 꺼내놓았던 건, 한창 활동했던 문학동호회 게시판과 후배들의 등쌀에 못이겨 실었던 동아리 회지와 학회지 뿐이었다. 그 중에서도 첫사랑 이야기는 동호히 게시판에 한 번 올렸다가 단지 '표현방법이 신선하다' 정도의 평을 받고 낙심하여 아무 곳에도 공개하지 않았다. 그 후로 다시는 이 원고를 들여다보지 않았다. 

이 글을 쓰면서 아주 오랫만에 그 글을 열어보았다. 지금 읽으니 왜이렇게 유치하고 조잡하기만 한지. 그 당시에는 그래도 스스로 만족하며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지금은 도저히 읽어주지 못하겠어서 그냥 다시 닫아버렸다. 역시 첫사랑에 대한 추억은 그냥 추억으로 묻어두는게 가장 좋은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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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09-16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감은빛님.
저는 왜 감은빛님이 여자분이라고 생각했을까요? ^^

첫사랑. 아름답게 했으면 참 좋았을건데... 라는 아쉬움이 조금 드는 주제입니다.
이제는 서서히 잊혀져가는 기억 중 하나네요.

lo초우ve 2010-09-16 11:47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 저도 감은빛님이 여태껏 여자분인줄 알았어요 ㅋㅋ
첫사랑은 누구나 다 있는거라 생각되어요 ^^
아직도 얼굴이 생생하게 기억되는데..
이름도..
신장도..
성격도..

그렇지만, 지금은 까마득한 옛 추억이 되었어요 ^^



감은빛 2010-09-17 07:05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 하얀안개섬님

그랬군요. 저도 궁금하네요.
왜 제 글만보고 저를 여성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까요?
예전에도 그런 분이 여럿 계셨거든요.

어느 게시판에서는 육아에 대한 글들을 종종 올리곤 했는데,
거기서도 대부분 저를 여성으로 생각하시더라구요.
심지어 글 내용에 늘 '아빠'라는 단어를 적어놓았음에도 말이죠.

첫사랑 참 가슴 설레게 하는 단어였는데,
시간이 많이 지나고 나니 이제는 다소 무덤덤해지는 것 같아요.

꿈꾸는섬 2010-09-17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저도 감은빛님이 여자인줄 알았다가 위의 글들 읽다보니 남자셨군요.ㅎㅎ 아무래도 닉네임이 너무 예뻐 그런 착각을 한 것 같아요.^^

감은빛 2010-09-18 01:06   좋아요 0 | URL
필명 때문에 생기는 오해인가요?
알라딘에서 이렇게 많은 분들이 오해를 하셨다니 조금 예상밖이네요.
그래도 예쁘게 봐주신다니 감사한 일입니다! ^^

양철나무꾼 2010-09-18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수정님과 송경동님을 선배라고 부를 수 있는 감은빛님이 왠지 멋져 보이는 걸요~^^

저도 첫사랑은 추억으로 묻어두고 술먹고 코가 삐뚤어졌을때나 한번씩 꺼내봐야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박수정님은 아주 조금 불행하시겠는걸요~^^

감은빛 2010-09-18 01:12   좋아요 0 | URL
경동선배와는 평택미군기지 투쟁때 인연을 맺었고, 한미FTA 투쟁, 기륭비정규직투쟁, 용산참사대책위 등등 다양한 곳에서 함께 활동했었어요. 수정선배와는 기륭비정규직투쟁때 알게되었고, 출판과 관련해서도 인연이 있었어요.
친한 사이는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그 열정적인 삶을 존경하고 있습니다.

수정선배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실 겁니다. 아마! ^^
 


지난 주말 사무실 이사가 있었다. 같은 건물에서 사무실을 서로 바꾸는 좀 특이한 이사였다. 새 사무실은 옛 사무실 보다 층수가 낮아서 좋다! 책이 들어올 때마다 끙끙거리며 책을 올리느라 얼마나 힘들었던지 생각하면 너무나도 기쁜 일이다.(이 건물엔 엘리베이터가 없고, 가파른 계단이 끝없이 이어져있다!) 그리고 공간이 좀 더 아담하고 아늑한 느낌이 든다. 옛 사무실은 불필요한 공간이 많았고, 아무리 청소하고, 정리해도 늘 정신없는 느낌이었다. 대신 공간 자체가 좁아졌기 때문에 개인공간이 줄어들었고, 책을 쌓아놓을 공간이 부족하여 정리하느라 애를 좀 먹었다.(결국 책을 다 옮겨오지 못하고, 일부는 옛 사무실 창고 공간에 그대로 쌓아두고,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갖고 내려오기로 했다.) 

