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로그
지난 달에 아이들이 ˝아빠, 셋로그 알아요?˝ 라고 물었다. 당연히 들어본 적이 없어서 모른다고 했더니, ˝아빠 이거 깔아요.˝ 라고 했었다. 그때 좀 정신이 없어서 ˝다음에 만나면 알려줘.˝ 하고 말았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지나 어린이 날 만났을 때 큰 아이가 또 얘기하길래, 내 전화기를 건네주고 알아서 하라고 했다. 큰 아이 설명으로는 친한 사람들끼리 일상을 공유하는 앱이라고 했다. 본인은 혼자 나와 살며 엄마, 아빠랑 일부러 일상 이야기를 자주 하는 편이 아니라 이걸로 공유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그리고 아이들끼리 하는 얘기를 들어보니 아이들과 애들 엄마가 함께 있는 방에 애들 엄마는 거의 소식을 올리지는 않는 듯 했다. 그러면서 큰 아이는 아마 아빠가 훨씬 더 적극적으로 사진을 올릴 거라고 예상했다. 막 달리기 하는 사진이나 운동하는 사진 올릴 거라고.
암튼 이 셋로그 라는 앱은 큰 아이의 말대로 친한 사람들 서너명과 그룹을 만들어 매 시간 한 번씩 사진을 찍고 짧은 설명을 붙여 공유하는 앱이었다. 어린이날에 아이들과 함께 있었는데, 아이들이 매 시간마다 한번씩 사진을 찍고 짧은 멘트를 붙여 올리곤 했다. 큰 아이가 나에게도 이렇게 이렇게 하라고 알려줘서 나도 동참하기 시작했다.
신기하게 아이들 덕분에 셋로그를 깔았던 날 이후로 인스타그램에서 셋로그 관련 소식이 엄청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전혀 보지 못했었기에 그게 뭔지도 몰랐었는데. 아마도 내 전화기에 해당 앱이 설치되었다는 것을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이 알아차리고 해당 소식을 더 많이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본 몇몇 숏츠에서는 셋로그를 함께 쓰는 다양한 사례들을 보여줬다. 가족들은 주로 자매들 사이에서 일상 공유 모습들을 보여줬다. 셋로그 숏츠들에서는 대체로 친절하게 해당 인물의 직업을 자막으로 알려줬다. 이게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밤에 혹은 새벽에 잠들때까지 매 시간 한 장면씩 공유하는 것이라 직업 특성이 잘 보이기는 했다. 예를 들어 야간 일을 해야하는 직업들, 간호사나 소방관 등은 아침에 퇴근해서 잠을 자고, 새벽 일찍 출근하는 사람들과 오후에 출근하는 사람들의 패턴이 잘 보였다. 좀 흥미로운 사례가 다양한 직업의 친한 친구들 셋로그였는데, 아마 스튜어디스, 미용사(사장), 디자이너(프리랜서) 등이 있는 장면이었다. 일어나는 시간이 다 다르고 일의 종류와 양상이 다 다른데도 가능하면 비슷한 장면들을 연출하고 있었다. 매 시간 제일 먼저 올리는 사람이 정한 특정 색깔을 찾아 올리는 사례도 있었고, 어떤 춤이나 동작을 따라하는 사례들도 많았다.
참 사람들은,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단하고 신기한 것 같다. 각자 힘든 일상을 살아가는 와중에 어떻게든 연결하고 연결되려고 이런 것이 유행하기도 하는구나 싶었다. 부부나 연인이 단 둘이 하는 경우들도 보였다. 어쩌면 장거리 커플, 주말 부부 이런 상황에서 유용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 어떤 걸그룹 연예인들의 사례도 봤다. 아마 연차가 오래된 그룹이라 숙소 생활은 진작 끝난 것 같았다. 각자 일어나 가볍게 씻고 먹고 샵에 다녀와 스케쥴을 다녀오는 차 안의 모습과 아주 짧게 무대 뒤 모습 등이 담겨 있었다.
한편으로 다같이 셋로그를 하자고 해놓고 한 명만 매 시간 꾸준히 사진을 올리고 나머지는 전혀 참여하지 않아서 새로운 왕따의 유형이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셋로그에 여러 그룹이 있다면 그런 그룹마다 그 모습이 완전히 다를 것 같았다. 나야 뭐 아이들 덕분에 이 유행에 동참해보는 영광을 얻어서 아이들과 함께 있는 방 하나 밖에 없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40대 50대 아저씨들과 이걸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그들이 이걸 제대로 할 것 같지도 않고.
셋로그 덕분에 우리 아이들이 하루 종일 뭐하고 지내는지 잘 알 수 있다는 건 확실한 장점이었다. 아직 고등학생인 작은 아이는 상대적으로 단조로웠지만, 큰 아이는 통학 거리가 꽤 멀어서 일주일에 이틀인가 사흘 밖에 학교를 가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날도 자주 바뀌는데, 큰 아이가 제일 열심히 매 시간 소식을 공유하고 있어서, 지금 전철타고 학교 가는 구나. 지금 알바 중이구나. 이제 집에 가서 쉬는구나. 이런 것들을 알 수 있는 것은 좋았다.
이것도 유행이라 조금 시간이 지나면 다들 시들해질 것이다. 어쩌면 우리 아이들도 얼마 못가서 매 시간 사진 찍어 공유하는 일을 귀찮게 여길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다들 하는 것이라 마치 당연한 듯 따라 하지만, 곧 너도 나도 안 하는 날이 되면, 다들 언제 그랬냐는 듯 다른 유행으로 옮겨가겠지. 만약 누군가 꾸준히 이걸 하는 사람이 있다면, 주위에서 넌 아직도 셋로그 하니? 라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나로서는 이 유행 덕분에 아이들과 새로운 접점이 만들어져서 다행한 일이고 좋은 일이다. 유행이 지나기 전에 달리기 사진이나 운동 사진을 꾸준히 공유해야지. 지난 주에 13킬로미터 달리기 하며 두 차례 달리기 소식을 공유했고, 동네 헬스장에서 운동하는 소식도 공유했었다. 또 지금까지는 단톡방에서 아이들과 약속 정하기 위해 이번 주는 무슨 요일 빼고는 저녁마다 회의가 있어 라고 단순하게 전달했던 것을 이젠 매일 회의 장소로 이동하는 소식이나, 회의 도중 휴식 시간 소식 등을 공유할 수도 있다. 물론 나는 아직 이걸 매 시간 찍어 올리는 것에 익숙해지지는 않아서 깜빡하는 경우가 더 많기는 하다.
요즘 저녁마다 일정이 있어서 달리기 하러 가기가 쉽지 않다. 어떻게 하루도 안 빠지고 매일 저녁 일이 생기나. 어쩌다 운이 좋아서 좀 일찍 마치는 날이 생기면 놓치지 말고 꼭 달리러 나가야지. 이번주에는 18에서 20사이를 목표로 달릴 예정이다. 다음주에는 22를 찍어야지.