이사를 마치고, 짐들을 정리하고, 개인 공간을 다시 일하기 좋게 세팅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일을 시작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책 옮기느라 혹사당한 온 몸의 근육들이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고, 사무용품들을 찾기 위해 구석구석을 뒤지기 일쑤였고, 바뀐 공간에 적응하지 못해 자꾸만 헛손질을 하고는 머리를 긁적이곤 했다. 



무엇보다 막내기자가 일을 정리하는 통에 내가 맡아야 할 일상 업무가 엄청나게 늘어났다. 조금 어설프고, 미덥지 못했지만, 한 사람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엄청났다. 갑자기 늘어난 업무량에 적응이 안 되어서 며칠 동안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 와중에 편집장님께서 새로운 제안을 하셨다. 기자 역할을 맡아보면 어떻겠냐고? 사실 여기로 일터를 정하면서 처음에도 그런 말씀을 한 적이 있었다. 예전 일터에서 간혹 기사를 쓴 적이 있었다는 말씀을 드리자, 취재나 편집에는 관심이 없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지금 하고 있는 영업일이 더 좋다는 말씀을 드렸다. 그 대답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취재하고 기사를 쓰는 일도 물론 재밌고 좋을 것이다. 편집일도 한번쯤 해보고 싶은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가장 재미를 느끼고 또 잘 할 수 있는 일은 영업일인 것 같다. 



한가지. 글쓰기에 대한 욕심 때문에 미련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사실 처음 출판계에 들어올 때는 편집이나 취재가 더 하고 싶은 일이었다. 주어진 일을 하다 보니 영업일을 하게 되었고, 뒤늦게 시작한 탓에 아무것도 모르고 무조건 덤벼들었다. 좌충우돌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서서히 나만의 방식을 익혀가게 되었다. 뭐 지금도 영업자로서의 나는 미숙하기만 하지만, 그래도 이제는 이 일이 재밌다. 맨 땅에 헤딩해가면 익힌 하나하나의 사소한 노하우들이 자랑스럽다.(선배들이 들으면 우습겠지만.) 


사람의 욕심을 끝이 없다. 아무래도 자꾸만 글 쓰는 일을 본격적으로 해보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꿈틀 올라온다. 하지만 버스 지나가고 손 흔들어봐야 소용없다. 이제 막 재미를 붙인 이 일을 충분히 할 만큼 했다고 생각될 때. 또 다른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리라 마음먹고 들뜬 마음을 달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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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1 10: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13 12: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blanca 2010-09-11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닉네임이 넘 이뻐요. 감은빛.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요? 출판사에서 일하시나요? 예전에 직업중 가장 대단하고 또 대단한 분야는 영업직이라고 직원들과 결론내린 기억이 납니다. 지금도 그 생각은 여전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님 대단하세요^^

감은빛 2010-09-13 12:58   좋아요 0 | URL
감은빛이란 필명이 무슨 뜻이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지난 번에 블랑카님 글에 댓글로 적었듯이 실명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구요.
감은빛은 짙고 윤기나는 검은색을 뜻하는 순 우리말입니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어감이 좋아서 쓰고 있어요.

영업도 종류가 많잖아요. 저는 뭐 그리 대단한 영업을 하는 건 아니구요.
그저 책이 좋고, 사람 만나는 게 좋다보니 그럭저럭 하게 되더라구요.
칭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2010-09-12 02: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13 13: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억의집 2010-09-13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사한 사무실에서는 회사가 더 번창하기를 바래요. 이번 주에 이사예정이었다면 비때문에 곤혹스러웠겠어요. 지겹네 비가 내렸네요.... 출판마케팅의 한기호씨도 영업직으로 성공한 케이스였지요. 전 그 분 열정시대인가 뭐가 읽었었는데, 창비시절부터 마이다스의 손이더라구요. 감은빛님의 영업이야기 하니깐 갑자기 그 분이 불쑥 떠오릅니다. 술은 안 하시나요?

감은빛 2010-09-13 13:10   좋아요 0 | URL
네, 고맙습니다.
비가 엄청 많이 왔죠.
덕분에 파주에서 열릴 예정이던 책잔치는 취소되었다고 들었어요.
홍대 '와우북페스티벌'은 비 때문에 하루일정이 모두 취소되기도 했구요.

한기호 소장님은 무척 유명한 선배님이시죠.
술은 가끔씩 합니다. 저녁에 아이를 돌봐야 할 일이 종종 있어서 자주는 못하구요. ^^

lo초우ve 2010-09-14 0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짙고 윤기나는 검은색이었군요 ^^
좋은직업 가지셔서 부럽네요 ^^
난 그냥 평범한 가정주부거든요 ㅋ
감은빛님 새로 옮김 사무실 잘 적응하시구요,
그곳에서도 더 큰 대박 낳으시길 바래요 ^^
오늘도 홧팅~!! ^^

감은빛 2010-09-15 14:53   좋아요 0 | URL
아, 별로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누군가 출판계에 들어올 생각이라면 말리고 싶어요.
가정주부는 참 어려운 직업(물론 직업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요!)입니다.
제가 몇 달간 아이 돌보면서 집안일 해봐서 잘 알아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티 안나고, 돌아서면 할일이 산더미죠.
이 땅의 가정주부들은 존경받아 마땅합니다!

응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lo초우ve 2010-09-16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 하하하하하~~
맞아요 ^^
여자들.. 아니, 엄마들 그리고 가정주부들..
정말 대단한 직업입니당 ^^
그래서 타고 나는것 아닐까 생각되어요 ^^
여자들 남자들 각자 맡아서 할일들.
여자는 집안살림 잘하고 내조 잘하고
남자는 밖에서 열심히 일하고 가정지키고...후훗 ^^

감은빛 2010-09-17 07:07   좋아요 0 | URL
저는 김두식 선생처럼 집에서 가정주부 하는게 꿈입니다.
아내가 돈만 잘 벌어다준다면 그렇게 살고 싶어요! ^^
 

이포댐(정부측 주장은 '보'라고 하지만, 규격으로 보아 '대형댐'이라고 불러 마땅함!)위에서 고공농성을 벌이던 3분의 투사(염형철 처장, 장동빈 국장, 박평수 위원장)가 오늘 스스로 내려왔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이들을 재워놓고 부랴부랴 뉴스를 검색했다. 오늘 오후 5시반쯤 내려와서 곧바로 경찰에 연행되었다고 한다. 기습적으로 이포보 상판 교각을 점거한 지 41일 만이고, 법원으로부터 하루에 한 사람당 300만원(하루밤에 900만원)의 벌금과 함께 퇴거명령을 받은지 11일만이다.(계산해보면 9천9백만원의 벌금이 부과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낮의 뜨거운 햇살과 퍼붓는 빗줄기와 몰아치는 바람을 피할 곳이라고는 공사자재를 덮어놓았던 천을 이용한 임시 천막뿐이었다. 끼니때마다 선식과 물만으로 식사를 대신하고, 문명의 온갖 혜택과 동떨어진 생활을 해왔다. 철사와 노끈을 재활용하여 실과 바늘을 만들어서 손상된 현수막을 수선하고, 자가발전 손전등을 개조하여 휴대폰 배터리를 충전하는 등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어떻게든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했다. 참 놀라운 적응능력이다! 

3명의 투사들 중에서 염형철 처장님과 장동빈 국장님은 개인적으로 안면이 있다. 친한 사이는 아니지만 새만금 투쟁때부터 몇 차례 함께 활동했던 경험이 있고, 술자리를 가진 적도 있다. 지난 주 이포댐 현장 상황실을 방문했을 때, 먼 발치에서나마 망원경을 통해 얼굴을 볼 수 있었는데, 생각보다는 건강해보여서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손 닿을 수 없는 거리에서 온 몸으로 4대강 사업의 부당함을 주장하는 그들에게 작은 힘이라도 보태주지 못하는 내 입장이 못 견디게 싫었다. 

이들이 이포댐에 오르는 날 낙동강 함안댐(역시 정부 주장은 '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댐'이다!) 공사현장 타워크레인을 점거했던 2명의 투사들(최수영 처장, 이환문 국장)도 있었다. 이들은 농성 20일만에 태풍 '덴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타워크레인에서 내려올 수 밖에 없었다. 2003년 태풍 '매미'때는 전국의 타워크레인 57대가 쓰러진 적이 있다. 태풍이 시시각각 다가오면서 사고로 인한 인명피해를 우려하여 시민단체와 정치인들이 이들을 설득했다. 눈물을 머금고 고공농성을 철회한 2명은 경찰에 구속되었지만 삼일 후에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석방되었다.(48시간 구금 원칙 위반!)

이포댐에 비하면 함안댐의 상황은 무척 열악했다. 이포댐 투사들이 점거한 교각 상판은 그래도 안정적인 구조물이었지만, 함안댐 투사들이 점거한 타워크레인은 맘편히 몸을 쉴 수도 없는 불안정한 공간이었다. 이들은 용변문제도 원활하게 해결하기 어려워 하루 한끼 선식과 물로만 생활했다. 

함안댐에서는 수영이형과 친분이 있었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다양한 현장활동을 함께했다. 처음 고공농성 소식을 접하고 함안댐 타워크레인에 올라간 사람 중 한 명이 수영이형이란 얘길 들었을 때, 혹시 경찰의 무리한 강제진압으로 인해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봐 걱정되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트위터에 올라온 사진 중에 수영이형의 아들이 멀리서 아빠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사진을 보았을 때, 나도 갑자기 딸아이 생각이 나서 울컥 눈물이 나올 뻔 하기도했다. 

이번 환경연합의 함안댐, 이포댐 점거 고공농성은 여러모로 큰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실제로 1년 넘게 공사가 진행되었고, 이미 수많은 환경파괴가 자행된 시점에서 반대의견만 무성했을 뿐, 어떤 구심점으로 힘이 모아지지 못했던 상황에서 이루어진 직접행동이었다. 이들의 고공농성 덕분에 온 국민의 시선이 다시 4대강 공사현장으로 모아졌고, 농성현장을 찾는 발길도 많아졌다. 

비록 이들의 요구사항들이 받아들여지지 못한 상황에서 내려온 것이 못내 아쉽긴 하지만, 이제부터 더 큰 싸움을 준비해나가기 위해 일단 건강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의견이 오늘 이포댐 투사들을 설득시켜 내려오게 했다. 

글쎄 개인적으로는 자꾸만 새만금과 천성산의 아픔이 겹쳐져서 마음이 무겁다. 4대종단(기독교, 천주교, 불교, 원불교)을 대표하는 성직자들의 목숨을 건 3보1배 행렬이 부안을 출발하여 서울까지 도착했을 때와 지율스님께서 목숨을 건 4차례의 단식을 이어갔을 때에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하물며 이명박 정부가 지금 귀를 기울여 줄 것인가 생각해본다면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2008년 들불처럼 번져갔던 촛불 보다 더 큰 움직임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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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09-01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강해야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
건강해야 싸울 수도 있고,
건강해야 촛불도 켤 수 있고,
건강해야 희망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지금,희망을 가져도 좋을진 알 수 없지만,
지금...무엇에 우선하여 건강들은 챙기셔야 합니다.

저도 미욱하나마,그 분들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pjy 2010-09-02 09:35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 말씀에 완죤 동감입니다! 건강하셔야 됩니다!

양철나무꾼 2010-09-02 10:36   좋아요 0 | URL
태풍에 큰 피해 없으신지요~
지난 밤 비에...전 참 엉뚱하게도...
그분들 다행이다,아 다행이다...
마음을 쓸어내렸습니다.

감은빛 2010-09-02 10:59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 pjy님,
네, 옳은 말씀입니다. 몸이 건강해야 뭐든 할 수 있죠.
그런 의미에서 저는 단식투쟁을 제일 싫어합니다.

오늘 오후 3시에 구속영장실질심사가 있는 날이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부디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래봅니다.

아, 저도 새벽에 창문 점검하고 다시 누우면서 똑같은 생각했습니다.
미리 내려와서 참 다행이라고......

yamoo 2010-09-02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양철나무꾼님에게 두표~!

감은빛 2010-09-03 12:56   좋아요 0 | URL
그럼 저도 두표~! ^^
 
날 보러와요.

 무슨 자신감에선지 모르지만 어릴때부터 글쓰기는 늘 자신있었다. 중학교때는 교내 백일장에서 상도 받았다. 고등학교때는 교지에 글이 실렸고, 대학에서는 학보에 몇 번인가 기고글을 썼다. 

 환경운동단체 활동가로 일할때는 성명서나 보고서 등을 쓰느라 밤을 지새웠고, 가끔 원고 청탁을 하는 대학 학보에 글을 보내곤 했다. 웹진에 글을 써보기도 했고, 예전에 몸 담았던 잡지에 글을 싣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글을 잘 써서 이렇게 많은 기회들이 주어졌다기 보다는 그저 글의 성격에 맞는 입장에 서 있었기 때문에(혹은 운이 좋았기 때문에) 과분하게도 많은 기회들이 있었던 것 같다. 

 암튼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글쓰기에 대한 자신감을 점점 잃어가고 있었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참 많고, 나는 아무래도 재주도 없고, 노력도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운이 좋았다고 해야할까? 리더스가이드라는 독자 집단(커뮤니티)에서 처음으로 낸 단행본에 공동저자 중 한 명으로 참여했다. 앞서 말했듯이 잡지나, 웹진에 글이 실린 적은 있지만, 단행본에 참여한 건 처음이다! 

막상 책이 나오고 나니, 부끄러운 마음이 먼저 든다. 함량 미달의 원고를 받아 책으로 엮어준 출판사에 고마운 마음이다. 책을 읽을 때, 저자의 말을 보면 종종 '나무에게 미안하다!'는 표현을 찾을 수 있는데, 지금 내 심정이 딱 그렇다. 다른 우수한 여러 글들에 비해 내 글은 웬지 모자라 보이고, 그래서 굳이 몇 페이지 더 늘리는 바람에 나무가 더 희생당했단 생각이 든다. 

 부끄러운 건 뭐 이제와서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어쨌든 첫 단행본 출간을 자축하는 의미에서 키보드를 두드려 보기로 했다. 

 이 책은 제목만 보면 짐작 할 수 있듯이, 책에 대한 책이다. 이미 책에 대한 책들은 여럿 나와있다. 그 대부분이 유명한 분들이 쓴 책들이다. 이 책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서평꾼이란 단어를 쓰는 사람들도 있던데, 나에게 적용시키기에는 조금 민망한 단어다!)이 풀어놓은 책에 대한 이야기다. 하지만 단순히 서평을 모아놓은 책은 아니다. 

이 책의 부제인 '책세이와 책수다로 만난 439권의 책'이란 문장을 보면 낯선 단어인 '책세이'가 눈에 띈다. 쉽게 짐작 할 수 있겠지만, 이 단어는 책 과 에세이를 합친 신조어다. 책에 대한 이야기라는 뜻이다. 기존의 서평과는 달리 자연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쓰면서 그 안에 책에 대한 이야기가 녹아들어가 있다는 개념이다.(적어도 내가 이해하는 개념은 그렇다!) 

유명한 소설가나 평론가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 읽고 쓴 책과 일상에 대한 이야기의 모음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용감하고 새로운 시도가 얼마나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을지 기대와 불안이 뒤섞인 묘한 마음으로 지켜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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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0-08-25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겸손하시기는...쳇!
나 같은 사람은 어쩌라구...ㅜㅜ

감은빛 2010-08-25 22:31   좋아요 0 | URL
무슨 말씀을 하시나요?
스텔라님의 독창적이고 재밌는 글 읽고 참 많은 걸 깨달았습니다!
멋져요! ^^

루체오페르 2010-08-26 0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서재에서 보고 왔습니다. 축하드려요,감은빛님~^^
저는 유명한 사람들보다 평범 일반적인 우리네 일상의 이야기가 더 좋더라구요.
대박기원 합니다!ㅎㅎ

감은빛 2010-08-26 10:41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저도 지금 다른 저자들의 글 읽고 있는데요.
루체오페르님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지금까지 읽었던 책에 대한 책들 중에서 제일 재밌는 것 같아요!

순오기 2010-08-26 0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행본 저자로 데뷔하신 거 축하합니다.
전에 즐겨찾기가 돼 있어 종종 와 봤는데, 최근엔 적조했습니다.ㅜㅜ
아이는 좋은 어린이집에 잘 다니고 있나요?^^

감은빛 2010-08-26 10:45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알라딘 서재를 그닥 성실히 관리하지 않은 제 탓입니다!
저도 한동안 종종 방문했었는데, 꽤나 오래전 일이 되어버렸네요.

큰 아이는 썩 좋은 곳은 아니지만, 평범한 곳에 잘 다니고 있구요.
이제 막 백일이 지난 둘째도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는데,(맞벌이라서요 -_-;;)
그 곳은 좀 맘에 안드는데, 지켜보고 있는 중입니다.

그때 어린이집 사건을 아직도 기억해주시고, 신경써주셔서
무척 감사합니다! ^^

stella.K 2010-08-26 11:36   좋아요 0 | URL
헉, 어린이집 사건? 무슨 일일까요?
맞벌이 하시눈군요. 힘드시겠어요.
아기가 어린이집에서 무탈하게 잘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yamoo 2010-08-26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글을 잘 써서 이렇게 많은 기회들이 주어졌다기 보다는 그저 글의 성격에 맞는 입장에 서 있었기 때문에(혹은 운이 좋았기 때문에) 과분하게도 많은 기회들이 있었던 것 같다.

기회는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 기회가 주어지면 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그릇이 준비돼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죠~ 책의 필자셨군요^^ 감축드립니다!

감은빛 2010-08-29 03:38   좋아요 0 | URL
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원했지만 결국 인연을 맺지 못했던 기회들도 많았겠지요.

그렇다 하더라도 이번 단행본 참여는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든 글들을 다 읽어보았는데, 저는 아직 한참 멀었다는 걸 새삼 깨달았거든요. ^^

양철나무꾼 2010-08-29 0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속에 감은빛 님의 글도 있는 거군여,축하드려요~^^

감은빛 2010-08-30 11:36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부족한 글 하나 들어가 있습니다.
반갑습니다!

꿈꾸는섬 2010-08-29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반갑습니다.^^
저 책 속에 감은빛님도 계신거군요.^^
축하드려요.^^

감은빛 2010-08-30 11:36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네, 부족한 글 하나로 참여했습니다.
반갑습니다!

마녀고양이 2010-08-30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 언니가 책 주신다고 하네여.
감은빛 님의 글도 같이 읽을 수 있겠네요...
축하드려염!

감은빛 2010-08-30 15:26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주말동안 다 읽었는데, 좋은 글들이 많습니다.
마녀고양이님도 이벤트 당첨 축하합니다! ^^

라로 2010-08-30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글도 저 책속에 있군요!!!
받게 되면 님의 글도 읽을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드니 신기해요~.^^
축하드립니다.^^

감은빛 2010-08-30 15:27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주말동안 다 읽었습니다.
재밌는 글들이 많더라구요.
이벤트 당첨 축하합니다! ^^

비로그인 2010-09-02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여!
서재라고 떡 하니 만들어놓고는 글쓰기엔 자신이 없는 터라 리뷰는 거의 쓰지도 않는 저같은 사람은...감은빛님이 너무 부러울 따름이구요.
즐찾도 고맙구요^^

감은빛 2010-09-03 12:59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저도 리뷰는 많이 안쓰는 편입니다.
리뷰를 쓰려면 적어도 2번 이상 읽고 쓰는 편이기때문에
그렇게 읽는 책은 많지 않거든요.
부럽다니요? 마기님이 저보다 훨씬 더 글솜씨가 좋던걸요!
종종 놀러가겠습니다! ^^
 
학교를 버리고 시장을 떠나라 - 학벌없는 사회
학벌없는사회 외 지음 / 메이데이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녹색평론 발행인인 김종철 선생님이 가장 존경하는 철학자, 이반 일리치는 ‘학교를 교육의 장애물이라고 했다. 근대 교육제도로서 학교가 생기기 이전에는 누구나 삶의 지혜를 바탕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갔다. 그러나 학교가 생기면서부터 지배계급이 주입시키고자 하는 것들만 학교에서 강제로 배우게 되었다. 게다가 의무교육 제도는 지배계급의 권력을 세습하는 가장 뛰어난 도구였다. 대다수는 학교를 나오고도 경쟁에서 뒤쳐져 낙오되고, 극소수의 선택받은 학생들만 살아남아 인정받는다. 일리치의 표현에 의하면 ’극소수가 따지만, 대다수는 잃게 되어 있는 복권을 강제로 구입하는 것‘이 바로 학교를 통한 의무교육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끔찍이도 학교를 싫어했다. ‘모든 과목을 다 잘해야만 한다면 그게 어디 사람인가? 로봇이지’ 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나는 수학과 과학을 참 못했는데, 성적이 나쁘다고 때리거나, 친구들이 모두 돌아간 뒤에도 남아서 마저 외우게 시키는 선생님들이 정말 싫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점점 더 수학과 과학을 싫어하게 되었고, 중학교 1학년때 이미 그 두 과목을 다 포기해버렸다. 대학에 진학할 때까지 그 두과목을 진지하게 공부해 본 기억은 없다. 그렇지만, 나를 그렇게 괴롭혔던 그 많은 선생님들의 주장과는 달리, 나는 두 과목을 다 포기하고도 무사히 대학에 진학했다.(수학과 과학은 늘 꼴찌이거나, 꼴찌에 가까운 성적이었다.)

 

초등학교(당시엔 국민학교였지만)나 중학교도 싫었지만, 가장 싫었던 건 고등학교였다. 선생님들의 일상적인 폭력도 싫었고,(지금 기준으로는 정말 놀랍게도 매일 성폭력 휘두르는 선생님들도 많았다!) 하루종일 갇혀있어야 하는 신세도 싫었지만, 가장 짜증나는 건, 성적만으로 학생들을 평가하는 태도였다. 학생들은 늘 등수로만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었다. 성적이 나쁜 학생들은 어떤 식으로든 괴롭힘을 당했고, 성적이 좋으면 무슨 짓을 해도 용서받을 수 있었다. 나는 그런 부당한 방식을 견딜 수 없었다. 하루빨리 간수(선생님들)들이 지키는 감옥(학교)를 벗어나는 것이 꿈이었다. 가끔 탈옥(땡땡이)을 시도했다. 그래도 나는 별로 꾸지람을 듣지 않았다. 왜냐하면 ‘대학 진학 가능’ 이라는 딱지가 나에게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제대하고 나서 다시 군대에 돌아가게 되는 꿈을 가끔 꾼다고 한다. 생각만해도 끔찍한 악몽이다. 나에게 그보다 더한 악몽은 고등학교에 돌아가는 꿈이다. 그만큼 나는 학교를 싫어했다.

 

오늘 한 권의 책을 읽었다. ‘학벌없는사회’가 지은 <학교를 버리고 시장을 떠나라>라는 책이다. ‘학벌없는사회’에서 일하는 여덞명의 필자가 교육문제에 대해 날카로운 칼날을 들이대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는 바로 ‘교육문제’라고 생각한다.

 

내 아이들이 내가 그토록 싫어했던 학교에 다니게 되다는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내 아이들이 바로 몇 년만 지나면 학교에 다녀야만 하는 현실이 싫다! 그래서 대안학교를 알아보라고 주변에서 충고를 많이 하는데, 나는 솔직히 대안학교가 현실에서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일단 거기에 우리 아이들을 보낼만한 경제력이 우리 부부에게는 없다. 보낼 수 없는데 어떻게 대안이 된단 말인가!

 

학교는 변해야 한다. 아니 없어져야 한다. 당장 학교를 없앨 수 없다면, 가장 큰 문제 - 경쟁을 부추기는 ‘학벌’을 없애야 한다. ‘학벌’이 결코 그냥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학벌’이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런 책들을 부지런히 읽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하나 찾아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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